따듯함과 온화함이 어우러진 49일간의 이별레시피

그래, 그렇지! 글은 이렇게 따듯해야하는거다.
소설을 읽는 중간중간 이렇게 생각했다. 느닷없이, 정해진 법칙도 아니고, 단지 따듯한 글을 좋아할 뿐인데 이번 글은 읽으면서 나도 모르게 무릎을 치며 내뱉듯 그리 말했다.
글은 따듯해야해, 라고.
그만큼 따스하고 감동적이었다.

49재의 대연회.
뭔지 잘 모르겠다.
하지만 그 연회가 옴마의 마지막 바람. 그리고 그걸 모두가 함께 이루어야 한다면.
이 집에 있을까.
있는 게 좋을까.
있어도 될까?
고개를 들자 아버지는 이모토와 하루미 사이에서 웃고 있었다. (p.100)

친엄마는 아니지만 사랑했고 사랑 받았던 엄마의 죽음, 살갑게 대해주지는 못해 안타까웠던 아내의 죽음.
딸과 남편이라는 두 시점으로 사랑했던 이의 빈자리가 남긴 슬픔을 주변의 도움으로 조금씩 지워가는 모습을 아련하고 잔잔하게, 그러면서 가볍지도 무겁지도 않게 잘 그려내고 있었다. 간간히 감초처럼 들어있는 농담과 웃음짓게 만드는 설정이 좋았다.

작가의 평소 생활관인지 몰라도 죽은이의 유지에 따라 49제 대신 모두 함께 큰 연회를 연다는 설정에 많은 눈길이 갔다. 장례에 절차가 있는 건 나름의 의미를 담아 정해놓은 것이겠지만 그 안에 담긴 의미는 퇴색한 채 일만 치뤄내기 급급한 게 요즘이기 때문이다. 물론 가족을 잃은 당사자는 그렇지 않지만 장례에 참석하는 대부분의 기분은 '돈들어가는 의무사항' 일때가 많다. 돌아가신 분이 어떤 분이고 어떤 삶을 살았는지, 남은 이들은 그분을 어떻게 기억하는지 관심도 없다.
그런 의미에서 주변의 도움을 받아 함께 큰 연회를 준비하는 '49일의 레시피'는 내가 죽은 뒤 이런 모습이라면,이라고 상상하는 것만으로도 기쁠 듯한 그런 장례였다.

분명히 인생은 무언가가 필요하다.
먹고 자고 일어나는 하루하루를 선명하게 색칠하는 무언가가. 행복한 기분을 만들어내는 무언가가, 웃음, 기쁨, 놀람, 설렘, 기대. 마음을 움직이는 무언가가. (p.172)

실은요, 저는 어머니에 대해서 잘 모르겠어요.
이 그림 편지는 연표를 채우지 못해서 대신에 붙인 거예요. 그래도 아직 빈 곳이 많아요. 뭐든 좋으니까 이 연표에 쓸 만한 일이 있으면 가르쳐주실래요? (p.186)

세상은 수없이 많은 익명의 테이크보드(발판)으로 이루어졌다. (p.19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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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명세와 출간된 작품수에 비해 읽은게 몇권 안되는 작가의 비교적 최근작에 해당하는 소설이었다. 도서관에 갔다가 작가의 이름 탓에 무심코 뽑아들곤 아무 생각없이 읽기 시작했다.

조금은 특별한 어린 시절과의 화해여행

어린시절을 부모에게 영향 받지 않은 사람은 없을 것이다. 인격적으로 완전하게 성숙한 부모란 없는 것이기에 부모는 자식과 부대끼는 세월 속에 점점 다듬어지고 진정한 부모가 되어간다. 그렇기에 아이는 알게 모르게 부모와 상처를 주고 받으며 성장하는 것 같다.
하지만 '그녀에 대하여'의 주인공 유미코의 경우는 특별했다.
여러 대에 걸친 마녀 집안에 주술을 부리는 엄마라니.
오컬트적 색채를 담은 작품은 '하치의 마지막 연인'에서 접하긴 했지만, 이번 '그녀에 대하여'는 분위기가 다소 어둡고 무거웠다.

유미코의 엄마는 할머니가 연 강령회 도중에 부모의 죽음을 목격한 충격을 치료하기 위해 요양원에서 지낸 적이 있다.
그런 엄마였지만 어린시절의 그녀는 나름대로 평화롭고 행복한 환경에서 성장한다.
그러던 중 엄마의 주술 덕에 집안의 사업이 번창하면서 그 평화에 금이 가기 시작한다.
점점 멀어지는 아빠와 엄마 사이에서 불안정한 상태로 성장한 그녀는 강령회에서 무언가에 씌인 엄마가 휘두르는 칼에 아빠를 잃고 만다. 뒤이은 엄마의 자살.
그 후 수 년이 흐르고 세상 속에서 연기처럼 부유하듯 살아오던 그녀에게 사촌 쇼이치가 찾아온다.
엄마와 쌍둥이였고 누구보다 유미코를 걱정하던 이모의 유언에 따라 쇼이치는 유미코와 기억여행을 떠난다. 그리고 그는 뿌리 없이 떠도는 듯한 삶을 살아온 그녀의 하루에 작은 빛을 비춰주게 되는데.

줄거리는 유미코가 부서진 조각을 이어붙이듯 가슴에 남아 있던 기억을 이어맞추면서 삶의 의미와 자신의 자리를 되찾아가는 과정이 주를 이루고 있었다. 그리고 끝에 이르러 만나게된 반전. 사실 놀랍지는 않았다.
책을 읽기 전 역자 후기를 접한 탓도 있지만 피곤한 상태로 독서를 한탓에 정신까지 조금 멍한 탓도 있었다.
옆에서 옛이야기 읊조리듯 비밀을 터뜨릴게 아니라, 좀 더 극적이게 반전을 풀어놨다면 눈이 번쩍 뜨였을까. 아무튼 구렁이 담 넘어가듯 그렇게 이루어진 반전이었다.

"토대란 게 뭐죠?"
"유미코 씨나 다카하시 씨가 갖고 있는 것, 그리고 나 역시 갖고 있었던 것이죠."
구마 씨가 말했다.
"바로 이 세상은 살 만한 가치가 있다고 생각하는 힘이에요. 누군가의 품에 꼭 안겨 본 경험, 귀염받고 자란 기억. 비 오고 바람 불고 맑게 갠, 그런 날들에 있었던 갖가지 좋은 추억. 부모가 맛있는 음식을 차려 주었던 일, 생각난 것을 얘기하고 받았던 칭찬, 의심의 여지 없이 누군가의 자식이었던 것, 따듯한 이불 속에서 푸근하게 잤던 잠, 자신이 있어도 좋다고 진심으로 생각하면서 이 세상에 존재했던 일, 그런 것들을 조금이라도 갖고 있으면 새로운 사건과 부딪힐 때마다 그것들이 되살아나고, 또 그 위에 좋은 것들이 더해지고 쌓이고 하니까 곤경에 처해도 살아갈 수 있어요. 토대니까. 어디까지나 그 위에서 무언가를 키워가기 위해 있는 거니까. (P.148)

불운한 유미코의 삶이었지만 아름답다 추억할 수 있는 여지가 있었던 건 누군가의 온전한 사랑 탓일까.
사랑을 주고 받았던 이들을 떠올려보는 시간이었다.
완전하지 않은 인간의 사랑은 저마다의 깜량만큼 서로의 가슴을 채워주는 건가 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