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년 여름휴가때 순천만에 다녀왔다. 가는날이 장날이라고 배 운행을 안해서 탐사선 체험은 못했지만 굉장히 재미있게 다녀왔던 것으로 기억한다. 끝없이 펼쳐진 갈대숲에 실수로 아이 풍선을 떨어뜨렸는데 그 밑 풍경이 장관이었다. 수많은 방게들이 그 풍선을 신기한듯 서로 가져가려 다툼을 했기 때문이다. 아이는 울고 결국 남편이 내려가서 가져오는 난리통속에도 난 그 밑 세상이 정말 신기하고 재미있었다. 갈대숲만 봤을때와는 또다른 세상. 뙤약볕에 온통 얼굴이 그을리고 고생했지만 그날의 기억은 여전히 내 기억속에 남아있다.

그 기억이 가물가물해질무렵 '순천만 여름이야기'를 만났다. 당시에는 어려서 아이와 나누지 못했던 순천만의 이야기를 동화처럼 들려줄수 있는 좋은 기회라 생각되었다. 아이도 책표지 그림속 방게를 보더니 그때 떨어뜨렸던 풍선 이야기를 했다. 게가 자기 풍선 가져가려고 했었다고. 사실 순천만은 갯벌과 짱뚱어가 유명한데 갯벌에는 들어가보지 못해서 짱뚱어는 실제로 보지는 못했다. 그나마 책으로 만나게 되니 다행이라 생각한다.

책은 순천만 갯벌을 주름잡고 다니는 개구쟁이 비단짱뚱어 짱아와 짱순이, 친구방게 방실이, 슈퍼맨 농게, 낙지마왕, 칠게 촌장 등 다양한 등장인물들이 실사 그대로 등장한다. 낙지마왕 때문에 위험에 빠진 짱아를 위해 주먹대장 슈퍼맨 농게가 먼저 나서고 친구들도 모두 갯벌을 지키기 위해 힘을 모은다는 단순한 내용인데 낙지마왕이 등장한 이후는 굉장히 흥미진진했다. 친구들의 우정과 자연을 스스로 지켜내는 모습에서 배울점도 많았다. 무엇보다 이 책의 작가인 신응섭님의 사진솜씨로 하늘이 내린 지구의 정원인 아름다운 순천만의 다양한 모습을 볼 수 있어 좋았다.

갈대숲은 연인들이 함께 손잡고 걸어도 좋은 곳이다. 다리 아프다고 징징거리는 아이덕분에 낭만은 사라졌지만 끝이 보이지 않는 갈대숲을 거니는 내내 연애할때로 돌아가고 싶은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아이와 함께 갈때는 유모차는 필수다. 길이 정말 길다. 휴가때 다녀왔던 곳을 책으로 만나보니 정말 감회가 새롭다. 책 덕분에 여수 엑스포 다녀오면서 또다시 순천만을 찾게 될것같은 예감이 든다. 아이도 책속에 나왔던 친구들의 모습을 다시보면 더 오랫동안 기억하고 좋아할테니까.

 

내 아이가 살아갈 미래는 어떨까. 나는 아이의 미래를 위해 무엇을 준비해야 하는가. 이것은 모든 부모의 공통된 고민이 아닐까 싶다. 이 책은 매일경제 주니어 MBA, 조선일보 아이비리그 예비대학 현장코칭 교수가 전하는 아이의 미래 경쟁력을 높이는 9가지 키워드에 대한 내용을 담은 책이다. MBA, 아이비리그라고 하니 뭔가 거창하고 특별한 내용이 있을 것 같지만 기본 틀에서 벗어나지 않은 내용들을 아홉가지로 농축시켜 놓았다고 생각하면 될 듯하다.

