맛살라 인디아

얼마전에 중남미 문화원이라는 곳에 다녀온 적이 있다. 중남미 지역의 문화 유물을 전시해 놓은 곳이었다. 문화원을 지으신 분은 중남미 쪽에서 오랫동안 외교관으로 활동한 분이시라고 했다. 중남미 지역의 문화적 특징을 보여주는 생생한 전시물들을 보면서 현지에서 생활한 사람이 아니면 가져올 수 없는 생동감을 느꼈던 기억이 문득 이 책을 읽으면서 되살아났다.

이 책의 저자도 책이 쓸 당시 인도 주재 한국대사관에 근무하는 현직 외교관이었기 때문인지도 모르겠다.

‘맛살라’는 원래 인도의 향신료에서 나온 말이다. 지역에 따라 그 성분과 맛이 다르기는 하지만 ‘맛살라’는 계피, 고수풀, 회향, 건고추, 심황뿌리 등 여러 가지 재료를 배합해서 인도 향신료 특유의 맛을 낸다 다양한 재료가 들어가는 ‘맛살라’는 단순한 향신료의 의미를 넘어 인도문화를 대표하는 용어가 되고 있다.

인도라는 나라는 참 매력 있는 나라이다. 인도를 떠올릴 때는 정리 정돈된 규칙과 질서보다는 혼란스러움, 느림, 그리고 현재의 삶에 수긍하는 만족 같은 것들이 먼저 떠오른다. 그러면서도 요즈음 읽은 책의 영향인지 거대한 인구가 가진 경제적 가능성과 두뇌 인력, 성장의 잠재력 같은 낱말들과도 멀지 않게 느껴진다. 하지만, 여러 책의 정황으로 종합해 보아도 나에게 인도는 여전히 카스트 제도의 나라, 빈부격차가 엄청난 나라, 테러가 많은 나라라는 부정적인 이미지와 함께 차(茶)의 나라. 성자들의 나라. 갠지스강이 흐르는 나라 고행과 수행의 나라라는 이미지가 함께 존재한다. 이렇게 딱 잘라 말 할 수 없는 인도에 대한 이미지들이 인도라는 나라가 매력적일 수밖에 없도록 만드는 것은 아닐까?

막연하게 알고 있었던 인도에 대한 정보들이 이 책을 읽으면서 좀 더 선명해지는 느낌이다.

우리나라가 세계 조선 업계의 막강한 선두주자라고 알고 있었던 것을 그 뒤를 바짝 뒤쫓는 인도가 있다는 것을 알게 된다. 인도의 아이티 산업. 미국의 헐리우드에 비교해 볼리우드로 불리는 인도의 영화산업. 2014년 유인 우주선을 발사할 계획을 가질 정도의 기술력. 저렴하지만 고급 의료 써비스를 받을 수 있는 의료산업까지 인도를 움직이는 힘들에 대한 정보들은 지금껏 알고 있던 인도의 좀 더 자세한 모습을 알려준다.

인도인들은 모두 영어를 잘 한다고 나도 그렇게 알고 있었다. 인도의 공용어인 힌두어를 못해도 영어만으로 인도를 여행 할 수 있다고 하지만, 인도인들이 영어를 잘 할 거라는 것은 선입관이라고 한다. 실제로 제대로 된 영어를 구사하는 인도인은 전체 11억 인구의 10%에 불과하다고 한다. 인도인들이 영어를 잘 하는 것이 영국 신민 지배 시절의 유산이라고 알고있지만  그것은 인도의 영어 교육에 의한 것이라고 한다.

인도의 영어 교육에 대한 부분은 특히 관심을 가지고 읽은 부분이었는데 영어 공부법에 대한 자세한 설명으로는 부족했지만, 공립학교와 사립학교에서 배우는 영어의 질이 다르다는 것이 납득하기 어려웠다. 사립학교에 다니는 아이들은 제대로 된 영어를 구사하지만 공립학교를 다닌 사람들은 그야말로 ‘힝글리쉬’라고 하는 인도화 한 영어를 사용한다는 것. 그럼에도 영어로 의사표현이 가능하다는 것이 우습기도 하고 빈부격차가 심한 인도 사회의 총체적 모습을 들여다보고 있는 듯하면서도 국제학교니 차별화된 영어교육이니 하는  우리나라의 영어 교육 현실도 머지않아 인도와 같은 양상으로 나타나는 것은 아닐까하는 생각이 들기도 했다.

