복수의 심리학.

복수라니...미움이 얼마나 깊으면 이를 악물고 복수를 계획할 수 있는 걸까? 아니, 복수는 미움이라는 감정에서는 생기지 않을 것 같다. 미움보다는 증오에서 발현하는 감정이라는 것이 더 확실한 개념정리가 되는 거라고 생각된다. 그런데 미움이 얼마나 깊으면 증오가 되는 걸까?

[복수의 심리학]이란 책을 읽으면서 그동안 나는 복수를 하고 싶은 사람이 누가 있었을까? 하고 짚어보았다. 복수를 한다면 어떤 방법으로 하는 게 가장 극적이고 성공적인 복수인 걸까? 결국 이런 생각에 잠시 빠졌다가는 금새 또 머리가 복잡해지는 거 같아서 다시 책속으로 돌아가길 몇 번. 이 책을 읽고 이 나이 될 만큼 뼈에 사무치는 증오의 대상도 없었고 그래서 극적인 복수심에 몸을 떨 일도 없이 살았다는 것이 새삼스럽게 감사함으로 다가왔다.

상대방에 대한 감정이 미움이든 증오이든 그것은 소중한 것을 짓밟힌 것에 대에 분노에서 시작된다고 생각한다. 내가 소중하게 여기는 것이 심적인 것이든 물질적인 것이든 내 것에 대한 상실감과 그로 인한 모욕감이 나의 마음을 미움과 증오의 소용돌이 속으로 밀어 넣는다게 아닐까?

저자는 ‘복수’를 이렇게 정의하고 있다. ‘복수는 자신이 어떤 사람 혹은 집단으로부터 해를 입었다는 느낌에 대한 방어이다. 복수는 그들에게 자신이 받은 피해를 되갚아주고자 하는 시도이다.’(page48) 그런가하면 조금 더 광범위한 개념을 도입하기도 했다. ‘복수는 자기가 받은 피해를 보상받기 위해서도, 즉각적인 대결을 피하거나 멈추기 위해서도, 혹은 물질적인 이득을 얻기 위함도 아닌. 모든 공격적인 행동을 포함한다.(page61) 또한 복수심은 자 적대시된다는 느낌을 받을 때 쉽게 표면화 된다.(page 72)

이쯤이면 인간의 공격적인 행동을 대부분 복수심에서 비롯된 거라고 생각해야 하는 걸까? 저자는 복수심이 원인이 된 분명한 살인 형태의 예로 교내 살인 사건을 다루고 있다. 물론 우리를 놀라게 했던 조승희 사건도 예로 올라와 있다. 교내 살인을 저지른 대부분의 사람들이 우울해하거나 자기 파괴적이지 않고 또는 우울해하거나 자살 위험이 있는 사람들이고 총기를 다룰 줄 안다 하더라도 타인에게 폭력적이지는 않다고 한다. 학교에서 살인을 저지르는 사람들은 가해자들이 아니라 주로 괴롭힘을 당한 피해자라고 하면서 복수심을 유발하는 괴롭힘이 교내 살인을 저지르게 하는 수많은 살인의 핵심동력이라고 보고 있다.

얼마 전 모 초등학교에서 5학년 여학생이 등교 후 5층에서 뛰어내려 자살한 사건이 있었다. 아이는 이혼한 부모와 떨어져 할머니와 함께 살고 있었으며 평소 아이들에게 따돌림을 받았다고 한다. 너무 어린 나이에 생을 마감해버린 그 아이의 이야기를 들으면서 너무 마음이 아팠다. 그 아이는 부모와 자신을 따돌린 친구들과 세상에 대한 복수를 그런 식으로 한 거라는 생각이 들어서 더욱 마음이 아팠다. 때문에 나는 저자의 주장대로 어떤 형태로든지의

괴롭힘이야말로 복수심을 일으키는 큰 요인 중 하나라고 생각한다.

  

그런가 하면 국가와 국가끼리의 전쟁의 이유에도 복수심이 들어가 있다. 이례적인 몇 몇 사례를 제외하면 대부분 사회는 기아와 같은 생태적 압력, 사회적 압력이 심할 경우 이 상황을 바로잡기 위해서 기꺼이 전쟁을 치르려 한다는 것이다. 저자는 복수심 때문에 두 차례의 세계대전이 일어났다는 사회학자 토머스 쉐프의 주장을 인용하고 있는데(본문 page 68-69참조) 역사시간에 배웠던 전쟁의 이유를 사회학적 관점에서 바라본 것을 만나니 두 전쟁에 대해 놓쳤던 부분들이 퍼즐 맞추듯 맞춰지는 느낌이었다.

