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랑이 마을 사람들이 누군가를 떠나보낼 때 모이는 “잘가요 언덕”. 누군가를 만나야 하고 또 누군가를 떠나보낼 때 마중하던 장소 잘가요 언덕. 그 잘가요 언덕이 그가 말하려는 용서를 상장하는 장소였을까. 가슴아픈 역사를 가지고 있으며 수많은 사람들이 졸지에 목숨을 잃고 수많은 꽃다운 처녀들에게 평생 짊어지고 갈 멍애를 지운 그들을 용서하는 것이 과연 가능할까. 당시 그들의 만행과 아픔은 책을 통해 또 비디오 화면을 통해 접하면서 참 많은 생각을 하게 만들었다. 불과 며칠전에 읽었던 “황태자비 납치사건”을 읽으면서 격한 감정을 추스릴 시간도 없이 “용서”라는 작가의 물음에 한동안 깊은 고민에 빠졌었다.

소설속에 등장하는 제비는 철저히 제3자의 입장이며 안타까워하고 또 기뻐하면서도 아무것도 해줄 수 없었다. 책을 읽는 내내 나 역시도 아무것도 해줄수 없는 제비의 입장으로 호랑이마을 사람들을 바라보고 있었다. 호랑이 마을에서 벌어지는 모든 일들을 보고 느끼면서도 정작 어려움이 처했을때는 아무것도 해 줄수 없는 제 3자의 입장. 그것을 지켜봐야만 했던 제비의 아픔과 가즈오의 모습이 왜 겹쳐보였을까.

호랑이 마을로 불리면서도 호랑이를 잡기위한 사냥꾼들이 마을로 들어오기 시작하고 일본인들이 호랑이를 잡아다 가죽을 팔면서 마을에서 더 이상 호랑이의 모습을 볼 수 없게 되었다. 먼 옛날부터 살아오던 호랑이가 주인인지, 얼마전부터 마을을 형성하고 살아온 사람이 주인인지를 물어보는 촌장의 물음은 많은 것을 생각하게 만든다. 소설의 처음부터 중반까지 등장하는 “훌쩍이”는 마을 아이들에게 무시를 당하는등 힘없는 대한제국의 모습이었다. 일장기에 사람얼굴을 그려넣을 수 있었던 천진난만함, 순이를 구하기위해서 목숨을 바치는 모습은 오히려 몇몇 사냥꾼들의 모습과 묘한 대조를 이룬다.

순이가 샘물이를 돌보고, 용이가 순이를 돌보고, 마을 아낙네가 순이 할아버지를 돌보는등 마을 사람들은 약자의 입장이면서도 약자를 돌보고 정의로우며 가슴따뜻한 사람들이었다. 그 따뜻한 사람들에게 평생 아픔을 준 마을 사람들에게 작가는 “용서”라는 단어를 사용했다. 용이가 백호를 용서하고 순이가 엄마를 용서하고 가즈오가 일본을 용서하는 하는 것. 어쩌면 그들의 인생관과 복수심까지 모두 던져버릴만큼 용서가 주는 의미가 그들에게는 가장 어려운 문제였을 것이다. 노년의 순이가 다시 호랑이마을을 찾아 샘물이를 보고, 용이의 흔적을 느꼈던 순이의 감정은 어떤것이었을까. 샘물이가 건네준 팻말에 새겨진 “따뜻하다 엄마별”은 백호를 용서한 웅이가 순이에게 전해주고 싶었던 말이었을 것이다. 사람의 힘으로 어떻게 할 수 없는 거인으로 보였던 백호, 그리고 일본인들. 용이가 백호를 용서했듯이 순이도 용서할 수 있을까.

소설의 중반부 까지 동화적인 요소가 강해 거부감도 잠시 들었는데 중,후반부를 넘기면서 상당히 빠르게 전개되며 집중력을 갖고 빨리 읽을 수 있었다. 어감도 강한 호랑이 마을에 사는 마을 사람은 하나같이 왜 그리 고운 심성들을 가지고 있었는지, 그들을 지켜주고 싶어했던 가즈오를 무참히 짓밟았던 일본. 가즈오의 편지속에 적힌 승자도 패자도 없이 아픔만 있는 전쟁이란 표현이 참 가슴아프게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