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넷서점 인터파크도서

집게손가락

(200자 원고지 60매)

엄지손톱 밑에 거스러미가 일어나서 신경이 쓰인다. 전철에 다붓하게 모여 앉은 사람들 틈 속에서 애써서 손톱 밑에 일어난 거스러미를 떼어냈다. 살갗이 너무 많이 일어나서 손톱으로 긁어내자 거먕빛의 피가 흘러나왔다. 나는 따끔한 기분이 들어서 인상을 찌푸렸다.
내 옆에 앉은 할머니가 내 손가락을 곁눈질을 하며 힐끔힐끔 쳐다봤다. 머리가 희끗희끗하고, 후덕해 보이는 인상의 할머니는 무릎 위에 다슬 어진 성경책을 두고 읽고 있는 중이었다. 할머니가 펼친 성경책에는 페이지마다 분홍색 형광펜이 덧칠해져있었다. 전철을 타고 가는 내내 할머니는 표시해뒀던 성경구절을 혼잣말로 나지막하게 되뇌고 있었다. 마치 주문을 외우는 사람 같았다. 활자가 너무 작아서 할머니는 흐릿하게 보였던지 갈수록 성경과 얼굴을 가까이 맞댔다. 나중에는 성경책에 할머니가 바른 촌스러운 립스틱이 책에 묻자 아이고! 이를 어째! 하면서 화장지를 꺼내다 닦아내려 아동 바동댔다.
나는 안절부절 못하며 화장지로 성경책에 묻은 립스틱을 닦는 할머니를 마뜩찮은 표정으로 바라봤는데, 할머니가 고갤 돌리면서 내 왼손에서 사라진 집게손가락을 보고 흠칫 놀란 것이었다. 차라리 내가 먼저 내리거나 할머니가 먼저 내리거나 했더라면 머쓱하지 않았을 텐데……
공교롭게도 할머니와 나는 서울역에서부터 인천행 지하철을 타고 계속 함께 앉아있었다. 나의 목적지는 마지막 종착역인 인천이었다. 인천에서 오늘 한 번도 본적이 없는 젊은 미모의 여대생과 잠자리를 함께 할 참이다.
그 생각 하나만으로 기분이 하루 종일 붕 떠 있었는데 옆에 앉은 할머니는 성경을 읽다가도 중간마다 사라진 내 집게손가락을 계속해서 쳐다보고 있었다. 그러다가도 나와 눈이 마주치면 다시 자세를 고쳐 앉고 성경책을 되뇌었다. 눈에 빤히 보이는 어색한 동작이었다.
이제는 개의치 않으려고 마음속으로 다짐했지만 항상 타인의 시선이 신경 쓰이는 것은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 나는 가방 안에서 오래되어 색감이 빠진 검은색 인조가죽 장갑을 꺼내 왼손에 꼈다. 장갑을 껴도 집게손가락에 두 마디가 절단되어 있어 장갑 안은 헛헛해보였다. 내 왼손 집게손가락의 두 마디는 1년 전에 인쇄소에서 사고로 절단되어졌다. 난 아직도 예리한 기계판 위에서 단 몇 초 만에 말끔하게 절단되어진 내 집게손가락이 아쉽다. 내가 아쉬운 것은 절단되어진 내 집게손가락을 빠른 시간 내에 찾아서 접합수술을 했었더라면 나는 지금처럼 손가락 병신이 되어있지는 않았을 것이다.
“아아악!”
“달평 씨, 괜찮아?”
절단된 손가락에서 뿜어져 나온 거먕빛의 피가 회색 시멘트 바닥 위에 흔적을 남긴 뒤에 나의 기이한 비명소리도 이어졌다. 격일제로 근무하는 형태라 새벽에는 잠을 쫓으려고 무던히도 애를 썼었다. 졸음을 쫓지 못하고 노를 젓듯 꾸벅꾸벅 졸고 있었을 때 외국에서 들여온 몇 억 원의 기계가 내 집게손가락을 확 낚아채갔다. 머릿속이 새하얗게 변했다. 얼굴에도 핏기가 사라졌다. 나는 피가 샘솟듯 흘러나오는 손가락을 오른손으로 부여 쥐고 그 자리에 주저앉았다.
“절단된 집게손가락부터 찾아야지!”
“119에 전화부터 해!”
