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의 삶에서 종교는 얼마나 많은 비중을 차지 할까?  특정종교인은 종교인대로 무신론자인 사람은 또 그 나름대로 우리는 어쩔 수 없이 종교의 영향력을 벗어나긴 어려울 것같다. 그러니 종교 때문에 지역간 나라간에 전쟁이 발발하는 것이고 자기 종교의 교리를 지킨다는 이유로 이교도에 대한 핍박을 당당히 일삼을 수도 있을 것이다. 따지고 보면 인류의 역사란 곧 종교의 역사라고 해야하지 않을까?  신석기 정착생활을 하면서부터 사람들의 의식과 생활속에 깊이 뿌리내린 어떤 신앙은 한 사람의 사상과 생활을 지배하는 것 이외에도 사회 전체를 통제하는 수단이었으며  힘의 상징이기도 했다. 

진리...거창하게 들릴런지 모르겠지만 가만히 생각해보면 우리가 가장 쉽게 생각하는 진리란 바로 내가 가지고 있는 종교의 교리이거나 또는 그 종교의 긍극적 목표일 수도 있다. 이 책은 자신의 종교를 진리로 추구한 24명을 소개하고 있다.  그 24명을 엄격한 의미의 종교인보다는 종교사상가 또는 종교운동가라고 저자는 머릿글에서 설명하고 있다. 불교와 도교, 천주교와 개화기의 민족종교까지 대체적으로 우리 역사 속의 종교 전체를 아우른다고 하였지만, 면면히 우리 역사에서 가장 오랜 종교야말로 유교가 아니었을까라는 개인적인 생각에 저자의 시각이 일관되기는 하지만 그렇다고 공평한 시각만은 아니라는 나름대로의 생각을 가지고 이 책을 만난다.

삼국시대 이래로 고려말까지 불교는 우리 민족의 의식 깊숙이에 자리잡고 흐르는 무의식적 신앙이었다고 말 할 수 있다.  저자는 신라의 원효, 의상 같은 스님이나 고려의 의천 도선같은 훌륭한 스님들이 민중을 개도하고 민중을 교화하기 위하여 힘썼다고 하지만, 나는 이 책의 내용에도 나와있듯 나라의 안위와 귀족들의 구복 그리고 백성을 통제하기 위한 수단이었음도 부인할 수 없다고 본다. 호국불교는 조선시대의 불교만 호국불교였던 것은 아니지 않은가? 다만, 그 시절 어려운 시기에 더 도드라지게 활동한 스님들이 있었다고 생각한다. 즉, 불교는 삼국시대부터 이미 호국불교로서의 성격이 강했다.

1부, 중생과 함께 불국토를 향한 발걸음을 떼다 2부, 국난과 함께한 호국불교, 3부 초월의 꿈 민중의 신화 도교는 대부분 많이 알려져있는 인물에 대한 것이라 새롭다는 느낌은 없었다. 다만, [그러나, 현대에 들어와서 불교계는 보조(보조국사 지눌)가 실천한 중생제도의 보살행을 거의 받아들이지 않고, 일신의 안락과 명리를 추구하는 모습으로 바뀌었고, 선교일치와 화합정신은 거의 찾아볼 수 없으며 싸움질로 세월을 보내고 있는 모습을 보게 된다. 보조의 참된 정신을 되새겨보아야 할 것이다.-Page 56-]와 같은 대목에 이르러서는 역시 저자다운 꼿꼿한 기개를 느낄 수 있어 가슴이 후련해진다.

저자는 특히 4부, 근대의 여명을 밝힌 천주교와 기독교 편에서 ’함석헌’선생에 대하여 많은 부분을 할애하고 있다. 함석헌 선생은 나도 좋아하고 존경하는 분이라 특히 집중해서 읽었다. 책의 내용을 보니 저자도 함석헌 선생을 많이 존경하신 듯 하다. 하지만, 저자가 역사 속에서의 인물 평가를 감정에 치우치지 않고 냉정하고 정확하게 하려 애쓰신다는 것을 비로소 느꼈던 것도 바로 이 부분에서였다.

