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틴 반 블리에트가 전직 외과의사 아드리안 헤르초크를 만나 레아에 대한 이야기 하는 그의 모습이 다소 충격적이면서도 안타깝게 느껴진다. 두 중년이  함께한 며칠동안 술마시며 누군가에게 자신의 가슴속에 품고 있었던 이야기를 풀어냄으로써 볼리에트는 위안이 되었을거란 생각이 든다. 어머니의 죽음으로 마음을 굳게 닫아버린 레아에게 아버지 블리에트가 들어설 자리는 전혀 없어 보였고,아버지가 레아에게 어떻게 접근해야 할지 몰라 고민했던 모습은 그의 이야기 속에서 슬픔과 아픔의 흔적들이  가슴을 짓누른다. 

볼리에트가 레아에게 조금 더 가까이 가기 위해 노력할 수록  레아는 바이올린의 선율속으로,마리에게로,레비에게로 숨어버렸다. 서로를 끔찍히도 아끼고 사랑하면서도 표현하는 방법이 서툴고 달랐다. 볼리에트는 자신의 헌신적인 노력을 몰라주는 레아가 야속하기도 했을 것이다. 레아도 요양원에서 나와 아버지의 법정소식을 뒤늦게 듣고 자살하는 모습에서 그녀가 아버지를 사랑하고 있음을 직감할 수 있었다.그러면서도 아버지를 자신의 방어막으로 생각하는 그녀의 생각이, 그녀의 행동에 대한 실망감을 감출수가 없었다. 

레아를 위해서 직장을 버려도 괜찮다고 생각하는 아버지와 오로지 자신의 연주와 성공가도만을 생각하는 레아는 묘하게 대비된다.레비와 결별을 하고서 다시 옛날의 삶에 대한 의욕조차 없던 눈으로 바라보던 레아를 발견한 볼리에트가 연구비를 횡려하여  델 제수 바이올린을 구매하기 위한 그의 몸부림은 처절했다. 눈에 뻔히 보이는 결말을 알면서도 그렇게 힘겹게 생활하고 레아를 위해서 자신을 송두리째 바쳤던 볼리에트. 그것이 아버지의 마음이었고 레아를 지켜주는 길이라 믿었던 볼리에트. 그의 처절한 몸부림 조차도 내게는 위대한 아버지로 보였고,헤르초크에게도 볼리에트는 위대한 아버지로 보였고, 그것이 딸과의 관계에서 조금씩 조금씩 영향을 미치고 있음을 느낄 수 있었다. 

레아에게서 아버지를 이해하기 위한 모습이 부족하지 않았나 하는 생각도 들었는데 볼리에트가 세실과 영화를 보고 난 다음날 세실이 사용했던 향수를 찾기 위해서 온 도시를 헤매고 다녔던 일,세실이 볼리에트에게 얘기했던 "낭만적인 냉소주의자" - 볼리에트는 레아를 자식으로도 사랑했지만 어쩌면 자신의 소유욕을 채우기 위해서 레아에게 더 헌신했다는 생각도 든다.그것이 세실을, 레아를 더더욱 힘들게 했고,레아가 볼리에트에게 더욱 더 접근하기 힘들게 했던것은 아니었을까. 

헤르초크가 볼리에트를 만나 딸과 조금 더 가까이 갈 수 있었던 점,무너져 버린 볼리에트를 마치 자신이 돌봐야 하는 환저처럼 생각하고 스스럼 없이 친구 처럼 지낼 수 있었던것. 어쩌면 헤르초크는 자신과는 전혀 른 볼리에트를 통해서 딸에게 조금 더 가까이 갈 수 있는 따뜻한 아버지가 되었을 것이다. 레아를 볼리에트의 이야기형식으로  전개되다 보니 볼리에트의 심리상태가 상당히 잘 표현된 반면에 레아에 대한 심리묘사는 다소 아쉬움이 남는다.볼리에트가 헤르초크에게 이야기했던 것을 현재형으로 진행시켰으면 어땠을까 하는 생각도 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