현실적으로 존재하는 인도의 모습들. 여전히 문제점이 많은 카스트제도와 빈부의 격심한 차이. 이로 인해 양상 되는 사회적 갈등과 문제점들에 대해서 조금 더 자세하게 알 게 되면서 근래에 인도에서 발생했던 폭탄테러에 대해서도 비로소 이해할 수 있게 되었다. 국제 정치나 외교에 대해서 우리가 이해하기엔 한 나라에 대한 정보를 습득하고 이해하는 것보다 훨씬 더 어렵고 많은 노력이 필요하다. 심상치 않은 일본의 인도 챙기기 부분에선 인도는 물론 일본에 대해서도 다시 한 번 생각해보는 기회가 되었다.

압둘 칼람 전 대통령은 정치인이기에 앞서 미사일 프로그램 개발 및 핵실험에 기여한 과학 영웅으로 그리고 청렴한 공직자의 표상으로 인도 국민들의 존경을 받는 인물이다. ‘인도 핵의 아버지’로도 불리는 칼람 전 대통령은 1983년 미사일 프로그램에 참가했으며 1998년 인도 서부 라자스탄 주 사막에서 실시된 인도의 2차 핵실험을 성공적으로 이끌기도 했다. 가난한 어부의 아들로 태어났던 그는 가난과 척박한 환경을 이겨 냈으며 학구적인 열정으로도 유명하다. 그는 하루 4시간밖에 자지 않는 끈질긴 집념과 노력으로 인도 최고 과학자의 반열에 오른 의지의 인도인이다. 청렴한 금욕주의자로 살면서 무슬림 규율을 철저히 지키는 그는 은퇴할 때 정부가 제공하는 고급 빌라를 사양하고 오래 전부터 살던 단칸방 집으로 돌아갔다고 한다. 2007년 우리나라를 방문해 당시 이명박 대통령 후보와 만나기도 했었다고 한다.

이 책을 읽으면서 인도가 부러웠던 것은 바로 압둘 칼람 같은 지도자를 가졌다는 것이었다.

인도보다 국토도 작고 인구도 적지만 인도와는 비교가 안 될 만큼 훨씬 더 앞서가는 나라가 우리나라라고 나는 생각한다. 압둘 칼람 같은 정치인이 나오길 바라는 거......나 같은 평민이 바라기엔 너무 큰일인 것일까? 하지만, 나는 그런 꿈을 버리지 않을 것이다. 인도에 대하여 공부하면서 그리고 중국에 대한 책을 보면서 일본에 대한 정보를 나름대로 공부하면서 새록새록 느끼는 것은 리더의 중요성이다. 지금 우리 시대에 정말로 필요한 사람은 보스가 아니라 리더인 것은 아닐까?

인도에 대한 전반적인 것들에 골고루 섞어서 알려주는 이 책이야말로 ‘맛살라’라는 의미에 딱 들어맞는다는 생각을 했다. ‘맛살라’ 덕분에 책 한 권을 읽고 개인의 감상을 넘어 정치에까지 생각을 넓힐 수 있으니 그야말로 ‘맛살라’다.

 

 

 

  

 

 

호모엑스페르투수(HOMO EXPERTUS)

남자는 왜 젊고 아름다운 여자에게 눈길을 주는 걸까. 여자는 왜 능력 있는 남자들을 선호하는 것일까.

