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등학교 1학때였다. 그 때도 학교에서 우유를 한 팩씩 먹도록 했는데(무료급식은 아니었지만 강제로 먹게 했다) 2교시가 끝나고 우유를 먹고는 3교시 수업 시간 중에 왈칵 다 토하고 말았다. 아직 어린 아이였지만 친구들이 모두 지켜보는 가운데 혼자 교실 쓰레기통에 머리를 쳐박고 계속 울렁거리는 속에서 뿜어내는 정체모를 새하얀 빛깔의 액체를 보는 것은 지옥이었다. 그것으로 끝났다면 어제 읽은 책 속 주인공 이름조차 기억하지 못하는 내 기억 속에서 영영 사라졌을테지만 한번 속을 거쳐 나온 우유의 고약한 냄새 때문에 남은 수업시간 내내 옆자리 친구의 따가운 눈총과 아이들의 흘깃거리는 시선은 지금도 잊혀지질 않는다. 그 후로 나는 우유를 잘 먹지 않았다. 어릴적 나쁜 기억 때문이라기 보다는 정말 우유가 나와 맞지 않아서다. 먹으면 속이 부글거리고 가스가 차며 특히 달걀과 함께 먹었을 때에는 어김없이 두통과 구토를 일으킨다.
그렇게 영영 멀어질 것 같았던 우유와 다시 인연을 맺게 된 것은 아이를 가지면서부터다. 아이는 태중에서 자랄 때 골격 형성을 위해 많은 양의 칼슘을 엄마 몸에서 가져간다. 아이 낳고 약골이 되지 않으려면 칼슘 보충제를 복용하거나 우유를 다량 섭취해야한다는 얘기를 친정엄마에게 귀에 못이 박히도록 들어 왔기에 나는 우유를 다시 먹기 시작했다. 아이는 잘 태어났고 우유 덕분인지는 모르지만 약골이 된 것 같지는 않았다. 그런데 돌때까지 젖만 먹고 자란 아이가 표준 성장률에 미치지 못하자 의사는 아이에게 조제분유 먹이기를 권했다. 모유수유가 힘들었던 때여서 그길로 분유를 사다 먹였는데 다른 아이들은 탈 없이 잘 먹는 분유가 내 아이에게는 맞지 않았다. 먹자마자 두드러기가 올라오고 몸이 심하게 부어 올랐다. 익숙해지기까지 다소 시간이 걸리기는 했지만 콩 단백질로 만든 분유로 바꾸고 나서야 알레르기는 멈췄다. 우유 두드러기는 여전하지만 먹지 않아서 성장이 더딜까 걱정되어 얼마 전 베이비 우유를 먹이기 시작했는데 다행히 예전처럼 심한 알레르기반응은 없어 계속 조금씩 먹는 양을 늘리는 중이다. 육고기에도 알레르기가 있어 단백질을 보충할 식단이 절실했기에 유제품을 많이 먹는 날은 왠지 뿌듯함까지 느껴졌다. 그런데 이게 왠일인가. 내가 가정시간에 수도 없이 들었던 '완전식품'인 우유가 완전식품이 아니라니! 게다가 각종 소아질환과 골다공증의 유발인자를 가지고 있었다니 놀라운 일이었다.
여학생이라면 가정시간에 달걀과 우유가 완전식품이라는 것을 배운다. 그것은 시험에도 단골로 등장하는 문제라서 아직도 완전식품 하면 달걀과 우유가 떠오를 정도로 노리에 깊게 각인되어 있다. 그런데 완전식품이라고 믿도록 만든 데에는 여러가지 요인들이 있었다. 제1차 세계대전 당시 통조림식 유제품의 수유가 급등하면서 낙동가는 급격한 성장을 하게 되는데 전쟁이 끝나면서 주문이 감소하자 다각도로 마케팅을 펼치기 시작했다. 대표적인 것이 산부인과에 조제식 분유를 샘플로 나눠주고 태어난 아이들의 입맛이 그에 길들여지도록 하는 것이었다.(우리나라에서도 그 관행은 여전하다) 그 외에도 군인과 어린이들에게 영양을 공급해준다는 미명하에 단체 급식에 우유를 필수항목으로 넣는 적극적인 로비를 펼쳐 우유에 관한 정책들이 정착단계에 이르도록 하였다. 낙농업자들은 우유가 영양학적으로 완벽한 식품이라는 사실을 인지하도록 뒤에서 정부와 의사들에게 적절한 로비활동을 펼치면서 점차 그들의 세력을 확장해 나간다.
