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개인의 행복마저 기필코 이루어야 하는 시대에 살고 있는 사람들.  자기계발서처럼 불티나게 팔리는 행복담론의 실체는 무엇일까.  행복에 대한 책들이 많이 나오고 종종 베스트셀러에도 등장하는 것은 남들도 나와 다름없이 '지금과는 뭔가 다른' 행복을 찾아 헤매이고 있다는 뜻일텐데.  책을 읽고 뭔가 다시 시작하고 마음도 다잡아 새로운 인생길이 열리는듯 하다가도 다시 공허해지는 일상으로 돌아가 다른 방법을 찾기 때문에 자기계발서처럼 매년 다른 레퍼토리로 출판되어도 왠만큼 팔리는 듯하다.  행복이란 말의 뜻을 찾아보니 생활에서 충분한 만족과 기쁨을 느끼어 흐믓한 상태라고 하는데 과연 그런 상태를 이룰수는 있는 것일까. 

 이 책은 '미움받을 용기'의 실천편이다.  심리학을 원인론이 아닌 목적론으로 경쾌하게 설명해준 아들러의 가르침을 실천편으로 다시 접한다니 책을 보기전부터 가슴이 설레었다.  일반인들에게 다소 어렵게 느껴지는 철학이나 심리학을 대화체로 알기쉽게 전달해주었기 때문에 실천편은 바로 적용 가능할 것이라는 기대감이 컸다.  그러나 실천편에서 만나본 아들러의 철학은 더욱 심오하고 깊게 다가왔다.  '미움받을 용기'는 철학자와 청년의 대화체로 되어있어 생각할 겨를 없이 청년의 생각을 따라갔었는데 '지금 여기서 행복할 것'의 호흡은 매우 느린편이다.  이미 전작에서 다루었던 내용을 다시 읽는데도 쉽게 책장이 넘겨지지 않았다.  기시미 선생의 플라톤이 되어 책을 대화체로 엮은 프리랜서 작가인 고가 후미타케님의 현장감 넘치는 글솜씨 덕분에 어려운 부분을 잘 이해하고 넘어갔던것 같다.  실천편'지금 여기서 행복할 것'은 오롯이 기시미 이치로님의 글이라 철학에 관련된 글들이 많이 나와 쉬운듯 하면서도 생각해야 하는 부분들이 많았다. 

   기시미 선생의 저서를 보면 육아를 위한 심리학 입문서가 있는데 책 속에도 종종 육아에 도움이 되는 말들이 많이 나온다.  실천편에서도 중요하게 다뤄지는 제2장 행복을 부르는 인간관계에서 '감정을 어떻게 컨트롤하나'부분은 아이 둘의 엄마인 내게는 참 흥미로운 부분이었다. 매일 매 순간이 전쟁과 같은 아이들의 엄마는 그 순간을 평정하기 위해 종종 무한 권력을 사용한다. 그것이 어떤날은 사랑의 매가 될 수도 있고, 또 어떤날은  옆집 사람까지 깨우는 고함소리가 될 수도 있다.  책장에는 좋은엄마가 되기 위한 지침서가 빼곡하지만 무한권력의 맛을 보면 다음번에는 더 큰 권력을 휘두르고 싶어진다.  책에 나오는 진이 빠지는 대화법은 시간도 많이 걸리고 효과도 미미한 반면 무한권력의 힘은 금새 나타나기 때문이다.  하지만 책을 읽다보니 내가 옳다는 생각에만 빠져 진짜 내가 관심 두어야 할 아이와의 관계는 소홀했다는 생각이 밀려왔다.  내가 옳다는 것을 증명해도 무슨 소용인가.  이미 아이와의 관계가 나빠질대로 나빠졌다면 나는 아이를 잘 기르기 위해 분노하고 권력을 휘두른게 아니라는 것을 증명한 것이 된다.  아이의 마음속에 엄마라는 존재는 화내고 고함지르는 악마같은 존재가 되어간다는 사실은 망각하고 즉각적인 반응에만 매달려왔다는 생각에 마음이 무거워졌다.  감정에 휘둘리지 않으려면 내가 화를 내면서까지 원하는 목적이 무엇인지 생각해야 한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마지막 제4장에서는 그동안 뜬구름처럼 생각되었던 행복의 구체적인 모습을 한번쯤 생각해봐야한다는 압박감을 느꼈다.  그래서 다른 책들과 다름없이 읽고 난 후 책장으로 직행했던 '미움받을 용기'를 다시 꺼내 읽어야만 했다.  지금까지 하루하루 맞춰진 일과에 이끌려 다니느라 나와 아이들이 진짜 관심갖고 원하는 일은 무엇인지 점점 무심해지는 것과 비슷한 모양새다.  무지개 넘어 다른 세상을 꿈꾸며 비참한 현실을 극복하기위한 자기위안이나 현실도피가 되지 않으려면 지금부터 나 스스로 선택해야만 한다는 것이다.  지금 내가 겪고 있는 세상에서 내가 원하는 삶을 기꺼이 살아가게 해주는 힘은 더이상 내일은 존재하지 않는 것처럼 지금 이 순간 좀 더 내가 좋아하고 행복한 일을 스스로 선택하고 책임지는 것이다.  처음에는 어렵게만 느껴졌던 내용들이 책을 덮고 책 제목을 보는 순간 그냥 다가온다. 지금 여기서 행복을 선택하는 사람이 더 행복을 경험할 가능성이 많다는 것은 당연한 일이니까 말이다.  늦지 않았다. 지금 여기서 스스로 행복을 선택할 것!

