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유시민을 좋아하는 사람도 그렇다고 싫어하는 사람도 아니다. 

그러나 이 책은 그의 네임밸류를 보고 구입했다고 해도 좋겠다.

딱따구리처럼 생긴 외모는 딱딱 받아치는 그의 이미지와 매우 닮아있다.  

답답한 세상에 살고 있기 때문인지 전작 경제학카페에서처럼 얕은듯 하면서도 깊은 그의 필력의 힘을 보고 싶었다. 

그와 생각이 다른 사람들에게는 혹평을 받을지언정 적어도 독자에게 맡긴다 라는 둥의 적당한 선에서 얼버무리는 안일한 책은 아닐 것이라는  확신이 벌써 제목에서부터 느껴진다. 바로 「후불제 민주주의」!

여자라면 한번쯤 인터넷이나 홈쇼핑에서 쇼핑을 해 본 적이 있을 것이다.

인터넷쇼핑에서는 드물지만 홈쇼핑에서는 후불제로 주문하는 상품들이 곧잘 등장한다.

있으면 좋을 것 같지만 막상 지갑을 열만큼 절실한 상품이 아닐 경우에 홈쇼핑 호스트들은 달콤하게 속삭인다.

"고객님. 주문하셔서 한 번 써보시고 맘에 드시면 결제하시면 됩니다.  하자가 있거나 맘에 안들면 바로 반품해 드립니다."

결재도 안했는데 써볼수 있고 게다가 그냥 환불도 된다니 조금 망설이던 고객들도 부담없이 주문전화를 하게 된다.

처음에는 이 상품이 '내게 필요한 것인가'를 고민했던 고객들이 상품을 받게 되면 이 상품이 반품할 만큼 '하자'가 있는지부터 살피게 된다.  그러나 이미 물건을 받았으니 '특별한 하자'가 없으면 그냥 사용하는 고객이 더 많았다는 결과가 나왔다.

그러면 왜 이 시점에서 갑자기 후불제 민주주의인가? 

유시민은 우리 국민이 아직 민주주의를 사용하는데 충분한 댓가를 지불하지 않았다고 해서 '후불제'라는 이름을 붙여 놓았지만 나는 다른 생각이다.  우리 세대는 민주주의의 참다운 가치를 잘 모른다.  댓가를 지불하지 않고 누려서라기보다는 필요성을 충분히 인식하지 못한채 누리고 있기 때문이다.  마치 후불제로 주문한 수많은 상품들처럼 아직까지는 '특별한 하자'가 없으니 그냥 쓰는 쪽을 택했다고 감히 나는 생각한다.  우리는 민주주의가 우리에게 필요한지 고민하거나 투쟁하지 않고서도 민주사회에 발 담그고 살아가고 있다.  그런데 요즘들어 민주주의라고 불리는 우리사회가 약간의 하자가 있는 듯한 느낌이 든다.  광우병 소고기 수입을 반대하며 평화롭게 시위하던 유모차부대 엄마들이 경찰서로 끌려가서 조사를 받는가 하면 시민을 위해 만들었다는 시청앞광장은 연일 장갑차로 폐쇄되어 있다.  그런 모습을 보면 할 말 못하고 사는 사람처럼 답답함을 느낀다.  그렇지만 그 답답함 때문에 잠을 못잔다거나 밥을 못 먹는거나 하지는 않으니 아직까지는 특별한 하자가 발생되었다고 보기는 어렵다.  그 하자라는 것도 현대사회처럼 다양한 집단에서는 특별함을 상실한다.  서로가 원하고 바라는 것이 다르고 개인의 입장이 다르기에 앞으로 얼마나 많은 시간이 흘러야 개선할 움직임을 보일지는 아무도 모른다.  그런데 과연 그런날이 올 수 있을까?  나는 비관적인 입장이다.

 이 책 전반부에서 유시민은 시종일관 같은 목소리로 현 정부는 민주주의에 역행하는 행동을 서슴치 않고 있다고 얘기하며 그렇게 판단한 근거를 헌법에서 찾고 있다.  그리고  현정부의 인기도 하락과 함께 5년후 떠오르는 샛별로 등장할지도 모를 박근혜의 존재가 염려되었는지 그의 아버지인 '박정희 향수'를 말끔히 지워버리도록 여기저기 그의 업적(?)을 기록해 놓았다.  노무현 전 대통령의 죽음과 함께 사람들이 5년후를 기약한다고는 하고 있지만 여전히 지역주의에 머물고 있는 우리나라 정치판에서는 5년후 대통령 선거에서 박근혜가 대통령이 될 가능성이 아주 많다.  어떤 일이든 시간이 흘러 추억이 되면 아름다워진다고 했던가?  여전히 그 시대를 추억하는 사람들은 구미에 박정희 동상도 세운다니 그의 걱정이 결코 노파심만은 아닌 것 같다.   요즘 사람들에게 가장 관심있는 것은 청년층은 취업일 것이고 중년층은 재테크와 불안한 직장, 노년층은 연금 정도 일 것이다.  누가 어느지역에 무엇을 하던 나의 이익과 직접적으로 관계가 없는 것들은 관심밖 다른 나라 얘기일 뿐이다.  나처럼 애국이나 나라일에 관심 없는 애엄마가 이 책을 읽었다는 것도 대단한 호기심에서 였을 가능성이 짙다.  역시 나는 비관적인 입장이다.

