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작가가 이 책을 마치 관념시처럼 썼다고 생각했다. 소설이지만 시어를 다루 듯 언어들을 다루고 있다고 생각했다. 그가 사용하는 언어 속에는 많은 의미들이 함축되어 감추어져 있다고 생각되었다. 그가 감추어 놓은 것이 무엇인지 궁금했다. 혜초의 여로에 대해 왕오천추국전에 대해 그는 무엇을 숨겨놓은 것일까? 내가 과연 작가의 깊은 마음을 읽어볼 수는 있을까...아니면, 이적지 잘 몰랐던 책. 왕오천추국전의 내용에 대해서 새롭게 알게 될런지도 모르겠다하는 기대감. 이런 것들 때문에 책을 읽기 전 그냥 책꽂이에 꽂아놓은 채 며칠을 보냈다.
네 개의 꼭지점을 이루는 사람들. 혜초. 고선지. 내림. 그리고 김란수 이 네 개의 꼭지점이 서로 대각선으로 만나는 중심에있는 사람 오름.
물론 가끔, 그리고 잠깐 나타났다 사라졌던 사람들의 무게도 만만치는 않다. 진평채가 그렇고 흑주가 그렇고 특히, 요셉이 그렇다. 이들은 서로를 대각선으로 또는 선분으로 만나고 헤어지면서 이야기를 엮어간다. 아주 난해한 퍼즐을 맞춰가는 심정으로 책의 행간을 본다. 자칫, 다른 생각을 하다보면 이야기 속에서 길을 잃어버리고만다. 마치 그 사막의 혜초처럼말이다.
작가는 독자들을 마치 소설 속의 김란수처럼 맘대로 내키는대로 끌고 다닌다. 이 사막과 저 저자거리로 이 황량한 혜초의 시간과 저 살벌한 고선지의 시간속으로 그러다가 이도저도 아닌 오름과 내림의 시간에 팽개치기도 하고 스스로 나서서 독자의 목을 비틀기도 한다. 그런 작가의 종횡무진한 여로를 따라 가는 것도 나름대로 재미있다.
소설 속의 혜초는 참으로 여리고 여린 중생일 뿐이다. 그런 면에서 나는 이 소설이 오롯이 기독교적 관점에서 씌여진 것은 아닌지 의심의 눈길을 보낸다. 네 개의 꼭지점은 또한 네 개의 종교와도 만난다. 불교. 회회교라 이름붙힌 이슬람교. 경교라 불리는 기독교. 그리고 천교. 혜초가 당연히 불교를 나타내는 것이라면 야곱은 기독교를 의미한다는 것쯤 누구나 알 수 있을 것이다. 소설을 읽는 내내 오름이 과연 누구일까 궁금했었다. 오름이 혜초의 관세음보살이 아닐까라고 기대를 가져보기도 했고 자신의 몸을 먹거리로 내놓은 내림의 죽음을 읽으며 내림이야말로 진실한 관세음보살이런지도 모르겠다고 생각해보기도 했다. 그렇지만, 오름은 불교도도 경교도도 그렇다고 천교도도 아니었다. 오름은 회회교 그러니까 이슬람교도였던 것이다. 너무나 아꼈던 동생 내림의 죽음에 대한 복수심만은 절대 아니라고 하는 오름은 파밀 서쪽의 이교도들을 악인으로만 보는 동쪽의 군대들의 자만심이 얼마나 위험한가를 경고하면서 힘만이 아름답고 힘이 정의고 힘이 선함이라는 말과 함께 다만 때가 아니라는 말을 남기고 죽는다.
