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날 ‘문화’라는 단어는 무척이나 광범위하고 복합적인 함의를 지니고 있다. 인간 예술활동의 소산들(연극, 영화, 미술, 음악, 건축, 문학 등)을 가리키는 좁은 의미를 넘어 문화는 과학, 의술, 교통, 통신기술 등 소위 문명사회를 이루는 모든 기술적 성과들을 지칭하기도 하고, ‘아시아 문화’, ‘유럽 문화’, ‘청소년 문화’, ‘음식 문화’ 등의 말에서처럼 특정 지역, 계층, 혹은 특정 분야의 삶의 방식을 지시하는 데 쓰이기도 하며, 폐쇄적/개방적 문화, 남성적/여성적 문화, 고급/저질 문화 등의 단어에서처럼 평가적 의미로도 사용되고 있다.
‘문화’ 개념의 이러한 복합성은 오늘날 문화에 대한 이론적 작업들을 복잡하게 만들고 있을 뿐만 아니라, 그 문화를 대상으로 하는 문화학이란 학문의 정체에 대한 논란과 오해, 심지어 불신을 불러일으키는 원인이 되기도 한다.
문화를 “인간의 모든 활동과 삶의 형식들의 총체”라고 정의한다면 사실상 문화는 문화학이라는 신생 학문이 출현하기 훨씬 전부터 이미 기존 학문들의 연구 대상이었다. 문학과 예술학은 이미 창조적 문화활동의 소산인 예술을 대상으로 삼아 왔고, 역사학을 비롯 인류학, 고고학, 민속학 등은 특정한 국가, 문명, 시대와 지역들의 다양한 삶의 형태들을 연구해 왔으며, 철학, 미학, 종교학 등의 정신과학 또한 문화라는 개념으로 포괄될 수 있는 인간의 정신적 창조물을 분석해 왔다. 한마디로 문화는 이미 기존 인문학들의 연구 대상이었다는 말이다. 그런데도 이제 뒤늦게 출현한 문화학이라는 신생 학문은 마치 문화가 자신만의 독점적 연구 대상인 양 참칭하고 있는 것은 아닌가.
이러한 오해와 불신을 가중시킨 원인 중 하나는 ‘문화학’의 개념과 문제의식이 소위 ‘인문학의 위기’로 일컬어지는 학문 내, 외적변화의 과정에서 등장했다는 데에 있다. 이로 인해 어떤 문학 연구가들은 “문화학의 영향으로 인해 문학은 스스로를 비하하거나 포기하는 경향으로 치닫고 있다”며 문화학을 기존 인문학을 위협하는 대립물로 받아들이기도 한다.
오늘날 인문학을 위기와 분란으로 몰아대는 듯 보이는 문화학을 우리는 어떻게 이해해야 할까? 문화학은 어떤 문제의식에서 생겨났으며 다른 학문들과는 어떤 관계를 맺는가? 나아가 문화학이라는 신생 학문은 도대체 무엇을, 어떤 방법으로 연구하려 하는가?
이 글은 이러한 질문들을 인문학의 자기변화와 그 속에서 출현한 문화학의 문제의식, 나아가 학과로서의 문화학의 출현이라는 세 측면에서 살펴보고자 한다. 그 이유는 문화학이라는 학문 자체가 근대 이후 변화된 인문학의 물질적 · 정신적 조건들 속에서 자신의 문제와 방법을 형성해 왔으며, 이는 동시에 인문학의 자기변화 과정과 맞닿아 있기 때문이다. 필자가 처해 있는 조건과 역량의 한계로 인해 이 글은 주로 독일 내에서의 논의를 중심으로 소개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