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의 영어공부를 내 손으로 해보겠다는 거창한 목표 아래 영어공부를 하면서 영어공부의 방향을 잡기 위해 입소문난 엄마표 영어책을 몇 권 사다 보았다. 그런데 책을 읽을수록 처음 가졌던 원대한 포부는 점점 사라지고 영어로 말 한마디 못하는 소심한 내 모습만 되뇌이게 되었다. 남들이 영재라 부르는 영어신동들은 모두 엄마나 아빠가 영어를 잘하는 아이들이었으니 어쩌면 그런 실망감은 당연한 일이었는지도 모르겠다. 다른 엄마들도 그렇겠지만 아이를 키우면서 따로 시간을 내 공부하는 것 자체가 무척 힘든 일이다. 몸은 따라 주지 않는데 아이는 내가 우왕좌왕 하는 이 순간에도 무럭무럭 자라고 있으니 마음만 급해질 수 밖에 없는 것이 당연지사. 그러나 무엇을 어디서부터 시작해야하는지는 책을 읽어도 여전히 막막했다. 상황이 이렇다보니 시골할머니가 영어짱 손녀를 만들었다는 이 책 <시골 할머니의 영어짱 손녀 만들기>는 책 제목만 봐도 힘이 불끈 솟아오르는 희망과도 같았다. 그동안 수많은 알파맘들 사이에서 최후의 자존심까지 산산히 부서진 나에게 '나보다 나이 많은 할머니도 해냈는데 젊은 내가 못할 것 없다'는 패기와 자신감을 가져다 주었던 것이다.
책은 읽기에 부담없는 두께로 총 3부로 구성되어 있는데 사실 송이할머니표 유아 영어 노하우는 책 뒷표지에 조목조목 실려 있다. 나처럼 책 제목만 보고 대단한 비법이 숨어 있을 것이라 내심 큰 기대를 했다가 책 뒷표지에 그 비법이 나와 있다니 약간은 김이 빠질수도 있겠다. 게다가 비법이라고 정리해 놓은 5가지 내용이 유아영어에 관심있는 사람이라면 어디에서든지 쉽게 들을 수 있는 내용이라면 더욱 실망할 것이다. 그리고 내 남편처럼 출판사에서 할머니를 내세워 책 팔아먹으려는 수작을 부린것이라는 성급한 결론을 내리고 말 것이다. 그러나 내노라 하는 사람들의 추천사를 건너뛰고 만났던 송이 할머니의 글들은 그야말로 아이처럼 순수하고 정직했으며 따뜻했다. 마치 이해인 수녀님의 에세이를 읽고 있는 느낌처럼 아이 영어공부를 위해 책을 읽고 있다는 사실조차 잊을 정도로 모든 글에서 손녀를 향한 사랑과 애정을 느낄 수 있었다. 한사람의 사랑이 이처럼 주변을 변화시킬 수 있는 강력한 힘이 있다는 사실을 눈으로 확인한 셈이었다. 송이 할머니의 글을 읽으니 내가 아이에게 영어를 시키려는 이유가 무엇인지 분명하게 느껴졌다. 아이가 잘되기를 바라는 마음, 즉 아이를 사랑하기 때문이었다. 그런데 마지못해 하는 숙제처럼 마음이 무겁고 골치가 아팠으니 뭔가 잘못된 것이었다. 그것은 책 속에 구체적으로 기술되어 있지는 않지만 아이와 영어공부를 시작하기 전에 가장 먼저 점검해야하는 것은 엄마의 마음상태라는 점을 상기 시켜 주었다.
엄마표 영어에서 빠질 수 없는 추천 책들과 공부하는 방법들은 2부에서 자세하게 다뤄진다. 추천 책들은 인터넷으로 검색하면 간단히 수집할 수 있는 정보였지만 아이에게 어떻게 책을 접하게 해주느냐 하는 것은 여느 엄마들과 많은 차이가 났다. 아침, 저녁 테잎을 들려주고 동화책을 읽어주는 의식적인 행동보다 더 가슴에 와 닿는 방법은 먼저 아이의 입장을 헤아려 주는 것이었다. 활동적인 아이가 책읽기에 재미를 붙이도록 했던 여러 일화들은 모두 메모 대상이었지만 그 중에서도 뒤늦은 한글 공부 하면서 했던 '우유팩 단어놀이'는 정말 감동적이었다. 한참 "이게 뭐야"를 남발하는 시기에 다 먹은 우유팩을 조그맣게 잘라 가방에 넣고 다니면서 아이가 물어 볼 때마다 우유팩 메모지에 글로 적어 보여주고 집에 돌아와 할머니는 아까 물어봤던거 생각 안난다면서 다시 알려달라고 했던 놀이가 바로 그것이다. 우유팩을 잘라 단어장으로 쓴다는 발상 자체도 놀랍지만 챙길 것 많은 아이와 외출하면서 우유팩 메모지를 빠지지 않고 챙겨다니셨다는 점도 보통엄마들은 따라하기 쉬운 일이 아니다. 놀이하면서 공부한다는 간단하면서도 하기 힘든 점을 누구보다 잘 활용하시는 것 같아 알려주시는 방법들 모두가 나의 멘토링 대상이 되었음은 말 할 필요도 없다.
시댁이 가까운 곳에 있는 우리는 주말이면 늘 시댁에서 시간을 보내는데 손주를 맞이하는 분들의 표정을 보면 일주일 내내 육아에 지쳤던 내 마음까지 편안해져 시댁에서 보는 아이가 더욱 사랑스럽게 느껴진다. 이처럼 각 개개인이 가진 보이지 않는 감정의 힘은 생각보다 대단한 영향을 지니고 있다. 어릴 때부터 할머니의 지극한 보살핌을 받으며 놀이로 영어를 배운 송이의 모습이 어떠할지는 책을 읽으면서 자연스럽게 상상할 수 있었다. 그래서일까? 송이 할머니의 글을 읽으며 영어교육의 노하우도 배웠지만 지금껏 육아에 대한 부담과 갈등에 대한 해답도 덤으로 얻을 수 있었다. 우선 즐거운 마음으로 시작하고 사람들과 다양한 정보를 공유하며 부족한 부분은 다른사람의 도움을 요청하는 것이 나도 아이도 행복할 수 있는 송이할머니표 영어공부법이다. 물론 여기에는 조급함과 포기라는 단어를 주저없이 버려야 한다. 아이의 영어교육도 이제는 'What'이 아니라 'How'가 되어야 하는 시대다. 영어공부의 단편적인 방향을 제시하는것을 뛰어넘어 엄마라면 영어를 시작하기 전에 생각해야 할 아이의 인성까지 살펴주는 육아서의 역할까지 하고 있어 이제 막 엄마가 된 분들이 반드시 읽어야 할 책이라고 생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