이 이야기 속에선 아주 은밀하게 각각의 종교들이 부딪히고 있다. 고선지가 사막의 무덤에 버려졌던 혜초를 구했다고 작가는 뒷부분에서 이야기하고 있다. 그렇지만, 시작 부분에서의 고선지와 혜초의 만남이 과연 고선지가 혜초의 목숨을 구해준 것이었는지는 확신이 서지 않는다. 함께 출병했던 병사들을 졸지에 모두 잃은 고선지가 자신의 불행을 증명하고 살아남기 위한 방편으로 혜초를 진영으로 데리고 갈 수 밖에 없었음을 이미 고백하고 있기 때문이다. 어쨌든,
그렇게 사지에서 다시 살아난 혜초는 이야기내내 그저 힘없고 나약한 인간의 모습만 보여주어서 좀 실망스러웠다. 와오천추국전을 거론하려면 혜초가 그렇게 나약한 인간이어서는 안 되지않았을까하는 생각이 내내 들었으니까말이다. 그저 살생을 거부했다고해서 폭력에 무저항이었다고해서 그 모습만이 불승의 모습은 아닐 것이다. 이야기 내내 한시도 편한적 없었던 혜초의 시간들 목숨이 왔다갔다하는 그 젊박한 시간들 속에서 왜 혜초는 단 한 번도 나무관세음보살이나 나무석가모니불같은 일상적이고 당연한 진언들을 꺼내지 않았을까? 그 때는 지금과 시절이 다르다고? 글쎄...작가가 혜초의 불승으로서의 면목은 아예 염두에 두지 않았었던 것은 아닐까? 그에게 혜초는 조금 특별한 여행자이가만 했던 것은 아니었을까?라는 생각을 해봤다. 이야기 속에서의 왕오천추국전은 여행자가 지나왔건 들렀던 여행지에 대한 기술 정도로 표현하고 있는 것도 그런 의심을 버릴 수 없게 한다. 하지만, 알지않는가? 왕오천추국전이 단순한 기행문이지만은 않다는 것을.
이 책 속의 모든 사람들은 매우 호전적이고 잔인하다. 그 시절이야 대부분의 민초들은 사람축에 끼지도 못 하느 대접을 받던 절대권력. 무소불위의 시대였으니 그런 식의 표현에 이견을 달고싶지는 않다. 다만, 그 시대의 폭력과 비인간성을 그려냄에 있어 과연 작가가 등장하는 종교들에 대해서 공정한 시선을 가지고 있었는지가 궁금하다. 그 설산에서 내림의 살점을 삼켜야 했던 혜초의 상황을 작가는 아주 길고 장황하게 설명하고 있다. 본인의 의지와는 전혀 상관없이 삼켜질 수 밖에 없었던 살점들을 혜초는 오래오래 토해내지 않던가 그럼에도 불구하고 혜초는 오름에게 용서를 구걸하고 그런 혜초를 오름은 진심으로는 용서하지 못한다. 좀 어색한 그림이긴 하지만 그것이야말로 인간다운 모습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자신의 몸을 먹거리로 내 놓은 또 한사람. 야곱은 어떤가? 어차피 남은 사람들의 식량이 되기 위해서 스스로 나무에 몸을 매단 야곱의 정황들. 비폭력에 평화주의자들로만 이루어진 것같은 야곱의 아버지와 어머니인 요셉과 마리아 그리고 그들의 마을 사람들. 그들에 대해선 지나치리만치 작가는 친절하고 섬세하게 그려내고 있다. 이 책의 네 꼭지점을 이루고 있는 네 개의 종교들이 서로의 자리에서 단단히 자리를 잡아 정사각형이나 최소한 직사각형에 가까운 모양이길 기대했지만, 아쉽게도 어느 한 쪽으로 기울어진 사각형을 보는 것같아 못내 아쉬웠던 부분이었다.
결코 짧지 않은 분량의 이야기여서 이야기가 장황할 수 있었을테고 구성이 좀 흔들리기도 했을 것이다. 하지만, 오히려 그런 면 때문에 이 책을 덮고나서도 다시 한번 이야기의 흐름을 정리해 볼 수 있었다. 물론 허구이지만, 완전히 허구일 수 없는 이야기여서 사실과 허구의 경계를 어디로 정해야 할런지 조금 혼란스러웠다. 고선지는 분명 혜초와 비슷한 시기에 살았던 인간인 거같지만, 고선지가 혜초보다 앞의 시간들을 살았으리라는 나름대로의 추측. 고선지가 혜초의 뒤를 밟는 정황이야말로 오롯이 픽션이라는 생각을 하게 되었지만, 아쉽게도 혜초보다는 오히려 고선지라는 인물이 훨씬 더 생동감있게 그려진 것이 또한 아쉬웠다면 독자로서의 지나친 욕심일까? 어쨌거나 주인공은 혜초였으니까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