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로 여기 교실에서? No. 바로 여기에서..
글 읽기와 삶 읽기.. by 조혜정
태어나면서 읽기를 시작하는 사람들. 물론 문자를 익히면서는 텍스트를 중심으로 읽기를 하겠지만, 우리는 태어나면서 (의식하든 하지 안든) 사물읽기를 시작한다. 엄마 얼굴 읽어내기부터 시작하여 차츰차츰 주변을 확장시킨다.
이와 마찬가지로, ㄱ,ㄴ,부터 시작한 우리의 글 읽기는, 차츰 문장을 읽어가고, 문단을 읽고 글을 읽으며, 거대한 양의 텍스트를 읽어나간다. 아마 이 노동은 내가 사라지는 순간까지 계속 되리라.
그러나 대부분의 사람들은 엄마얼굴 익히며 스스로 인식하고, 따르고, 세월이 흘러서는 엄마 없이도 살 수 있는 주체적인 인간으로 발전하게 된다.
글읽기는 어떠한가, 자음과 모음을 익히는 순간부터, 일상의 50할 이상을 글 혹은 문장읽기를 접하기는 하나, 나는 글 읽고 그 속에서 있는 (행간의) 의미를 알고, 나를 성찰하게 되었다고 말할 수 있는 사람은 과연 몇 명이나 있는가? 이런 자문을 해보는 단계에 올라 섰을때, 조혜정의 [글 읽기와 삶 읽기]는 명확한 답을 준다고 생각한다.
조혜정은 이런 자아 성찰의 단계를 읽어내지 못하는 지식인을 ‘식민지 지식인’ 이라는 다소 격한 언어를 사용했지만, 수많은 세월을 책을 읽으면서도, 교과서에서 배운 대로 O, X 답을 추려내는 식의 책을 읽어낼 줄 모르는 우리에게, 촌철살인으로 다가온다.
“혼란시킬 수 있다는 것은 스스로 혼란을 피하는 것이다. (Hi Hi – hao Dsu. B.C. 2500년 경 :P61)
이 책 61페이지에 인용한 이 문장은 그 동안 책읽기를 하면서, 혹시 내가 잘못 읽어내고, 나의 생각이 저자와 맞지 않은 것은 아닌가..내가 잘못 읽었겠지 하며 스스로를 믿지 못하는 독자에게, 자신을 생각하며, ‘잘못읽기’를 하면 어떤가? 하면서 충분히 독자들을 격려를 주며, 그 ‘잘못읽기’를 통해서 새로운 의미를 창출해 나가는 것이 비판적 사고 방식을 기르며, 끝없이 변화를 거치는 문장들을 통해 좀더 ‘나’에 대해 분석해보고, 더 나아갈 수 있다고, 용기를 주는듯하다.
이 책의 다른 흥미로운 점은, 실제 교실에서 강의하는 교수의 경험을 바탕으로, 학생들의 경험과 그들이 하고 싶은 이야기를 많이 실었다는 점이다.
물론 세월이 변해 그 당시 지식인들이 읽어야 했던 맑시즘은 2011년 현재는 많이 읽히지는 않다하더라도,이 책이 지어질 당시의 대학생들이 텍스트에 대해, 그리고 그로 인한 자신들의 고민과 갈등들을 잘 전달해 주었고, 지금도 함께 고민하게 만든다.
“텍스트 자체에 대해 의심하는 것은 우리에게 있을 수 없는 일이었다. 교과서가 틀릴 수 있다고 생각하면 어떻게 그것을 달달 외울 수 있을까? 무조건 텍스트는 옳은 것이고 그것을 대상화시켜 보는 것을 상상조차 해보지 못했었다. 그것은 엄청난 파괴행위이며 절대로 하면 안된다고 생각해 왔다. 동화도 마찬가지. 우리가 어렸을 때 읽고 우리의 가치관으로 정립되는 데 가장 큰 부분인 동화를 파괴시키는 것은 삶의 근거를 파괴시키고 불안하게 만드는 행위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지금 나는 혼란을 두려워하지 않는다. 동화는 파괴되고 새롭게 쓰여질 것이다. 그리고 나 자신도 삶의 근거를 겁없이 물으며 자신을 변화기켜 나가야 할 것이라 느낀다. P77
이 책이 1992년에 씌여진 점을 생각해보면, 지금도 내 생각을 흔드는 글을 보면 당황 하는데, 그때도 굉장히 그런글을 보면 많이 혼란 했을리라 생각된다. 신데렐라가 노동권을 주장하며, 백설공주가 민중운동을 선동하는 이야기를 상상해보면 우리 스스로도 끔찍할 것이다.
그러나 다행스럽게도 요즘에는 이런 우리의 사고를 열어주는 다양한 책들과 텍스트들 (영화나 광고, 그림들을 포함한 많은 매체들)이 나왔고, 다양한 시각들이 인정받고 우리를 생각들을 자극하고 있다. 참 재미있는 세상이라는 생각이 든다.
우리는 어린애들이 쓴 시를 동시라고 하지 않고, 그들이 그린 그림을 명화라고 인정하지 않는다. 충분한 고뇌와 갈등과 해결의 과정들을 거치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와 마찬가지로, 책읽기의 시작에 서있는 우리들이 글읽기를 통해서 삶읽기를 하려면, 수많은 시행착오를 거쳐야 한다고 생각한다. 세상을 거져 살 수는 없지 않은가?
이렇게 생각해 보면 이 책은 신식민지 지성인을 탈피하려는 좋은 일침이 될 수 있으며, ‘바로 여기 교실에서’가 아닌, 내가 지금 현재 있는 ‘바로 이곳’에서 시작해야 된다고 말하고 싶다.
거창하고 화려하고 세련된
무수한 ‘겉도는 말’에 유혹당하지 않도록
서로를 도와주면서
우리의 삶을 토론할 수 있는
‘말’을 찾기 위해 길을 떠나자.
우리 삶 한가운데서 나오는 지식,
자신의 내면에서 삭혀져 나오는 글을 쓰자.
힘을 빼기보다 힘을 솟게 하는 글,
만병통치약을 바라는 조급함 속에서 쓴 글이 아니라
‘우리’를 만들어 가는 여유와 즐거움 속에 쓴 글,
생각을 풀어주고 마음을 풀어주는 그런 글을 말이다.
[본문 p18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