들어가는 말에서 예로 들은 샹떼 말라드의 경우는 정말로 극한 상황의 경우라고 봐야겠다. 약과 술에 취해 사고를 내고 응급조치도 안 한 채 피해자를 방치해 사망에 이르게 한 일은 증오든 복수든 용서든 이해가 안 되는 일이다. 그것은 그 나라이니 가능한 일이라고 생각한다. 우리나라 같은 경우엔 적어도 아직까지는 그런 사례가 알려진 적이 없으니 일단은 사건 자체만 두고도 역겨움을 느꼈다. 좀 비약적인 생각인지 모르겠지만, 처절한 복수극이나 극단적인 개인주의를 찾아보기 힘든 우리나라 사람들이야 말로 얼마나 선하고 아름다운 사람들인가를 잠시 되짚어보았다. 우리나라 사람들이야말로 마이클 맥걸러프가 주장하는 화합과 협동 그리고 이해에 관한한은 절대 떨어지지 않을 것 같다. 물론 정치판은 제외하고 싶다. 하지만, 그들도 기본적으로 깔고 있는 상대정당에 대한 피해의식과 복수심을 조금만 버린다면 얼마든지 화기애애한 모습을 보여줄 수 있지 않을까?

저자인 마이클 맥컬러프는 인간 본성에 복수심과 용서하는 능력이 내재한다고 역설한다. 그는 용서가 활개치고 복수가 사라져가는 세상을 위해 인간을 변화시키려 하지 말고 세상을 바꾸라고 주장한다. 바뀌는 세상이라면 적응과 발전을 배제할 수 없겠지. 복수를 적응으로 정의하는 저자는 이에 대한 그럴듯한 가능성을 제시한다. 첫째, 복수 성향은 인류의 조상에게 한 번 공격을 가했던 개체들로부터 두 번째 피해를 당하는 것을 막는 데 도움이 되었기 때문에 둘째, 복수가 애초에 잠재적 가해자들로 하여금 인류의 조상에게 가하려던 공격 행위를 포기하게 만들었기 때문에, 셋째, 복수가 인류 조상의 사회 집단에 ‘협력하지 않는’구성원들을 벌하고 공동선을 추구하는 데 적합한 기여자로 변화시키기에 유용했기 때문이다.(page87)

이쯤이면 복수심에 대해서 나름대로 고개를 끄덕거리게 된다.

결국 복수심은 인간 본성의 질병이나 결함이 아닌 인간의 참모습이자 우리 자신의 일부(page145)라는 결론에 도달하게 되며 인간 자신의 일부 속엔 복수의 진화와 더불어 용서라는 도구도 들어있다. 용서도 ‘본능’이라고 보는 저자는 정치 철학자 한나 아렌트, 작가 커트 보네거 같은 이들의 글을 인용하여 이번엔 용서에 대한 이야기를 시작한다.

‘인간사에서 용서의 역할을 발견한 사람은 나사렛 예수다.“(page179. 한나 아렌트)

‘용서는 유전적인 친족들을 지나치게 처벌하여 자멸의 길로 들어서는 것을 방지함으로써 그들의 포괄적인 적응도를 높여준다. 또 그들과 협력 상대들이 불가피하게 실수를 저지를지라도 서로 협력해나가도록 돕는다. 우리가 상상할 수 있는 가장 단순한 유기체들은 어쩌면 도덕적 범례나 종교 지도자, 정치 이론가, 소설가들의 도움을 일절 받지 않고 오로지 자연 선택적 행동만을 통해 용서를 ’발견‘하거나 ’발명‘하는지도 모른다.(page180)

용서라는 감정은 ‘화해’가 핵심이 되어야 하지 않을까? 당사자 간의 화해가 없는 용서란 아무 의미도 없지 않을까? 진정한 영서와 화해의 길로 가기 위해선 사과라는 방법이 있다.