개화기의 종교는 아무래도 [동학]을 빼놓고는 이야기가 안 될 것이다. 요즈음 들어서 새롭게 동학에 대한 관심이 커져서 역사를 공부하는 사람들은 너나 없이 동학을 거쳐가는 것으로 알고있다. 그렇지만, 동학에 대해서 조금씩 앎의 두께가 늘어갈수록 우리가 그동안 배워왔던 [우리의 역사]라는 것이 얼마나 편협하고 한 쪽으로만 치중된 것이었는지를 알게 되어 맘이 착잡하다. 특히, 그런 착잡함을 가장 많이 가지게 하는 부분이 바로 동학이 아닐까 싶었는데 이 책  5부, 구국의 길에 횃불을 밝힌 민족종교편에서는 동학을 되짚어보고 있다. 물론 나철의 단군교와 강증산의 증산교에 대한 언급이 함께 되어있긴 하지만 곰곰 되짚어보면 이 종교들도 동학의 범주에서 멀리 떨어질 수는 없을 거같다.

이 책을 읽고 동학 교주인 최제우, 2대 교주 최시형에 대하여 그들의 인간적인 면들을 좀 더 자세하게 알게 된 것이 기쁘다. 최제우에 대해서는 동학을 공부하면서 많은 부분을 배웠다. 지난학기엔 전봉준에 대해서 집중적으로 많은 탐구를 해보기도 했지만, 최시형에 대한 것들은 상대적으로 낯설은 부분이었다. 최시형은 최제우의 두 아들 세정과 세청에게 온갖 푸대접을 받아도 노여워하지 않았으며 심지어 사모씨(최제우의 부인)까지도 "천주가 무슨 물건이냐"고 대들어도 이를 참고 견뎌냈다. 그는 스승의 가족에 대해서도 인간적 정의를 결코 저버리지 않았던 것이다.-Page246 그동안 최시형에 대한 글을 읽으며 그를 그저 조금 앞서간 또는 리더쉽이 좀 남다른 범부였지않을까 의심했는데 역시 우리와 같은 범인들은 따라갈 수 없는 경지의 인간이었다는 생각을 했던 부분이다.

3,1만세 운동 당시 태화관에 모여 만세삼창을 외쳤던 민족대표 33인 중 가장 대표로 뽑히는 손병희 선생에 대한 부분은 대단하게 알고 있었던 손병희 선생의 다른 모습에 실망스러웠다. 그가 민족대표이고 천도교 3대교주였지만 그가 과연 동학의 대통을 이은 천도교 3대교주로서  적임자였을까하는 생각마저도 했다. 물론, 최제우도 최시형도 전봉준도 그리고 손병희도 우리가 익히 알고있는 종교지도자로서의 신비로움을 많이 간직하고 있지는 않다. 그들이 우리와 아주 멀지 않은 시간 속에 존재했던 사람들이었다는 것이 어쩌면 가장 큰 이유일런지도 모르겠지만, 명월관 기생 주농파에 얽힌 인간적인 너무나 인간적인 그의 모습은 리더란 대체 어떤 사람이어야 하는 것일까라는 의문에 다시금 빠지게 했다.

불교든, 도교든, 기독교든, 또 민족종교로서의 동학이든 저자인 이이화 선생은 통털어 [모든 진리는 다르지 않다]라고 말씀하신다. 저자가 말하는 다르지 않은 진리란 무엇일까?  이 책을 읽는 내내 저자는 귀족종교, 구복신앙으로서의 종교보다는 민중을 위한 민중과 같이 하고 민중 속에서 숨 쉬는 종교에 대해서 이야기 할 때 어조를 높히고 있다. 결국, 이 책에서 말하는 모든 종교에서의 긍극적인 진리란 바로 인간에 대한 지고지순한 사랑이 아닐까라는 결론을 나름대로 유추해 본다. 민중에 대한 사랑 없이는 어느 종교도 이 땅에 아니 역사에 뿌리내릴 수 없었을 것이다. 물론 그 사랑이 변질되어 운용된 적은 있으나 종교자체의 본질이 변한적은 없으니 어떤 종교든 다르지 않은 진리, 즉 저자 이이화 선생이 말 하는 하나로 관통하는 진리는 바로 ’인간(민중)에 대한 진실된 사랑’이었다고 나는 받아들이고 싶다.

