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를 공부하는 것은 재미있다. 역사는 단순히 지나간 시간들 속에 일어났던 사건들의 나열과 기록만을 말하는 것은 아니다. 역사야말로 지금 우리가 있게 하는 주춧돌이며 앞으로 나아갈 방향을 가르쳐주는 화살표와 같다. 지나간 시간들을 되짚어보면 현재의 우리의 선택이 과연 올바른 것이었는지를 알 수 있으며 조금 부정확하다고 말 할지라도 앞으로의 방향을 가늠해 볼 수 있다. 그런 의미에서 ‘역사는 살아있다’라는 말이 새삼 실감나는 이즈음이다.
이럴 때 [남가몽]-조선최후의 48년이라는 책을 만난다. 南柯一夢 꿈과 같이 헛된 한 때의 부귀영화......조선을 두고 지은이가 표현한 말이다.
남가몽의 지은이인 정환덕은 이 책의 저자인 박성수의 입을 빌어 조선 마지막 시절의 48년을 이야기 해준다. 전체적 맥락으로 볼 때 남가몽의 내용 중 일부만 소개되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당시 상황 중 중요 사건을 기록한 남가몽의 한 부분과 그 부분에 대한 저자의 해석으로 구성되어 있다. 개인적으로는 저자 박성수 선생의 해석보다 남가몽 전체의 내용을 기대했었기 때문인지 책을 만났을 때의 첫 인상은 왠지 잔뜩 긴장하고 어려운 사람을 만나러 나간 자리에 기대하지 않았던 사람이 앉아있었던 느낌. 그래서 긴장이 좀 풀리면서도 약간 실망스럽던 그런 느낌이라고 할까? 한껏 정장을 차려입고 나간 자리에 차라리 청바지나 입고 왔어도 될 것을 하는 생각이 들던 순간의 그 맥 빠짐과 안도감 같은 것이었다.
정환덕은 지금의 대통령 비서실 차장만큼의 직위에 있던 사람이라고 한다. 경상도 영천의 선비인 그가 어떻게 서울로 올라왔고 어떻게 황제에게 천거되어 고종을 모시게 되었는지의 과정은 중요하지 않다. 고종황제를 측근에서 보위한 것은 15년 남짓의 시간일 뿐이지만, 역사의 가장 격동기를 고종의 곁에서 보고 겪었으며 그 일들을 남가몽이라는 일기로 남겼으니 더 없이 생생한 역사의 기록이라고 할 수 있다.
망해가는 나라와 왕실을 바라보며 정환덕은 비애를 느꼈을까? 안타까움을 느꼈을까? 한 나라의 녹을 먹는 관리로서 왕에게 충정어린 직언을 고하진 않았을까? 그는 어쨌거나 왕을 가장 가까이에 모시고 왕을 면대하던 자이기 때문이다. 책을 읽는 동안 정환덕 개인의 나라에 대한 비애에 대한 서술은 찾아보지 못했다. 어쩌면 책의 내용을 발췌한 저자의 의도가 사실의 전달에 목적이 있고 정환덕의 정서는 중요하지 않았기 때문이었는지도 모르겠다. 다만, 그가 망해가는 나라의 운명이 가슴 아팠든 그렇지 않았든 정사와 야사가 모두 아우러진 당시의 상황에 대한 적나라한 기록만으로도 이 책은 의미가 있다.
나라가 어지럽다. 이럴 때 읽는 역사관력 서적은 다른 어떤 때보다 의미심장하게 다COLOR: #000000; TEXT-INDENT: 0px; LINE-HEIGHT: 160%; FONT-FAMILY: '바탕'; TEXT-ALIGN: justify">바야흐로 망국의 길로 치닫고 있던 시절의 조선은 지금과 얼마나 다른 것일까? 부디 우리들은 그 시절로부터 멀리 달려 나왔기를 그리하여 다시는 그 난세로 돌아갈 일이 결코 생기지 않길 소망한다.