이런 질문들이 호모 엑스페루투스 즉, ‘실험하는 인간’과 무슨 관계가 있을까. 이런 질문들은 실험보다는 심리학과 더 관계가 있어야하지 않을까 라고 나도 처음엔 생각했었다. 하지만, 이 책, 호모 엑스페르투스를 읽다보니 작은 것 하나에도 호기심을 느끼는 인간이 그 호기심을 해결하기 위해 한 행동이 바로 ‘실험’이었다는 것을 가르쳐준다. 이 책은 ‘인간’ ‘자연’ ‘미래사회’를 주요 테마로 나누어지지만 ‘실험’ 그리고 ‘인간’에 대한 생각을 다듬는 데 도움이 되는 이야기다. 책을 읽으면서 우리는 당연한 듯이 아주 쉽게 그리고 때로는 너무 어려운 과학 지식이라고 투덜대면서 억지로 배웠던 것들이 우리에게 지식이라는 이름으로 건네져 오기 전 발 벗고 나서 실험을 했으며 과학사에 길잡이가 된 사람들의 끊임없는 노고로 이루어진 것이었음을 알게 되었다. 무엇보다도 끝없는 호기심과 열정적인 탐구정신의 결과물들을 우리가 과학이라는 이름으로 만나고 있다는 것에 다시 한 번 감사하게 되었다.

저자인 이한음은 서울대학교 생물학과를 졸업한 뒤 실험실을 배경으로 한 과학소설을 <해부의 목적>을 써서 신춘문예에도 당선한 저자는 전문적인 과학 지식과 인문적 사유가 조화된 번역으로 우리나라를 대표하는 과학 전문 번역자로 인정받고 있다.-지은이 소개-

제목과 책의 표지가 가지는 무직함에 비해 책을 읽는 내내 너무나 즐거웠다. 결코 쉬운 내용도 아니고 내가 습득해야 할 정보의 양도 만만치 않건만 과학관련 책을 읽는 것이 즐겁다는 것은 저자의 내공이 아닐까라는 생각을 해본다.

이 책은 대략 커다란 3개의 주제와 그 아래 몇 개의 소제목으로 나누어진다. ‘1 인간의 비밀, 실험으로 풀다 2 우주에서 가장 아름다운 플라스크, 지구 3 유토피아와 디스토피아의 경계에 서다’가  커다란 주제 ‘인간’ ‘자연’ ‘미래사회’의 또 다른 이름이다. 이 중에서 나는 특히, 2. ‘우주에서 가장 아름다운 플라스크, 지구’ 부분이 재미있었다. 1987년 미국 애리조나 사막에서 거대한 실험이 시작되었다. 그것은 지구 생물권의 축소 모형을 만들겠다는 것이었는?획은 폐쇄된 공간에  생물권을 축소시켜보자는 목적에서 시작한 것이다. 겉에서 보면 거대한 유리온실이 확대된 거 같은 이 구조물 내부는 외부와 완전히 차단했다. 목표는 그 안에서 공기와 물과 자원이 순환되면서 자족적인 생태계가 유지되는 것이었다. 그래서 내부를 바다, 사막, 사바나, 우림, 습지라는 지구의 다섯가지 주요 생태계로 나누었고 농경지와 인간 거주지를 조성했으며 지구의 다양한 생물이 고루 포함될 수 있도록 고심해서 3000종을 골라 넣었다. 몇 년에 걸친 조성이 끝나고 1991년 9월 남녀 8명이 그 안으로 들어갔다. 문은 굳게 닫히고 그들은 외부와 고립된 채 자족적인 생활을 시작했다. 농사를 짓고 바다에서 고기도 잡으면서 2년을 지내는 것이 목표였다. 그렇지만 결과적으로 이 실험은 실패했다. 여러 악 조건이 겹치면서 원래의 계획대로 되지 않았던 것이다. 더군다나 연구진은 폐쇄된 공간에서 환경이 열악해질 때 사람들이 느끼는 심리 상태를 고스란히 보여주었다 서로 티격태격 타투고 파벌을 지었으며, 결국 와해상태에 이르렀지만 어쨌든 계획했던 2년을 버티고 비쩍 마른 피폐한 상태로 바깥세상으로 나왔다. 그나마 완벽하게 폐쇄된 공간은 아니었지만 외부와 단절된 공간에서 이간이 오래도록 살아갈 수 있다는 사실을 입증한 것으로 한 가지는 성공한 셈이었다. 1994년 2차 시험을 계획했고 연구 방향을 수정했지만 계획된 10개월을 다 채우지도 못 하고 끝내고 말았다. 이 실험의 실패는 오히려 자연에 대한 많은 정보를 알려주었다고 한다.