패트릭 오브라이언이 쓴 마스터 앤드 커맨더는 2003년  러셀 크로우가 주연을 맡고  폴 베타니, 빌리 보이드, 등이 출연했던 피터 위어 감독의 영화 [마스터 앤드 커맨더 : 위대한 정복자]의 원작소설이다. 물론, 원작의 줄거리와 많이 멀어지긴 했던 영화였지만 선 굵은 남자들의 이야기라고 기억하고 있는데 원작소설을 만나니 반가움이 앞선다.

영화를 보기 전 책을 읽는 것이 좋은지 아님, 영화를 본 다음 책을 읽는 것이 좋은지에 대해 영화를 좋아하는 친구들과 이야기를 나눠본 적이 있다. 저마다 그리고 영화가 어떤 것이냐에 따라 다르겠지만 대부분은 책을 보고난 후 영화를 보면 영화의 재미가 좀 떨어지는 거같다는 의견이 많았던 거같다. [악마는 프라다를 입는다], [세상의 중심에서 사랑을 외치다],[아내가 결혼했다] 근래에 본 영화들 중 책을 먼저 읽고 본 영화들이다. 전반적인 스토리에 대한 기대감은 없었지만 원작소설과 비교해가며 영화를 보는 재미도 괜찮았었다. 하지만, [마스터 앤드 커맨더 : 위대한 정복자]는 순서가 바뀌어서 영화를 이미 보고 난 후 원작소설을 만나게 되었다.  전체가 1,2편 두 권으로 된데다 페이지도 합하면 장장 600페이지가 넘는 장편소설에다 내겐 생소한 해양소설이고 18세기의 시대상을 이해해야 하는 역사소설이기도 해서  잘 이해할 수 있으려나 걱정이 되었지만, 다행히도 미리 본 영화가 쉽게 그리고 재미있게 이 책에 다가서는데 한몫을 해주었다.

저자 패트릭 오브라이언(1914~2000)은 영국의 소설가이자 저명한 번역가로 알려져 있다. 대표작 [오브리-머투린 시리즈]는 나폴레옹 전쟁 당시 영국 해군을 무대로 함장 잭 오브리와 의사이며 학자인 스티븐 머투린이 펼치는 우정 어린 모험담이다. 이 책 [마스터 앤드 커맨더]도 [오브리-머투린 시리즈]중의 하나가 아닐까라는 생각을 해 보았다.

잭 오브리가 열렬히 주종하는 토리당은 19세기 들어와 보수당으로  그 반대파인 휘그는 자유당으로 공식적인 정당 체계를 갖춘다.
왕비와의 사이에 적자가 없던 찰스 2세의 후계자로 동생인 요크 공작 제임스가 부상하자, 그를 올립하려는 파와 저지하려는 파 사이에 갈들이 일어났다. 카톨릭 교도였던 제임스의 왕위 계승을 지원했던 파가 [토리]로 결집되었으며, 비국교도 세력이었고 궁정당에 대항한다는 의미에서 지방당으로 자칭했으며 왕권신수설을 내세운 국왕의 전제를 제한하고자 했던 이들이 [휘그]가 되었다. 하지만, 휘그란 청교도 혁명 당시 스코틀랜드의 장로교파 발란군을 뜻하며, 토리란 아일랜드의 산적단을 부르는 말이라고 한다.

