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름다운 죽음의 조건"  3.29-4.11

'어떤 건축'을 읽었다.

놓을 수 밖에 없었던 꿈을 추억하게 하는 
나는 고등학교 시절부터 건축을 꿈꿨고-약간은 멋부리는 청소년기의 감상이 섞여있긴 했지만-
대학생이 되었을때는 바라던 대로 건축을 시작할 수 있었다.
하지만 공부하는 내내 
건축은 내게 '이별을 예감하고 만나야하는 연인'처럼 애뜻하고도 가슴저린 괴로움이었다.
공부가 깊어질수록 몸이 더 아팠기 때문이었다. 
쏟아지는 과제와 설계에 대한 고민들이 나의 건강을 막다른 곳까지 몰아갔던 건지도 모르겠다.

10년의 갈등 끝에 건축을 손에서 놓고 몇년의 방황후 내게 남은 건 건강해진 몸과 건축에 대한 아련함이었다.
그리곤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어쩌면 처음부터 나는 건축을 끝까지 할 수 없을 거란 짐작을 하고 있었는지 모른다라는. 

꿈이 꿈으로서 족할 때....
'어떤 건축'을 손에 들고 
제목마다 건축물에 대한 작가의 단상을 에세이식으로 편하게 써내려간 글을 한 줄 한 줄 읽을때마다
오래된 사진첩을 여는 것처럼 
아련함과 약간의 따끔거림, 즐거움과 작은 미소가 내게 찾아왔다. 
건축에 관심이 없는 이에게는 이 책이 어떨런지 모르겠지만,
더 이상 갈 수 없었던 꿈의 길을 회상하며 건축을 감상하는 입장이 된 내겐
참으로 흥미로운 여행의 한 때였다.

오랜만에 향수에 젖어 
마치 사랑했지만 인연이 닿지 않아 함께 할 수 없었던 연인을 회상하듯 그렇게 
글과 글 사이, 사진과 사진 사이, 감상과 감상 사이를 거닐었던 
며칠의 시간이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