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남대로

그는 여간해서 집에 붙어있질 못한다. 길 위에서 보내는 시간이 집에서 보내는 시간보다

많기 때문이다. 말 그대로 길 위에서 먹고 쉬고 자는 사람이다.

위의 글은 책을 넘기면 제일 먼저 만나는 책날개에서 볼 수 있는 저자 신정일에 대한 설명이다.

길 위에서 먹고 쉬고 자는 사람. 그렇다면 그는 길 위에서의 삶이 곧 생업이라는 소린가?

우선은 그런 저자의 삶이 부러웠다. 나름대로 치열한 삶이 아니고선 해낼 수 없는 일이겠지만 그래도 늘 시간에 
쫓기고 사람들과 부대껴야 하는 나 같은 사람에겐 저자의 삶의 방식은 “아~이런 삶도 있었네.”라는 새삼스러운 
감탄을 뱉어내게 한다. 이제 그가 걸었던 열나흘의 도정을 같이 따라가 본다. 
저만치 170 센티 정도의 키에 마른 체격을 한 그가 앞서가고 있다. 나는 그저 그의 발자국을 따라 가기만 하면 된다. 
이것이 바로 책이 주는 미덕이다. 힘들이지 않고 무엇인가 얻을 수 있는 것. 그것도 방금 방앗간에서 나온 쌀처럼 
잘 다듬어진 무엇이라면 조금 시간을 투자해 책을 읽는다는 것이 결코 아까울 수 없다.

우리는 간혹 책을 좀 더 쉽게 이해하기 위해서 사전적 정의가 필요할 때가 있다.

영남대로는 서울에서 영남지방으로 가는 큰 길(중략). 옛날에 영남지방의 선비들이 과거 보러 다니던 
길이자, 조선 통신사가 일본으로 건너가기 위해서 걸었던 길이다. 보부상들이 괴나리봇짐을 짊어지고 
넘었던 길이자, 임진왜란 당시 왜군이 기세 좋게 서울을 향해 진격했던 길이다. (중략) 
서울에서 부산의 동래부에 이르는, 조선시대 9대 간선로 가운데 하나였다. 960여리에 달하는 길에 
29개의 주요 지선이 이어져 있었다.(중략) 경기도와 충청도 각각 5개씩의 군현, 그리고 경상도 58개 
군현에 걸쳐 있었다.(중략) 
부산에서 대구, 문경새재, 충주, 용인을 지나는 영남대로 외에도 영천과 안동을 지나 죽령을 넘어 서울로 
가는 열엿새 길인 영남 우로가 있었다.(중략) 
대개 도로의 폭이 넓은 곳이 10미터이고 중간 길은 7미터, 좁은 길은 3미터쯤이며 길 전체의 노정은 
한강과 낙동강의 물줄기를 따라 이루어졌다. 이 길은 일제 강점기 때 건설된 서울-부산 간 신작로의 
모체가 되었고, 오늘날 교통망의 근간이 되었다. 그 밖에도 주요 도시를 연결하는 행정. 통신로의 역할, 
영남이 각 지역에서 거두어들인 세곡이나 생산물을 수송하는 기능을 하였으며, 안전한 내륙 지방에 
위치해 있어서 정치, 군사상으로도 중요한 교통로였다. 
                                                                                              (page 5-7 저자 서문에서 발췌)

이제 길을 나선다. 저만큼 신정일 선생이 걸어가고 있다. 그가 남겨놓은 발자국을 따라 걷는 길은 고즈넉하고 
느긋하다. 
정작 앞서가는 그는 이미 다리가 아프고 발바닥에 물집이 잡혔는지 모르는데 그가 앞서간 길을 따라가는 나는 
마냥 여유롭고 가볍다. 더군다나 그는 앞서가면서 뒤따라올 나 같은 사람을 위해서 자세하게 안내판과 이정표도 
세워두고 길가 나무나 돌에 지도도 새겨두고 갔다. 천천히 길을 음미하면서 주변도 좀 살펴보면서 따라오라는 
소리겠지. 천천히 찬찬히 ......