내 주변으로 모여든 인쇄소 식구들의 목소리가 아슴아슴하게 귓바퀴를 따라 들려왔다. 적막한 인쇄소 안에서 사람들의 움직임 갑자기 분주해졌다. 나는 인쇄소 어디선가 굼벵이처럼 꿈틀거리며 시멘트 바닥 위를 기어 다닐 내 집게손가락 두 마디를 찾는 일이 시급했다. 눈알을 굴리며 나는 사람들 사이에서 내 집게손가락을 찾아 쫓아다녔다.
“피가 멈추질 않잖아! 이러다 파상풍이라도 걸리겠어!”
내가 다급하게 잃어버린 집게손가락을 찾는 동안 인쇄소의 책임자로 있는 장 씨 아저씨가 내 어깰 붙잡았다. 장 씨 아저씨는 아무 말 없이 고갤 좌우로 내저었다. 아무리 찾아도 보이질 않는다. 이러다 네 녀석 파상풍이라도 걸리면 큰 일 나는 거다! 라며 장 씨 아저씨는 인쇄소에 허겁지겁 막 도착한 119 구급대원들에게 나를 인솔했다.
그때, 장 씨 아저씨가 말리지 않았더라면 나는 두 눈을 부릅뜨고 내 사라진 집게손가락을 정신없이 찾았을 거다. 그리고 집게손가락을 잃어버린 뒤로 나는 세상 밖으로 나가는 일이 자신 없어졌다.
세상 밖으로 나가면 사람들이 없어진 내 집게손가락을 이상하게 가라뜨고 쳐다본다는 생각밖에 들지 않았고, 그런 생각이 들면 나는 난쟁이처럼 작게 오그라들었다. 그래서 아스팔트 도로가 데워지는 무더운 한 여름에도 가죽장갑을 가방에 넣어두고 손에서 장갑을 꼈다가 뺐다가를 반복했다.
인천에 있는 전문대에서 인쇄학과를 졸업하고 취업대란에 바로 대기업 신문사 본사에서 인쇄 일을 하며 높은 급여를 받게 됐다고 부모님은 좋아하셨지만, 내가 집게손가락을 잃는 사고를 당한 이후부터는 또 이런 불의의 사고가 있을까봐 가슴이 철렁 내려앉는다면서 다른 일을 하라 고집하셨다.
하지만, 나는 여전히 내 손가락을 잃어버린 인쇄소에서 일을 계속하고 있다. 한 달에 삼백만원이라는 급여를 저버리기도 쉽지가 않았고, 이제는 손가락 병신이 되었는데 이런 날 어디서 써 줄까 싶기도 했다.
또한 손가락 병신이 된 이후로는 내 남성성에 문제가 있는 것도 아닌데 술집 여자들조차 병신과 관계 하는 건 역시 기분이 더럽다면서 내뺐다. 손가락이 잘려나간 이후로 모든 일이 꼬이고 풀리지가 않는다.
성경책을 읽던 할머니와 나는 똑같이 인천행의 마지막 종착역인 인천역에서 문이 열리자 차례대로 내렸다. 할머니는 좀 아까부터 계속 나와 보이지 않던 신경전을 벌인 것이 마음에 걸렸던지 길을 걷다가도 뒤를 돌아보며 내 양태를 살폈다.
할머니는 등이 많이 굽어져 있었다. 역을 빠져나가며 계단을 올라가야 할 때는 걸음걸이가 넘어질듯 아주 위태해서 내 가슴이 철렁했다. 안 그래도 전철에서 내리자마자 하늘에서 쏟아진 소낙비 때문에 계단이 미끌미끌한 상태였다.
낮은 통굽의 구두를 신었던 할머니가 계단 맨 꼭대기에서 발을 헛디뎌 넘어질 뻔했다. 뒤를 쫓아가던 내가 얼른 뒤에서 붙잡아 할머니가 넘어질 것을 간만의 차이로 구했다.
할머니는 뒤를 돌아보며 발그레해진 볼로 연신 고맙다며 내게 인사를 건넸다. 가까이서 보니 젊었을 때는 꽤나 미인이란 소리를 들었을법한 외모였다. 희멀건 우윳빛 피부에 정확하게 나이를 가늠할 수는 없지만 나쎄가 많이 있는 편이었는데도 주름살도 거의 없었고, 아치형의 눈썹은 둥글둥글한 인상을 더 선하게 보이게 했다.
