날씨가 참 맑다. 잠시 밖에 나가서 올려다 본 하늘은 “이제 가을입니다~”라고 알려 주려고 안감힘을 쓰는 듯 아주 멀리 그리고 높이 자리 잡고 있다.

중학교 아이들과 [연금술사]를 읽었다. 내 기억으론 세 번쯤 이 책을 읽는 거 같다. 1부까지는 소리 내어 읽어보기를 했다. 시를 읽듯이 나즉나즉한 목소리로 책을 읽는 아이들의 모습이 이야기가 진행 될수록 더 진지해진다. 연금술사는 시처럼 읽어지는 매력이 있는 책이다.

대부분은 “내용이 너무 어려워요”라고 엄살을 떨지만 소리 내어 읽기는 눈으로만 읽는 방법보다 훨씬 머릿속에 잘 기억 되는 것 같다. 책의 내용을 정리할 때 보니 따로따로 눈으로 정독하기를 한 2부와 에필로그 부분보다 소리 내어 읽기를 한 1부의 내용을 더 잘 기억하고 있었다. 하지만, 시처럼 읽으려니 우선은 시간이 너무 많이 부족하다. 겨우 1주일에 2시간을 만나는 수업시간의 대부분을 읽기에 할애한다는 것은 선생 입장에서도 용기가 필요한 시도였다. 하지만, 기회가 된다면 다음엔 2부의 내용도 소리 내어 읽기를 해보고 싶다.

왜 아이들은 연금술사를 읽는 내내 어려워요 라고 엄살을 떨면서도 이야기 속으로 빠져들어 간 것일까? 연금술이라는 단어의 매력에서부터 아이들은 매료되었던 거 같다. 새로운 또는 귀한 황금을 만들 수 있는 마술을 가진 사람. 이것이 대부분 아이들이 정리한 연금술사의
정의였다. 그 말의 의미가 맞던지 아님 틀리던지 아이들의 정리에 무조건 커다랗게 동그라미를 해준다. 나의 정리 따위가 무슨 의미가 있겠는가. 이 책과의 만남을 통해 아이들은 나름대로 가슴속에 자신의 보석이 될 씨앗들을 하나씩 심은 것이 틀림없는 것을.

보물을 찾아 모험을 떠난 산티아고의 여정이야말로 우리가 우리 마음속의 진리를 찾아가는 여정과 같을 수도 있고 우리의 인생살이와 같을 수도 있을 것이다. 다만, 산티아고처럼 이야기를 해피엔딩으로 끝내려면 끝없는 자기 단련과 수련의 시간이 필요한 거겠지. 코엘료의 소설은 자아를 찾아 부단히 노력하는 사람들을 위한 동화이고 그런 사람들을 격려해주는 희망의 메시지라는 생각을 한다.

소란의 소용돌이에서도 평정심을 잃지 않는 방법. 삶의 극한 상황에 몰려서도 희망을 놓치지 않는 방법. 그리고 사랑에 대하여 난해하지만 맑게, 은밀하게 숨겨져 있지만 명료하게 그 길을 가르쳐준다.  
때문에, 나는 이 책을 한 번 읽는 것으로 끝내지 않고 가까이에 두고 그리고 가끔씩 꺼내어 읽고 또 읽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나도 나의 자아를 다듬고자 노력하는 사람이니까.

 [사랑은 사막처럼 움직이는 것도 아니고, 바람처럼 세상을 돌아다닌 것도 아니야. 그렇다고 너처럼 멀리서 만물을 지켜보는 것도 아니지.
 사랑은 만물의 정기를 변화시키고 고양시키는 힘이야....
 만물의 정기를 키우는 건 바로 우리 자신이야. 우리가 살아가는 이 세상도 우리의 모습에 따라 좋아지거나 나빠지는 거지. 사랑은 바로 거기서 힘을 발휘해. 사랑을 하게 되면 항상
지금의 자신보다 더 나아지고 싶어하니까.]

 

  수술 후 퇴원하셔서 집에 계시는 친정 엄마의 병문안차 시어머니께서 오셨다. 안사돈 지간에 만나는 것이  그리 쉬운 일은 아니겠지만 결혼한지 20년. 이제 엄마나 시어머니나 나에겐 그냥 부모님이시니 두 분이 모두 소중하고 두 분이 모두 어렵다. 어렵고 소중하긴 두 분도 마찬가지신 거같다. 친정 아버지가 돌아가신 뒤 동갑네기이신 두 분은 부쩍 사이가 가까워지신 거 같다. 그렇다고 일부러 만나서 수다떠는 사이까지는 아니지만 딸인 내가 볼 때나 며느리의 입장에서 볼 때나 두 분이 서로 많이 이해하시는 사이가 되셨다는 소리다.

