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나팔꽃 이름이 뭐죠?
유키코는 약간 당황하면서 일어났다.
헤븐리 블루라고 하더군요.
영어는 잘 모르는데......
남자는 태평스레 말했다.
천상의 푸른빛이란 뜻이라나 봐요.
‘천상의 푸른빛’은
제목이 풍기는 청아함(?)과 달리 한 살인자의 얘기며
그를 나름대로 사랑하는 한 여자의 얘기다.
여기서 나름대로라 표현한 것은 남녀간의 ‘삐리리’한 사랑은 아니었기 때문이다.
거리에서 만난 여자와 섹스를 즐기고 기분 내키는 대로 여자를 죽여 버리는,
그러고도 나름의 살인의 이유가 있고 그런 행동에 대해 아무런 양심의 가책을 느끼지 않는 남자.
그리고 그를 집 앞에서 우연히 만난 인연으로 그와 가끔 이야기를 나누곤 하던 여자.
소설의 전반은 남자의 행각이 어떻게 살인으로 흘러가는 가를 얘기하고 있었다.
그리고 후반에 들어서면서 아무도 모른 채 묻힐 것 같던 그의 살인행위가
우연찮게 세상에 드러나면서 벌어지는 일에 대한 내용이었다.
드라마적 전개였다면
남자는 괴로워하고 마침내 뉘우치며 사형대 위에 올라가는 모습이 묘사됐을 것이다.
하지만 남자는 죽을 때까지 자기의 논리와 행동으로 떳떳하게 지내다 사형에 처해진다.
그럼에도 여자는 그를 자기 능력껏 도와준다.
변호사를 선임해주고 식사를 넣어주고 편지를 쓰는 등등.
어차피 사형당하겠지만
그때까지는 돌봐줘야 한다는 생각이 들어요.
누구든지 버림받은 채 죽어서는 안 돼요.
마더 데레사님도 그렇게 말씀하셨죠.
이 소설을 거의 다 읽을 즈음,
내가 사는 광주 한 지역에서 일어난 부녀자 살인 사건의 범인이 잡혔다는 뉴스를 들었다.
끔찍한 사건이면서도 주변에서 종종 발생하는 구나... 이런 말이 새삼 입으로 흘러나왔다.
그리고 일전에 세상을 떠들썩하게 했던 강호순 사건이나 화성 살인 사건 등등이 이 소설을 읽으며 생각이 났다.
세상일에 그다지 관심이 없는지라
그러려니 하고 무심히 지나간 뉴스거리였지만
그런 악독한 일을 저지른 사람이라면 죽어야 마땅하다는 인식과
살인을 저지른 사람은 어쨌든 뉘우쳐야한다는 생각만은 내 안에 자리 잡고 있었나 보다.
그랬기에 이 소설에 등장하는 남자와 여자의 행동과 태도, 사고방식이 온전히 이해되지는 않았다.
뉘우치라는 말은 하고 싶지 않습니다.
겉으로 뉘우치는 것보다 더 중요한 것은 스스로 괴로워하는 것입니다.
자신이 저지른 행동이 어떤 의미인지 파악조차 못하는 사람이 괴로워할 수는 없는 노릇이겠죠.
슬픔과 고통이라는 단어에 어떤 뜻이 담겨 있는지 모르는 사람이야말로 가장 불행한 사람입니다.
글이 흥미롭거나 재미있지는 않았다.
하지만 그동안 내 안에 굳어있던
용서나 정의에 대한 생각을 다른 시각으로 넓혀볼 수 있었던 나들이였던 것 같다.
시간이 좀 지난 뒤 이 소설을 다시 읽으며
스스로 ‘잘 살고 있다.’고 무의식중에 평가하며 자신했던
마음의 굳은살을 또 한 번 벗겨봐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