“젊은이가 아니었으면 계단에서 나동그라질 뻔 했네요. 그럼 아주 큰일이었지! 안 그래도 뼈마디도 약해서 곧잘 부러지는 것을……”
할머니는 부드러운 목소리로 말을 이으며 옅은 미소를 입가에 뗬다. 편안하고 안정적인 표정이었다.
“아까 전철 안에서는 내가 자꾸 손가락을 쳐다봐서 불편했었지요? 미안해요. 나도 모르게 자꾸 신경이 쓰여서……그게 내 손녀딸을 보는 것 같아 마음이 쓰여서 보게 되더라고……”
할머니는 고갤 숙이며 내게 사과를 했다. 내가 할머니의 손녀딸도 손가락이 없나보군요. 라고 묻자 할머니는 자신의 손녀딸은 어렸을 적에 발가락이 썩어 들어가는 바람에 엄지발가락을 병원에 가서 잘라내는 수술을 받았다고 했다.
“자영이는 어렸을 적부터 발레리나가 되고 싶다고 벚꽃색의 광택이 나는 토슈즈를 신고 내 앞에서 이리 돌고 저리 돌고 우아하게 한 마리 백조처럼 춤을 추곤 했었는데……그 애는 발가락이 썩어 들어가도 발레를 하기 위해서 잘라내고 싶지 않다고 고집부리며 울먹였었죠. 그런데 내가 울고불고 병원에 안 가겠다는 어린 그 아이를 강제로 끌고 병원에 데려갔어요. 팥알 같은 눈물을 흘리며 내 옷깃을 붙잡고 자영이가 엉엉 우는데도 내가 결국엔 그 아이의 엄지발가락을  의사에게 잘라 내달라했죠."
할머니는 이미 지나가버린 옛 기억을 머릿속에 그리는 듯 보였다. 두 눈을 지그시 감고 아슴아슴한 기억들을 맞춰보던 할머니는 다시 웃으며 내게 물었다. 할머니의 목소리는 감정에 휩싸여서 떨리고 다달거렸다.
“그러니까……그 착하고 예쁜 것이 이젠 다 커서 대학생이 되었어도 나를 할머니라 부르지도 않고 보려고도 않아요.  아들 말로는 우리 자영이가 지금은 대학교에서 영어를 전공한다고 하더군요. 영어학과 좋은 학과지요?"
할머니는 푸석푸석한 머릿결을 손으로 쓸어내리며 웃음을 지었다.
"주책맞게 내가 또 괜한 소리를 한 것 같네요. 처음 보는 사람 앞에서……늙은이가 혼자서 지내다보니 말할 상대가 생기면 쓸데없이 주절거리는 소리만 많아져요. 이해해줘요.”
할머니의 얼굴 근육이 미세하게 움직였다. 어느새 눈가에는 눈물이 잉태되어 금방이라도 뚝. 하고 떨어질듯 싶었다. 나는 할머니의 내면에 자리 잡고 앉은 기다란 외로움을 짧은 순간이었지만 공유한 것 같았다.
역 바깥에는 여전히 굵은 소낙비가 위에서 아래로 흘러내렸다. 하늘에서 내린 굵은 빗줄기는 땅 속으로 스멀스멀 기어들어갔다.
할머니는 우산이 없으셨던지 발을 유리문 밖으로 한 발자국 내딛다가 다시 멈칫했다. 나는 난감한 표정으로 홀로 서 있는 할머니를 두고 도저히 그냥 내 갈 길을 갈 수가 없어서 가방 안에서 노란색 우산을 펼쳤다. 나는 비가 오거나 오지 않거나 항상 언제 올지 모르는 비를 대비해서 우산 하나씩은 챙겨서 다니는 습관이 있었다.
“할머니 댁까지 함께 가드릴게요.”
내 말에 할머니는 고민을 하더니 고개를 내저었다.
“아니에요. 여기서 우산을 사서 가던가 아니면 금방 그칠 비 같은데 비가 그치면 움직여도 되고……”
나는 할머니의 행색을 머리끝부터 발끝까지 천천히 살폈다. 통굽의 구두는 낡아서 잔주름처럼 구김이 접혀져 있었고, 뒤 굽도 상당히 닳아있었다. 할머니가 입은 옷 또한 너무 오래 되서 옷섶이 많이 헤져있었다. 나는 우산을 사서 간다는 할머니의 말이 못미더웠다.