여름을 나셨으니 뭔가 영양가 있는 음식으로 두 분의 식사를 마련해보려 하는데 입맛을 잃으신 친정엄마가 이도 저도 마다하신다. 다행히 개고기는 잡수실 수 있다고 하셨는데...다행이 두 분의 메뉴가 여기 쯤에서는 일치를 보신다. 하지만, 난감한 건 나다. 개고기는 커녕 이적지 살아도 개고기 파는 집 근처도 안 가보았으니...마침, 남편도 휴일을 맞아 등산을 가고 없으니 혼자서 우리 동네의 개고기 팔만한 식당을 온통 뒤지고 다녔지만 결국 개고기 파는 식당은 발견하지 못 하고 말았다. 두 분 엄마께 내일 점심에 드시러 가자고 양해를 구하는 것으로 오늘 저녁의 개고기 소동은 종료.

 먹거리가 지천인 세상이다. 개고기가 아니라도 고단백, 고영향 덩어리 음식은 얼마든지 넘치는데 왜 하필 개고기 타령이냐고 할 사람도 많을 것이다. 나? 물론 나는 개고기를 못 먹는다. 하지만, 개고기에 대해서 완전히 부정적인 시각을 가지고 있지는 않다. 개고기엔 나름대로의 우리 역사와 생활이 묻어 있기 때문이다.  개고기를 운운하면서 찬반론을 펼치는 사람들을 보면, 솔직히 나는 이해가 가질 않는다.  서양 사람들은 자기네가 타고 다니던 말 고기는 안 먹나?  개는 먹어선 안 되고 소나 말은 먹어도 되고...그 것은 그 나라 사람들의 시각과 습성일 뿐이다. 우리에겐 우리 나름의 음식에 우리 나라의 오랜 풍토와 역사가 베어있다. 그러니 시대가 바뀌었고 음식이 지천이니 이젠 버려야한다는 건 쓸 데 없는 문화 사대주의적 시각이라는 생각이고 교정이 좀 필요한 부분이라는 생각이다. 중요한 것은 무조건 '안돼'가 아니라 어떤 것들은 '안돼'가 되어야한다는 소리다.

 무조건 '안돼'가 아니라 어떤 것들은 '안돼'라고 이야기 하려면 음식의 역사와 그 음식이 가지고 있는 사회적 배경에 대해서 좀 알아야하지 않을까?  이 책은 우리들이 잘 모르고 있는 음식의 사회적 배경에 대해서 재미있게 알려주고 있다. '요리'에  대한 숨겨진 이야기들을 조근조근 설명해 주는 부분도 좋지만, 음식과 종교와의 관계. 그리고 금기인 음식들에 대한 설명도 재미있다. 무엇보다도 흥미를 끄는 것은 '젖가락'과 '포크' 그리고 '손가락'을 사용하는 문화권의 음식 이야기인데 당연히 '젖가락'을 사용하는 문화권의 사람들이 신사적이고 지능이 높다고 저자는 이야기하고 있다. 그 중에서도 일본사람. 저자가 일본 사람이라서 그런 거라고 이해하고 넘어가면서 슬쩍 우리의 젖가락에 대한 부분에서 눈길이 오래 멈추는 걸 어쩔 수 없다. 젖가락 사용법은 중국과 한국에 비해 일본이 더 엄격하다고 하지만, 음식 문화에서도 중국과 일본보다 우리의 음식 문화가 확실히 더 고상하고 발달되어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이쯤에서 중국 음식의 다양함과 일본 음식의 시각적인 아름다움만으로는 따라올 수 없는 우리 음식의 과학적이고 합리적인 조리법을 알려주는 책을 좀 더 읽어봐야겠다고 욕심을 부려본다.

 평소에 아무 생각없이 먹던 음식들. 조미료. 차와 술. 알고보면 참으로 많은 이야기와 나름대로의 역사를 가지고 있었다는 걸 배웠다.물론 그들의 역사가 인류의 역사와 씨실과 날실로 얽혀있으니 음식의 역사를 배우며 인류의 역사를 다시 한 번 되짚어 보기도 하고 우리의 역사를 다시 한 번 뒤적여 보기도 했다. 아주 재미있는 책 한 권을 만났다.

