가네하라 히토미의 세 번째 글, 아미빅.
이 작가의 글은 항상 읽을까말까 수많은 고민을 하게 만든다.
그러면서도 결국은 읽게 되는 게 참 신기하다. 취향도 아닌데.
Acrobatic Me-ism Eating away the Brain, it causes Imagination Catastrophe.
아크로바틱한 자기중심주의가 뇌를 침식해 일어나는 상상력의 붕괴.
책 첫 면부터 띄어쓰기도 없이 나열된 글자만큼이나 제목도 참 난해하다.
신세기 에반게리온을 보고 정신병 걸릴 것 같은 애니라고 나만의 노트에 쓴 이후, 책으로는 처음 같은 의견을 써 봤다. '정신병 걸릴 것 같은 글'이라고.
처음에는 굉장히 건조한 느낌이 들어서, 이 책 작가, 가네하라 히토미 맞아? 다른 작가 아냐? 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읽으면 읽을 수록, '아, 가네하라 히토미 맞군.'이라고 수긍하게 됐다.
'뱀에게 피어싱'이나 '애시베이비' 때도 그랬지만, 캐릭터가 참 비현실적이고 극단적이다.
그러면서도 내 자신이 그 안에서 보인다는 거지.
음식을 혐오하며 망가뜨리는 것은 정말 싫지만, 이중인격 놀이(?) 부분은 움찔하면서 봤다.
일상 속에서 전혀 할 필요도 없는 거짓말을 하고, 그런 이중성에 늘 괴로워하면서 결국은 자기 혐오에 빠지는 나와 같아서.
그리고 분열의 이해에 대한 부분이 마음에 들었다.
두뇌와 청각과 촉각이 분열하게 될 때, 진정한 나는 무엇인가?
술잔에 꽂힌 라임. 어딘가의 열매. 달려있는 나무. 너는 어쩌면 지구.
사람이 별로 없는 버스 맨 뒷자리에 앉아서 갈 때, 가끔씩 내 자신이 버스 그 자체가 되어 도로 위를 신나게 달리는 느낌이 강렬하게 들 때가 있는데, 그게 떠올랐다.
나는 개별적으로 다른 것과 동떨어져 오롯이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어떤 식으로든 연결되어 결국 모든 것이 될 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현실인가 환상인가. 나는 누구고 타인은 누구인가.
그것을 구별하는 것은, 정말 큰 의미가 있는 것일까?
관계와 실재에 대해 많은 생각을 하게 해 준 '아미빅'이었다.
p.40 바람은 언제나 나만을 타깃으로 삼아, 나만을 향해 분다. 다른 사람이 받고 있는 바람을 나는 느낄 수 없다. 나는, 나에게 부는 바람밖에 느낄 수 없다. 그것은 어찌할 수 없는 무력한 일이다. 인간은 모두, 타인에게 부는 바람의 차가움과 강력함을 느낄 수 없다.
p.47 나는 그 연기를 연기자 같은 심정으로서가 아니라, 유사인간으로서 즐겼다. 신인 내가, 평범한 인간의 흉내를 내고 있다.
→ 힘든 일이 있을 때, 내가 연기를 하고 있다고 생각할 때가 가끔 있다. 내가 학생 역을 맡은 배우라면, 내가 자녀 역할을 맡은 배우라면, 이럴 땐 어떻게 행동할까. 카메라에 어떻게 비치고 싶을까 하는. 그런 생각들. 뭔가 스스로를 더 고통스럽게 만드는 것일 수도 있지만, 조금 더 나아지고 싶은 마음에 그런 생각을 할 때가 있다. '트루먼 쇼'도 생각나는 군.
p.97~98 모두 나의 거짓말을 믿었다. 아니, 내가 거짓말을 하든, 아니, 내가 말하는 것이 거짓말이든 어떻든 그들에게는 관계없는 것이다. 원래 의미가 없는 거짓말인 것이다. 그것을 알면서도, 내 거짓말은 멈추지 않았다. 나는 계속해서 거짓말을 했다.
p.171 대체 무엇이었을까. 무엇이, 무엇이 나에게서 사라져버린 걸까. 무엇이 나의 손을 놓아버린 걸까. 아니, 내가 떨쳐낸 걸까? 아니면 누군가가 잘라버린 걸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