스탠퍼드 대학교의 과학자 조 베리는 바이오스피어2의우림을 연구해, 화학연료의 사용으로 대기 이산화탄소 농도가 계속 증가할  때 우림이 어떻게 반응하는지 연구했다. 예측 결과는 경악할 만했다. 현재 추정하는 것처럼 금세기 중반에 대기 이산화탄소 농도가 지금의 두 배로 늘어난다면, 우림이 더 이상 지구의 허파 역할을 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그때가 되면 우림은 이산화탄소를 흡수하는 게 아니라 내뿜게 된다.(중략)

이산화탄소 농도가 어느 수준에 도달하기 전까지는 광합성이 호흡보다 더 왕성하게 일어나지만, 그 이상이 되면 광합성이 이산화탄소 농도 증가에 더 이상 반응하지 않는 반면, 호흡률은 계속 증가하여 결국 숲은 이산화탄소를 방출하는 쪽으로 변하고 만다.(page109)

미국의 화학자인 데이비드 챈들러는 2004년 <와이어드>잡지에 ‘바이오스피어2의 열 가지 교훈’이라는 재미있는 들을 실었다. 첫째, 규모가 너무 크고 복잡해서 대규모 실험이 불가능할 것 같았던 생태학을 실험과학으로 보여주었고, 둘째, 생태적 스트레스를 받는 환경에서 산호초를 보호하고 관리할 방법을 제시했으며, 셋째, 복잡하다는 것이 더 이상 연구의 장애가 안 된다는 점을 보여주었다. 넷째, 거대한 우주 탐사선에 공기를 넣을 만한 밀폐 구조물을 만들 수 있고, 다섯째, 미치지 않고 장거리 우주여행을 할 수 있음을 보여주었다. 인간이점 덜 먹고도 살 수 있다는 교훈이 여섯 번째이고 일곱 번째는 폐기물이 재순환될 수 있다는 것이었다. 여덟 번째는 ‘밀항자’가 있는지 감시해야 한다는 점이었다. 아홉 번째는 밀봉 생태계의 가능성을 보여주었다는 점, 마지막은 의외의 일에 대비하라는 교훈이다.(page110)

바이오스피어2가 축소된 지구 생태계라는 것을 다시 한 번 되살린다면 챈들러가 말 하는 교훈 안엔 지금 우리에게 닥친 과학적 생태적 문제들이 모두 담겨있음을 알 수 있다.

바이오스피어2의 후속편이라 할 계획도 있다고 한다. 1997년에 조성을 시작한 영국의 에덴계획이조물을 짓고 지구에 존재하는 자연 서식지를 모두 모아놓는다는 계획이라고 한다. 종 다양성과 지속 가능성을 연구하는 것 주목적이라고 한다. 혹시 이렇게 닫힌 세계들이 미래 우리의 또 다른 모습일 런지도 모르지 않는가?

이쯤에서 우리는 다시 처음으로 돌아가서 그러니까 왜 여자는 능력 있는 남자를 선호하고 남자들은 젊고 아름다운 여자들에게 눈길을 주는지가 궁금해져야 할 것 같다. 정말로 왜 그런 거지? 왜 그런지에 대해선 우린 이미 너무나 많은 정보를 알고 있다. 다만, 우리는 막연하게 결론지어졌을 런지 모르는 그 사실들이 어떻게 치밀한 실험에 의해서 입증된 것인지가 궁금해져야 한다. 실험방법과 실험자에 대한 정보가 필요하다면 뭐 별 수 있겠는가? 책을 읽어봐야지. 궁금한 사람의 손으로 직접 들춰서 만나는 세상. 거기에 바로 ‘호모엑스페르투스’가 있다. 바로 당신이다.

 

야누스의 과학

과학뿐만이 아니라 세상의 모든 일은 밝은 부분과 어두운 부분으로 또는 좋은 점과 나쁜 점으로 나누어진다. 어찌 보면 서로 상극이라 절대 함께 공존할 수 없는 상황임에도 불구하고 같은 시간과 장소와 상황을 공유하는 것. 그런 일들을 표현하는 말들은 많다. 아이러니라거나 넌센스라거나 동전의 양면이라거나 또는 야누스의 얼굴이라거나. 어떤 제목을 붙이거나 마찬가지다. 지금부터 이 책이 이야기 해 주는 것은 세상이 가지고 있는 오묘한 부조리에 대한 것들이다. 다만, 그 이름 앞에는 ‘과학’이라는 제목이 하나 더 붙는다.    