역 앞에서는 갑작스럽게 내리는 비로 사람들이 삼천 원짜리 비닐우산을 사가고 있는 모습이 비춰졌다. 나는 할머니에게 내 노란우산을 건네 드린 후에 바깥으로 나가 비닐우산 하나를 샀다. 검정색의 도트무늬가 그려진 비닐우산이었다.
“저는 이걸 쓰고 갈게요.”
내가 비닐우산을 할머니 면전 앞에서 보이며 설핏 웃자 할머니는 미안하다면서 다시 내게 노란색 우산을 내밀었다. 나는 고갤 내저었다.
“금방 그칠 비 같지가 않아서 그래요.”
할머니는 우산을 펼치며 내게 고갤 살짝 끄덕였다. 고맙다는 의미로 고갤 끄덕이며 할머니는 환하게 웃었다. 나는 이어서 방금 전에 산 비닐우산을 펼쳤다. 투두둑. 하고 굵은 빗줄기가 우산에 맞닿는 소리가 청명하게 들려왔다.
하얏트 모텔 303호라고 했었던가?
나는 오전에 했던 한 여성과의 채팅을 머릿속으로 떠올렸다. 그녀는 올해 스물두 살로 대학교에서 영문학을 전공한다고 말했다.  안젤리나 졸리라는 닉네임을 썼던 여성은 잠자리 한번을 갖는데 삼십만 원을 요구했다. 나와는 여덟 살이 차이나는 어린 여성이었다. 인터넷에서 첨부파일로증명사진을 보내 보여줬었다. 둥글둥글한 얼굴형에 눈망울이 제법 커서 귀염성 있게 생긴 앳된 얼굴이었다.
  쇼핑몰 모델로도 돈을 받고, 편의점에서 아르바이트를 하면서도 돈을 받고, 주말에는 극장 매표소 아르바이트까지 하면서 돈을 번다고 했다. 그리고 인터넷 채팅으로 만난 초면인 남성과의 잠자리를 갖는 것 또한 아르바이트 중 하나라고 서슴없이 말했다.
나는 휴대 전화기로 온 문자에서 하얏트 모텔 303호라고 온 문자를 찾아냈다. 인천에서 대학교를 나온 나인지라 지리적으로 이 바닥은 훤히 꿰뚫고 있었다. 나는 다붓다붓하게 모인 붉은 불빛의 유흥가를 지나쳐서 5층의 낡은 건물인 하얏트 모텔을 찾아냈다. 골목 어귀에 자리 잡은 모텔은 간판불이 들어왔다 나가는 등 보기에도 허름하고 아주 형편이 없었다.
끼이익. 하고 을씨년스럽게 들려오는 문 열리는 소리와 함께 만화책을 보며 킬킬 웃는 모텔 주인의 웃음소리가 적절하게 교차했다. 고갤 두리번거리며 엘리베이터를 찾자 콧수염이 덥수룩한 모텔 주인은 손가락으로 계단 쪽을 가리키며 몇 호에 가는 거냐고 물었다. 내가 303호라고 대답하자 모텔 주인이 그 옆방에는 할머니가 혼자서 장기로 묵고 계신 방이니 가급적이면 소리는 주의해달라고 부탁했다. 그는 눈을 가느스름하게 뜨고서는 낡고 오래된 모텔이라 방음이 안 된다고 덧붙여 얘기했다.
나는 인터넷 채팅에서 만난 안젤리나 졸리도 내 손가락을 본다면 술집 여자들처럼 식겁하며 욕지거리를 하고, 관계도 하기 전에 문을 박차고 나갈 것이라 예상해 소리가 날 걱정은 안 해도 된다고 모텔 주인에게 말하고 싶었다.
융이 오래되어 사선으로 일어나 있는 붉은 카펫을 밟고 모퉁이로 돌아서자 비상구 계단이 보였다. 한 층씩 올라갈수록 머릿속에서는 안젤리나 졸리의 증명사진이 떠다니고 있었다.
