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 실격]
다자이 오사무 지음
최근에 본 영화중에 블랙스완이 있습니다
백조의 호수라는 발레극에서, 왕자와 순수한 사랑을 나누는 순수한 백조의 모습과, 왕자를 유혹하는 흑조의 모습을 동시에 연기 해야하는 니나. 발레리나라면 누구나 탐내는 역할.
문제는 순수하며, 정석대로 발레를 해온 니나에게 있어 백조의 모습은 꾸며내지 않아도 되는 그야말로 타고난 백조이기에 일찍부터 백조의 주인공으로 당첨되었지만, 그와 상반된 역할인 흑조의 모습은, 자신이 꾸며내고, 타인으로부터 인정 받아야하는 모습이기에 주인공 니나는 강박증에 사로잡혀, 결국은 자신을 찢고 파멸하는 불운한 프리마돈나가 됩니다.
우연하게도 영화와 이번에 읽은 “인간실격”에서 많은 공통점을 발견할 수 있었습니다.
1) 인정받기 위한 가련한 인간 군상.
어린 시절을 회고하는 첫번째 수기에서 요조는, 자신이 가지고 있는 행복이란 관념이 다른사람들과는 다르다는 불안, 나 혼자만이 색다른 인간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자신이 생각해 낸 것이 익살입니다.
이미 내 마음은 아닐지언정 남들을 웃기는 방법을 터득하고, 연기하여 얻어낸 익살꾼이라는 타이틀 그러나, 같은 학교에서 왕따이며 찌질이였던 다케카즈에게서 들은
“일부러 그랬지?” 이 말에 계속되는 요조의 불안과 공포는 일부러가 아니라 정말이었다고 믿도록 갖가지 노력을 하게 만들고, 더 깊은 연기로 자신을 가리게 만듭니다.
영화에서 니나도 흑조로 연기하고 (어쩌면) 인정받고 싶은 욕망에, 검은옷을 입은 자신을 지하철에서 발견하고, 또 거울에서도 자기와 다른 행동을 하고있는 자신을 보기까지 합니다.
자기의 본성을 가리면서 연기하고 혹은 다른 형체를 만들어내는 이 주인공들의 모습을 볼볼 때, 그토록 자신을 괴롭힐 필요까지 있을까 하는 생각을 해보지만, 우리는 이미 스스로가 타인 앞에서 괴로움도 웃음으로 포장하고, 에고와는 다른 방향으로 몸을 돌리는 요조와 니나는 아닌지 하는 생각이 듭니다. 인정받기 위한 가련한 몸짓들을 하고있는거는 아닌지…
2) 착하다고 할 수 있을까?
“인간실격” 끝에 노트를 화자에게 건네준 마담은 이런 말을 합니다.
[제가 알고있는 요조는, 정말로 착다고, 경우가 바르고, 술만 마시지 않았더라면, 아니 마셨다 하더라도 , 하느님같이 착한 사람이었어요.]
요조는 착한 사람이었어요. 술만 마시지 않았더라면, 이 이야기는 다시 영화로 돌아올 때, 니나는 순수했어요, 흑조의 역할만 아니었더라면…과 상통하리라 봅니다.
그렇다면 술과 흑조가, 착하거나 순수한 사람을 자신들을 파멸하는 장치라고 볼 수 있을까요?
요조는 학생운동을 하기하였고 좋아하기도 하였는데, 그것은 마르크스에 의하여 맺어진 친화감이 아니라, 그 모임의 특성, 즉 비합법이라는 것이 좋았고, 어둠의 자식이라는 말을 듣는 사람들과 만나면 다정한 마음씨가되고, 범인(犯人)이라는 말에 자신의 살아가는 자세를 찾는 요조에게 착하다고 하기는 무리라는 생각이 듭니다. 이는 핑크빛 코트를 입고, 오르골소리에 잠이 들며, 인형에 둘러싸인 방에서 거울에 비친 자신을 보며 발레연습을 하는 니나에게도 순수하다고 말하지 못하는 것과 같습니다.
