니콜라스 스파크스의 소설은 사려 깊고 섬세하면서 인생에 대한 성찰이 깃든 심리묘사가 언제나 마음을 끈다. 흔한 사랑 이야기이면서도 단순한 감정 이상의 무엇을 선사하는 듯하다. 그래서 지난 작품까지 꼭 찾아 읽게 된다.

 

노아와 앨리의 삶과 사랑의 기록, 노트북. 그 안에 깃든 기적에 대하여

 

노트북은 어렵게 구해 읽은 작가의 첫 작품이다.

소설은 나이가 들어 폐차 직전의 차처럼 낡고 병든 육체로 살아가는 노인 노아가 평생에 걸쳐 사랑해온 아내 앨리에게 그들의 사랑을 기록한 노트북을 읽어주는 것으로 시작된다. 그리고 영원한 사랑에 대하여, 진심을 다해 한 영혼이 다른 영혼에게 다가가는 삶과 사랑의 숭고함에 대해 이야기 한다. 식지 않는 열정이 불러온 감동적인 기적에 대해 이야기한다.

 

시인들은 종종 사랑을 우리가 통제할 수 없는 감정, 논리와 상식을 뛰어넘는 감정이라고 말하죠. 내게 사랑은 그와 같아요. 나는 당신과 사랑을 하리라는 계획 같은 걸 세운 적이 없어요. 당신 역시 그랬을 것 같지 않고. 하지만 우리가 만났을 때 당신이나 나나 우리한테 일어나고 있는 일들을 통제할 수 없다는 건 명백했어요. 우리는 서로의 차이에도 불구하고 사랑에 빠졌고, 일단 그렇게 됐을 때 아주 희귀하고 아름다운 어떤 것이 창조되었어요. 내 경우 그런 사랑은 딱 한 번 일어났고, 우리가 함께 보낸 모든 순간들이 내 기억 속에 깊이 각인된 건 그 때문이었죠. 나는 그 어느 한 순간도 결코 잊지 못할 거요.(p.129)

 

무한히 반복되는 지루한 일상 속에서도 자신이 무의식중에 지켜가고 있는 것들이 무엇인지 한 번쯤 깊이 생각해본다면 삶에 이미 자리하고 있는 인연의 눈부심을 다시금 느껴볼 수 있을 것 같다. 노아와 앨리의 사랑과 우리가 지금 지켜가고 있는 사랑이 별 반 다르지 않으며 의미 있고 가치 있는 것임을 되새기게 될 듯하다.

 

우리가 이 집을 떠나기 전에 우리 이야기를 글로 쓰자고 했을 때 당신이 나를 정신 나간 사람으로 생각했으리라는 건 잘 알아요. 하지만 그렇게 하자고 한 데는 나 나름대로의 이유들이 있고 당신이 인내심을 갖고 그렇게 해줘서 고마워요. 당신이 그 이유를 물었을 때 나는 결코 대답하지 않았지만 이제는 당신도 알아야 할 때라고 생각해요.

(중략)

나는 말로 다할 수 없으리만치 당신을 사랑해요. 그러니 이런 참담한 병에도 불구하고 조만간 당신에게 돌아올 길을 찾아낼 거예요. 당신에게 약속해요. 그리고 우리의 이야기가 시작되는 지점도 바로 여기예요. 사랑과 약속에서. 내가 길을 잃고 홀로 방황할 때 아이들에게 우리 이야기를 들려준 것과 마찬가지로 내게 이 이야기를 읽어주세요. 그리고 내가 어떻게 해서든 이것이 우리의 이야기라는 걸 깨닫게 될 날이 오리라는 걸 알아주세요. 아마도, 우리는 다시 함께 지낼 수 있는 길을 찾아낼 거예요.(p.252)

 

살면서 겪는 소소한 감정을 사랑하는 사람과 진솔하게 나누고 그것을 함께 기록한다면 참 아름다울 듯하다. 자신의 이야기만큼 스스로에게 반짝거리고 영감을 주는 이야기가 또 어디 있겠는가. 그 어떤 흥미로운 소설이나 유익한 잠언에 비할 바가 아닐 것이다. 하지만 실제로 그렇게 하자 하면 십중팔구는 발뺌하며 피할 것 같다는 생각이 드는 건 어쩔 도리 없는 현실과 소설 사이의 괴리감일 테지.

어떤 식으로든 필연적으로 고독할 수밖에 없는 그녀들의 삶에 대하여

 

하도 많은 인물이 등장해서 읽는 동안 정신이 사나웠는데 다양한 여성의 모습을 통해 어떤 식으로든 필연적으로 고독할 수밖에 없는 삶에 대하여 표현한 듯하다.

혼자인 삶, 둘이었다가 홀로 됨을 선택한 삶, 가정이 있으나 고독한 삶, 고독 속에서 비로소 편안해지는 삶, 처음부터 둘이기를 선택하지 않는 삶 등등. 개성 있는 인물의 면면과 생의 시간을 바라보는 시선이 참으로 다양했다.

그러면서도 한 편의 소설로 정돈된 느낌을 받는 걸 보면 작가의 유명세가 그냥 나온 건 아니라는 걸 새삼 확인하게 된다.

 

“참 이상하지.”

소우코의 거북함 따위는 아랑곳하지 않고 미치코는 말했다.

“다들, 가장 사랑하는 사람과는 함께하지 못하는 것 같아. …그래도 세월이 흐르고 나서는 오래도록 함께한 사람을 가장 사랑했다고 생각하게 되겠지, 아마.”(p.271)

 

“나, 바람을 피운 적이 있어.”

