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은 작은 온천도시에서 일하는 여자(루제나)가 잠시 온천장에 머물다 떠난 트럼펫주자(클리마)에게 임신 소식을 알리는 전화로 시작된다. 그리고 그 후 닷세동안의 이야기로 구성되어있다. 가장 흥미롭게 진행된 부분은 책의 주요 등장인물들이 모여 이야기를 하는 셋째날이었는데 여러가지 신화가 등장하면서 각 인물들의 특징을 볼 수 있었다. 철저한 이론가인 야푸크와 낭만적 이상주의자 베르틀레프, 그리고 지극한 현실주의자인 슈크레타 의사까지 흥미로운 인물들이 가득하다.

언뜻 보기에 책은 임신한 여자(루제나)와 그것을 받아들이지 못하는 남자(클리마)의 단순한 줄거리로 구성된 듯 보인다. 내가 책에 관심이 있었던 이유는 모성에 대한 야쿠프의 견해에 일부 동의했기 때문이다. 모성이 저주까지는 아닐지라도 내가 익히 보고 가르침 받아왔던 것처럼 본능적이며 숭고한 자연적인 일은 분명 아니라는 생각이다. 모성이 자연스러운 반응이 아니라는 생각은 실제 경험에서 비롯되었다. 첫 아이를 낳아 처음 아이를 안았을때의 이질감은 아직도 생생하다. 배고픔에 울부짖을때마다 서슴없이 꺼내 물려줘야했던 나의 가슴은 짐승의 그것과 다를바가 없어 보였으니까. 내가 그런 생각들을 자유롭게 표현하지 못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그렇게 길들여졌기 때문이다. 일반 사람들에게 이상한 엄마로 매장당할까봐 표현하지 못할뿐이다. 아이를 바라보는 엄마의 눈빛은 한없이 자애롭고 아름다워야한다. 꼭 그런 이유가 아니더라도 요즘같은 현대 사회에서는 자아실현, 행복추구, 금전적 자유 등의 이유로 꼭 아이를 낳아 길러야겠다는 의지를 가진 사람이 많지 않다. 더 이상 자녀를 낳아 가족을 이루어 사는 것이 최고의 가치라고 말 할 이유가 점점 없어지고 있다. 헤롯왕처럼 다른 아이들의 탄생마저 마음대로 할 수는 없겠지만 생식이 본능이 아니라 각 개인들의 선택적 합의라는 야쿠프의 생각은 이 책의 또다른 재미였다.

책 표지 디자인을 전공하지는 않았지만 책 표지는 책 내용을 한 면으로 함축해 표현한다는 측면에서 내가 책을 고를때 눈여겨 보는 부분 중에 하나다. 책 표지 그림의 작가는 벨기에 출신 초현실주의 화가 마그리트인데 철학적 문제를 그림으로 푼 작가로 유명하다. 책 표지 속 배경은 낮인가? 밤인가? 보는 사람들에 따라 낮일수도 밤일수도 있을 것이다. 내 눈에 달이 보여 밤이라 생각되면 밤일 것이고 환한 하늘의 모습 때문에 낮이라고 생각된다면 낮인 것처럼 클리마에게는 루제나의 아이가 누구의 아이인 것이 중요하지 않다. 불임부부들에게는 슈크레타 의사가 자신의 정액을 넣어 낳은 아이들이 누구의 아이인지 중요하지 않다. 루제나는 냉장고 수리공인 프란티셰크 대신 트럼펫 주자를 아이의 아버지로 선택한다. 우연한 기회에 독약을 루제나에게 건네 준 야쿠프가 독약을 독약이라고 믿지 않게 되는 순간 그에게 더이상 그것은 독약이 아닌것처럼 소설 속 모든 사건의 진실은 더이상 중요하지 않다. 인간이 어떤 선택을 하느냐에 따라 달라질뿐이다. 결국 모든 것을 선택할 수 있다고 생각했던 위대한 인간은 그저 자신이 보고 싶은 부분만을 보고 사는 것은 아닌지. 그것은 인류의 불행일까? 희망일까? 쿤데라 소설은 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 밖에 읽지 못했는데 이번 기회에 다른 전집도 구입해 읽어 볼 생각이다.

