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문 크로스 학원이 배경으로 나온다. 밤엔 뱀파이어가, 낮엔 일반 학생들의 세상이 되는 이상한 학원. 그리고 여기 밤의 세계에서 기이한 일들이 일어나기 시작한다. 일반적으로 우리들이 상상할만한 모습의 뱀파이어들이 나오는데 인간과 섞여 진행되다보니 사랑으로 인한 고민과 권력, 생명에 대한 갈등이 주요 내용이다. 학원 이사장의 양녀로 살고있는 유우키가 여주인공인데 그녀는 순수한 영혼을 갖고있는 인간이다. 뱀파이어 헌터였지만 뱀파이어가 된 제로, 순혈종 카나메, 시즈카, 이치루, 사라 등 등장인물은 많고 여러 사건이 얽혀있지만 핵심은 카나메와 제로 사이에서 위태로운 삼각형 구도를 유지하고 있는 유우키다. 서로를 지키고싶은 제로와 유우키, 유우키를 원하는 카나메의 엇갈린 감정은 순혈 뱀파이어의 등장과 함께 한층 긴장감을 띠게된다. 데이 클래스의 보통 인간에게도 피를 요구하는 나이트클래스가 나타나고 점차 학원은 평화가 깨져버리는 와중에 카나메는 유우키를 뱀파이어로 만들고 싶은 속내를 드러내며 점차 위험스런 분위기를 풍기게 된다.
변태성에서 한몫하는 일본만화인데다 뱀파이어라는 피에 관계된 종족을 다루고 있다보니 탐미적이고 비정상적인 관계와 비밀이 가득해서 어린 독자에게는 정서엔 도움될것 없지만 만화적 재미는 갖추고 있다. 유한하고 약한 인간과 힘과 영원성을 가진 뱀파이어의 존재가 대립되고, 유우키는 제로를 살리기위해 제로에게 자신의 피를 먹이고 있고, 카나메는 유우키를 자기 종족으로 만들고 싶어하고 있는데 카나메때문에 어린시절 생명을 구할수있었던 유우키는 카나메를 거부하지못하고 있으니 이들 세사람이 어떤 관계맺음을 할지가 가장 궁금하다. 그외에도 아직 알수없는건 많다. 어딘가로 사라진 제로의 남동생 행동은 알수없고 중요한 해답이 될 것같은 유우키의 잃어버린 기억은 왜 봉인돼 있는건지 말이다.

천계영씨 신작이라는 이유만으로 기대가 되는 만화였다. 그런데 펼쳐보고 든 생각은 내용이 아닌 그림이 대한 놀라움이었다. 그림체가 많이 변했다. '오디션'때의 그림도 아닌 굉장히 심한 변화를 보여서 처음엔 적응이 안됐고 내가 동명이인의 다른 만화가 책을 보고 있는건 아닌지 눈을 의심해야했다. 3권까지 보고나선 익숙해졌고 이런식의 색다른 변화도 독자입장에서 신선했지만 작가에게있어서 만화가의 운명을 걸고한 새로운 시도가 아니었나 예상해봤다. 제목처럼 하이힐에 집착하는 여학생 경희가 주인공으로 나온다. 누구나 한눈에 반할만큼 예쁜 얼굴을 한데다 부잣집 딸이고 부족한거 없어보이는 경희는 어느날 학교 짱인 양욱일에게 대쉬받는 자리에서 심한 구타를 당한다. 난데없이 폭행을 당한 경희는 그날부터 욱일과 팽팽한 신경전을 벌이기 시작한다. 멋진 남녀가 만나 호감을 갖는 그런 학원물이 아니라 첫만남부터 치고받고 때리는 장면이 나오다보니 독자는 당황할수밖에 없다. 보통 청소년들과는 다른 시작을 한만큼 서로 자존심을 걸고 접전을 벌이는 이후의 과정은 더 흥미진진할수 밖에 없다. 이른바 서로를 괴롭히기 작전이다. 학교안에서 경희는 온갖 머리를 써서 욱일을 괴롭히고 욱일은 경희를 창문밖으로 내던져 추락사 직전까지 가는 최악의 상황도 경험하게 된다. 생명에 아무런 집착이 없는 경희와 나름대로 상처를 가진 욱일은 그렇게 이상한 방식으로 서로에게 가까워지고 이해하게 되는 특별한 주인공들이다. 둘다 강한척 하지만 많이 다쳐본 사람들이라 그런 과정을 거치며 서로를 누구보다 이해하고 사랑하게 된다. 작가는 그 두사람이 만나기전 어떤 일이 있었는지를 과거와 현재 교차식으로 보여주며 전개해나간다. 처음엔 심한 변화에 당황했지만 지금은 작가의 경력과 내공이 살아있음을 확인하고 있다.

 
챈들러 소설은 여태 세권 읽었는데 읽고난후 이렇게 오래 기억에 남을거라고 예상치못했다. 캐릭터가 선명하게 잡힌 시리즈물이라서 그런걸까. 시리즈중 가장 필립말로다운 캐릭터가 살아있는건 '빅 슬립'이라고 여긴다. 반항적이고 뻔뻔하면서도 중심을 확실히 잡고있는 필립말로는 굉장히 매력적이라 한눈에 반했을 정도다. 그런데 '안녕 내사랑'을 거쳐 '기나긴 이별'에 가선 40대 중년의 나이탓인지 필립말로는 상당히 지쳐보였다. 패기만만하게 젊은정신으로 세상과 부딪쳤던 초반의 열정을 잃고 늙고 지쳐있다는 인상을 받았다. 마치 거대한 세상의 벽에 막막해지고 포기를 배운 모습처럼 보인다. 사설탐정으로서 사건을 의뢰받아 조사하는 과정에서 필립은 무수한 제재를 받아온게 사실이다. 경찰에게 폭행을 당하는건 예사고 돈과 권력이 움직이는 세상의 논리 앞에서 돈없고 힘없고 빽없는 일개인 필립이 좌절할때가 많다는건 알고있었다. 하지만 이 책의 필립은 나이에 비해 이미 늙고 심하게 훼손된 느낌이라 안타까움이 짙게 남았다. 식당에서 우연히 처음만난 테리 레녹스와의 질긴 우정을 바탕으로 살인사건을 조사하고 있는 내용으로 채워진 기나긴 이별은 레녹스의 유,무죄를 떠나 필립이 그를 끝까지 믿고 돕는 인연을 그리고 있다. 레녹스의 아내가 억만장자 딸이라서 사건은 커지고 레녹스는 필립 도움으로 멕시코로 도주하지만 그곳까지 따라간 킬러들에 의해 몇번의 죽을 고비를 넘기는 과정과 과연 그가 아내를 살해했는가를 중점적으로 다룬다. 레녹스와의 만남을 알고있는 패거리들에게 이번에도 필립은 폭행을 당하고 감시받지만 동질감으로 단단해진 우정을 꺾지는 못한다. 세상의 부조리와 싸우는 패기는 기대할수 없지만 여전히 퇴락한듯한 색채를 가진 필립말로가 매력적이었다는 사실은 변함이 없다. 군더더기 없는 문장과 쓸쓸함이 묻어나는 분위기때문에 책 전체가 몇번을 읽어도 좋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