맞다. 
길은 천천히 걸어야 맛을 안다. 자동차를 타고 휙~지나다니는 길은 주어진 기능에만 충실할 뿐 공장의 컨베이어 
벨트와 다르지 않다. 빨리 지나가야 하는 길은 인간을 규격화. 표준화. 단일화 시킨다. 같은 길을 가도 빠름과 
느림의 차이가 얼마나 큰지 오늘 아침 출근길만 생각해도 금방 알 수 있다. 우린 그저 모두 다 빨라야 하는 
세상을 살고 있다. 
이 책은 그런 우리에게 ‘느림’에 대해서 끝없이 이야기 한다. 차곡차곡 밟아가는 것의 인간다움에 대해 알려준다.

속도는 기술혁명이 인간에게 선사한 엑스터시의 한 형태다. 오토바이 운전자와는 달리 뛰어가는 사람은 
언제나 자신의 육체 속에 있으며, 끊임없이 자신의 물질들, 가쁜 호흡을 생각할 수밖에 없다. 
뛰고 있을 때 그는 자신의 체중, 자신의 나이를 느끼며 그 어느 때보다도 더 자신과 자기 인생의 시간을 
의식한다. 
이때부터 그의 고유한 육체는 관심 밖에 있게 되고 그는 비신체적. 비물질적 속도, 순수한 속도 그 자체, 
속도 엑스터시에 몰입한다. 느림의 정도는 기억의 강도에 정비례하고 빠름의 정도는 망각의 강도에 
정비례한다.

                                                                                    -밀란 쿤데라 [느림]에서 인용 page143

이런 형이상학적인 이야기만 들으면서 먼 길을 가야한다면 그 길이 그다지 재미있지 않으리라는 거 너무나 뻔하다. 
해서, 간혹 이런 입담도 만날 수 있다.

“상주15Km”라고 씌인 표지판 옆에 “발기부전 일라그라”라고 씌인 현수막이 붙어있다. 발기부전 치료제인 
‘비아그라’가 폭발적인 인기를 끌고 있으니, 우리나라에서 만들어서 순전히 경상도 식으로 ‘일라그라’라는 
상표를 고안해 낸 모양이다. (Page 172)

‘여드레째 상주 금곡리에서 문경읍까지’ 부터의 여정에서부터는 아주 낯이 익다. 이쯤에서는 내가 저자보다 한걸음 
앞 서 걸어가고 싶다는 욕심이 생긴다. 우리 시댁이 경상도 예천이기 때문이다. 올해로 결혼 한지 20년이다. 
결혼하기 전 해에 예비신랑이었던 남편을 따라 시댁 어른들께 인사갔던 첫 길로부터 20년을 적어도 한 해에 
한 번씩은 꼭. 많을 때는 서너 번도 다니던 길이니 당연히 낯익고 반가울 수밖에.

이제는 이화령 터널이 생기고 중부 고속도로가 뚫려서 용인을 거쳐서 충주로 그리고 이화령을 넘어서 진남휴게소를 
거쳐 문경과 점촌을 지나 예천까지 가던 옛길로는 다니지 않게 되었지만 생각해보면 먼 길에 고된 여행길이었어도 
그 때가 여행하는 재미는 더 좋지 않았나 싶다. 
이화령 정상의 휴게소에서 사먹던 묵밥. 그리고 진남휴게소에선 늘 커피를 마시던 일하며. 

길은 단순히 빨리 다니기 위한 역할 뿐만이 아니라 그 길을 가는 사람들에게 오래도록 기억될 이야기를 만들어 
주기도 한다는 것을 이 책을 읽으며 새삼 깨닫는다. 그런 의미에서 이 책이 이야기를 만들려면 무엇이 필요한지를 
알려주는 것. 다름 아닌 ‘느림’이다. 
최소한의 직선거리로 횡단해서는 절대로 만들어질 수 없는 이야기들. 이 책은 다소 구부러지고 가파르며 좀 덜 
다듬어진 길이 가지는 아름다움을 알려준다. 