바둑은 세로, 세로 각 19개의 줄이 만나는 총 361개의 교차점에 검정돌(흑)과 흰돌(백)을 한 수씩 번갈아 두는 게임이다. 어릴적 바둑돌은 할아버지방에 있었던 유일한 장난감이었다.  이 나간 그릇에 넣고 소꿉놀이 하기도 하고 바둑돌을 동전삼아 셈 놀이 하기도 했다. 할아버지가 바둑을 두는 모습을 종종 봤지만 그때 바둑은 그저 놀이감에 지나지 않았다. 할아버지는 남자는 무슨 놀이든 할 줄 알아야 한다며 남동생에게는 바둑이나 장기를 가르쳐 주셨던 반면 나는 지금까지도 바둑을 어떻게 두는 것인지 잘 모른다. 솔직히 말하자면 딱히 바둑에 대해 별 관심이 없었다. 가끔 할아버지가 열심히 챙겨보시던 바둑 방송도 만화영화를 못보게 하는 걸림돌이었을 뿐이다. 그런 바둑에 대해 다시 관심을 갖게 된 것은 작년에 방송된 '미생' 때문이었다. 줄과 줄이 만나는 교차점에 한 수, 한 수 놓는 바둑이 드라마 주인공의 나레이션처럼 인생의 축소판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카운트 되는 시간에 맞춰 살얼음판 걷는 기분으로 놓아지는 선택의 돌들. 매일 내가 두는 한 수가 나만의 바둑돌이 되어 내 인생의 바둑판을 채워가고 있었다. 드라마에서 바둑에 관한 이야기가 나올때마다 할아버지를 졸라서라도 배워둘걸 하는 뒤늦은 후회가 밀려왔다.

  어디에서 한 번쯤은 읽어봤었던 글들을 다시 읽고 싶었던 이유는 비슷한 글 속에서도 각자 처한 상황이나 나이, 위치에 따라 다른 생각을 갖게 되기 때문이다. 불혹(不惑)을 바라보는 나이가 되니 슬슬 불안해진다. 100세 시대라해도 그 때까지 살 수 있을지 미지수라 이제 내 삶의 절반정도 달려온 것일텐데 내 영역은 어느 정도 되었을까. 아직도 헷갈리는 일 투성이고 불안한데 내 영역을 확실히 다져야 할때라는 생각에 더 조급해진다. 그러나 나이듦과 용기는 반비례하는지 자꾸 작은일에 집착하고 연연해 하기에 늘 마음에 두었던 말이 '소탐대실'이었는데 이 책에서는 역으로 '사소취대'라는 얘기가 나온다. 언뜻 보면 뜻은 대동소이한듯 느껴지지만 찬찬히 말의 의미를 되짚어보면 어마어마한 차이가 느껴진다. 작은 것을 욕심내면 큰 것을 잃는다는 말은 부정적인 느낌이 들어 매사 소심하게 행동하게 되는 반면 작은 것은 버리고 큰 것을 택하라는 문구는 긍정적이고 진취적인 행동을 이끌어 낸다. 눈 앞의 작은 이익을 놓아버리기란 생각보다 쉽지 않다. 한 치 앞의 일도 예측하기 힘든 세상에 당장 빼앗을 수 있는 바둑돌을 내주는 일은 그 수의 다음 수, 아니 다음 다음 수를 예측하는 능력을 길러야 비로소 용기있는 선택을 할 수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활동량에 비례해서 증가하던 젊은날의 바둑돌들은 나이가 들면 비슷하게 노력해도 쉽게 늘지 않는다. 몸과 마음이 가벼워야 더 빨리, 더 오래, 더 멀리 뛸수 있다는 말이 책을 덮는 순간까지 오랫동안 가슴에 울림처럼 남았다.

  조훈현,고수의 생각법은 바둑책이 아니면서도 바둑책이다. 바둑과 함께한 자신의 삶을 반추해 삶의 지표로 삼아야 할 내용을 담아두었기에 바둑책은 아니다. 하지만 '조훈현'이라는 한 인물의 생각을 온전히 이해하기 위해 바둑과 바둑에 대한 세계를 어느정도 알아야 느껴지는 것이 있어 바둑에 관한 책이기도 하다. 나한테는 생경하게만 느껴지는 구단들의 역사적인 대결 비화는 바둑을 아는 독자들만이 누릴 수 있는 또다른 재미코드였을 것이다. 남동생과 동명이라 유일하게 이름을 알고 있었던 이창호 구단의 스승이었다는 사실과 나이 어린 제자와의 대결에서 패했던 일화 등 드라마보다 파란만장했던 그의 삶 속에 '생각은 반드시 답을 찾는다'라는 삶의 자세가 고스란히 녹아들어 있다. 늘 다른 책을 읽지만 한가지로 귀결되는 공통된 사실은 세상에 이름을 남기는 사람들은 자신의 일에 대해 노력함을 게을리 하지 않고, 실패에 좌절하기보다 더 나은 기회로 생각하는 긍정적인 사고방식을 가진 사람들이었다는 것이다. 노력과 긍정적인 자세는 영원불변의 진리다.