1. Personal Power/ 2. Self Esteem /3. Life Skill / 4. Goal Setting / 5. Unique / 6. Perception Power / 7. Mind Sharing / 8. Soft Skill / 9. Passion

저자가 얘기하는 아홉가지 키워드는 익숙하지 않은 영어단어로 쓰여있어 그렇지 아이를 키우는 엄마라면 어디선가 한번쯤 들어봤을 이야기들이다. 책을 읽는 내내 나는 옛날 우리 어머니 세대의 육아법에 엄마의 작은 관심만 더한다면 어떨까 하는 생각을 했다. 우리 부모세대에서는 어느정도의 자율성이 보장되었지만 아이들에 대한 관심이 부족했다고 한다면, 현 세대의 아이들은 엄마의 정보력에 의해 철저하게 계획표대로 생활하면서 자율성은 기대하기 어려워졌기 때문이다. 자기주도학습이 키워드로 떠오르는것도 이 때문이다. 오죽하면 책 제목이 기회를 주는 부모 스스로 크는 아이겠는가. 현세대 부모는 방대한 육아 정보속에서 자신의 아이의 모습에 귀기울이기 보다 다수가 좋다고 평가하는 정보에 더 주목한다. 아이가 스스로 헤쳐나가야할 문제는 사전에 해결해주거나 사서 고생시키지 않는다. 왜냐하면 사서 고생할 시간이 요즘 아이들에게는 없기 때문이다. 우리 아이들은 시행착오 할 기회를 점점 잃고 있다.

지금도 친정엄마는 나를 위해 반찬을 택배로 싸서 보낸다. 한국 부모의 역할은 아이가 태어나면서부터 시작되어 부모가 죽을때까지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정도다. 엄마가 만들어주는 반찬을 먹으면서 나는 행복하고 기쁘지만 왜 어릴때 엄마가 요리를 가르쳐주지 않았는지 원망스러울때가 있다. 자취를 할때에도 결혼을 해서 살림을 할때에도 요리는 필요했으니까. 솔직히 영어, 수학보다 요리를 배우는 편이 살기 편하다라는 사실은 뒤늦게 깨달았다. part 1,2는 저자가 미국에 있는 대학교에 진학해 자신이 보고 느꼈던 부분을 서술했다. 한국아이들이 왜 우물안 개구리형 인재로 자라게 되는지에 대해서도 외국의 교육현실과 비교해 설명해 두었다. 가장 개선이 필요한 것은 역시 부모의 역할이었다. 저자는 스스로 아무도 가르쳐주지 않았기 때문에 하나부터 열까지 어렵게 얻어냈다고 했다. 그렇게 얻은 경험적 지식이 결국 미래의 자신이 있게 해준 원동력이 되었기 때문이다. 부모는 모험을 떠나는 아이에게 나침반이 되어줄수는 있지만 모험을 떠나고 싶은 마음까지 줄 수 없기 때문이다.

part3는 9가지 키워드에 대한 설명으로 이루어져있다. 외국에 나가서도 당당하게 자신의 생각을 나눌 수 있는 인재로 자라기 위해서는 우선 가정에서 그런 바탕을 만들어줘야 한다고 했다. 이미 우리도 다 알고 있는 이야기지만 실천하기 쉽지 않은 일들 아닌가? 저자는 큰것부터 시작하지 말고 작은것부터 실천해보라고 이야기 한다. 가족 여행을 간다고 한다면 직접 아이에게 여행 가방을 챙겨보도록 하거나 생일파티를 계획하고 있다면 아이와 함께 예산안에서 쇼핑을 해보는 것이다. 이런 정도는 해볼만하지 않는가? 기회를 주는 부모로 자라기까지 부모에게도 시간은 필요하다.

책을 읽으면서 나는 그동안 엄마에게 가졌던 서운함을 조금 떨쳐버릴수 있었다. 지금은 나이들어 무엇이든 챙겨주고 싶어하지만 우리 엄마는 내가 보기에는 무심한 엄마였다. 공부를 잘해도 선물같은 것은 생각할수도 없었고 칭찬에도 인색한 분이라 어릴적 다리밑에서 주어왔다라는 말이 전혀 농담처럼 들리지 않았었다. 엄마는 늘 "니 인생 니가 사는 것이니 잘 생각하고 판단해라." 고 하셨다. 그 말은 항상 내게 무겁게 다가온다. 내 인생 내가 사는 것. 그래도 나는 때때로 부모가 개입해야 할 순간이 필요하다 생각한다. 아직 판단력이 미숙한 아이들에게 전부를 맡겨둘수는 없으니까. 나는 적절한 순간에 나침반 역할을 해주는 현명한 부모가 되고 싶다. 책 내용은 쉬운데 현명한 부모가 되는 것은 결코 쉬운일이 아닌것 같다. 이렇게 책을 읽으며 하나하나 되짚어 간다면 그래도 점점 더 가까워 지지 않을까? 아이가 자라는만큼 부모도 자란다.