 

아~~글을 쓰기 전...저자의 이름이 메인 화면에 틀리게 올라와 있는 걸 발견했다. 이 책의 저자는 조현설 교수인데 조현섭으로 되어있다. 우째 이런일이~

神話 ..그러니까 신들의 이야기라는 뜻이겠지. 우리는 신화라고 하면 그리스, 로마 신화를 먼저 떠올린다. 역사든 철학이든 서양학문 위주로 배워온 습관 때문에 굳어진 고정관념이라고 생각한다. 우리의 신화는 무엇이 있을까? 내가 아는 신화는 당연히 단군신화를 제일 먼저 손에 꼽을 수 밖에 없다. 그리고 바리데기 이야기와 천문대할망 이야기 정도? 그렇지만 둘러보면 우리가 아무 궁금증 없이 옛날 이야기라고  생각했던 그 이야기들 ’나뭇군과 선녀’ ’연오랑과 세오녀’’ ’견우와 직녀’ ’구렁덩덩 신선비’ ’해와 달이 된 오누이’ 등등 많은 이야기들이 사실은 우리의 신화였다는 것을 이 책을 읽으면서 알게 되었다.

신화는 재미있다. 신화의 기원을 찾는 일은 조금 더 어렵지만 흥미로운 일이다. 창조신화는 세계의 여러 곳에서 비슷한 이야기들이 존재한다고 한다. 우리와 아주 멀리 떨어져 있어 환경이든 종족이든 생활습성이든 무엇 하나 같은 게 없는 곳의 사람들이 우리의 이야기와 맥락이 같은 이야기 구조를 가지고 있다는 것은 아무리 생각해봐도 신기할 따름이다. 결국 인간은 오랜 옛날 한 종족에서 갈라져나왔다는 소린가? 하는 의문점이 생기기도 하고, 불현듯 프레이저의 ’황금가지’를 무리해서라도 읽어봐야하는 게 아닐까? 하는 뜬금없는 향학열이 생기기도 한다.

조현설 교수의 ’우리신화의 수수께끼’는 실존하는 역사 Hestory 속에 파묻힌  사라진 역사를 다시 한 번 되짚어본다. 왜 역사는 남자들의 전유물로 존재하게 되었는지 그 무구한 시간 속에서 여자들은 어째서 남자들에게 앞자리를 넘겨줄 수 밖에 없었는지를 신화의 분석을 통해서 우리에게 알려주고 있다.

개인적으로 가장 흥미로운 것은 물론 ’바리데기’의 신화적 분석이었다.  신화를 따라가다 보면 고대의 사회모습과 고대인의 의식을 들여다볼 수 있는 것도 흥미로웠다.  자신을 버렸던 아버지가 죽을 병에 걸리자 갖은 고초를 겪고난 끝에 결국 아버지를 되살리지만 나라의 절반을 주겠으니 같이 살자고 하는 아버지의 간절한 청도 마다하고 巫祖神이 된 바리데기의 이야기가 바로 그 것이었다. 바리데기의 이야기 속엔 왕권보다 더 강했던 무권의 사회적 영향력이 베어 있다는 것이다.

또한, 우리의 생활 속에 자연스럽게 스며있는 의식의 ’여성성’에 대해서도 엿볼 수 있는 기회였다. 서양의 신들은 남신들의 권력이 더 막강하다고 생각되는데...우리의 신들은 남신들의 자취는 거의 찾아볼 수 없고 대신, 남신보다 훨씬 강한 능력과 영향력을 행사하는 여신들이 종횡무진 활약을 한다. 처음부터도 이야기의 무대에서 여신들이 그토록 득세를 했던 것일까? 물론, 아닐 거라는 생각을 해본다. 실존 세계에서 처음부터 남자들이 권력을 독점했던 것이 아니었던 것처럼...결국 남자와 여자들의 입장과 사회적 위치가 변화하면서 신화 속에서 남신과 여신들의 위상도 달라졌다고 보는 것이다. 결국, 사회의 변화과정이 신화 속에 자연스럽게 녹아들어갔다는 소리일 것이다.

신화는 재미있지만, 또한 어렵다. 한낱 옛날 이야기로만 읽었을 때는 그저 기이하고 신비로운 이야기일 뿐이었지만, 그 신화 속에 숨겨진 진실을 찾아가는 길은 너무 복잡하고 난해하다. 아무래도 신화에 대한 공부를 좀 더 해야겠다고 생각했다. 그동안 그리스, 로마 신화에만 너무 목을 매고 살았던 것은 아니었는지 반성해보는 기회가 되기도 했다. 자주 접했고 많이 접했던 이야기들을 새삼스럽게 신화로 받아들이려니 차라리 서양의 신화보다 더 낯설게 느껴졌다는 게 솔직한 심정이다.

다음은 조현설 교수의 다음 저작인 <살아있는 우리신화>(한겨레 신문사)를 읽어보아야 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