우유하면 칼슘을 떠올릴 정도로 우유는 칼슘의 보고다. 좋지 않은 기억을 더듬어봐도 채식을 위주로 하는 우리나라 국민이 영양권장량 대비 가장 적게 섭취하고 있다고 판명된 영양소 1위는 바로 칼슘이었다. 책에서는 1960년대 우유 소비 침체기를 벗어나도록 해준 것이 바로 '칼슘'이라는 설명이 나온다. 칼슘이 영양소 중에 스타로 급부상하게 된 배경에는 골밀도와 골절이 상관관계에 있다는 가설을 증명하려는 낙농업계와 의사들의 시도가 있었다. 요즘 사설기관에서 건강검진을 받아보면 이전과 달리 골밀도 측정을 하는것도 골밀도가 건강에 지대한 영향을 준다는 인식에서 시작된 것일테다. 그러나 저자는 아프리카나 아시아계 국가들은 골밀도가 서양에 비해 현저하게 낮지만 골다공증은 더 적게 발생한다는 것과 유제품 섭취가 늘어난 현재에도 여전히 골절발생률이 개선되지 않는다는 것에 주목하며 실제 골밀도와 골절은 상관관계에 있지 않다는 것을 증명하고 있다. 그리고 오히려 칼슘의 과다섭취가 골다공증을 부추긴다는 새로운 가설을 내 놓는다.
과유불급<過猶不及>. 무엇이든 지나치면 미치지 못한 것과 같다. 저자는 과도하게 몸으로 유입된 우유칼슘은 뼈가 스스로 재생하는 능력을 수십년 만에 소진시켜버린다고 주장한다. 우리가 생각하는 것과는 달리 뼈는 계속해서 재생이 이루어지고 있는 동적 기관으로 뼈를 만드는 조골세포와 뼈를 파괴하는 파골세포에 의한 리모델링 과정에 따라 10년마다 새것으로 바뀌게 된다. 여기서 중요한 사실은 조골세포의 2/3가 죽고 나머지는 뼈 표면에 흡수되게 된다는 사실이다. 나이가 들면 자연히 조골세포를 생산하는 간엽줄기세포(MSC)의 능력도 한계에 다다르게 되는데 우리가 흔히 듣는 골다공증이 이 때문에 생기게 된다. 저자는 MSC를 최대한 자극시키지 않음으로써 뼈 리모델링을 적게 일으켜 지연시키는 방법이 뼈 건강의 핵심이라고 말한다. 그런데 우유 속에는 조골세포의 증식을 자극하는 단백질과 인슐린 유사성장인자(IGF-1)가 다량 함유되어 있다. 그말은 평생 유제품을 다량 섭취하면 초반에는 높은 골밀도를 얻게 되겠지만 MSC에 가해진 자극 때문에 조골세포를 공급하는 능력이 예정된 시간보다 더욱 빨리 고갈된다는 뜻이다. 즉 골다공증을 예방하기 위해 먹는 유제품이 오히려 뼈 리모델링을 가속화시켜 골다공증을 일으키는 주요요인이 될 수도 있다는 것이다!
