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리라면 담 쌓고 살다 아이의 밥상을 챙기기 시작하면서부터 요리에 관심을 갖게 됐다.

예전에야 음식 못하면 소박 맞았다고 하지만 요즘에는 음식 못하는 사람이 음식 잘하는 사람보다 많으니 음식 못하는 것에 대한 스트레스는 별로 없었다.

그리고 다행히 남편도 차려 주는 대로 잘 먹는 편이고 반찬 투정이 별로 없어 스스로가 음식을 아주 못하는 축에는 속하지 않는구나 하고 살아왔다.

직장여성이라는 대단한(?)핑계거리에 결혼하고 지금까지 음식 못한다고 타박하는 사람도 없었으니 나의 음식솜씨는 거의 불모지에 가까웠다.

그러나!! 임신과 출산으로 직장을 그만두고 전업맘으로 돌아서니 상황이 달라졌다. 

주변에서 대하는 시선도 그러했겠지만 그것보다는 당장 내 아이의 밥상을 내가 도맡아서 차려야 한다고 생각하니 눈앞이 깜깜해지는 것이다.

아이는 아토피라 밖에서 사먹는 음식은 죄다 두드러기 반응이 나타나고 그것 때문에 고생하는 아이를 보니 그제서야 음식을 잘 하고 싶은 욕심이 동했다.

직장 다닐때야 반찬은 친정에서 공수하고 그저 저녁 한끼 식사 떼울 요량으로 간단히 국만 끓였다.

그런데 아이를 보며 하루 삼시 세끼 밥상을 차리려니 그렇잖아도 불모지에 가까운 나의 요리실력을 재탕 삼탕하는 것도 하루이틀이지, 이젠 그마저도 더이상 쥐어짜도 나오지 않은 내게는 도움이 절실히 필요했다.  그래서 만난 책이 <김혜경의 칭찬받은 쉬운 요리>다.

나도 두어번 요리책을 사본적이 있다.  한 권은 신혼초에 집장만하느라 초절약 모드로 살면서 절약하며 요리하려고 샀던 0,000원으로 하는 요리책.

그리고 또 한 권은 아이 낳고 이유식이랑 육아식 만들때 참고하려고 샀던 안심밥상책이다.  두 권다 테마별로 잘 꾸며 놓긴 했는데 가격대에 맞춰서 만드는 요리책에서 나오는 요리재료에는 한계가 있고, 육아식을 만드는 안심밥상책은 정말 말 그대로 엄마가 요리에 전심전력을 다 쏟아부어야 하는 책이라 솔직히 한가지도 제대로 따라서 해보지 못했다.  직장맘이 아니라도 이제 돌지난 아이를 키우는 전업맘도 하루종일 너무 바쁘다.  이맘때 아이를 키우는 엄마라면 직장다니는 것이 아이 키우는 것보다 편하다는 소리가 절로 나올 정도니까 말이다.  안심밥상책 뿐만 아니라 자연주의 열풍을 타고 요즘 유명한 요리책들을을 들여다보면 천연 조미료는 물론이요, 마요네즈나 케찹까지 직접 만들어대니 읽기 전부터 겁먹고 손사레를 치며 질색하기 마련이다.  나처럼 요리 못하는 사람은 직접 해 먹을 엄두가 나지 않는다.  음식을 만드는 것은 음식을 만드는 사람도 즐겁고 행복해야 하는데 이건 뭐 요리가 아니라 생지옥이다 다름없다.

요리하는 사람도 좀 편하게 하면서 잘 먹을 수 있는 요리책은 어디 없을까 했는데 이책을 읽고서야 드디어 내가 임자를 제대로 만난 듯 싶었다.

우선은 예쁘게 조리된 완성된 요리를 찍어놓고 조리과정을 주구장창 설명해대는 천편일률적인 요리책은 아니라서 좋았다.  요즘은 세상이 좋아져서 하고자 하는 의욕만 있으면 인터넷이 모든 것을 찾아준다.  굳이 완성된 요리와 과정 설명을 보기 위해 요리책을 구입하는 시절은 지났다는 얘기다.

둘째로, 무엇보다 처음부터 모든 것을 엄마손으로 만들어야 함을 고집하지 않아서 좋았다.  실제로 그녀도 처음에는 시판 육수를 사서 요리를 해먹었다고 하면서 처음부터 너무 완벽하게 욕심내서 요리하지 말라고 했다.  그렇게 하다보면 하는 사람도 지치고 오래할 수 없다고 시중에 파는 것을 적극 이용해 보는 것도 요리의 또다른 즐거움이라는 새로운 생각을 열어 주었다.  그동안 음식을 만들기도 전에 해야할 일들에 질식할 것만 같았던 나에게는 그런 말들이 큰 위로가 되었다.  아토피를 앓는 아이 밥상에 시판용 육수를 올리겠다는 것이 아니라 음식하는 사람에게도 때로는 그런 위로가 필요하다는 뜻이다.