착하고 순수하다고 말하기 이전에, 이모든 것은 인간본성에 더 가까운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듭니다. 우리 속에 내재되어 있었던 본성이, 착하고 순수하다는 달콤한 유혹 때문에, 더 누루고 통제되었고, 그것이 술로 혹은 백조의 털로 터트린 것 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그리고, 마지막에 주인공들은 착각합니다.
“내 머리는 (세상을 달관한 사람처럼)백발로 변했다.”
그리고 니나는 “I was perfect!”라고 마감합니다.
이 말들은 참으로 공감하기 어렵다는 생각이 듭니다. 백발로 변했든, 완벽했든, 인간의 본성을 조금 더 들어낸 하나의 몸부림에 불과하지 않다는 생각이 듭니다.
(3) 아버지 혹은 어머니
[인간실격] 이 책에서 또 하나 빠트릴 수 없는 것이, 요조에 대한 아버지의 모습입니다.
“아버님이 돌아가셨다는 사실을 알게 되자, 저는 드디어 쓸개 빠진 인간처럼 되었습니다. ‘이제 아버님이 계시지 않는다. 내 가슴에서 한시도 떠나지 않았던, 그립고 무서운 그 존재가 이미 사라졌다.’ 제 고뇌의 항아리가 텅 빈 듯한 느낌이 들었습니다. 제 고뇌의 항아리가 너무나 무거웠던 것도, 그 아버님 탓이 아니었을까 하는 생각마저 들었습니다. 의욕이 완전히 사라져 버렸습니다. 고뇌할 능력조차 잃어버렸습니다. “ P118
아버지가 돌아가시자 고뇌할 능력조차 잃어버렸던 요조.
어렸을때 아버지의 수첩에 몰래 선물 목록을 적어서 아버지를 즐겁게 해주려고 (마음에도 없는) 연기를 했던 요조에게 있어서, 아버지는 겉어 내고 싶던 움막이었고, 존재하면서 없는 겉과 마찬가지인 쓸개였지만, 그에게 있어서 인간적 고뇌를 지탱하게 해주었던 인물이었죠. 이것은 영화 블랙스완에서도, (이미 버진이 아니었음에도) 딸의 버진을 지키고 싶었고, 자신의 꿈이었던 프리마돈나의 타이틀을 대신 이룩하게 싶어했던 엄마도, 어쩌면 니나에게 있어 더 흑조에 대한 욕망을 더 북돋게 했을 것입니다.
보란듯이 부모의 그늘 아래를 벗어나려 발버둥치고 거부를 했지만, 결국은 그 안에서 다람쥐 쳇바퀴만 돌린격이 된셈입니다. 된셈만, 요조와 아버지처럼, 니나와 엄마처럼, 부모들이 자식들에게 영향을 주는것, 자식들이 부모들의 영향을 받는 것. 어쩔 수 없는 필수불가결의 인연속에서 벗어나려는 허약한 모습을 본거같아 다시 한번 인간이란 한 낱 미물이구나 하는 생각을 해봅니다
(4) 3편의 수기에서 본 작가.
이 책은 3편의 수기형식으로 되어있습니다. 아무리 작가가 그 작품에 자신의 모습을 투영한다 하더라고, 작가의 소개나 연보를 볼 때 놀랄만큼 작가 자신이 많이 들어가있습니다.
어렸을 때 비교적 부유한 집안과 아버지의 모습, 술과 여자에 묻혀 살았던 젊은 날들, 여자과의 동반자살에서 여자는 죽고 작가는 살아 남은점, 학생운동, 그리고 정신병원까지 가서 치료를 받았던 점 등은 정말 요조가 정말 작가 자신이라는 생각이 들더군요.
그렇지만 이 소설이 전후인 1948년에 씌여졌음에도 불구하고, 지금에도 많은 생각거리를 던져 준 소설이라 다자이 오사무란 작가를 처음 알았지만, 그가 얼마나 괴로워하고 고민한 끝에 태어난 작품인지 알겠더군요. 그리고 이처럼 필력있는 작가가 39세란 젊은 나이로 자살로 마감했다는 사실에 많이 안타까왔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