저자는 이에 그치지 않고 곧바로 콜린 캠벨의 연구결과를 들어 우유 단백질 중 하나인 카제인을 다량 섭취 했을 경우 암을 유발할 수 있다는 사실과 함께 우유속에 들어있는 인슐린 유사성장인자(IGF-1) 역시 암의 위험을 높이는 요인이라는 놀라운 사실을 밝히고 있다. IGF-1은 성장인자라는 이름처럼 세포를 증식시키는 일을 담당하지만 꼭 건강한 세포만 증식시키는 것은 아니다. 또한 카제인과 함께 섭취시에 IGF-1의 혈중 농도가 7배 증가해 암에는 치명적일 수도 있다는 결론을 내 놓았다. 이 뿐만 아니라 IGF-1은 우리 몸 속 자연 항암제인 활성형 비타민D를 감소시켜 암세포가 증식하는 것을 억제하는 기능을 마비시킨다. 전세계 수많은 유제품의 수요를 감당하기 위해서 젖소는 늘 젖을 짜는 상태에 놓이게 되면서 현재 우리가 마시는 우유 속에 들어있는 IGF-1의 양은 과거에 비해 10배가 넘는다는 사실도 첨부했다.
언젠가 나무에 물을 자주 주는 것보다는 메마를 때를 기다려 주는 것이 나무의 성장에 더 도움이 된다는 얘기를 들었다. 위대한 자연법칙은 나무 스스로 물이 없다는 상황에 대처하는 능력을 만들어주고 적은 양의 물로도 살 수 있는 길을 모색하도록 해준다. 저자는 칼슘도 동일한 방식으로 접근하고 있다. 채식주의자들이 식이성 칼슘을 더 잘 흡수한다는 결과가 바로 그런 가설을 대변해 주듯 인체에 과도하게 유입된 칼슘은 다른 식품에서 섭취할 수 있는 칼슘의 흡수를 저지하며 결국 인간이 스스로 다양한 형태의 칼슘을 섭취하는 능력을 상실하도록 유도한다. 그러면 우리는 대체 칼슘을 얼마나 어떻게 섭취해야 하는 것일까? 저자는 권장량이라는 것 자체가 별 의미가 없는 산술적 수치일 뿐이라는 것을 강조하며 엄마들이 입버릇처럼 얘기하듯 모든 음식을 '골고루'만 섭취해도 충분히 칼슘을 섭취할 수 있다고 자신있게 이야기한다.
책 속에 등장하는 우유에 대한 사실은 정말 놀랍다. 그렇지만 자연스럽게 칼슘을 섭취하는 것(골고루 음식을 섭취하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어린 아이들의 경우에는 더욱 어렵다. 아이가 우유에 알레르기가 있어 부득이하게(?) 매번 엄마표로 음식을 만들어 먹이지만 알레르기만 없다면 매끼 식사에 대한 고민과 걱정을 좀 덜고 싶은 것이 솔직한 심정이기 때문이다. 전업맘도 이런 실정인데 워킹맘이야 더하면 더했지 덜하지 않을 것이다. 영양학자들이 영양소별로 권장량을 만들어 놓은 것도 그런 염려에서 비롯된 것이라고 생각된다. 저자 역시 무조건 유제품의 섭취를 하지 말라는 얘기가 아니라 다른 식품을 통해 단백질과 비타민, 무기질 섭취를 늘리라고 이야기한다. <우유의 역습>은 우유에 대한 놀라운 사실과 더불어 가정에서 직접 해 먹는 식사의 중요성을 다시금 확인시켜 주는 책이었다. 저자의 노력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유제품에 대한 망상을 지워버리기는 쉽지 않을 정도로 우유에 대한 맹목적인 신뢰가 아직도 남아있는 것은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다. 그렇지만 아이가 자라면서 시제품에 적응하면 좀 편하게 식단을 짜 보려고 했던 나에게는 말할 것도 없이 따끔한 회초리가 된 책이다. 세상이 편해질수록 인간은 더욱 나약해진다. 자연에서 섭취할 수 있는 영양소는 그대로 자연속에서 섭취하는 것이 건강의 지름길이라는 사실을 새삼 느끼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