야누스의 과학은 20세기 들어 눈부시게 발전한 과학 분야의 양면을 사회사적으로 들여다 본 보고서이다. 제목의 ‘야누스’가 의미하는 바대로 과학이 가지고 있는 장점과 단점을 골고루 들여다보여주는 책이기도 하다.

이 책을 출간한 사계절 출판사는 이미 나에겐 익숙한 출판사이다. 사계절에서 펴 낸 책들이 내 책꽂이에 제법 여러 권 꽂혀있다. 물론, 이 책을 선택하는 데 출판사의 이름이 한 몫 했음도 사실이다. 세상이 점점 더 기득권 중심으로 자본 중심으로 유명세 중심으로 프로필 중심으로 돌아가는 것에 대해 심하게 거부반응을 보이는 사람인 내가 책을 선택함에 있어 위의 그런 기준들을 적용했다는 것도 재미있다.

저자는 서울대학교 전자공학과를 졸업하고 대학원에서 과학사 및 과학과 철학 협동과정에서 미국기술사를 공부했다고 한다. 저자의 학문 과정 중 [과학과 철학 협동과정]에 눈이 간다. 무엇인지 깊이 있는 이야기를 들을 것 같다는 기대감이 생긴다.

[과학이 오늘날과 같은 모습으로 급격하게 성공한 데는 20세기 이전에는 존재하지 않았던 국가로부터의 막대한 재정적 지원이 결정적 역할을 했다. 또 과학이발전하면서 생겨난 새로운 정치적. 사회적. 환경적 문제들은 그 원인과 해결 방안을 둘러싸고 치열한 논쟁을 촉발시켰는데 과학은 그러한 논쟁 속에서 중요하면서도 복잡 미묘한 역할을 수행해 왔다. 이 책은 바로 이러한 과학과 사회의 관계에 초점을 맞추어 현대과학에서 중요한 의미를 지니는 몇몇 사건들에 관해 기술하고 있다-page6 서문]

저자의 말대로 [과학과 사회의 관계에 초점을 맞춘] 중요한 의미를 지니는 사건들 위주로 이 책은 이루어져 있다. 현대 과학에서 제일 먼저 핵과학과 원자폭탄을 빼 놓을 수 없다. 다음엔 컴퓨터와 인터넷. 우주개발. 합성살충제와 오존층파괴 지구온난화와 환경 호르몬 등의 환경문제. 생명공학. 그리고 망원경의 거대화와 천문학의 거대 과학화. 판구조론 혁명과 냉전 시기의 지구과학. 여성과학자들의 좌절과 도전과 함께 과학의 상업화가 가져올 새로운 위험에 대한 경고로 끝을 맺는다.

저자가 의도한 대로 [과학 분야를 전공하지 않는 학생들이 과학에 대해 알아야 할 것으로 생각되는 내용에 조금 더 가까워진] 과학 이야기를 쉽고 재미있게 만날 수 있는 책이다.

 

이 책을 읽다보면 순수과학이 어떻게 세상과 손을 잡고 ‘순수’의 이름을 잃어버렸거나 또는 벗어버렸는지 알 수 있을 것 같다. 과학기술의 기여가 전면에 등장한 것이 제1차 세계대전이라면 제2차 세계대전에서 과학기술은 전쟁의 승패 그 자체를 좌지우지하는 결정적인 요소로 부각되었다. 교전 각국은 전쟁초기부터 막대한 자금을 투입해 기존 무기의 개량과 신무기 개발에 나섰다. 전쟁이 끝난 후에도 각국의 정부들은 과학에 대한 대규모 지원을 계속했다. 세계대전이 끝난 후 냉전체제로 인해 군사적 연구개발의 필요성이 부각되기도 했지만 전쟁에 대한 놀라운 연구개발의 기여에 힘입어 정책 결정 과정에서 과학자들의 영향력이 강해졌고 냉전 초기에 과학기술 발전에 대한 낙관이 사회 전반을 풍미했던 점도 크게 작용했다.

