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몰타의 매는 이탈리아쪽에 있는 말타 섬에 자리잡은 성전기사단에 관련된 역사적 사실을 바탕으로 한 유물이다. 세력다툼에서 져 섬으로 밀려난 성전기사단이 해적질로 수입을 올린 댓가로 말타섬을 자신들에게 준 황제에게 선물로 만들었다는게 매 조각상이다. 보석으로 잔뜩 치장했다는 이 조각상이 20세기 사람들이 쫓는 보물로 등장한다. 사립탐정 사무실에 의뢰인으로 온 브리지드를 만난 스페이드가 주인공으로 나오는 이 소설은 어딘지 필립말로를 연상시키는 점이 있었다. 레이먼드 챈들러나 대실 해밋 모두 20세기 미국 추리소설을 대표하는 작가들인데 둘 다 깔끔한 문장과 남자다운 성격을가진 주인공이 나온다는 점에서 호감을 느꼈다. 이 사립탐정은 브리지드를 비롯해 갑자기 매 조각상을 찾는 사람들의 방문과 의뢰를 받으면서 사건속에 빠져들고 있는데 그들 모두 거짓으로 일관하고 있다는걸 단번에 눈치챈다. 그뒤로 연달아 경찰과 알력다툼을 하고 위협당하고 누군가가 살해되고 쫓기는 긴박한 상황을 거치면서 스페이드는 누굴 믿고 믿지않아야할지 혼란에 빠진다. 사실 독자인 나도 누가 거짓말을 하며 속임수를 쓰는지 가늠이 안됐다. 막판에 모든게 밝혀지긴하는데 꼬였던 문제가 그런식으로 한꺼번에 풀리니까 따라가기 힘들기도 했다. 몰타의 매는 인간들의 욕심이 집약된 상징적인 매개체라고 할수있다. 돈에 대한 욕심으로 홍콩에서부터 매 조각상을 쫓았던 사람들은 허무하게도 매가 진품이 아니라는 걸 확인하게 되면서 문제는 일단락되지만 남은 문제는 스페이드와 브리지드다. 과연 이 미남미녀가 어떤 엔딩을 맞는가는 나한테도 큰 관심사였다. 그리고 기대와 어긋나지않았다. 사랑을 호소하는 브리지드와 그녀의 진심을 알면서도 매몰차게 잘라내는 스페이드는 필립 못지않게 매력적이었다. 아쉬움과 안타까움이 가득 남는 인연이었지만 그래서 더 인상적이었다. 20세기 중반이전의 미국 하드보일드 소설처럼 우아하고 세련된 소설도 없는것 같다는 사실을 알게해준 작품이다.

 

예상외로 힘있는 액션과 총격전이 끊임없이 일어나는 하드보일드 액션소설이다. 한국소설에선 보기드문 복잡한 추리와 에너지가 갖춰진 소설이라 두꺼운 분량에도 불구하고 밤새 읽어버렸던 책이다. 일단 스케일이 크다. 한국 국방부에서 최첨단 정찰위성을 만들고 있는 와중 그 정보를 입수한 중국 일본 미국 러시아까지 달려들어 정보를 빼돌리려는 공작이 일어나고 연구원중 핵심인물인 수현이 생명의 위험에 처하면서 시작하는 내용인데 백인과의 혼혈아인 데니가 수현과 엮이면서 얘기는 굉장히 빠른 흐름을 타게된다. 나름 사연이 많은 데니는 전직 특수부대원으로 활동했던 남자인데 조국으로 돌아왔다가 수현의 일에 끼여들게 된 주인공이다. 러시아 마피아 살해 경력까지 있는 경력을 살려 온갖 총기류를 자유자재로 다루며 도시 한복판에서 헬기와 페러글라이더,오토바이를 이용한 총격전, 격투가 그치지않고 일어나게 된다. 당연히 소설은 극적인 장면이 많아지고 긴장감에서 벗어날새가 없다. 그 와중에 데니를 노리는 킬러 안젤라가 등장하고 수현을 희생물로 바치고 안전을 노리는 홍박사까지 가세하면서 얘기는 복잡해지고 액션은 더 많아진다. 그 모든걸 하나하나 깔끔하게 정리해가는 작가로 인해 독자가 머리아플 일은 없다. 책 소개문을 보고 대략 내용을 예상했지만 예상보다 100배는 빠르고 치밀한 구성을 하고 있어서 재밌게 봤다. 안젤라의 독기서린 끈질긴 성격과 전문 스나이퍼인 데니의 충격전은 장관이었다. 과학적 지식과 총기등 무기가 굉장히 많이 사용되고 있어서 이색적이었는데 그저 단순히 치고받고 싸우는 그런 액션물이 아니라 한국만의 정치적 상황이 배경이라는 점이 공감대 형성을 빠르게 했다. 작가는 늘 주변강대국에 치이고 사는 한국이란 나라의 억울함을 소설 바탕에 깔고있다. 일본은 물론 중국 미국의 압력에 이리저리 채이느라 억눌려진 분노를 소설에선 어느정도 풀고있는 셈이다. 하지만 그런 정치적 배경을 차치하고 봐도 완성도있는건 사실이다.

 

내게 로저 젤라즈니 소설은 동서양의 혼혈아 같은 이미지가 있다. 서양인이 쓰는 동양적 정신세계는 어딘지 어색한데가 있어서 그리 느꼈는지 모르겠다. 젤라즈니의 가장 유명한 '신들의 사회'를 볼때 느꼈던 생경한 부조화는 지금도 마찬가지다. 그런데 이 소설은 서양 판타지라 봐도 무리없는 내용이다. 동화책을 읽는것 같기도 했다. 책은, 자기 동족에게 모함을 당해 추방된 선구자의 모험담이고 선과 악의 대립이라 매우 쉽게 읽혔다. 딜비쉬는 비범한 능력을 가진 남자고 사람 말을 할줄 아는 블랙이라는 말과 동행하며 환상적인 세계를 오가고 있다. 다른 세계에서 온 블랙은 딜비쉬를 이끌며 조언하는 현자의 역활을 하고 있는유일한 동행인데 딜비쉬는 늘 블랙의 말을 흘려들으면서 큰 위기에 빠지곤 하고 블랙은 몇날을 달려도 지치지않는 체력으로 딜비쉬를 보호하는 기이한 존재로 나온다. 이들은 남편을 해치고 딜비쉬를 유혹해 잡아먹으려한 여자 뱀파이어의 성城에 사로잡히기도 하고 아아치라는 샘에 사는 요괴의 문제를 해결해주기도 하며 별별 모험을 한다. 그리고 마침내 정적 젤레락을 찾아 얼음성까지 도달한다. 딜비쉬는 젤레락이라는 마왕과의 일전을 위해 여태 달려왔지만 얼음성에는 그들과는 상관없는 남매가 살고있고 딜비쉬는 여자애의 도움을 받아 붕괴하는 얼음성을 빠져나와 또 다른 모험에 접어든다. 소설은 이런식으로 짤막한 에피소드를 남기며 다음 단막극을 펼쳐놓는 옴니버스식이다. 재밌긴한데 앞서 말했듯 이 소설에서 깊이를 찾는 건 무모한 일이다. 생각이나 고민이 필요없이 작가를 따라가기만 하면 된다. 블랙도, 딜비쉬도 비밀이 많은 존재고 젤레락은 등장하지도 않는 상태에서 다음권으로 이어지고 있으니 결말은 2권에서 기대해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