옛길이 지금의 경제논리에 맞지 않을 런지도 모르겠다. 확실히 돌아가고, 오르막과 내리막이 심한 덜 다듬어진 길은 
작금의 경제논리엔 전혀 맞지 않는다. 기능적이지도 못하다는 이유로 어쩌면 대다수의 사람들이 외면할 런지도 모른다. 
맞지 않는 경제논리와 대다수의 이익을 우선한다면서 만들어놓은 곧은 길. 곧게 뻗어나가 도시와 도시를 잇는 
고속도로들. 그리고 국도들. 많은 길, 길들.

언젠가 우리나라의 도로 점유율이 세계 최고라는 기사를 본 기억이 있다. 
길은 필요하지만 그 길이 정작 길이 필요하지 않은 부분도 지나가고 있다는 소리겠지? 
굳이 경제논리와 짝을 맞춘다면 그 길이 지나간 자리마다 길보다 먼저 부동산 투기가 자릴 잡았던 건 아니었는지
모르겠다는 안타까움도 이 책을 읽으며 새삼스럽게 해 볼 수 있었다. 

나도 길을 나서봐야 겠다는 생각이 든다.
삶이 참 사막같다. 내 앞에 문득 나타나는 길을 따라가다보면 찬물 퐁퐁 솟는 어느 이름없는 샘 하나 만났으면 좋겠다.
내 마른 영혼을 적셔서 돌아올 수 있는,

  

   

    

 

클린라이프

[중요한 것은 당신이 진짜 살고 싶은 인생이다!!!]

[버릴수록 인생은 즐거워진다]

[인생의 비계를 없애는 정리의 기술]

이 책의 물음대로 내가 진짜 살고 싶은 인생이 무엇일까? 책이 의도하는 바대로 대답을 한다면 날씬 늘씬하게 멋진 외모를 소유하는 것도 아주 틀린 답은 아닐 거 같다.

나는 클린 라이프라는 제목을 읽으면서 내 삶에 대한 좀 더 명쾌한 길잡이 책이리라 기대했었다. 버릴수록 즐거워지는 인생이라니 얼마나 시원한가? 세속적인 것들에 대한 집착을 내려놓는 맘 비우기 비법이라도 알려 주려나 생각했고 인생의 비계라는 말을 내 인생의 쓸모없는 욕심이라고 생각했었다. 뭐 아주 틀린 생각은 아니다. 뚱뚱한 몸을 버리고 가볍게 살려면 몸무게를 버려야겠지. 그리하여 날씬한 몸매를 가지는 거 비계들을 정리한 다음의 일임에 틀림없다. 그러니 명쾌한 일임에도 틀림없는 것이고.

솔직히 말하면 나는 이 책이 좀 불편하다. 물론 나도 늘어난 체중이 고민스러워서 열심히 운동을 하고 있다. 먹는 것도 일일이 신경을 쓰고 운동량도 신경써가면서 어찌 체중을 좀 줄여보려고 안간힘을 쓰는 중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책이 불편한 이유는 이렇다.

저자인 피터 월시는 <오프라 윈프리>쇼의 고정 게스트이고 정리정돈 컨설턴트로 일하고 있다고 한다. 이름을 보니 남자일 것 같은데 어쨌든 그는 [뒤죽박죽 내 인생 정리?생정리의 기술]이라는 책게끔 한다는 것이다.

모든 단락의 도입부에서 여지없이 만나게 되는 [뒤죽박죽 내 인생 정리의 기술]이라는 책 이름이 양치를 해도 빠져나오지 않고 이빨 새에 끼어있는 고춧가루처럼 불편하다.

여러 가지를 설명하고 있다. 날씬하게 건강하게 살려면 우선은 삶이 변해야한다는 저자의 말에 적극 동감한다. 하지만, 예로 들어놓은 사례들을 읽으면서 오히려 고개를 갸웃하게 된다. 이 책을 읽으면서 솔직하게 나는 미국에 대한 환상이 어느 부분 깨지는 느낌이었다. 예로 든 사람들의 생활이 전혀 상상이 되질 않았기 때문이다. 정말로 집안에 들어설 수조차 없는 난장판 속에서 사는 걸까? 그런 난장판 속에 사는 사람들은 모두 그렇게 비대해 질 수 밖에 없는 걸까? 아니, 미국사람들은 어떻게 그런 난장판 속에서 사는 걸까? 대 미국의 시민들이 말이다. 그렇다면 우리와는 별 공통점이 없어 뵈는 이 책을 계속 읽어도 되는 건가?