셋째로, 쉬운 요리노트가 있어서 좋았다.  처음 들어보는 요리도구부터 시판용제품들까지 실제로 활용해서 쓸만한 좋은 정보들을 꼼꼼하게 잘 정리해 두었다.

넷째로, 아담한 사이즈가 부엌에 놓기 쓰기에 편리하게 되어 있어 좋았다.  백과사전식으로 사진만 커다랗게 들어찬 요리책은 식탁에 펼쳐놓고 하려고 해도 자리를 많이 차지해서 부엌이 좁은 나는 늘 부담스러웠는데, 크기도 적당하고 레시피 설명도 과정사진이 세장을 거의 넘기지 않아 따라하기 쉬웠다.

다섯째로, 레시피만 담아놓은 요리책이 아니라 이야기가 있는 요리책이어서 소설책처럼 시간날때마다 들여다보는 쏠쏠한 재미가 있었다.  이야기가 있는 요리책의 가장 큰 장점은 외우려고 하지 않아도 기억해야 할 정보들이 저절로 머리속에 이야기처럼 남는 다는 것이다.

소설책이 아닌데도 이야기가 있는 요리책이라 첫 장을 넘겼을때 이미 맨 마지막까지 손을 놓지 못하는 자신을 발견했다. 

한가지 요리가 끝나면 한가지 이야기가 끝나는 것처럼 아쉬움이 밀려들고 또 다른 그녀의 이야기속으로 들어가고 싶은 충동을 억제하기 힘들었으니까.

드라마에서는 신혼초에 부부들이 마트에서 서로 다정하게 장보는 모습이 으레 연출되고는 하는데 실제로 신혼때 마트에서 장보는 일은 고역이다. 

주말에는 사람도 많고, 아이들은 아이들대로 시끄럽고, 카트끼리 부딪히다보면 짜증이 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이미 해야 할 일상으로 자리잡은 장보기를 그녀처럼 살 목록을 정하지 않고 새로운 시판용 제품들을 훑어보며 새로운감 가게에 들어선 아이들과 같은 마음으로 요리를 할 수 있는 날이 올까?

요리를 못하는 엄마들은 시작부터 겁먹고 귀차니즘에 시달리게 마련이지만 김혜경님을 따라 쉽고 간단한 요리를 즐거운 마음으로 하다보면 결국 나도 언젠가는 자연주의로 회귀 할 날이 꼭 올 것이라 믿는다.  첫 술에 배부르랴...처음부터 너무 욕심내지 말자. 

그리고 우선은 '내'가 즐거운 요리가 되도록 해보자고 다짐해 본다.  나처럼 내가 즐거운 요리를 원하는 사람이라면 김혜경님을 요리멘토로 추천하고 싶다. 

이 책은 조승우의 군입대 전 마지막 영화, 수애의 첫 배드신으로 화제가 되고 있는 동명영화 <불꽃처럼 나비처럼>의 원작인 야설록의 소설이다.

야설록은 무협작가로서 <남벌>, <북벌>, <아마겟돈> 등 그 계통에서는 베스트셀러라고 불러도 좋을만한 걸출한 작품들을 많이 낸 작가이기도 하다.

솔직히 만화라면 큰 키에 약간 곱슬거리는 머리카락을 흩날리며 늘 눈이 큰 여자 주인공과 유치한 사랑다툼이나 하는 순정만화보다는 그림이 예쁘고 무엇보다 영화 못지 않은 탄탄한 스토리를 자랑하는 일본만화를 좋아했던 것이 사실이다.  간간히 그가 스토리를 맡았던 만화들도 남동생을 통해 몇 권 보기는 했지만 남자들의 피비린내나는 이야기는 감수성이 풍부한 소녀들이 읽기에는 아무래도 흡인력이 떨어지게 마련이다.  그래서 남동생이 무협지를 졸업하는 순간 이내 내게서도 멀어져 지금은 애들이나 읽는 것으로 치부하고 있었는데 다시 나이가 들어 책을 접하니 또 다른 매력에 사로잡힌다.

감수성이 예민했던 시절을 졸업하고 막상 사회에 발을 내딛고 나면 세상은 내가 생각하던 것처럼 호락호락하지 않다는 것을 깨닫는다.  막연하게 품었던 희망은 현실이라는 장벽에 부딛혀 이내 산산조각이 나고, 다시는 희망이라는 단어를 떠올리지 못하도록 일상은 삶을 단단히 옭아맨다.  이렇게 현실이 불안하고 무엇을 해도 희망의 끈이 보이지 않을 때 우리는 '영웅'을 기다린다.  나는 절대 해낼 수 없을 것 같은 일들, 내가 하고 싶었던 일들을 일사천리로 해내며 나 대신 삶에 희망과 용기를 불어 넣어 줄 수 있는 영웅 말이다.  어제와 같은 일상 속에서도 일말의 희망을 가지며 타자와 감정이입을 통해 대리만족을 느끼며 살 수 있다는 점에서는 다른 문학과 다를 것이 없겠지만, 시시때때로 상대를 대적하며 단련된 무예에서 저절로 뿜어져 나오는 아우라로 따지자면 무협소설을 능가하는 장르가 또 있을까 싶다.  비록 소설 속 일지언정 나보다 한 수 위인 상대에 맞서 이긴 승리는 이제는 더이상 아무것도 할 수 없을 것만 같은 보잘것 없는 내가 거칠것이 없는 그가  된 듯한 카타르시스를 느끼기에 충분하기 때문이다. 