‘제대로만 한다면 사과는 복수를 좌절시키고 용서를 유발하는 데 상당히 효과적이다. 사실 복수는 사라지고 용서가 넘치는 세상을 만들기 위한 우리의 계획에서 가장 중요한 자원은 사화다. 심지어 사과는 회복할 수 없을 정도의 상처를 주었을 때도 효과를 발휘한다.(page245)

복수심을 종식시키고 용서의 길로 가기 위한 방법으로 저자가 제시하는 것에는 사과 이외에도 적적한 보상이나 관계수복적 사법제도 그리고 복수를 통제하는 강격한 국가의 역할까지 제법 다양하다.

이 책은 참 재미있다. [복수]라는 인간의 솔직한 심리를 사회학적으로 일목요연하게 파헤쳐 정리를 해놓아서일까. 이 책을 읽으며 문득 문득 나의 내면을 다시 한 번 들여다보는 시간도 가질 수 있었다. 물론, 이 책은 무척 건조하다. 처음 이 책을 접할 땐 나는 내게 상처 준 사람들에 대한 생각으로 잠시 복잡했다. 그들에게 어떤 식으로 상처 입은 나의 내면을 살짝이라도 전달할 수 있을까하는 생각도 좀 해보았고 한동안 마음을 빼앗겼던 추억속의 인물에 대한 감정들을 정리할 수 있을 런지도 모른다는 약간 멜랑꼬리한 기대도 했었다. 하지만, 딱딱하지는 않지만 무겁지도 않은 내용들에 빠져들면서 이 책의 몹시 건조한 내용에도 불구하고 일목요연한 설명들이, 적절하게 이해를 돕는 여러 사회학자들의 인용문들이 처음부터 끝까지 책의 맥락을 놓치지 않는 길잡이가 되어주며 오히려 상처에 대한 나의 감상들을 좀 더 객관적이고 이성적으로 판단하게 해 주었다.

저자가 말 하고 싶었던 것은 무엇일까? 복수보다는 용서가 더 큰 힘을 발휘한다는 것은 대부분이 알고 있는 진리라고 얘기하고 싶다. 궁극적으로 미움보다는 화해가 반목과 배제보다는 협력이 더 발전된 인간의 모습이라는 것을 강조하고 싶었던 것을 아닐까? 그리하여 그가 처음에 이야기 했던 ‘용서가 활개치고 복수는 사라져가는 세상을 창조하기 위해 인간을 변화시키려 하지 않는, 세상을 바꾸는’방법을 알려주고 있는 것은 아닐까?

 

 

철학 갤러리

갤러리라는 이름에 걸맞게 철학사에 빛나는 많은 이름들을 만날 수 있는 책이다. 제각기 이름값만큼 자리매김을 하고 있는 이름들을 따라서 긴 회랑을 둘러본다.

회랑을 둘러보면서 무겁고 어려운 철학의 내용에 대해선 잠시 접어두어도 될 것 같다. 이 책에 정리되어 있는 복잡한 철학의 계보와 굵직굵직한 철학의 갈래들을 내 것으로 만들었다면 이 책 본래의 목적을 충실하게 달성한 것일 테니까.

이 책은 탈레스로부터 그리스 철학의 전성기의 철학자들인 소크라테스 플라톤 아리스토텔레스의 시대를 아우르는 고대 철학의 계보와 아우구스티누스와 스콜라 철학의 토마스 아퀴나스의 시대였던 중세 철학 그리고 데카르트와 스피노자, 흄, 칸트, 쇼펜하우어, 키르케고르, 마르크스로 이어지는 근대 철학을 거쳐 니체, 후설, 하이데거 베르그송을 비롯해 소쉬르, 라캉, 푸코, 들뢰즈와 같은 현대 철학까지 인간의 역사와 함께 하는 철학의 역사를 보여주고 있다.

서양 철학사에서 가장 많이 언급되는 사람이야 당연히 소크라테스와 플라톤 그리고 아리스토텔레스일 것이다. 문학사 시간에도 이들의 예술론은 정말 열심히 공부했었기에 반가운 이름이다. 플라톤의 시인 추방론과 아리스토텔레스의 영감설을 열심히 공부하던 기억이 새롭다. 고대 철학 부분을 읽으면서 ‘앎’이라는 것에 대해 새삼 생각해본다. 안다는 게 대체 뭘까? ‘앎’이 무엇이기에 다른 부분들 보다 쉽게 그리고 친근하게 이 부분을 읽게 하는 것일까? 이어서 읽을 중세 철학과는 다른 느낌. 그것이 바로 ‘앎’을 바탕으로 한 것일진대 나는 그저 그런 생각의 정리도 어렵다.