왕실의 밥상에 대한 묘사가 나온다. 음식을 고였다는 말은 지금은 제사상이나 큰 잔치상을 차릴 때 아니면 듣기 힘든 말이다. 굶어죽는 백성이 부지기수일 때 고인 수라상을 받은 임금에 대해선 화가 나지만 밤잠을 못 이루고 벌건 대낮에야 잠 들 수 있었던 생명에 대한 불안과 초조함에 대해선 인간적으로 동정을 금할 수 없다. 궁중의 여인들에 얽힌 이야기도 흥미롭다. 어느 나라 어느 시대이든 왕가에 얽힌 이야기는 가장 재미있는 이야기 거리 중에 하나일 수밖에 없다. 가까이 가 볼 수 없으니 그 어느 나라 그 어느 인물보다 훨씬 환상적이기 때문이다. 평생 왕비와 잠자리를 안 한 순종의 이야기. 그가 고자가 아니라는 단언에는 픽~웃음이 나기도 하고 엄비와 고종의 부부싸움 사건은 왕가라 해서 사람 모양새가 아주 다른 것은 아니었다는 생각을 가지게도 한다.
나라가 그렇게 어지러울 때 관리들을 어떠했는가? 당시의 정치상황과 정치인들에 얽힌 이야기 부분에서는 마치 이즈음 우리나라의 이 어지러운 꼴이 모두 그들의 잘못인 것처럼 울화가 치민다. 그 때나 지금이나 부패한 정권의 부패한 정치꾼들의 행태란 나라야 망하든 말든 백성이야 굶어죽든 말든 상관이 없는 모양이다. 그저 자기의 배를 불리는 데만 눈이 벌개서 난리를 폈으니 말이다. 전체 관직의 90%가 매관매직으로 이루어 졌다는 부분에선 기가 막힌다. 특히, 인천 월미도를 팔아먹은 부분을 읽을 때는 가슴이 답답해지기까지 했다. 그런 상황이었으니 위에서부터 그렇게 총체적으로 썩어있었으니 600년 조선이 南柯一夢
이 될 수밖에......
일어로 쓰여진 [인천부사仁川府使]에 보면 월미도 매수사건의 전모가 소상하게 기록되어 있다. 즉 일본인 요시카와란 자가 민영주, 이제순등 한국의 고위 관료에게 거액의 뇌물을 바쳐 뒤를 보게 한 뒤 김준희, 임원상 명의로 월미도 개간권을 사들였다. 이때 담당 관리인 궁내부 수륜과장 강면희는 요즘으로 말하면 청와대 비선인 셈인데, 뇌물을 먹고 월미도를 팔아먹은 것이었다. 그때 요시카와가 사들인 월미도 값은 15만 원이었다. 요시카와는 이보다 앞서 전남 목포 앞바다에 고하도를 사들이려다가 실패한 전과자였음으로 배후 조종자는 일본 공사였던게 확실하다.
조선 왕실은 뒤늦게 이 사실을 알아내고 1만6천원을 일본 공사 앞으로 보내어 개간권 말소를 요구하였으나 일본 공사는 요시카와가 말을 듣지 않는 다는 핑계로 돈을 반환했다.......힘없는 조선왕실로서는 더 이상 월미도 문제를 거론하지 못했고...[Page86]
지금이야 나라 땅을 팔아먹을 시대는 아니라고 생각된다. 땅보다 더 첨예하게?? 때문이다. 하지만, 눈에 보이지 당장 않는다고 해서 국익과 직결된 가치들을 마치 자기의 소유물인양 팔아치우는 작자들은 혹시 그 시절보다 더 늘어난 건 아닐까?
세상일이라는 것이 다 처음이 있으면 끝이 있기 마련이고 흥함이 있으면 쇠함도 반드시 있는 것이 진리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누가 하필 내가 겪는 이 시절이 쇠해가고 있거나 쇠한 시기이길 바라겠는가. 민초들이야 결국 나라를 움직이는 이들의 손으로부터 절대로 자유로울 수 없는 것 또한 사실이니 부디 정치하는 분들이 역사 관련 책을 많이 읽었으면 좋겠다라고 개인적으로 바래본다.
지나간 역사를 바로 알면 앞으로를 알 수 있다는 말......그것이 진리라는 것을 이 책을 읽으며 다시 한 번 확인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