잭 오브리가 토리당원이었던데 비해, 부관인 제임스는 개종한 카톨릭이라는 인상을 풍긴다. 그가 아일랜드 연맹단원을 두고 고민하는 부분에서 이런 의혹은 더욱 커진다. 18세기 아일랜드의회는 천주교인(Catholic)들을 배제하면서도 발전해 갔으며 영국의회에 부속되었다. 새로운 세계로의 아일랜드인들의 끊임없는 이민행렬이 이 시기에 시작되었는데 천주교인들보다는 북쪽지역의 장로교인들 (Ulster Presbyterians)이 주류를 이루었다. 18세기말에 이르러서는 아일랜드인의 연합단체(The Society of the united Irishman)가 설립되었다. 그들은 1798년에 아일랜드 공화국의 자치성립을 목적으로 아일랜드에서 민중봉기(반란)를 도모했지만 이 반란은 실패로 돌아갔다 . 잭 오브리와 제임스 딜런의 반목과 긴장 뒤에는 이런 사회적 배경이 자리잡고 있다.

 이 소설을 이끄는 인물들은 소피호의 함장인 잭 오브리와 부관인 제임스 딜런, 군의관인 스티브 머투린이다. 하트 사령관의 눈 밖에 나서 화려한 전적에도 불구하고 제대로 대접받지 못 하는 잭 오브리는 진급에 대한 강한 욕망을 가지고 있는 사람이다. 지독한 토리당원인 잭은 소피호에 열정과 희망을 걸고 바다를 누빈다. 가난 때문에 뜻하지 않게 소피호의 군의관으로 탑승한 스티브 머투린은 당시 배에서는 드물게 의사 면허증을 소지한 스티브는 선원들을 잘 치료하는 것으로 명성을 얻는다. 잭 오브리, 제임스 딜런과 오랜 항해를 하면서 두 사람 사이의 갈등과 알력을 눈치채고 두 사람을 화해시키려 하지만, 제임스의 죽음으로 뜻을 이루지 못 한다. 스티브 머투린과 제임스 딜런은 아일랜드 연맹의 회원이기도 하다. 프랑스인으로 변장한 아일랜드 연맹 회원을 수색해 체포하라는 명령을 받고 배의 선원들을 수색 중 그들을 찾아내지만 차마 체포하지는 못 한다.  자신의 사상적 정체성에 번뇌하는 제임스는 카카푸에코호와의 교전에서 사망한다.  혁혁한 전과에도 불구하고 소피호는 형편없는 대우를 받는다.  순항 임무와 잭 오브리의 진급을 기대했던 소피호의 선원들은 지브롤터?? 딜런 대신 신참부관인 달질과 함께 우편선 호송길에 오른 잭과 소피호. 프랑스 함단에게 우편선이 나포당하고 소피호는 만신창이가 된다. 이 일로 소피호에서 내려 군법회의까지 회부 된 잭. 그러나 결국 소피호의 선원들과 잭이 얼마나 혼신의 힘을 다해 소피호를 적들로부터 지켜냈는지 밝혀지면서 결국은 무죄판결을 받게 된다. 

처음엔 너무 많은 양의 내용이 부담스러웠고 작가의 대단한 프로필이 부담스러웠다. 별로 접해본 적 없는 해양소설이라는 점도 부담으로 다가왔다. 그러나 책을 읽는 내내 지중해의 바닷바람을  맞고있다는 생생함이 전달되는 책이었다. 지중해의 바다빛깔과 검게 그을린 거친 바다 사나이들의 모습이 눈에 선하며 하얀 돛을 올린 커다란 범선의 모습과 배들이 정박해있는 항구의 모습도 상상이 되어졌다면 역자의 탁월한 번역 솜씨였다고 박수를 보내야 할 것같다.

넓은 맥락에서는 결국 진실은 모든 위선의 껍질을 벗겨내고 자신의 모습을 어떤 식으로든 드러낸다는 것을 작가는 이야기 하고 있는 거같다. 자기의 삶과 자기 삶의 터전에 대한 진실함과 깊은 애정. 그리고 열정을 잭 오브리의 소피호에 대한 사랑에서 느낀다. 자연과학자로서 그리고 의사로서 인간에 대한 애정과 새로운 학문에 대한 열정을 보여주는 스티브 머투린의 모습도 본받을 점이 많다. 비록 카카푸코호와의 교전에서 사망하지만 제임스 딜런의 자기 임무에 대한 남다른 성실성 그리고 아무렇게나 취급당하던 하급 뱃사람들에게 조차 애정과 따듯한 마음을 아끼지 않던 마음, 자기의 목표에 대한 꺾이지 않는 욕망까지도 예사롭지 않게 다가오는 것은
'소피호'라는 배안에서 온갖 세상의 일들이 벌어지고 해결되었기 때문이다.  시원하고 가슴이 탁 트이는 소설이었다. 

