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책은 당신의 한국어가 허당인 이유를 알고 있다"라는 다소 파격적인 소제목을 달고 발간된 이 책은 굳이 책을 들춰 보지 않더라도 내 실력을 가늠할 수 있도록 친절하게 표지에 많은 예문을 담고 있다.  그 첫번째 예문이 '무엇으로 (결재/결제) 하시겠습니까?'다.  회사를 다닌 직장인들이라면 누구나 기안서나 제안서 등과 같은 서류를 작성해서 올려 본 경험이 있을 것이다.  나 역시 기안서를 쓸 때마다 결재와 결제를 자주 혼동하고 혼용해서 쓰기도 했다.  직업이 공무원 같았으면 직속 상관에게 호되게 질책을 받을 일이었겠지만 작은 회사라 무엇을 쓰던 눈치를 주는 사람은 없었다.  그래도 무엇이든 의욕이 넘치던 직장 초년병 시절, 나는 결국 두 단어 사이에서 갈팡질팡하지 않기 위해 최종안으로 '재가(裁可)'라고 하고 혼동되는 두 단어를 머리속에서 지워버렸다. 

우리말과 글쓰기에 대한 관심이 높아졌다고는 하나 모두 논술 입시를 겨냥한 획일적인 글쓰기 공부를 강요하는 책들 뿐 진정 우리말을 잘 쓰기 위한 책은 보기 힘든 편이다.  혼자서 즐기기 위한 글쓰기가 아니기에 책 한권을 읽고 한장의 서평을 쓰기 위해서도 네이버 사전을 몇 번씩 들락거려야 했으니 아무리 짧은 글이라도 글을 쓰기 위한 고충은 표현하기 힘들 정도였다.  그런데  책 표지에 나열된 예문들을 보니 비단 나 혼자만 그런 고민을 하고 있었던 것은 아닌 것 같아 우선 반가움이 앞섰다.  또한 자주 혼동되는 단어들은 따로 예문과 함께 적어두기도 했어도 실제로 그 단어가 왜 맞는 것인지에 대해서까지는 생각해 보지 않았는데 이 책은 그 의문점까지 해결해주고 있으니 그야말로 일거양득(一擧兩得)의 효과를 맞볼 수 있는 책이다.

이 대단한 책을 쓴 글쓴이의 이력이 궁금해서 책 겉장을 살펴보니 나의 예상과는 달리 그는 영문학도였다!  어떻게 영문학도가 우리말의 70%이상을 차지하고 있다는 한자어의 미묘한 차이에 대해 연구할 생각을 했는지 궁금했지만 신문사 편집국 교열부 기자로 입사했으니 말맛에 대한 입맛이 까다로웠을 것이라 짐작만 할 뿐이다.  우리말은 표음문자로 말소리를 그대로 기호로 나타내지만 한자는 표의문자로 글자 하나하나에 뜻이 있다.  그런데 한자의 음만 차용해 온 우리말들 중에는 선뜻 그 뜻이 이해가 안되는 경우가  많아 요즘에는 그런 경우에만 한자를 병기하고 있는 듯하다.  글쓴이는 그런 우리말의 한자어 중에서도 뜻이 서로 비슷비슷해서 혼용되어 사용하고 있으나 자세히 들여다보면 분명히 차이가 있고 구분해서 써야하는 우리말들에 대해서 상세하게 기록해 두었다.  아무리 작은 문고판이라도 해도 3권까지 있는데다 각각의 한자어를 풀이해 각 단어마다 쓰임새를 달리하라 기술하고 있으니 책을 쓴 그의 열정이 실로 대단하다 하지 않을 수 없다.

"낱말은 저 홀로 떨어져 있을 때보다는 뜻이 비슷한 낱말들과의 비교 속에서 의미가 더 분명해진다.", "교양인이라면 낱말의 세밀한 명암과 색조에 귀 기울이고 자신의 생각과 느낌을 정확히 표현할 줄 알아야 한다."  이 말들은 들어가는 말에서 글쓴이가 인용한 아베 지라르의 생각들이다.  글을 잘 쓰기 위해서는 많이 읽고 쓰는 것이 중요하다는 것은 누구나 아는 사실일테다.  기실 국어의 고수라면 이 책을 굳이 찾아 읽지 않더라도 글의 느낌으로 '적어적소(適語適所)'할 수 있으리라.  그러나 누구에게나 똑같이 주어진다는 공평한 시간속에서도 작가가 아닌이상 수많은 단어의 미세한 차이를 알기 위해 많이 읽는다는 것은 매우 어려운 일이다.  그래서일까 아직 고수의 반열에 들지 못한 내게는 이 책이 작은 비밀병기처럼 생각된다.  이 책을 통해서라도 고수와 같은 말맛을 낼 수 있기를 바란다.  아울러 평소 글쓰기에 있어 깊이 생각함을 주저하며, 타인에게 지적받을만한 모호한 단어들의 사용을 꺼리고 쉬운 단어만을 선택했던 나의 글쓰기를 반성할 시간을 준 글쓴이에게 감사한다.  사족이긴 하지만 나의 비밀병기가 될 책인데 양장본도 아니고 종이질도 그다지 좋지 않아 보관에 신경써야 할 듯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