오랜만에 읽어 본 육아서다. 시중에 나와있는 여러가지 육아서를 접하다보면 보통의 엄마들은 일대 혼란을 겪는다. 학자마다 견해가 다르듯 아이 교육과 육아의 방식도 저마다 다르기 때문이다. 공통점이라면 그동안 소홀했던 나의 육아 방식에 대한 나름의 반성의 기회가 되기도 하지만 우선 엄청난 스트레스를 받는다. 그리고 책 속에 나오는 엄마가 되지 못하는 자책감과 자괴감에 괴로워한다. 하지만 <엄마로 돌아가라>는 이런 부담 없이 읽을 수 있는 책이다.

솔직히 처음에는 읽다가 짜증이 났다. 아이를 그대로 봐주고 때가 되기를 기다려야 한다는 것은 아이 교육에 관심 있는 엄마라면 누구나 알고 있는 내용이다. 저자의 육아방식도 큰 틀에서 보면 다를바가 없다. 하지만 저자는 보통 부모들과는 달리 그 문제로 흔들리거나 스트레스를 받지 않는다. 그렇다면 보통 부모들은 그 상황을 어떻게 인내하고 기다려야 하는가? 선행 교육을 시키지 않으려는 보통의 부모가 가장 궁금한 것은 부모 스스로 어떻게 주변의 많은 정보에 흔들리지 않는 방법이 아닐까? 영어선생님이면서 아이에게 영어를 선행교육 시키지 않았던 저자 부인의 고민과 갈등에 대한 이야기가 더 궁금한 것도 그런 이유에서다. 책은 엄마와 자녀에 대한 정의로 시작되어 대입에 가장 중요한 영향을 미치는 수학과 영어교육에 대한 저자 나름의 생각을 담았다. 특목고 입학전형을 바꿔야 한다던가 교사를 믿어야 한다는 부분은 책의 전체적인 흐름과는 맞지 않은 듯한 느낌이라 대충 읽었다. 하지만 수학 선행교육문제와 진짜 선행을 해야하는 시기에 대한 저자 나름의 주장은 흥미로워 열심히 읽었다. 5살 아이를 둔 내게는 아직은 멀게만 느껴지지만 요즘 어린이집에서도 여러가지 학습지로 공부를 하는 중이라 큰 그림을 그려보는데 도움이 된 듯 하다.

한 권의 책 속에서 단 한가지라도 내게 남는 것이 있다면 나는 그 책을 잘 선택했다고 생각한다. 책 중간중간 각 계층의 사람들의 추천사 중에 서울대 교수의 글이 기억에 남는다. 서울대에는 삶의 방향을 선택하지 못하고 방황하는 '모범생'들이 넘쳐난다는 말이다. 엄마가 혹은 아빠가 만들어 준 계획표대로 착실하게 공부해서 원하던 명문대에 들어가도 자신의 삶의 목표를 스스로 만들어가지 못하면 아이의 삶은 행복하지 못하다는 사실이다. 자녀 교육을 선생님 못지않게 잘 시킨 부모도 많고 오늘도 블로그에는 원어민처럼 영어를 하는 아이들에 대한 포스팅이 넘쳐난다. 정보화의 속도만큼 부모는 '팔랑귀'부모로 전락하기 쉽다. 그런 보통의 부모를 위한 지침은 부족하다 생각하지만 이 책이 아이를 '티칭'하는 부모가 아닌 '코칭'하는 부모가 되어야 한다는 생각을 더욱 단단하게 만들어주는 것은 확실하다.

'지상의 별처럼'이란 영화를 본적이 있는지 모르겠다. 이 책을 사려고 서평을 읽는 사람이라면 아이를 어떻게 키우냐에 관심이 많은 사람이라고 생각된다. 하늘에 빛나는 별들이 각자의 크기와 빛을 가지고 있는 것처럼 우리 아이들도 각자 나름의 빛을 가지고 있다는 사실을 단번에 깨닫게 해주는 영화라 같은 고민을 갖고 있는 부모들에게 이 책과 함께 추천한다. No. 1이 아니라 Only 1인 아이들이 넘치는 세상을 기대하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