'무명'은 조선후기 서양열강들의 압박과 침탈이라는 어지러운 정세속에서 홀연히 나타난 칼잡이다.

'난세속에 영웅이 난다'라는 말처럼 그가 세상을 뒤집는 영웅이었으면 좋았겠지만 그는 그저 부모의 죽음에 원한을 갖고 무예를 연마한 뛰어난 무인에 지나지 않았다.  그런데 그랬던 그가 우연히 감고당에서 후에 명성황후가 되는 민자영을 보고 첫눈에 사랑에 빠지면서 그의 이름 같은 인생이 펼쳐지게 된다.

모든 장면을 슬로우 모션으로 찍어 놓은 듯한 무명과 무인들의 대적 모습은 실제로 영화나 만화를 보고 있다는 생각을 방불케 할 정도로 동작 하나하나가 그의 글 속에서 살아 숨쉬는 듯 해서 읽는내내 절대 긴장감을 늦출 수 없었다.

1,2권으로 나뉘어진 소설의 1권 대부분이 무명의 등장과 성장에 대부분을 할애하고 있다.  그가 왜 무명이 되었으며 어떤 한을 품고 자랐고 어떻게 현재의 모습에 이르게 되었는지를 작가는 과거와 현재를 넘나들며 비교적 자세히 묘사했다.  그러나 명성왕후의 숨겨진 사랑이라는 타이틀이 무색할 정도로 민자영은 무명이 첫눈에 반하는 설정으로 존재감을 드러냈을 뿐 1권에서의 등장은 미미한 편이며, 2권에서도 새롭게 민자영의 모습을 각색한 부분은 그다지 엿보이지 않는다.  황후라는 존칭을 후대에 다시 받을만큼 최근 몇몇 드라마나 뮤지컬 속의 그녀처럼 지극한 미화도, 실제 역사책 속에서 그녀의 모습도 아닌 밋밋한 설정으로 주인공이라는 무게감이 느껴지지 않는다.  어찌보면 무명이라는 걸출한 사내의 정인,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닌 느낌이랄까.  후대 사람들에게 강하게 각인되어 있는 시대인 만큼 역사 속에 없던 사람을 끌어들이는 모험을 하면서 어줍잖은 스토리 구성으로는 요즘 독자들의 칼날같은 시선을 피할 수 없을테니 그러했을테지만 평소 여러 매체로 접해 왔던 민자영의 다른 모습을 기대했던 나로서는 아쉬운 부분이 아닐 수 없었다. 

그리고 죽는 듯 싶었다가도 다시 살아나는 영화 <다이하드>를 능가할 정도의 끈질긴 생명줄도 책의 재미와 긴장감에 일조한 것이 사실이긴 하나 실제로 만화가 아닌 영화속에서 그대로 재현된다면 불사신 같은 주인공이라는 설정에 다소 고개가 갸우뚱거려질 수도 있는 부분이다.  아무리 픽션이라도 이미지가 그대로 노출되어  보여지는 영화는 또다른 느낌일테니까 말이다.  

원작을 읽고나니  훌륭한 배우들의 캐스팅에도 불구하고 개봉을 앞 둔 영화가 기대가 되면서도 한편으로는 걱정이 되는 것이 사실이다.  역사왜곡이야 그렇다치더라도 '불사신'이라는 설정은 어쩌면 진지한 장면에서조차 웃음이 나올지도 모를 일이기 때문이다.  무협소설 매니아는 아니지만 책을 재밌게 봤던터라 영화 예고편 영상까지 보았는데 영화때문에 살을 뺐다고 한 '무명'역의 조승우는 개인적으로도 좋아하는 배우이기도 하고 연기를 잘하는 멋진 배우지만, 책 속에서 냉혈한처럼 보였던 무명의 이미지에는 못 미치는 느낌이다.  오히려  화려한 복색탓이기도 하겠지만 책 속에서는 다소 밋밋해 보였던 명성황후 민자영의 역할을 맡은 수애가 더욱 도드라져 보인다.  아직 개봉전이니 섣부른 판단은 금물이지만 홍보용으로 만들어진 짧은 영상에서조차 무명의 카리스마가 느껴지지 않으니 솔직히 영화보기는 조금 망설여진다.   그래도 <와니와 준하>, <분홍신>, <우리에게 내일은 없다> 등을 만든 김용균 감독의 작품이니 원작 소설과는 다른 무엇인가를 기대해 보는 것도 좋을 듯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