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을 체제나 대외적 목적을 위해 수단화시켜 희생시키는 일이 많았던 2차대전후 냉전시기를 배경으로 한 소설로써 작가의 냉철한 태도와 반전에 반전을 거듭하는 후반부에 압도됐던 소설이다. 정치공작이나 스나이퍼의 활약을 그린 소설을 좋아하긴하지만 이 책에 대한 사전지식없이 읽었기때문에 이렇게 뛰어난 완성도를 갖춘 작품인지 몰랐다. 처음 영국 정보부의 알렉이 자신을 궁지에 몰아넣은 문트를 상대로 관리관과 이중스파이에 가까운 연극을 진행할때까지만 해도 딱딱한 문체가 맘에 안들어 설렁설렁 읽어나갔다. 독자조차 헷갈리게 하는 몇년에 걸친 긴 연극때문에 도서관에서 만난 여자 리즈를 받아들이는 알렉의 태도가 진심인지 꾸며낸 거짓인지도 확신할수 없었다. 알렉에게 접근해 영국정보부의 기밀을 캐내려는 각국의 스파이들과 접촉하던중 문트를 직접 파멸시킬수 있는 한 유태인 증언자를 찾아내면서 흐름은 빨라진다. 알렉과 관리관이 문트가 공산국가의 스파이라는 사실을 밝혀내기위해 사문회에 참석하면서 긴장은 극에 달한다. 순조롭게 돼가나 싶은 사문회엔 갑작스런 변수가 돌출하면서 알렉을 비롯한 독자는 뭐가 뭔지 어리둥절해지게 된다. 진실이라 믿었던 것이 속임수였고 속임수라 여긴 것이 진실이 되는 변화가 극심해지기때문이다. 짧은 순간 삶과 죽음사이를 오가던 알렉과 리즈가 간신히 사문회를 빠져나오면서 겨우 안도하게되지만 그게 끝이 아니었다. 마지막 페이지까지 극적인 긴장감은 이어진다. 끝내 동서독의 장벽을 넘지못하게된 리즈를 따라 죽음에 이르는 알렉을 통해 작가는 이데올로기의 대립때문에 희생된 인간의 비극을 제대로 전해준다. 소름끼치도록 슬프고 참담했었다. 책을 덮은후 한동안 책속 이미지에서 빠져나오지못했다. 낭비없는 감정과 불필요한 대사 한마디 없는 너무나 뛰어난 작품이다.

 

여태까지 본 판타지중 최고수준의 작품이라고 망설임없이 추천할수있는 책이다. 어마어마한 두께로 재판되기전부터 보기시작했는데 아직까지 미완성이라는 것만 빼면 나무랄데가 하나도 없다. 이른바 드라마틱한 재미를 주는 요소가 매우 정교하게 배치돼있고 다음 내용을 한없이 궁금하게 만드는 작가의 재능는 아무리 칭찬해도 모자람이 없다. 맨처음 등장하는 윈테펠의 영주인 스타크가문 사람들이 주인공이다. 여섯남매가 여섯마리의 다이어울프를 만나면서 그들의 영혼의 동반자가 되는 상징도 환타지소설다운 드라마틱한 설정이었다. 문제의 시작은 세븐킹덤의 왕이 살해되면서부터다. 왕좌를 노리는 왕비는 자기아들 조프리를 왕위에 올리지만 왕제와 왕족들이 자기권리를 주장하며 반란을 일으키고 전국은 환란에 휩싸인다. 각자의 권력욕이 마법과 불법과 인연을 총동원해 펼쳐지는며 생기는 얘기들은 눈을 뗄수없을만큼 재밌었고 극적이었다. 한두사람이 주인공이 아니라 스타크가의 여섯남매를 비롯해 등장인물이 많아서 한 챕터씩 한 인물 중심으로 얘기가 이어지는 형식인데 갈수록 얽히고 설킨 과거와 현재가 드러나며 소설내용이 흥미진진해지고 있다. 윈터펠이 망한줄도 모르고 집에가기위해 먼 여행길에서 온갖 위험을 겪는 막내딸, 겨우 조프리 약혼녀 자리에서 도망쳤더니 엄마를 사랑했던 편집증환자 귀족에게 사로잡힌 스타크의 장녀, 스타크의 유일한 사생아 존, 후계자였으나 살해당하고 마는 장남 롭 등등 반역죄로 살해당한 아버지때문에 뿔뿔이 흩어져버린 스타크가의 아이들은 언제쯤 고향으로 돌아올수있을까. 어렸던 여섯아이들은 이 혼란기에 극심한 고생을 하며 성장해가고 있고 왕의 자리를 노리는 야심가들은 차츰 세력을 키우며 타협하고 배신을 반복하고있는 중이다. 독자로서는 아직 스무살도 안된 스타크 아이들과 하나의 영혼으로 묶인 다이어울프를 지켜보는 것만으로도 흥분되고 즐겁지만 그외 무수한 캐릭터 마다 작가가 부여한 개성과 사연이 많아서 놀라운 짜임새라는 말밖에 다른 감상이 필요없는 수준이다.

 단숨에 국내번역된 3권까지 읽게 만든 시리즈다. 뱀파이어와 뱀파이어 헌터라는 천적이 만나 호감을 갖게된다는 것부터가 드라마틱하고 캐릭터가 무척이나 매력적이었다. 160센티도 안되는 키에 늘씬한 애니타는 죽은자와 산자가 공존하는 가상의 도시에서 헌터로 좀비 구울 뱀파이어 늑대인간들을 해치우며 살고있는 당찬 여성이다. 그런데 운명이 꼬였는지 달콤한 죄악이라는 이름의 클럽을 운영하고있는 뱀파이어 쟝끌로드의 눈에 들고만다. 피를 마시고 햇빛을 싫어하는 뱀파이어의 특징을 갖춘 소설속 그들은 자유롭게 인간과 어울려살고 있지만 간혹 살인사건을 일으키기도 하는데 그런 사건을 조사하다가 쟝끌로드와 엮인것이다. 게다 그의 인간종복이 돼달라는 줄기찬 구애를 받고 애니타는 줄기차게 거절하면서 둘 사이엔 야릇한 감정이 싹트고 만다. 쟝끌로드는 죽은 사람이라는 것빼고는 완벽한 외형을 갖추고 있는 남자지만 헌터노릇을 하면서 뱀파이어를 사귈수는 없고 더구나 쟝끌로드가 치명적으로 아름답다는 사실때문에 애니타는 일부러 그를 외면하고 있는 상태다. 그런데 모든 사건은 쟝과 애니타를 엮는 방향으로 나아가고 있으니 애니타는 매일매일이 고민일수밖에 없다., 소설은 대략 이런 분위기다. 공과 사를 철저히 구분하는 애니타는 3권까지도 쟝끌로드의 유혹에 빠지고 있지않지만 앞으로 나올 시리즈에선 장담할수가 없다. 매 권마다 다소 잔인한 살인사건이 일어나고 괴물들이 등장해 싸우고 추격전을 벌이는 액션이 펼쳐지기때문에 즐겁게 읽을수 있었다. 오락소설이 갖춰야할 조건들을 다 충족시키는 드문 소설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