책 속의 저자의 말을 100% 신뢰해도 되는 걸까?

이런 불편한 이유에도 불구하고 날씬해지기 위해서 일시적인 방법을 선택하기 보다는 근본적으로 삶이 바뀌어야 하는 이유와 삶을 바꿀 수 있는 소소한 실천방법들을 자상하게 알려주는 내용은 모두 실천해보기에 어렵지 않은 방법들이라 마음에 든다.

그 중에 가장 기억에 남는 것은 ‘엄마 말씀치고 틀린 말 없다’라는 제목으로 알려주는 어른들한테 배우는 식습관이다. (1) 꼭꼭 씹어라 (2) 채소를 많이 먹어라 (3)밤에는 푹 자라 (4) 빵으로 배를 채우지 마라 (5) 입에 음식을 잔뜩 넣고 말하지 마라 (6) 눈보다 배를 믿어라. 그리고 이렇게 충고한다. 지금부터라도 엄마의 말씀을 귀담아 들어도 늦지 않았다.

결국, 저자가 말하는 클린 라이프란 뚱뚱 하지 않은 몸으로 사는 것을 말한다고 생각된다.

뚱뚱 하지 않으려면 먹는 걸 신경 써야 하고 먹는 걸 신경 쓰려면 우선 냉장고부터 정리가 필요하고 냉장고는 부엌에 있으니 부엌도 변화를 주게 되며 부엌의 변화는 온 집안의 정리정돈으로 발전되게 되고 결국 삶의 태도도 변하게 된다는 것이다.

이 책을 읽으면서 날씬해지기 위한 방법들도 좋지만, 내 평소의 생활을 반성해보는 계기가 되기도 했다. 이 책의 내용대로라면 난 그나마 나쁘게 사는 건 아니라는 생각이 든다.

 “당신의 가정은 당신 인생의 중심이다. 집은 당신이 어떤 사람인지, 어떤 인생을 선택해서   살고 있는지 보여주는 거울이다. 무질서한 집은 당신에게 문제가 있다는 증거다. 집은 당   신이 중심이 잡혀 있는 사람, 삶의 초점이 있는 사람, 의욕과 평안으로 충만한 사람이라고   느끼는 데 도움이 돼야 한다.”

이 글을 읽고 있으려니 최소한 나는 내 공간을 잘 다독이고 꾸려내고 있다는 안도감을 느껴도 괜찮을 거 같다. 좋은 가구도 없고 비싼 그릇은 없지만 나름대로 공을 들여서 다독이는 우리 집에 대한 새삼스러운 애정이 생기기도 했다. 아주 소소한 것들이 사실은 제일 중요한 것임을 알겠다.

다이어트와 집안 대청소가 무슨 상관이 있냐고? 그렇다면 이 책을 읽어보시길 권한다. 우리 삶을 바뀌게 할 아주 중요하지만 아주 소소한 방법이 이 책에  담겨있기 때문이다.

       

 

팽귄의 섬

자크 아나톨 프랑스아는 프랑스 출신의 소설가이며 이 작품 [펭귄의 섬]으로 1921년도 노벨 문학상을 수상했다. 근래에 들어 읽어본 노벨 문학상 수상작들은 자기의 문명권의 색깔을 잘 나타낸 또는 민족적 향취가 강한 작품들이 주류를 이루고 있다고 생각했다. 내가 기억하고 있는 한에서의 근래의 노벨 문학상 수상작들은 그렇다는 것이다. 하지만, 이 소설 [펭귄의 섬]은 좀 색달랐다. 인간에 대한 경멸과 풍자를 담은 책은 조나단 스위프트의 걸리버 여행기가 있고 조지 오웰의 동물농장이 있다. 걸리버 여행기는 당시 영국귀족들이 신이 보기에는 별거 아닌 것들을 (권력, 지위, 명예) 가지고 서로를 모함하며 목숨을 걸고 싸움을 하는 모습을 풍자한 소설이다. 소설 속에서 걸리버는 마지막에 걸리버 자신이 도와준 나라의 왕에게 배신을 당한다. 결국 자신의 기득권을 위하여 남을 누르는 그런 상황을 보여줌으로서 당시 사회상, 18세기의 현실을 비판하고 있는 것이다. 펭귄의 섬은 시야를 넓혀 인간의 역사 전체에 대한 통찰과 풍자와 예언을 담고 있다고 해야겠다. 동물농장은 구소련의 사회주의 배경과 스탈린 시대가지의 소련 정치 상황을 풍자한 이야기이다. 스노불로 비유된 트로츠키와 스탈린의 상징인 나폴레옹 그리고 당시 사회의 지배계층들을 돼지로 묘사 하면서 최초로 스탈린주의를 비판한 풍자소설이다.