그녀는 안젤리나 졸리처럼 아랫입술이 윗입술 보다 더 두툼해서 입술만큼은 섹시했다. 귀여움과 섹시함을 겸비한 여자라 직접 얼굴을 가까이 대고 만나면 어떤 느낌이 들지도 궁금했다.
나는 이미 설렘으로 가득 차 있었다. 이제는 한 층씩 올라가면서 3층에 다다랐을 때 그녀가 사진 속과 똑같은 인물이고, 나이가 어리고, 대학교에서 영어를 전공한다는 게 사실이든 거짓이든 이미 상관이 없었다. 내게 중요한 것은 일 년 동안 여자와 관계를 못해 바짝 움츠려든 내 성기를 달래는 거였다.
겨우 한 사람이 몸을 비집고 들어갈 만큼 좁은 복도는 형광등이 밝은 빛을 내지 못해 음산했다. 복도 끝에는 카메라가 설치되어 있었는데, 만화책을 보면서 킬킬 웃던 모텔 주인이 혹시나 방안에도 소형 카메라를 설치해놓고 몰래 보는 것은 아닐까 염려가 되었다.
이왕이면 호텔로 가자고 그럴 것을 그랬나?
인천에서 사는 안젤리나 졸리 에게 방을 잡으라고 했던 것이 후회가 됐다. 모텔과 호텔은 한 끝 차이로 격이 다르게 느껴졌다. 나는 인상을 찌푸리며 3층 복도를 거닐었다. 문 위에는 나뭇결 모양의 판자 위에 303호라는 연 갈색의 글씨가 선명하게 써져있었다.
나는 303호의 문 옆에 달린 초인종 벨을 누르기 전 모텔주인이 언급했던 302호에 사는 할머니가 거슬렸다. 302호의 문에 귀를 가까이 대고 들어보니 아무런 소리가 들리지 않았다.
아직 안에 사람이 없는 건가?
다행이다 싶었다. 사실 혼자 사는 할머니가 바로 옆방에 있었다면 백주대낮부터 간질거리는 소리를 내며 낯부끄러운 행동을 하기가 선뜻 내키지가 않았다.
나는 문 옆에 붙어있는 초인종에 무의식적으로 왼쪽 집게손가락을 갖다 댔다가 아니지 하고 다시 엄지손가락으로 초인종 벨을 눌렀다. 많은 사람들이 지나간 흔적을 표시하기라도 한 것처럼 초인종에는 거뭇거뭇한 사람 손때가 남아있었다.
내가 초인종 벨을 다섯 번 누르고 나서야 안에서 가녀린 여자 목소리가 들려왔다.
“조달평 씨?”
“네, 맞습니다.”
“약속한 시간보다 조금 늦으셨네요?”
여자는 책망하더니 문을 열고 슬며시 내 얼굴을 살폈다. 조금은 튀는 것 없이 수더분한 내 외모에 실망을 했던지 어색한 웃음을 지었다. 안젤리나 졸리는 사진을 보내왔던 그 여자와 동일인물이 맞았다.
가녈가녈한 마른 체구에 아담한 게 보호본능까지 내 안에서 불러일으켰다. 그녀의 가느다랗고 긴 손가락은 내가 들어오자마자 문고리를 바로 걸어 잠갔다. 안젤리나 졸리는 내가 오기 전 이미 샤워를 끝마치고 하얀색 나이트가운을 입고 젖은 머리는 수건으로 감싼 상태였다.
나는 우윳빛 살결을 따라 위에서 아래로 쭉 훑어보다가 그녀의 발가락이 꼼지락거리는 것을 살폈다. 우습게도 샤워를 마친 후였으면서도 안젤리나 졸리는 양말을 신고 있었다.
내 시선에 그녀는 발이 못생겨서 양말은 벗고 싶지 않아서요. 관계 하는 데는 상관없잖아요? 라며 당돌하게 말하고서는 재빠르게 침대 시트위로 올라가 이불로 몸을 숨겼다.
그녀의 말은 하나도 틀린 게 없었다. 관계하는데 양말을 신었다고 해서 문제가 될 것은 전혀 없었다. 그러고 보니 내 손가락도 마찬가지다. 집게손가락 하나가 잘려나간 상태라고 해서 내 성욕을 해결하는데 걸림돌이 될 것은 전혀 없었다. 관계한 여자가 상관할 것은 내 잘려나간 손가락이 아니라 내 아랫도리의 문제였다.