앤드루 데이비드슨의 소설 [가고일]을 읽으려면 우선 이탈리아의 작가 단테가 쓴 신곡에 대해서 알아야 할 것같다.
단테는 아름다운 장편 서사시인 이 [신곡]을 1308년경부터 쓰기 시작하여 죽기직전인 1321년에 완성했다. 사후의 삶을 주제로 한 이 작품에는 단테 자신이 등장인물로 나온다. 3부로 된 신곡은 지옥편, 연옥편 천국편으로 이루어져 있으며 칸토라고 부르는 장으로 다시 세분되어  연옥편과 천국편 33장그리고 지옥편34장으로 되어있다.
<신곡>에서는 숲에서 길을 잃은 단테가 온 밤을 고통스럽게 헤맨 끝에 로마 시인 베르길리우스를 만나게 된다. 베르길리우스는 단테를 다른 세계로 안내한다. 죄를 지어 악마. 괴물들으로부터 죄를 받는 사람들이 있는 9개의 층으로 이루어진 지옥을 지나고 평화와 희망의 기운이 넘쳐나는 밝은 세계인 연옥의 산꼭대기에 있는 지상낙원에 이르러 새로운 안내자인 베아트리체를 만난다. 베아트리체는 단테를 최고선의 세계로 안내하고 마침내 천사들의 무리에 둘러싸여 하나님의 옥좌에 이른 단테는 인생의 진리와 우주의 참뜻을 깨닫게 된다.

이 책에 소제목으로 붙은 [불멸의 사랑]이라는 말에 담긴 뜻도 책의 내용을 단체의 <신곡>과 줄긋기를 해보니 쉽게 이해 할 수 있다. 이 책엔 두 개의 모티브가 커다란 강을 이루어 흘러가고 있다. 하나의 강은 14세기 중세유럽을 배경으로 한 전직 수녀와 부상당한 용병의 이야기이고 다른 하나는 현제의 싯점. 자동차 사고로 지독한 화상을 입은 포르노 배우와 가고일 조각가인 한 여자의 이야기이다. 이 두개의 이야기는 전혀 상관없는 듯 흘러가지만 포르노 배우와 가고일 조각가의 현제를 이해하려면 14세기 유럽의 필경사였던 수녀와 용병이었던 남자의 이야기를 알아들을 수 있어야 한다. 이 두 이야기는 서로 서로 원인과 결과가 되어주며 필연에서 우연으로 우연에서 다시 필연으로 이어질  수 밖에 없는 두 사람의 운명을 이야기 하고 있다.

마리안네 엥겔.  그녀는 700년전 어느 수도원 문 앞에 버려진 아이였다.  크리스티나 수녀와 준더 신부의 보살핌 속에 자라나 수도원의 필사실에서 성경을 번역하고 필사하는 일을 맡고 있다. 어느날 적과의 결투에서 불화살을 맞고 심하게 화상을 입은 용병이 치료를 위해 수도원에 오게 되고 그 치료를 마리안네가 맡게 되면서 두 사람은 천천히 사랑에 빠지게 된다. 처음 사랑의 출발은 조금 위험하면서도 달콤했지만 너무 고통스럽고 슬픈 사랑의 종말이 준비되어 있는 것을 그들은 미처 알지 못 했다.