며칠 전 남편의 거래처 D사의 결혼식에 함께 다녀왔다.  한 번도 호텔의 결혼식에 가보지 못한 나로서는 그 곳에서 맛보는 음식의 맛이 궁금해서 갔지만 남편은 가는 것조차 싫어했다.  tv에서 연예인 결혼식에서나 보던 산 중턱의 으리으리한 결혼식장과 주차장에 즐비한 외제차들 속에 남편의 아반떼가 무척 초라해 보였다.  발레파킹해주는 사람들이 많았지만 우리쪽은 거들떠보지도 않았다.  우리는 밥은 고사하고 밥값만 7만원이라는 곳에서 축의금 봉투만 내려놓고 부리나케 돌아왔다.  그곳은 내가 듣지도 보지도 못했던 나와는 다른 세계였다.  책의 후반부는 흥미진진했다.  나와는 전혀 다른 세계의 사람들의 생활을 조금 엿볼 수 있었기 때문이다.  전 장관이라는 그의 경력탓에 후반부에서는 주로 정치적인 내용이 나온다.  그렇지만 나처럼 정치에 문외한인 사람도 그의 입담 덕분인지 전반부보다 책장 넘기는 속도가 더 붙었던 것도 사실이다.  특히 장관과 국회의원들의 일상이 어떻게 돌아간다는 설명과 노인기초연금법령이 통과 되기까지의 뒷얘기는 참 신선했다.  요즘말로 손발 오그라든다 할 정도로 자신의 업적을 자기가 대놓고 자랑한 것인데도 밉지가 않은 것은 한 번쯤은 그도 칭찬받고 싶어하는 한 인간일 뿐이다라는 동질감이 들어서 일 것이다.  그러나 나만의 이익을 놓고 보자면 노인기초연금법은 우리세대의 보험금만 올려놓는 결과를 초래해서 그렇게 칭찬해주고 싶은 법령은 아니다.  이 책을 읽을 독자들도 노인보다는 젊은이들이 많을텐데 인기관리를 위해서는 다른 칭찬거리를  내세워야하지 않았나 하는 생각이 잠시 들었다.  지식 소매상이라는 것도 어쨌든 책파는 사람이니 자신의 책을 좀 더 사줄 사람을 배려하는 것도 나쁘지는 않아 보일 것이다.

나는 온전히 이 책을 내 입장에서 내 이익에 관해서 읽고 평가했다.  그리고 그 이익이라는 것은 결국 남보다 더 많은 것을 얻기 위해서라고 할 수 있으며,  그렇게 보면 현정부의 '자유 실용주의'에 좀 더 맞닿아 있다고 할 수 있다.  그러나 그는 이렇게 얘기한다. 

국가 경쟁력은 경제적 부가가치를 창출할 수 있는 능력만이 아니라 국민 개개인이 각자가 지닌 잠재적 능력을 삶의 모든 영역에서 최대한 발휘하면서 행복을 느끼고, 모든 국민들이 공동체의 생존과 번영을 위해 공감을 이루고 협동함으로써 공동체의 환경 적응력과 생존 가능성을 높이는 국가의 총체적 능력을 의미한다.     97페이지

어떻게 보면 사회주의 냄새가 물씬 풍겨 언론의 뭇매를 맞기에 충분한 표현이지만 읽으면서 크게 공감했다.  어쨌든 행복은 개인의 만족도이고 그것은 경제적인 것만을 의미하지 않으니까.  그러나 나는 여전히 우리나라의 미래에 대해 비관적이며, 깨어나지 못하는 아니, 깨어날 필요성조차 인식하지 못하는 사람이 국민 절반이상이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그의 메세지를 통해  밝은 아침을 맞이하기 위해 좀 더 밤이 깊어질 때를 기다리는 심정이 되어보기로 했다.  그리고 가정이라는 울타리에서 벗어나 좀 더 큰 틀에서 생각하는 사람이 되려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