이런 경향들은 제2차 세계대전이후 거대과학(Big Sceience)에서 정점에 도달했다. 거대과학이란 대형기기를 중심으로 수백에서 수천 명의 전문 연구자들과 엔지니어, 테크니션 들이 힘을 합쳐 하나의 연구 프로젝트를 수행하는 과학 활동을 가리킨다.

대표적으로 입자가속기를 이용하는 고에너지 물리학연구, 허블망원경과 대형망원경의 건조, 아폴로계획, 인간 게놈프로젝트 등이다. 특히, 입자가속기는 거대한 장치이며, 제작하는 데 수억 달러에 이르는 막대한 돈이 들어갔기 때문에 자금 조달을 위해서는 의회의 승인을 거쳐 연방정부의 지원을 받는 것이 절대적으로 필요하다. 이를 위해서 과학자들이 일반 대중과 국회의원들을 대상으로 프로젝트의 필요성을 설득하고 나서면서 과학이 정치화되는 양상을 보였으며, 과학자의 수가 급격히 늘면서 과학자들은 전례 없는 규모로 확장된 과학자 공동체를 경험하게 되었고 연구 집단의 규모가 커지면서 대부분의 과학 분야에서 체계적인 협동 작업이 없는 과학 활동이란 상상하기 힘들어졌다. 분업화, 위계화 경향이 강한 일부 분야에서는 과학자들이 거대 연구의 부속품과 같은 존재로 전락하면서 소외현상을 느끼는 일까지 생겼다.

이와 같은 입자가속기와 고에너지 물리학의 사례는 대형기기에 의존하는 거대과학의 양상과 특정과학 연구에 소요되는 엄청난 비용, 연구 규모의 대형화와 연구자의 소외, 기기에 대한 절대적 의존도 증대, 과학의 정치화와 그 한계와 같은 거대과학에 재재된 문제점들을 일목요연하게 보여준다.

어느 과학 기술이든 처음부터 인간생활에 해가 되는 것을 목적으로 연구되지는 않는다. 그러나 현대 과학기술은 인간을 위한 것이면서 자본가를 위한 것임도 부인할 수 없을 것 같다. 모든 현대 과학 기술의 발전에는 연구비라는 이름으로 그것을 지원해주는 자본이 있기 마련이고 그렇게 개발된 기술이 때로는 인간들에게 치명적 결함을 드러낼 경우라도 쉽게 폐기해버리지 못 하는 족쇄가 되기도 한다는 것이 화가 나고 두렵기도 했다. 제2차 세계대전 당시 널리 쓰이기 시작했던 살충제 DDT 논란에 대해 읽으면서 과학 기술과 정치와 자본의 복잡하고도 어려운 문제들을 알게 되었다. 오죽했으면 전후 진보의 상징과도 같았던 합성 살충제 DDT가 생태계와 인간에 해를 끼치는 주범으로 낙인찍히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했던 레이첼 카슨의 [침묵의 봄]을 바로 구입했으려고.

판구조론으로 설명되는 오늘날의 지구과학 연구도 20세기 중반을 휩쓸었던 냉전의 자장권을 벗어나지 못했던 분야라고 한다. 판구조론 연구를 하는 해양과학자들은 군의 지원을 받아 값비싼 장비를 갖춘 해군고속의 연구선을 타고 해양 탐사를 나갔는데 이런 군대의 ‘개입’은 자유분방했던 연구의 이점을 부분적으로 상실해야 했다고 한다. 군대의 돈을 받는 학자들은 1950년대의 메카시즘(이른바 ‘빨갱이 사냥’) 열풍 속에서 정부의 신원조회를 통과해야만 연구활동을 계속할 수 있었고 해저지도 같은 연구 성과의 일부는 군사기밀로 분류되어 논문으로도 발표할 수 없었다고 한다.

우리가 익히 알고 있는 ‘순수과학’의 처녀성이 다소 훼손된 듯한 느낌을 받았다는 게 솔직한 느낌이지만, 한 편 이 시대 자본주의의 논리가 이처럼 깊숙이 그리고 집요하게 뿌리박고 있다는 것이 과학이 가지는 두 얼굴 만큼이나 두렵게 느껴졌던 책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