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전에 출발 비디오 여행(물론 요즘은 보지않는다.) 중 '거들떠보자'라는 코너에서 거들떠봤었는데
상황 자체가 매우 독특했고 매우 유머러스한 전쟁영화라는 사실이 흥미로와서 보고싶은 영화 목록에 있던 영화였다. 영화의 소재는 보스니아 내전으로 2001년에 칸 영화제에서 각본상을 탔고 다음해 아카데미에서 최우수 외국어 영화상을 받았단다. 또 골든글러브의 어떤 상도 받았다고 하니 어떤 기사의 표현대로 영화계의 그랜드슬램을 이룬격이다. 어떤 기자의 말을 빌리자면 칸과 아카데미에서 동시에 상을 거머쥔 영화들의 특징을 살펴보면 대중성과 메시지를 모두 갖추고 있다고 한다. 다른영화를 안봐서 모르겠지만 적어도 이 영화에 대해서는 매우 공감하는 바이다.
DVD표지를 보면 영화 이미지 보다는 타국 평론가나 신문들의 영화평을 실어놓았는데 대부분이 '매우 유쾌하고 즐겁고 유머러스하고 가볍지만 묵직한 영화' 요런식의 평론이 대부분이다. 한국판 포스터를 보면 알수있듯이 매우 유쾌하게 만들어 놓았으며 조금만 건들여도 터져버리는 웃음의 지뢰밭이라는 자극적이라면 자극적인 헤드카피를 취하고 있다. 하지만 영화는 두시간정도 매우 유쾌하게, 하지만 가볍지만은 않게 웃고싶었던 나의 기대를 배반한다. 지구를 지켜라가 매우 발랄하고 가벼운 컨셉으로 홍보를 했다가 망한(물론 난 이영화를 좋아한다.) 케이스 이듯이 이 영화도 컨셉이 우리나라에 와서 바뀌었다는건 밑에 있는 외국 포스터를 보면 단번에 알수있다. 정말 외국의 포스터(원본인지는 모르겠다.)가 훨~~~신 영화의 분위기를 잘 살리고 있다는 걸 이번에 포스터를 찾으면서 깨달았다. 더불어 '아.. 역시 홍보가 중요하구나..-_-'라는 불변의 진리도 다시금 곱씹었다.
미리 못박아 두지만 이 영화는 절대 코미디영화가 아니다. 적어도 나한텐 그렇게 느껴지지 않았다. 불쾌하진 않지만 그렇다고 유쾌한영화는 절대 아니다. 외국의 포스터를 살펴보면 어떤 두명이 팬티바람으로 흰 티를 흔들며 절실하게 무슨 말을 외치고 있고 그 위에 UN군 차가 심드렁하게 서있다. 정말 이 포스터야 말로 영화의 모든것을 단 한컷으로 압축시켜놓은 정말 잘 만든 포스터라고 생각한다.
영화의 내용을 살펴보자면 세르비아 부대원들이 공격을 받고 도망치다가 한 참호에 숨어든다. 모두 죽고 한 명만 살아남았다. 보스니아군이 확인사살하러 오고 다시 총격전이 벌어진다. 남은 건 세르비아군 한 명과 부상당한 보스니아 군 한 명. 둘은 담배를 나눠 피며 가까워지지만 살아나갈 길이 막막하다. 이 참호는 양군의 한 가운데 위치하고 있었던 것이다. 설상가상으로 죽은 줄 알았던 세르비아 병사 한 명이 깨어난다. 그는 핵지뢰를 깔고 누워있었다. 그가 일어나면 주변은 초토화된다. - 한겨례 신문기사 펌. 이렇단다.(요약 정리는 나에겐 쥐약이다;) 잘 몰랐는데 기사를 보다보니 이 영화가 보스니아판 '공동경비구역 JSA'라는 말을 듣곤 했단다. 근데 난 영화보는 내내 그런 느낌을 전혀받지 못했는데(찬욱씨의 열렬한 팬임에도 불구하고) 그 이유는 아마 영화가 주는 분위기? 느낌등이 너무 달랐기 때문이 아닐까 라고 생각한다. JSA는 꽉 짜여진 미장센(내가 느끼기로는)과 배우들의 인상적 연기, 미스테리 구성을 취한 휴먼드라마인 반면에 이 영화는 기교가 전혀 없으며 매우 리얼하여 다큐멘터리 같다는 느낌까지 받았다. 