 

며칠전 엄마랑 대판 싸웠다. 엄마가 아르바이트를 한다는 것이다. 노느니 일한다는데 누가 뭐라 하겠나. 그런데 12시간이나 서서 해야하는 일이다. 젊은 사람들도 서서 일하기 힘들어하는데 이 노인네가 정신줄을 놓았나 멀쩡한 삼남매를 두고 왠 아르바이트 타령이신지. 아직도 이팔청춘인줄 아시나.

 

<한 여자>는 작가의 어머니에 대한 책이다. 얇은 책이라서 앉은 자리에서도 읽어낼 수 있는 분량이지만 글을 읽고 무엇을 써야할지 감이 오지 않았다. 나인가, 어머니인가, 또 다른 한 여자인가. 저자인 아니 에르노는 등단 초기부터 픽션을 철저히 배제한 글쓰기를 했다고 한다. 원래 <남자의 자리>와 함께 볼수 있도록 출간되었다는데 이번에 분권되어 출간된 모양이다. <남자의 자리>는 이미 서점에서 보았기 때문에 <한 여자>의 책표지가 익숙했다. <남자의 자리>가 아버지의 모습을 그렸다면, <한 여자>는 어머니의 죽음을 계기로 글을 쓰기 시작해서 어머니의 존재를 더듬다가 다시 첫 페이지 죽음으로 마무리된다.

 

 

이 책을 읽고 난 후 첫번째 물음은 과연 픽션을 배제한 글쓰기가 과연 가능할까 하는 점이다. 나는 솔직히 내 기억속에 존재하는 모든 것들이 사실이라고 말 할 자신이 없다. 그 기억이라는 것 자체가 내 머리속에서 만들어진 것이라서 온전히 객관적이라고 할 수 없기 때문이다. 상황에 따라 나의 감정이 뒤범벅되어 전혀 다르게 기억될 수 있지 않나. 저자의 말처럼 "이것은 쉽지 않은 시도이다." 그녀의 머릿속에 기억의

파편들로 저장되어 있는 어머니의 모습은 때때로 자기주관적이다. 객관화 했다는 모습조차 전체라기 보다는 일부분처럼 느껴진다.

<양찬순 "나는 까칠하게 살기로 했다" 중에서>

 

어쩌면 그런 점이 이 책의 매력이 아닐까 싶기도 하다. 아무리 객관적인 입장을 고수하려해도 절대 객관화 하지 못하는 어머니라는 존재의 무거움. 내게는 이 책이 그런 무거움을 안겨 주었다. 그리고 내가 알고 있는, 알고 있었던 어머니의 모습에 대해서도 다시 생각하는 기회를 주었다. 저자는 책의 마지막장에서 '나는 내가 태어난 세계와의 마지막 연결고리를 잃어버렸다.'라고 했다. 하지만 그 고리는 이미 자신 마음 속에 있음을 알고 있을 것이다. 가공의 존재로서의 어머니가 실질적 부재로서의 어머니보다 더 강하게 다가오는 이유도 그 때문이다. 어머니는 어머니라는 이름 아래 그대로 존재한다.

 

그렇게 엄마랑 대판 싸웠지만 집안일과 육아로 싸운것조차 잊고 있었을때쯤 엄마가 집으로 택배를 보내셨다. 여느때와 다르게 문자가 먼저 도착했다. "안하기로햇음다. 전화 계속 안할꺼임?" 누가 신식노인네 아니랄까봐 요즘 아이들이 쓰는 문장으로 문자를 보내시는 것을 보면 엄마의 나이듦이 전혀 느껴지지 않는다. 내가 아이의 엄마가 되어가는 이 순간에도 그녀는 여전히 나를 먹이고, 걱정하고, 시시콜콜 잔소리를 늘어놓는다. 전화를 통해 전해오는 그녀의 목소리는 평소보다 활기차다. 엄마는 내게 공기처럼 투명하고 가벼운 무한대의 이미지였는데 그 공기의 무게감이 느껴진다. 오늘은 내 아이를 돌보듯 그녀를 먹이고, 만지고, 그녀의 이야기를 듣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