미치코는 불쑥 그런 말로 소우코를 놀라게 했다.

“괜찮아. 그이도 알고 있으니까.”

(중략)

믿을 수 없었다. 그런 일이 있었는데도 여전히 부부로 지낼 수 있다니.

“누구를 좋아하게 되었다고 해서 남편이 미워지는 건 아니니까. …하지만 남편에게서 두 번 다시 남성적인 매력을 느낄 수 없게 되었어.”

미치코는 그렇게 말했다.(p.273)

 

미치코라는 인물의 독백 같은 말이 가장 가슴에 남는다.

소설에서처럼 실제로 세상 속 많은 사람들이 배우자 외에 다른 연인을 만나는 지 궁금해지기도 했다. 사랑이 무엇인지, 열정이 무엇인지 생각할수록 오리무중이다.

어쨌든 일상 속의 모습이 행복하든지, 그렇지 않든지 간에 한 가정이 지켜지고 유지되며 부부가 함께 늙어간다는 건 어떤 식으로든 참으로 큰 의미가 있는 것이라는 생각이 문득 든다. 그 안에 스민 눈물과 인내가 반짝이는 듯해서.

 

그때 에쿠니 씨가 한 말이 잊히지 않는다.

“연애는 어느 한 점을 돌파하는 것이라고 생각해요.”

얼굴이든 목소리든 성격이든 섹스든, 아무튼 한 점을 돌파하는 데서 연애는 시작된다.

“평균적으로, 두루두루, 대충, 그런 걸 생각하니까 연애를 못하는 거지요.”

옳은 말이다.

연애란 어차피 예사로운 게 아니니까. 정상에서 얼마나 벗어났는지, 그 정도만큼 연애의 참맛을 누릴 테니까. (p.389) -유이카와 케이의 해설 중에서

김연아 선수가 한국에 피겨 스케이트 붐을 일으키기 훨씬 전부터 ‘피겨’는 내가 유일하게 관심을 갖던 스포츠였다.

전 국민이 열광한다 해도 좋을 만큼 인기가 있는 축구나 어느 시기 나라의 장려정책(?)에 힘입어 큰 호황을 누린 야구며 농구 등 그 어느 것에도 흥미를 느끼지 못한 데 비해 피겨는 경기의 규칙이나 기술에 대한 무지에도 불구하고 저도 모르게 빠져 들었다. 링크 위를 누비며 우아하게 움직이는 선수들의 동작 하나하나가 너무나 아름다워 보였기 때문이었다.

그때의 내게 피겨는 스포츠가 아니라 일종의 ‘무용 공연’에 가까웠다.

 

피겨는 영어로 ‘도형’이라는 뜻입니다.

빙상에 스케이트의 브레드(날 부분)로 트레이스(활주에 의해 생긴 빙상의 흔적)를 그리는 것이 바로 이 경기입니다.

부문별로 나누면 싱글(1인), 페어(남녀 1조), 댄스(남녀 1조) 등이 있습니다만, 이 모두가 기초적인 부분과 응용의 부분에서 성립된 것입니다.

이 기초적인 것 중에서도 기초를 이루는 것이 싱글의 컨버서리 피겨(혹은 스쿨 피겨)입니다. 컨버서리의 것을 외국인은 줄여서 피겨라고 부르고, 응용이 되는 프리형을 프리 스케이팅이라고 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이것은 컨버서리가 ISU(국제 스케이트 연맹)가 정한 일정의 기하학적 도형(외관상으로는 2, 3개 원형이 겹쳐진 것)을 그리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이와 같이 피겨 스케이트는 컨버서리의 도형을 그리는 것에서부터 출발해서, 이것에 음악이 도입되어 싱글 프리라든가 페어, 댄스에 이르기까지 독특한 아름다운 예술 경기가 된 것입니다.(p.49)

 

본래 관심을 두던 스포츠에 연아 선수가 일으킨 바람 탓도 있고 해서 피겨의 기술 등이 점점 궁금해져 관련 서적을 찾아 온, 오프라인을 다 뒤져보았건만 적당한 책이 없었고 그나마 이게 괜찮을 것 같아 골라 들었다.

그런데 이 책은 피겨에 대한 궁금증을 충족시켜주기는커녕 이 분야의 교양서적에 대한 목마름을 더욱더 타오르게 만들었다.

 

피겨 스케이트는 ‘운동’과 ‘예술’의 이면성을 가진 경기입니다. 이 때문에 다른 스포츠보다 시간도 충분히 필요하고, 또한 노력이 없이는 대성할 수 없는 스포츠라고 말할 수 있죠.(p.63)

 

80년대를 떠올리게 하는 낡은 흑백 사진과 철 지난 맞춤법, 편집으로 구성되어 있고 스포츠 전공자들이나 스케이트를 입문하려는 이들에게나 적합한 내용이었다. 거기다 발전된 피겨 기술이며 새로이 등장한 피겨선수들은 고사하고 20세기 초엽의 정보들로 가득하니 읽을 맛도 전혀 나지 않았다. 피겨에 대한 지식이 전혀 없는 탓에 그나마 읽을거리가 되었지 안 그랬으면 그냥 지나쳐버렸을 그런 책이었다.

제목엔 분명 현대, 라 붙어있고 출간년도는 2010년인데...... 이건 정말, 시쳇말로 완전 구렸다. 정말이지 연아 선수의 에세이도 출간되고 피겨 관련 카페가 많은데도 아직까지 변변한 교양서적 하나 없다는 게 진짜 애석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