사이토 이사무 책 '사람은 왜 험담을 할까'를 보면 '험담을 통해 대상의 평가를 험담으로 끌어내림으로써, 상대적으로 자기평가를 높이고 싶은 마음 때문에 험담을 하는 것이다.'라고 했다.  마음건강을 위해 때와 장소에 따라 적절히 하는 험담은 필요하며 때때로 험담이 인간관계를 깊게 해준다고 역설했다.  재밌는 사실은 서로 상대방을 험담하지만 실상 그 사람에 대해서 잘 알지도 못하고 관심도 없다는 사실이다.  그저 무리에서 도태되지 않으려 사람들 입에 오르내리는 사람을 이용할 뿐이다.  자신들의 이해와 목적에 따라 적당히 비밀을 공유하며 끈끈한 사이가 되었다가도 곧 서먹한 사이가 되기도 한다.

 <마녀에게서 온 편지; 멘눌라라>는 알팔리페가 하녀로 일하다 재산관리인이 된 멘눌라라의 죽음을 둘러싼 다양한 계층의 사람들의 험담의 장으로 시작된다.  그리고 그동안 베일에 싸여있던 마녀같은 그녀의 일상은 사람들의 입에서 입으로 전해진 작은 이야기 조각들이 맞춰지면서 알팔리페가의 거대한 유산이 걸린 그녀의 첫번째 편지(유언장)를 시발점으로 서서히 그녀의 진짜 모습이 드러난다.  나처럼 '그녀의 죽음과 동시에 그녀에게서 유언장이 날아든다'는 문구에 혹해 추리 소설이라 생각하고 읽기시작한 독자라면 적잖이 실망할 것이다.  무수한 복선으로 매니아층을 형성하며 흥미롭게 전개되다 결국 재벌가의 신데렐라 스토리로 결말짓는 흔한 한국형 드라마 느낌일테니.  뭔가 더 큰 반전이 나올듯한 분위기는 계속되기는 하지만 '마녀에게서 온 편지'라는 소제목에서 느껴지는 미스터리와 긴장감은 대체 어디서 느껴야 하는것인지 스스로 반문하게 만든다. 차라리 고전책 특유의 투박한 느낌을 주는 아몬드를 줍는 여인이라는 뜻의 '멘눌라라' 이름만 제목으로 썼으면 더 재미있게 읽지 않았을까. 기대하지 않다가 긴박하게 흐르는 이야기가 더 매력적으로 느껴지는 법이니까 말이다. 아몬드를 줍는 여자 멘눌라라. 글은 몰랐지만 똑똑했던 그녀는 아마 자신의 이름으로 불려졌던 아몬드를 줍는 일을 더이상 사람이 하지 않아도 될 것이라 이미 예상했으리라.  그래서 사람들 기억속에 이내 잊혀질 자신의 모습을 기억해 주기를 내심 욕심냈었는지도 모른다. 조금 뜬금없이 생각되었던 자신의 이름이 내걸린 성악 콩쿠르가 그녀가 진짜 원했던 것인지도.

   영화배우가 원하는 캐릭터로 녹아드는 것은 조연배우의 도움이 필요하다. 이미지로 완성된 영화는 마지막에 한줄로 등장하는 사람들의 이름까지 기억할 필요가 없다.  하지만 이야기의 큰 줄기가 수많은 등장인물들의 입에서 전해지는 내용이라 "멘눌라라"라는 대형 퍼즐을 완성하기 위해 동원된 수많은 등장인물들의 생소한 이름들은 미리 꼼꼼히 읽어두는 것이 이야기를 이해하는데 도움이 될 것이다.  책 중반 이후 두번째 편지가 등장하기 전까지 꽤 지루할 수 있다.  그러나 대형퍼즐을 한 번이라도 맞춰본 사람들은 잘 알 것이다. 처음 시작했을때 인내심의 한계에 부딪힌 자신의 모습을. 삼분의 일 정도 가장자리가 메워지고 서서히 주인공의 모습이 드러날때야 비로소 판퍼즐의 매력에 빠져있는 자신을 깨닫게 된다는 것을. 사실 몇 개의 퍼즐이 남아있을 때보다 이 때 훨씬 집중하고 재미를 느낀다. 지루함을 견뎌라. 그럼 그대들도 퍼즐을 완성하는 짜릿함을 맛 볼수 있을 것이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