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확히 말한다면 출발점으로 돌아가는 거겠지.
턴, 턴. 그것의 되풀이.
하지만 언젠가는 리턴하고 싶어. 돌아가고 싶어.
스킵, 리셋, 그리고 마지막 턴. 시간과 인간 3부작으로 꽤나 기다렸던 기타무라 가오루의 소설이다.
제일 처음 스킵을 읽고 몇 십년의 세월을 뛰어넘어 버린 한 소녀의 일상을
평온하면서도 섬세하게 그려낸 것에 반해 나머지 소설이 출간될 때를 무척이나 기다렸었다.
그러나 읽은 감상은...... 리셋에 이어 턴 역시 불발이었다.
스킵에서 받은 느낌을 나머지 두 작품에서 똑같이 기대해서였을까?
네 손은 시간의 벽에 닿아 또 그것을 통과하지 못했다.
투명하게 새겨진 물속 같은 시간 흐름 속을 너는 턴한다.
판화가로 유명하진 않지만 성실하게 살아온 29세의 마키.
어느 여름날의 교통사고로 사고당일의 날짜에서 뒤로도 앞으로도 나가지 않은 채
그 시간의 틈새에 살게 된다.
그리고 다음날도, 그 다음날도 반복되는 하루를 나름의 의지로 살아가게 되는데.....
'너는....' 으로 시작하는 처음이 낯설어 '턴'에 몰입하는데 한참 걸렸다.
한편으론
독특한 서술방식에 마치 누군가 주인공과 투명한 유리벽 밖에서 이야기를 나누는 듯한 느낌이 들어
반복되는 시간의 틈에 갇힌 주인공의 상황을 나타내기 위한 작가의 의도일까란 짐작을 내식대로 했다.
후반부에 들어가면서 '너'라는 기술에서 벗어나자,
그리고 아무도 없던 반복되는 시간의 틈에 그녀와 동일한 상태에 빠진 어떤 남자가 등장하면서
이야기의 재미가 제법 살아났다. 하지만 이 재미도
주인공이 일상을 사는 의미를 깨닫고 난 뒤 휘몰아치듯 소설이 끝나버리고 말아
거대한 아쉬움과 실망으로 내 안에 자리 잡았다.
앞은 그리도 느리고 소소하게 진행되더니 왜 이다지 끝은 벼랑처럼 일거에 정리정돈하고 끝나나 싶은 탄식....
이 느낌은 리턴에서도 그랬었는데 턴에서도 반복. 제목처럼 턴~이다.
지난 반 년 간 나는 혐오하고 있었다. 무한하게 계속되는 같은 색상의 나날을.
그러나 그 반복되는 것에도 한계는 있었던 것이다.
전율이 일었다.
인간은 지혜를 손에 넣어 그 대가로 죽음을 알았다.
자신이 유한한 존재라는 것을 깨닫고 말았다.
동시에 현재, 눈앞을 지나가는 한순간 한순간이 더할 나위 없이 소중하게 느껴졌다.
아무도 봐주지 않고 어제의 흔적이 남지 않는 오늘. 똑같은 시간의 반복.
굳이 이런 상황에 빠지지 않아도
다람쥐 쳇바퀴 식으로 똑같이 돌아가는 일상이라며 쉽게 무료해하는 우리가
순간순간의 최선이라는 것을 다시 생각해 볼 수 있다는 점에서는
괜찮은 것 같다.
다음 번엔 내가 원하는 스토리나 분위기 따위를 기대하는 선입견 없이
작품 자체로 만날 수 있을 듯 하다. 그때는 지금보다 좀 더 재미있으려나????
‘턴’과의 새로운 재회 순간을 기다려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