마약과 술에 절어 살던 포르노 배우인 {나}는 자동차 사고로 막 구어낸 비엔나 소시지처럼 온 몸이 익어버린 심각한 화상을 입고 사투를 벌이고 있다. 어느날 마리안네 엥겔이라는 여자가 병실로 면회를 온다. 기괴한 차림과 눈빛의 그녀는 정신과 병동에 입원한 환자라고 생각한다. [나]는 사고로 인한 치료비로 모든 재산을 거의 다 날리고 [퇴원하면 24시간 안에 자살하리라]는 맘으로 치료의 고통과 괴로움을 참고 있었는데 마리안네 엥겔이 나의 병실에 드나들기 시작하면서 자살하리라는 생각에서 벗어나게 된다. 퇴원 후 자신의 집으로 나를 데려간 마리안네는 극진히 나를 보살피고 700년전 마리안네와 나의 이야기들을 해준다. 그녀의 헌신적인 간호 덕분에 나는 점차 회복되지만 가고일을 조각하는 마리안네 엘겔은 반대로 점점 더 메말라간다. 하나님이 자기에게 준 27개의 심장이 모두 조각되면 자기는 죽을 거라고 이야기 하는 그녀는 미친 듯이 가고일 조각을 완성하고 마지막 작품으로 [나]의 조각상을 완성한 어느 저녁 정말로 바닷물속으로 걸어들어간 후 다시 돌아오지 않는다. 그녀의 재산은 모두 나에게 상속이 되었으며 그녀의 이야기를 그저 동화려니 깊이 믿지 않았던 나는 그녀가 특수 금고에 맡겨놓았던 중세의 책을 분석한 후 비로소 그녀의 이야기가 사실이었음을 알게 된다.

이 소설에서 가장 재미있는 부분은 마리안네 엥겔이 나의 마약 복용 습관을 끊기 위해 필로폰을 모두 치워버리고 금단 증산을 못 견딘 내가 사흘 동안의 혼수상태에 빠져서 보게 되는 환상 부분이다. 이 부분은 단테의 <신곡>의 지옥편이 나와 사귀르드르, 그리고 나와 프란체스코의 여정으로 다시 그려지고 있기 때문이다. 

어떤 사람들은 소설은 일부러 읽지않는다고 하는 사람들도 있다. 하지만, 나는 일부러 소설을 읽는다. 소설은 내가 어떤 글을 쓰던지 표현에 대한 자신감을 가지게 해주는 응원꾼이다. 그리고 나는 소설가들을 존경한다. 그들이 한 편의 소설을 완성하기 위하여 들이는 노력은 완성된 그들의 작품 속에 고스란히 녹아서 독자들에게 새로운 지식의 세계를 알려주는 길잡이 역활을 하기도 하고 무한한 상상력의 힘을 나눠주기도 하기 때문이다.
그런 의미에서 이 소설은 두 가지 역활에 모두 충실한 책이라고 생각한다. 화상과 정신분열증에 대하여 펼치는 그 해박하고도 전문적인 지식은 작가가 이 소설을 쓰기 위해서 나름대로 많은 준비를 했음을 보여준다. 그 전문적이고 친절한 상황 설명이 이 소설의 리얼리티를 제공하는 데 부족하지 않았음은 이 책을 읽는 사람들은 모두 알리라고 생각한다. 단테의 신곡을 전체적으로 차용했지만 그저 이야기를 가져왔다기보다는 전혀 새로운 이야기처럼 느껴지게 하는 부분들은 이 소설을 환타지 소설에 놓아야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하게 하는데 역시 작가가 많은 노력을 기울인 부분이라는 것을 느끼게 해준다.

두 권의 책을 모두 합하니 거의 650페이지에 이르는 방대한 소설이다. 그 방대한 소설이 한 번도 흩어지지 않고 스스로의 물줄기를 잘 유지하면서 바다를 향해 흐른다.  작은 실개천처럼 등장하는 사랑이야기들과 중세와 현대의 등장인물들 모두 잘 짜여진 프로그램대로  일사불란하게 움직이는 카드섹션을 보는 것같은 느낌이었다고나 할까? 멀리서 보면 환상적인 그림이지만 가까이 다가가면 카드를 손에 손에 든 사람들의 행동이 모여서 이뤄내는 그림이라는 것을 알게 되는......

사랑은 죽음만큼 강하고 지옥처럼  가혹하다

너무나 극진해서 오히려 슬프고 고통스러운 사랑을 이야기한 소설이었노라고 통속소설로만  치부해버리기엔  
너무 아름답고 심오한 소설을 한 편 만났던 시간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