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전 하나로도 행복했던 구멍가게의 날들
첨예한 화가의 시선과 대면하다. 사유하는 시간을 가져본다.
글과 그림 이미경
남해의 봄날. 2017
책 제목처럼 그런 시절이 우리에겐 있었다. 동전 하나로도 행복했던 시절. 동전의 가치가 잃어가는 시대에 동전 하나를 따라 손에 꼭 쥐고 달려갔던 구멍가게. 사라져간 구멍가게들을 사라져가는 구멍가게를 바라보는 화가의 시선을 따라가본 책이다. 책 표지의 그림도 한가득 평온함에 젖어들게 한다. 어쩌면 그 시절을 더 그리워하면서 살아가고 있음을 이 책을 고르면서 떠올려보게 된다.
경제성장과 발전. 수치화된 성장 전망이 과연 모두의 행복이었는지도 되묻게 한다. 추억의 구멍가게가 아닌 우리가 소중한 것을 잃어버리지 않도록 기억하게 해주는 책 한 권이다.
기억에서 사라진 이불솜 사이의 밥그릇의 온기, 소박한 밥상, 누구나 앉아서 쉬어갈 수 있었던 평상들이 눈에 들어온다. 무엇에 의해 사라진 것일까. 88쪽 평상의 계절. 응답하라 1988의 장면들도 떠올려보게 된다. 우리가 잃어버린 것이 무엇인지 소환해보게 한다. 138쪽 수평과 수직. 저자도 왜 구멍가게를 쫓아서 그림을 그리느냐는 많은 질문 속에 살아왔음을 짐작게 한다. 수직이 좋은 것이라고 말하는 세상 속에 수평의 가치와 의미를 들여다보고 다녔을 시간들이 책 속의 활자 발자취만으로도 충분히 그려지게 된다. 그리고 인력이라는 놀라움 속에 만나게 된 구멍가게들의 그림은 소중한 가치가 되어준다.
휴식 같은 책일 거라 생각했는데 때로는 첨예한 글과 화가의 시선도 대면하게 된다. 최승자 시인의 청파동을 기억하는가(154쪽). 시인에 관한 내용도 전해주었기에 다시금 글귀들을 읽었던 내용이기도 하다. 시대는 아팠고 아팠던 흔적들은 시가 되기도 하고 문학이 되기도 한다. '오래된 정원'이라는 황석영 소설 에 관한 내용 글도 기억에 남겨지는 글이기도 하다.
그림이 가득하고 글이 배경이 되는 줄만 알았다. 하지만 그림만큼이나 글이 가득해졌고 화가의 이야기와 시선을 따라가보는 동행 길은 아깝지가 않았던 시간으로 기억된다. 복작거리는 도시생활이지만 이 책을 펼치는 순간만큼은 우리도 그곳에 머무를 수가 있어서 좋았다. 더불어 남해 여행길도 떠올려보게 된다. 인적이 없었던 바닷가. 작은 구멍가게. 슬레이트 지붕과 강아지들이 떠오른다. 유명한 관광지를 다녔던 기억보다는 그곳의 바닷가와 구멍가게는 시간이 흘러도 우리 가족에겐 좋은 추억거리가 된다. 다시 가보고픈 곳이기도 하다. 읽는 동안 그렇게 사라져가고 사라질지도 모르는 구멍가게들을 따라가보며 소중한 것들을 하나씩 떠올려보게 된다.
모티브를 꾸준히 찾아다녔을 시간들. 사진 한 장만 들고 여기저기 헤매면서 다녔을 시간들도 떠오르는 한 권이다. 사각사각 그림을 그리는 펜화의 소리가 음악 같다고 표현한 학습지 선생님의 말처럼 세심한 펜의 터치 하나하나에 눈길이 머물렀던 그림이기도 하다. 낮과 밤의 분위기가 다름을 알기에 일부러 밤이 오기를 기다렸다가 밤의 풍경을 담아서 그려낸 작품도 만나볼 수 있었던 책이다.
구멍가게 그림 속에는 여백이 많다. 그리고 한 그루의 나무도 존재한다. 늘 의구심이 생겼었는데 어느샌가 저자는 그 이유들을 글 속에 풀어놓는다. 봄, 여름, 가을, 겨울. 사계절을 담은 그림들. 그리고 쉬어가는 의자들, 평상들, 간판들, 지붕들까지도 저마다 다른 모양새다. 지붕에 관한 건축학적인 글도 실려있는 책이다. 주인분들의 사연들과 한결같은 마음까지도 전달되어주는 그림과 글이다.
그림이라는 작품을 좀 더 세심하게 바라보게 된다. 화가의 시선을 바라보면서 대화하는 방법도 한층 배워가는 시간이 되었던 책이다. 처음 문을 두드렸던 책의 느낌과 확연히 다른 느낌으로 마지막 페이지를 덮었던 책이다. 풍족해지는 기분, 그 시절이 주었던 아름다운 것들이 그리움이 되지 않기를 희망해보게 되는 책이기도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