이처럼 걸리버 여행기와 동물농장이 어느 한 시대를 겨냥한 비판이라면 펭귄의 섬은 인간 에 대한 인간의 역사에 대한 총체적 풍자와 비판이라고 할 수 있을 것 같다.

사람들은 집이 아무리 높아도 만족하지 않았다. 그래서 끝없이 높이 올려 30층, 40층짜리 건물을 지었다. 안에는 사무실, 가게, 은행 지점, 회사의 본사 사무실들이 층층이 겹쳐 있었다. 뿐만 아니라 땅 밑으로도 더욱 더 깊이 파 내려가 지하실과 터널을 만들었다.

 거대 도시에서는 1,500만 명이 낮이고 밤이고 늘 켜 놓는 전등불 밑에서 일했다. 하늘에서 내려오는 그 어떤 빛도 도시를 둘러싼 공장에서 내뿜는 연기를 꿰뚫지 못했다. 다만 공중을 가로지른 철다리 너머로 가끔 붉은 원반같이 생긴, 햇살이라곤 전혀 없는 태양이 새까만 하늘에 끼어 있는 모습이 보일 뿐이었다. 하늘에서는 그으름과 매연 때문에 생긴 비가 하염없이 내렸다.(page 393)

국가는 두 가지 커다란 덕목에 단단히 뿌리내리고 있었다. 부자에 대한 존경과 빈자에 대한 경멸이었다.(page 395)

도시 근교 공장에서 일하는 노동자들의 경우 육체적, 정신적 측면에서 매우 심하게 피폐한 상태로 인류학자들이 규정하는 전형적 빈자였다. 작업의 특성에 따라 근육 일부분이 발달했으니까 힘이 셀 거라고 착각할 수 있겠지만, 그들 모두 병적으로 허약한 기색이 역력했다.

(page 397)

그보다 더 확연하게 드러나는 위험은 거의 모든 사람들이 처한 생리학적 상황이었다......

도시에는 산호사 부족했기 때문에 인공산소를 호흡했다. 식료품을 만드는 대기업들은 매우 독창적인 화학 혼합물을 만들어 이것을 포도주, 살코기, 우유, 과일, 야채 생산에 사용했다. 그리고 다이어트를 무리하게 하여 위장과 뇌에 큰 문제를 유발시켰다.......(page399)

아쉬운 것은 작품에 대한 연보나 해설이 실려 있지 않은게 아쉽다. 아마도 출판사 측에서 본문의 내용만으로도 충분한 이해와 재미를 느끼기에 충분하다고 생각했었기 때문인지도 모르겠다. 물론 재미있게 읽었다. 근래의 노벨상 수상작품들이 가지는 난해함에서 아주 멀리 떨어져있는 이 소설은 명쾌하고 선명한 이미지와 활기찬 스토리로 독자를 끌어들이고 있다.400페이지가 넘는 분량임에도 불구하고 읽는 내내 어렵다거나 지루하다거나 하는 생각이 들지 않았다.

미래 도시에 대한 위의 부분을 읽을 때는 대체 이 소설이 언제 쓰여진 것인지 너무 궁금했다. 작가의 상상력에 다시 한 번 감탄하는 장면이었기 때문이다. 노벨상을 수상한 해가 1921년이니 대충 어림잡아서 90년 전에 이미 현대 사회의 병폐와 문제점을 꼬집어내고 있는 작가의 상상력과 예지력이 놀라울 따름이다.