나는 허물벗듯 옷을 벗어 방바닥 쌓아뒀다.
그리고 욕실 문을 밀며 들어가 욕조 안에 발을 내딛고 들어가 샤워기를 틀었다. 방금 전에 안젤리나 졸리가 샤워를 마친 후라서 그런지 아직도 욕실 안은 훈훈한 기운이 남았다. 나는 깨진 타일 벽에 붙은 성에 낀 거울을 샤워기 물로 닦아냈다. 물줄기가 거울표면을 따라서 아랫방향으로 흘러내려갔다.
거울을 볼 때 마다 나는 조달평이란 나 자체가 낯설게 느껴졌다. 매일 거울을 보며 익숙한 내 얼굴임에도 조금씩 다르게 생긴 것 같다는 생각도 들기도 하고, 거울 안에 있는 내가 진짜 내가 아닌 것 같다는 허황된 생각이 들기도 했다.
술에 만취했을 때는 몽롱한 정신에 거울 앞에 서 있는 내 자신더러 너는 누구지?를 되물으며 거울 앞에서 나 자신과 싸웠던 적도 있었다. 서른 살에 인천에서 전문대를 졸업하고 곧 바로 신문사 인쇄소에서 6년째 일하면서 집게손가락도 잃고, 자신감도 잃은 조달평이라는 남자였다. 스스로가 생각해도 한심하다는 생각밖에 들지 않았다.
집게손가락을 잃게 만든 거대한 기계 앞에서 신문을 찍어내며, 어쩌면 남은 다른 손가락들도 무사하지 못할 거라는 두려움을 안고 있으면서도 지금 하고 있는 일이 아니면 다른 일은 엄두도 못내는 비겁한 겁쟁이였다.
나는 손에 끼고 있던 낡은 가죽장갑을 벗었다. 뭉툭한 손가락들 사이에서 하나가 비었다.
이제는 기계 구석진 곳에서 수분이 다 빠져 말라비틀어진 내 집게손가락 두 마디가 벌레처럼 시멘트 바닥 위를 기어 다니며 주인인 나를 찾아 돌아다닐 것 같다는 상상마저도 든다.
“아직 멀었어요?”
벽면 TV의 채널을 리모컨으로 마구잡이로 돌리던 안젤리나 졸리가 자신의 무료함을 내게 알렸다. 어쩌면 그녀는 관계한 뒤에 또 다른 아르바이트를 하러 가야되기 때문에 시간에 쫓기고 있는지도 몰랐다.
“미안해요. 잠시 다른 생각 좀 하느라…….”
나는 발가벗은 민둥산 같은 몸으로 안젤리나 졸리 앞에 섰다. 그리고 그녀가 몸을 숨겼던 침대 시트 위로 가 누웠다. 안젤리나 졸리는 얼굴색 하나 변하지 않고 무덤덤한 표정으로 내 가슴팍위로 올라왔다. 마치 일련의 숙련된 과정처럼 순식간에 내 성기를 그녀의 몸 안으로 받아들였다. 일 년 만에 맺는 관계였지만 어떠한 감흥도 들지 않았다. 좀처럼 흥분도 되지 않았다.
너무나도 무미건조 하고 재미 하나 없는 관계였다. 내 가슴팍 위에는 젊은 여대생이 나체로 올라와 앉아 내 빳빳해진 성기를 달래주고 있는데도 오히려 흥분 감보다는 거부감이 먼저 들었다.
나는 누런 침대시트 위에 어느새 벗어둔 나이트가운으로 그녀의 가녀린 몸을 감쌌다. 그리고는 안젤리나 졸리를 내게서 가볍게 밀쳐냈다. 내 예상치 못한 행동에 조금은 당황해 안젤리나 졸리는 침대시트 위에서 몸을 일으켰다.
내가 자신을 밀쳐냈다는 사실이 상당히 당황되고 기분이 나빴던지 안젤리나 졸리는 표정이 잔뜩 일그러졌다. 초승달 같은 눈썹을 까닥이며 그녀는 양 팔에 팔짱을 끼고 내게 되물었다.
“애무가 없어서 실망이라도 한 모양이죠?”
