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떠나고 싶다.’ 내 마음이 그렇게 말했다.(p.12)
마음이 이렇게 말할 때 선뜻 떠날 사람이 이 세상에 몇이나 될까. 더군다나 모래바람 가득한 사막이라면?
꿈을 향해 달리는 이들의 아름다운 사막여행
제목부터 내 손길을 부르는 느낌이었다. 한 곳에 붙박힌 나무처럼 자유를 꿈꾸나 손을 놓고 떠나지 못하는 나에게 꽤나 신선한 장소였기 때문이었다.
사막, 사막, 사막이라. 내용을 떠나 작가의 도전 자체가 감탄과 부러움의 대상이었다. 발로 직접 밟고 살갗으로 느꼈을 사막의 모래와 더위, 끝없다 표현할 수밖에 없는 광활함 등등. 쉽게 상상할 수 없는 세상에 대한 그들의 생생한 경험은 여행이 막을 내릴 때까지 한 편의 다큐멘터리처럼 시선을 뗄 수 없게 만들었다.
세상과 인생을 통찰하기 위해 사막으로 찾아간 은수자처럼 작가가 여행을 통해 적어 내려간 생각의 조각들은 삶을 되돌아보게 했다. 살아가면서 무수한 꿈을 꾸지만 우리에게 필요한 건 결국, 아주 단순명료한 것들이라는 점이 가슴을 두드렸다.
일상 속에서 겪는 어려움에 불평을 내뱉지만 그것을 통해 타인을 이해하고 삶과 세상을 포용하게 되는 것처럼 사막이라는 첨예한 공간에서 깨달은 것들로 인해 살아가면서 여행이라는 생생한 기억과 함께 끊임없이 삶 속에서 성장하고 자라날 작가의 인격에 부러움을 느꼈다.
늘 언젠가, 언젠가라고 되뇌는 여행에 대한 열망.
나는 세상 그 어느 곳을 향해 그토록 떠나고 싶어 하는 걸까.
자신에게 물어보았다.
그래, 결국 그렇게 됐다. 애초의 예상대로 이번 여행을 통해 한민족의 발자취를 더듬고 대자연의 장엄함을 한껏 느껴보겠다는 따위의 포부보다 탈 없이 돌아갔으면 하는 소망이 더 커졌다. 이제 진정한 목표는 ‘무사귀환’이 된 것이다.(p.90)
나이가 들수록 가치관이 흔들린다. 세월이 흐르고 세상의 이치와 현상에 좀 더 밝아지게 되면 내 신념은 지금보다 더 투명해지고 명료해지리라 믿었다. 그런데 살아갈수록 세상은 더 모르겠고 생각은 방향을 잃고 흔들린다. 어떤 이는 이를 ‘적응’이라고도 하고 어떤 이는 ‘융통성’이라고도 하는데 가히 좋게 여겨지지 않는다. 발레리의 말처럼 생각한대로 살고 싶다. 그렇지 않으면 머지않아 살아간 대로 생각하게 될 테니까.(p.154)
늦은 밤. 좀체 잠이 오질 않았다. 잘 해낼 수 있을까? 내겐 이 여행이 ‘되면 하고 안 되면 말고’할 성격의 것이 아니다. 아내와 내가 꾸어온 소중한 꿈이고 반드시 성취해야 할 젊은 날의 희망이다. 그렇다고 안절부절 못할 건 없잖은가. 지금이 최악의 상황은 아니다. 다친 사람도 없고 그저 차 한 대의 엔진에 약간의 문제가 있을 뿐 아닌가. 아직 1호차가 남아있다. 내 누누이 사람들에게 이르지 않았다. 사람을 죽이는 건 ‘죽음’이 아니라 ‘절망’이라고. 지금은 희망을 꿈꿀 때다.
“내 그대에게 이르노니 일어나 걸으라. 그대의 뼈는 아직 부러지지 않았으니.”(p.183)
저 황폐한 사막이 이곳 사람들에게도 감동일 수 있을까? 아니면 해마다 2m씩 확대돼가는 사막 면적만큼의 근심으로 여길까? 기이한 일이었다. 사막을 처음 접했을 땐 그저 신묘한 풍경일 뿐이었는데 이젠 일상으로 다가왔다. 먼지 하나, 바람 한 점이 의미 없던 날이야 없었겠지만 그전처럼 가슴이 콩닥거리지는 않았다. 사막이 아름다웠던 건 어쩌면 일탈이 주는 신선함 때문이었는지도 모른다. 그러나 모든 일탈은 곧 일상이 될 수 있음을 보았다.(p.273)
그간 우리를 달리고 또 달리게 만든 그 격렬한 욕망은 무엇이었을까? 얼마나 버티는 지 측정하려고? 기록을 깨기 위해? 오만, 의지, 신념? 알 수 없다. 다만 분명한 것은 끝없이 자동차의 가속페달을 밟아야만 빠져나갈 수 있었다는 것. 그곳은 시간이 아닌 공간으로만 존재하는 세상이었다는 것. 그곳에서 나는 멈출 수 없는 이방인이었다는 것. 그리하여 나는 끊임없이 나를 채찍질하며 나 자신에게 다가섰다는 사실 뿐이다. 카뮈의 말처럼 여행은 나를 나 자신으로 떼어놓는 ‘쾌락’이 아니라 나를 나에게 더 가깝게 끌고 가는 ‘고행’이었기에 내 가능성과 열망을 한데 모을 수 있었다.(p.328)
여행을 준비했던 지난 일 년 반, 얼마나 설레고 조바심 나던 시간이었던가. 그러면서도 하고 싶은 일이 있어 행복하지 않았나. 길을 나섰던 지난 시간들, 고되고 험했지만 가고 싶은 길을 간다는 환희로 가득하지 않았나. 이제 일상으로 돌아가면 준비와 실행을 모두 합친 시간보다도 몇 갑절 긴 세월을 이 여행의 기억을 곱씹으며 행복해할 것이다. 그 기억의 유효기간은 내 생명이 다하는 날이 되겠지.(p.32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