이야기는 마엘 신부가 돌 여물통을 타고 전도를 하던 중 악마의 유혹에 빠져 북극에 까지 흘러갔다가 거기서 만난 펭귄들을 인간으로 착각하고 이들에게 세례를 주게 되면서 시작한다. 인간이 아닌 동물에게 준 세례 때문에 신들이 모여 회의를 하게 되고 천사인 에르마스가 낸 의견대로 하나님은 마엘 신부를 시켜 펭귄을 인간으로 변하게 한다. 이들은 펭귄이었을 때는 몰랐던 고통을 느끼게 될 것이며 그들의 운명이 아브라함의 자손에 편입되기 전보다 좋지는 않을 거라고 한다. 마엘 신부를 그들이 살던 펭귄의 섬을 끌고 9일간의 항해 끝네 브르통 해안에 도착하게 된다.

이제 인간의 역사 아니, 인간이 된 펭귄의 역사가 시작된 것이다. 몸에 걸친 것도 없고 사유 재산도 없던 시절을 지나 힘 있는 펭귄이 무소불위의 절대 권력을 휘두른 왕조의 시대를 거쳤고 공화정의 소용돌이를 지나 민주주의와 자본주의라고 하는 화려한 시절을 살아내면서 펭귄의 역사는 이제 인간의 역사와 다르지 않게 되었다. 아니, 인간의 역사와 펭귄의 역사는 나란히 시간의 궤도 위를 달리게 되었다. 처음부터 인간이었던 인간들의 추접함이나 펭귄었으나 인간이 된 펭귄들의 무례함이 전혀 다르지 않게 되었다.

특히 종교에 대한 풍자를 더욱 재미있게 읽었다. 오르브르즈가 성인으로 추앙되는 과정과 후일 그녀에 대한 신성이 부정되었다가 다시 복원되는 과정은 그야말로 종교가 범할 수 있는 오류를 꼬집어 주는 것이었다. 혁명군들에 의해 불태워진 오르브르즈의 유골대신 광장의 장사꾼 부부가 아궁이에서 대충 주워 헌 유물함에 넣어 두었던 뼈다귀가 훗날 오?야말로 세상의 눈 뜬 장님들을 비웃어주는 정말로 통쾌한 장면이었다.

작가는 건초 8만 단과 연루된 [유대인 피로]의 사건을 아주 길게 서술하면서 현대사회에서 힘없는 한 개인이 당해야 하는 권력에 의한 처절한 고통과 자신의 억울함을 변호 받을 수없는 암담함. 그리고 힘없는 민중들이 겪는 언론과 권력자들과 다수의 대중들에 의한 무차별 호도와 언론몰이에 대해 이야기 하고 있다. 작가가 살았던 시절이나 세상이 바뀐 지금의 시절이나 개인에게 힘이 없음은 다르지 않은 모양이다. 그 시절이나 지금이나 극소수 권력층의 권력을 이용한 횡포와 개인의 부를 축적하기 위한 비리, 관료주의, 업무편의주의, 그리고 권력과 호흡을 맞추는 언론과 여론에 의한 진실의 조작들......그 때나 지금이나 달라진 것들은 아무 것도 없고 우리가 살고 있는 이 시절도 소설속의 마지막을 향해 치닫고 있는 것 같아 몹시도 마음이 스산했다. 

소설의 마지막. 폭동과 폭발과 반란으로 사회는 엉망진창이 되고 세상은 뒤죽박죽이 되어버리고 만다. 결국 모든 인류는 소멸하는가? 하는 의문을 가질 때 쯤 소설 속 펭귄의 섬은 오랜 세월을 종유석 끝에 달린 물처럼 방울방울 떨어트린 후 다시 문명이 생겼으며 다시금 역사가 시작되었고 또 다시 종말일 런지도 모르는 흥함을 향해 달려가기 시작한다.

무엇이든 흥함이 있으면 쇠함도 있음을 경고하는 섬뜩함과 함께 그럼에도 불구하고 역사는 계속되리라는 희망으로 작가는 소설을 마무리 한다.

작가의 바램 대로 우리의 역사가 끝이 없기를 나도 또한 소망하는 바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