위의 내용설명에는 소소한 디테일까지는 설명하지 않았지만 지뢰위에 있는 병사 한명의 상황이 꽤나 절망적이다. 근근히 유머러스한 대사들이 나오긴 하지만 그것은 영화 내에서 큰 비중을 차지하지않는다. 영화는 대부분의 시간을 세르비아의 보스니아 병사의 대치상황(?) - 친근하다가도 결국엔 서로를 적대시하는, 유엔군(특히 고위 관료)에 대한 풍자, 특종따내기에 열성인 여기자 등 다양한 인간군상들의 모습과 상황을 다루는데 쓴다. 매우 흥미로운 점은 이 다양한 인간들 사이에서 어느 한명도 죽여버리고 싶을정도로 꼴보기 싫은 케릭터는 없다는 점이다. 특히 평론가 정성일씨도 언급한 바이지만 유엔군 000대위의 속물적이고 재수없는 행동도 '저런자리에 가면 어쩔수 없구나. 국제 질서라는게 결국 저런식으로 굴러가는 거구나.' 라는 생각이 들게 하지 죽여버리고 싶을정도로 악독한 케릭터(예를 들자면 레옹의 게리올드만이 연기한 형사)라는 생각은 들지 않는다. 이것이 바로 내가 생각하는 리얼리즘이고 현실이라고 생각한다. 조금 다른이야기이긴 하지만 생각해보면 이 세상에 절대악이 어디있는가, 자신의 상황에서 최선의 선택을 하는것 뿐. 그 행동의 결과가 나에게 미치는 영향에 따라 우리는 죽일새끼, 좋은사람으로 구분한다고 생각한다.
영화속에서 총에 대한 매우 재미있는 에피소드가 있는데 보스니아 병사와 세르비아 군사라 서로 누가 전쟁을 일으켰냐에 대해서 언성을 높히며 서로 나쁜놈 이라고 싸우는 장면이 있다. 계속 그렇게 싸우다가 화가 난 어느 한쪽 병사(어디인지 기억이 나지 않는다;)가 총이 없는 다른나라 병사에게 총을 들이대며 "누가 전쟁을 일으켰다고?"라고 물어보자 한참을 망설이다 자신들이 전쟁을 일으켰다고 말한다. 그렇게 대답해야 하는 이유에 대해서 총을 가진 병사가 "그렇지, 난 총이 있고 넌 총이 없으니까"라는 말을 하는데 매우 의미심장하게 들린다. 또 하나, 서로 전쟁을 치루고 죽이고 있는 보스니아 군끼리는 언어가 통하지만 도와주러 온(명목상으론) UN평화유지군과는 언어가 달라서 의사소통이 매우 힘들다는 것도 매우 흥미롭게 읽혔다. 이것은 매우 여러가지 지점에서 해석될 수 있는데 판단은 영화를 본 관객의 몫에 맡기겠다.
이 영화는 매우 흥미로운 영화이다. 딱히 스릴러적 구성을 취하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긴장감을 놓을 수 없으며 보스니아 내전이라는 민감한 소재를 가지고 영화를 만들었지만 호소적이거나 편향적이거나 교훈적이지 않다. 그렇다고 영화가 재미없지도 않으며 또 그렇다고 가벼운 영화만은 아니다.영화를 보고나서 '올드보이'를 봤을때 만큼 충격적이거나 전율을 느끼진 않았다. 내 인생의 영화 목록에 올리지도 않았다. 하지만 매우 재밌고 좋은영화임에는 틀림없다. 보스니아 내전에 대해 거의 몰랐고 관심도 없었던 나에게 인터넷에서 보스니아 내전에 대해 검색에 보는 것만으로도 엄청난 가치가 있다고 생각한다. 이런 엄청난 영화의 기능이란. 이래서 내가 영화를 사랑하는거다.ㅎ
P.S 에어포스 원에서 게리올드만이 맡은 역할의 대사를 보면 이런 말이 있다. "나보고 야석유때매 전쟁일으키니까 야만인이 아니라고 생각해?" 그 재수없는 대위녀석을 보면서 에어포스 원의 총알도 피해가는 만능 무적 대통령이 생각난건 나뿐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