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지를 통해 만난 아빠, 그리고 부모님의 사랑

유복자였던 작자가 어머니의 유품 속에서 발견한 아빠의 편지를 통해 그녀가 알지 못했던 젊은 날의 부모님과 두 사람의 사랑을 옅볼 수 있었다는 내용이다.
소설이 아닌 에세이였기에 단순하고 평범한 연애편지가 대부분임에도 잔잔한 감동이 있었다.

예전의 나라면 둘이 얼마나 알았기에 결혼하느냐고 말했겠죠. 하지만 당신과 2주를 보낸 뒤로는, 사람끼리 얼마나 알아야 서로를 안다고 할 수 있는지에 대한 관점이 바뀌었거든요. 두 사람이 어떤 사람이냐에 달려 있는 것 같아요. 서로 오래 아느냐, 아느냐가 아니라. (p. 67)

당신은 내 사진을 더 보내달라고 하는데, 나는 아직 당신의 첫번째 사진도 못 받았어요. 우리가 치룰 수 밖에 없는 대가인가 봐요. 내가 간직한 유일한 사진은 기억이지만, 지워지지 않을 거예요. 진심이예요. 늘 더욱 더 당신이 그리워요. 오래 전 1월 당신 곁을 떠났을때는, 그게 최근의 일이라서 당신 생각만 난다고 믿었어요. 하지만 떨어져 지낼 수록 더 또렷이 생각나고, 당신이 가장 멋진 여자 임을 더욱 깨닫게 되네요. (p.72)

상상만 하던 아버지를 편지를 통해 만나게 된 작자는 아버지가 머릿속에 그린 이미지와 같다는 것에 큰 기쁨을 느낀다.
자신은 사랑받았고 세상에 태어날 가치가 있는 존재라는 사실을 확인할 수 있었다는 것에, 기대했던 만큼 아버지가 훌륭한 분이었다는 것에 기쁘지 않았을까, 나름대로 짐작해보았다. 가슴 한켠에 그늘처럼 자리하던 두려움이 일시에 사라지는 기분이었겠지?

"내가 기억되는 한 진짜 죽은 게 아니지."
연애편지를 통해 아버지는 기억되고 있다. 그렇게 기억되는 게 당연할 것이다.
아버지는 사랑에 빠진 젊은 해군장교로 기억된다. 스물여섯 살, 사귄지 6개월도 안 되는 금발 미인과 결혼할 청년. 그들은 5남매를 두게 된다. 그들은 자식들이 성장하는 모습을 보지 못할 테지만...... 그는 나라를 위해 일하다 죽는다. 하지만 진짜 죽은 게 아니기에 기억될 것이다.
내게는 그렇다. 그는 죽지 않았다. (p.170)

에세이를 읽는 중 오래 전 죽은 엄마가 아이를 향해 남긴 일기장을 읽으며 성장한 이의 사연을 들은 게 기억났다. 그 사람은 엄마가 곁에 없었지만 엄마의 일기장을 통해 자신을 향한 어머니의 사랑을 느낄 수 있었고 원만한 성인으로 성장했다고 했다.

곁에 있지 않아도 나를 누구보다 깊이 사랑해주는 사람이 존재한다는 걸 느끼는 게 삶에 있어 얼마나 중요한가를 다시금 깨닫는다.
더불어 곁에 있으면서도 제대로 된 사랑을 전하며 살아가는 사람인지 뒤돌아보게 된다.

출간 이벤트!!

무지개 곶의 찻집

등장인물의 개성이 유독 두드러졌던 소설, 성균관 유생들의 나날

'해를 품은 달'의 여파로 읽게 된 책이다.
동명의 드라마가 공중파를 탔음에도 손대고 있지 않다가 뒤늦게 읽은 이의 대열에 합류한 셈이다.

'해를 품은 달'에서 이미 느꼈지만 배경이 되는 시대와 장소에 대한 철저한 조사를 한 흔적이 글 곳곳에서 느껴졌다.
그래서 정통 로맨스 소설이지만 읽는 재미가 있었다.
성균관의 일상을 알기 쉽게 이야기로 풀어서 들은 기분이었다. 오호, 작가의 땀방울에 감사의 박수를!

거기다 개성 넘치는 등장인물에 대한 인상이 무엇보다 강하게 남았다.
이름하야 잘금 4인방!
각각의 인물마다 말투, 행동거지 등이 딱이다 싶을만큼 잘 묘사되어있었다. 그에 걸맞는 별칭은 해학적이기까지 했다. 작가의 재치와 은근한 장난질에 박수를 보내고 싶은 심정이었다.

최고의 신랑감, 최고로 반듯한 사내. 가랑 이선준.
물건(?)은 없으나 가슴에 품은 배포와 학문에 대한 열정, 깨어있는 여성 의식만으로도 기꺼이 큰 물건이다, 라 칭하고도 남을 대물 김윤희.
여인의 향기와 아름다움을 쫓는, 절대 마를 리 없는 재치와 입담의 소유자 여림 구용하.
미친 말이라는 별호가 딱 일만큼 입만 열면 욕에, 말끝은 잘라먹기 일수고 말보다 주먹이 먼저인, 그러나 속 깊고 정 있는 걸오 문재신.
2권에 걸친 긴 전개에 조금은 흐트러질 법한 인물의 개성이 처음부터 끝까지 방금 닦은 보석처럼 반짝반짝 빛났다.

연애소설을 즐겨읽지만 항상 지루하다, 뻔하다는 수식어를 붙였었는데 이번만큼은 그럴 틈 없이 잘 읽었다.
지난 날 '보통의 글'이라 평하던 한 독자의 덧글에 이 소설도 거품낀 그렇고 그런 로맨스소설인가 싶어 그냥 지나쳤던 게 아쉬웠다.
속편인 '규장각 각신들의 나날'도 은근히 기대가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