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욕 금융 소프트웨어 개발팀에서 일하는 한국인의 문화체험과 해프닝같은 걸 상상하고 집어든 책인데 결과는 많이 빗나갔다. 책에 java소스가 한 페이지를 채울정도로 프로그램관련 얘기가 거의 전부라고 할수있을 정도다. 삶의 에피소드를 읽고싶었는데 딱딱하기 이를데없는 컴퓨터 작업으로만 가득하다보니 개인 취향에서 멀었지만 동종 직업을 갖고 있는 분들이 본다면 공감할만한 내용이 무궁무진할것 같다. 그만큼 작업과 연관된 얘기들이 많다. 주인공은 취업이민으로 미국에서 일하고있는 30대의 한국인 남자 영우. 그는 처음엔 동양인이라고 무시당했지만 실력으로 인정받으면서 자리매김하고 있던 프로그래머인데 작가의 상상력이 가미된 실화속 인물로 등장한다. 그의 주변에 있는 희한한 경력을 가진 외국인 동료들 얘기도 양념처럼 첨가돼있지만 감정상의 교류나 우정을 논할만한 대상은 한명도 없고 관찰자적 시선으로 내내 그들을 설명해주고 있다. 천재를 비롯해 놀라운 실력을 가진 동료도 있지만 미국 사람들의 나쁜 습성을 가진 이도 있어서 영우에게 어려운 프로그래밍을 손봐달라는 부탁을 자주하며 자신은 노는 동료와의 일화도 소개시켜주고 있다. 뉴욕 도시 여기저기를 찍은 사진과 낙서처럼 그린 간단한 일러스트가 섞인 책이라 금방 읽을수 있고 복잡한 내용도 없으며 끝 마무리도 그저 그랬다. 영국으로 출장간 겪은 에피소드가 그나마 제일 볼만했다. 너무 평이한 내용이라서 어떻게 이런걸 책으로 낼 생각까지 했을까..하는 느낌마저 들었다.

 
삶과 죽음을 다룬 책이라서 울면서 봤고 읽고난뒤 많은 생각을 했던 책이다. 하루아침에 기차사고로 남편 태수를 잃은 수아가 주인공이다. 시댁의 반대를 무릅쓰고 결혼했지만 출장간 남편이 기차전복사고로 죽고 홀로남은 수아는 고통속에서 6,7년을 살다가 호스피스라는 직업을 알게된다. 호스피스 수녀에게 영향을 받아 직장을 그만두고 본격적으로 말기암환자들 곁을 지켜주기 시작하는 수아는 죽어가는 환자를 보며 시행착오를 거듭하며 여러 환자들과 유대관계를 갖게된다. 죽음을 목전에 둔 환자들의 괴팍한 행동과 심리를 조금씩 이해하게 된 것이다. 교수라는 직함을 갖고 있는 중년 부인은 자기 병을 인정하지않다가 뒤늦게 호스피스 병동에 와서 딸과 아들을 남기고 죽음에 이르고 그 과정을 지켜보며 수아는 호스피스로서 한층 성숙해진다. 폐암말기인 아저씨도 수아와 함께 삶을 마무리한다. 그리고 수아 자신도 남편에 대한 고통스런 기억에서 빠져나올수 있게 된다. 자신이 오랜시간 남편을 잊지못하고 있던 이유가 바로 기차사고로 육신이 뒤틀리고 깨진채 영안실에 누워있던 남편을 돌보지못한 자책에서 비롯된 것임을 깨달았던 것이다. 모든 감정을 풀고 용서하면서 수아는 마침내 평화를 얻게된다. 사고나 질병에 의해 어차피 누구나 한번은 죽게된다는 진실 앞에 인간에 대한 연민과 숙연함을 느끼지않을수 없었다. 내가 이 책에서 깊은 인상을 받았던 것은 직접 지켜본 경험을 살려쓴것 같은 생생한 죽음의 모습이었다. 대부분 드라마에선 환자의 얼굴로 흰시트를 씌우는 걸로 죽음이 끝난것처럼 표현하지만 실제 간호사들이 하는 사후처리과정을 사실적으로 묘사해주고 있어서 죽음의 과정을 전부 알게된 기분이었다. 편안히 죽음을 맞게하려는 호스피스들의 노력과 환자들의 모습만 있는건 아니다. 죽음을 지켜보며 자신을 되돌아보는 의사들의 자책과 고민, 삶이란 무엇이고 죽음이란 무엇인가 하는 명제들을 마주하게 만든다.

 
리오우가 아름다운 소설이라고 여겨지는 이유는 그들의 젊은 순간을 그려놨기때문이다. 여기엔 남녀간의 애틋한 사랑이 있는것도 아니고 인생의 신비나 깨달음도 없다. 그런데도 두근거리고 주인공들이 한없이 매력넘쳤던 건 순전히 젊음이 부여한 시기를 모험을 마다않고 헤쳐나간 과정에 있다. 대학생인 카즈아키가 중국인 킬러 리오우를 만난건 아주 우연이었고 짧은 시간이었다. 이해할수없는 중국춤을 추던 클럽 뒷골목에서 잠시 마주친 그가 킬러이자 중국정부 스파이이자 공산게릴라라는 걸 알게되기까지는 시간이 걸린다. 수많은 이름과 얼굴을 가진 리오우의 실체를 아는 유일한 존재라는 점에서 카즈아키는 형사와 경찰의 집요한 감시를 받게되지만 그를 위해 감옥살이를 하고 할수있는 일은 다해준다. 세상만사 아무것에도 관심없고 스스로 살고싶은 목적도 없고 생각도 없던 카즈아키가 리오우에게 이끌린건 자신과 너무 다른 선명한 목적성을 갖고있었기 때문이다. 중국 정부에 의해 세계각지를 누비고 다녔지만 자유로운 인간의지를 잊지않았던 리오우는 카즈아키에게 이상적인 인간 자체였다. 심각한 무기력증을 앓던 카즈아키와 생명력으로 빛나던 리오우는 너무나 대비되는 인물이었다. 땅에 뿌리박힌 식물처럼 보통 인간의 일상에서 벗어나지못하던 카즈아키에 비해 날개라도 날린듯 온갖 모험을 향해 달리던 리오우가 중국땅에서 다시 접점을 찾기까지는 20년 이상이 걸리지만 후반부의 평화는 아름다웠다. 그들 우정을 완성하기위해 두 사람 각자의 아내가 희생당한 것과 일본적인 미의식으로 중국인을 그려놨다는 혐의는 벗어나기 힘들지만 독특한 감각이 담겨있는 드문 소설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