안젤리나 졸리는 기분이 상해 카랑카랑한 목소리로 변해있었다. 그러더니 이번에는 내 몸에 거머리처럼 달라붙어 혀의 돌기로 내 목 언저리부터 핥기 시작했다. 끈적한 타액이 내 온 몸 구석구석에 묻는 것에 불쾌한 감정이 들었다. 나는 적극적으로 다가오는 그녀를 가까스로 내 몸에서 떼어냈다.
“내 손가락 봤어?”
“네.”
“설마……내가 손가락 병신이기 때문에 기분은 불쾌한데 돈 때문에 일은 빨리 끝내야지 되겠고……그래서 적극적인거야?”
내 물음에 안젤리나 졸리는 가지런한 하얀 이를 드러내며 크게 웃었다.
“왜 웃어?”
“…….”
그녀는 의아해하는 내 앞에서 자신이 신고 있던 양말 두 짝을 벗어 방바닥 위에 살포시 내려놨다. 나는 뜻밖의 행동에 그녀의 발쪽으로 시선이 옮겨졌다. 발가락을 꼼지락거리며 드러낸 그녀의 두 발에는 엄지발가락이 보이질 않았다. 매끄럽게 절단 되어진 내 손가락마디와 달리 안젤리나 졸리의 사라진 엄지발가락은 발굴현장의 잔해처럼 흉측하고 거칠게 파여 있었다.
나는 잠시 할 말을 잃고 멍하니 엄지발가락이 없는 두 발을 바라볼 수밖에 없었다.
“난 발가락이 없어서 내 소중한 오래된 꿈을 잃었어요. 당신은 손가락을 잃어서 자신감마저 잃었나보네요. 이제 당신은 내가 엄지발가락이 없는 여자인걸 알았으니 기분이 불쾌한가요?”
안젤리나 졸리는 방바닥 위에 쌓아둔 내 옷가지들 중에서 바지 호주머니를 뒤져 지갑을 꺼냈다. 그자신의 지갑 안으로 집어넣었다.
“약속했던 삼십만 원은 가져갈게요."
나나 졸리의 팔을 붙잡았다. 엄지발가락이 없는걸 보니 모텔에 오기 전에 만났던 할머니의 손녀 얘기가 떠올랐던 것이다.
“혹시 그 잃어버렸던 소중한 꿈이 발레리나 아니었어?”
“발레리나요? 왜 제 꿈이 발레리나 일거라고 여기는 거죠?”
“그럼 이름이 자영이 아니야?”
“네?”
안젤리나 졸리는 자영이라는 이름에 신발을 신다가 몸을 움찔거렸다. 나는 자영이라는 이름에 반응하는 그녀가 신기했다. 어쩌면 할머니가 얘기했던 그 손녀가 안젤리나 졸리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내가 전철에서 만난 할머니의 손녀 자영이라고 확신하는 그녀는 신발을 다 신고 고갤 갸우뚱 거리면서 날 쳐다봤다.
“정말로 처음 만난 사람한테 뜬금없는 질문들만 계속 하는군요.”
“할머니는 수년이 지난 아직도 네 꿈을 꺽은 것 같아 미안해하셔. 그리고 혼자 어딘가에서 사시면서 외로워하시고……”
“저는 도통 달평 씨가 무슨 얘길 하고 있는 건지 모르겠네요.”
그녀는 끝까지 자신의 실명을 내게 얘기해주지 않았다. 안젤리나 졸리는 전철에서 만났던 할머니의 손녀일수도 있고 아닐수도 있지만, 나는 진심으로 그녀가 할머니의 손녀인 자영이길 바랬다.
언제까지고 전해지지 않았을지도 모를 누군가의 마음을 내가 대신 전달해줬다는 상황이 흥분되기도 했다. 옆방에 언제 들어왔는지 조금 전까지만 해도 들리지 않던 할머니의 성경구절을 읽는 소리가 벽을 통해서 가느스름하게 들려왔다. 모텔 주인이 말했던 대로 방과 방 사이에 방음이 안되어 소리가 그대로 전달되어 들려왔다. 할머니가 읽고있는 성경구절은 전철 안에서 만났던 할머니가 성경책에 형광펜을 표시했던 구절과도 같은 부분이었다. 할머니가 혼자서 되뇌는 성경구절이 흡사 누군가를 향한 간절한 주문 같다.

<끝>

집게손가락, 황석영작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