중세 철학은 좀 낯설다. 중세철학은 고대 그리스 철학과는 좀 다른 문제의식에서 출발한다. 중세 철학은 예수 그리스도와 관련된 여러 종교적 사건, 그리고 유대교의 종교적 세계관에도 뿌리를 두고 있다고 한다. 모든 중심에 신이 자리 잡고 있던 시대인 중세. 이 당시의 철학의 구현이란 신의 섭리와 목적을 온전히 파악하고 실천하는 것이었다고 책에선 소개하??면 그렇지 않아도 철학에 대해선 무지한 나에게 대부분의 중세 철학자들은 너무나 낯설다. 대부분의 철학자들도 성직자들이다. 모든 것들의 정점에 자리 잡고 있는 신덕분에 중세적 사고방식은 통일과 질서라고 생각된다. 그렇지 않아도 낯설다는 느낌이 조금 가시자 이번엔 답답하다는 느낌이 다가온다. 아마도 신 중심의 중세 사회에 대한 답답함이라는 생각이 든다. 간략한 소개를 읽으면서도 이렇게 답답함을 느끼는데 그 당신의 사람들에게 종교로 다듬어지고 운영되는 사회가 얼마나 올무 같았을까 라는 생각을 잠시 해보기도 했다. 굳이 철학이 아니라도 중세에 대한 지식들은 정말로 불편하다. 아마도 중세라는 역사에서 빠져있는 그 시대의 인간들 때문일 것이다.

철학뿐만이 아니고 인문학의 모든 분야에 늘 등장하는 인물이 있다. 바로 마르크스이다. 경제학에서 만난 그를 문학에서도 만나고 그리고 철학 속에서 또 만난다. 그가 닦아놓은 토대의 단단함과 두께가 새삼스럽게 경이롭게 다가온다. 마르크스, 스피노자, 흄, 칸트, 헤겔 등등 제법 낯익은 사람들과의 조우는 오래간만에 그동안 배우고 익힌 내 지식을 활용할 수 있는 기회라 반갑다. 헤겔......아들이 특히 관심 있어 하는 철학자라서 나도 더불어 관심을 가지게 되었는데 헤겔 부분에 이르러서 이 책이 마치 족집게 선생님처럼 간단명료하게 철학자들의 계보와 철학자들에 대한 사항을 정리해놓은 것인지 확인했다.

현대철학의 소쉬르와 라캉 그리고 들뢰즈는 문학을 공부하면서 정말로 열심히 공부하고 외웠던 철학자들이다. 그 시절 내가 조금만 더 이들에 대해 관심이 있었거나 아님 이 책과 같이 쉽게 풀어서 이들을 소개한 책을 만났더라면 글쎄......성적이 조금은 더 좋게 나오지 않았을까? 라는 엉뚱한 생각도 잠시 해보았다.

특히, 반가운 철학자는 푸코였다. 한 십년 전쯤 [이것은 파이프가 아니다]라는 푸코의 책을 읽고 받았던 새로운 인식에 대한 놀라움을 아직도 간직하고 있기 때문이다. 푸코라는 인간에 대한 사전지식은 없이 그저 [이것은 파이프가 아니다]라는 제목에 끌려 무조건 읽기 시작했던 책. 그의 존재에 대한 해석은 오래도록 숙제처럼 나를 놓아주지 않았었다. 그 후 그의 유명한 저서인 [광기의 역사]를 읽고 싶다고 생각했지만, 선뜻 시작하지 못 한 채 너무 많은 시간이 흘러갔었다. 이 책을 읽으면서 푸코 편에 올라있는 그 책 [광기의 역사]를 보니 문득 옛 다짐이 다시 돋아나는 거 같다.

이 책을 읽고 새롭게 관심을 가지게 된 하이데거에 대한 설명을 잠시 인용해 본다.

하이데거는 정보언어 대신 시어를 내세운다. 왜 시인가? 시가 존재를 드러내주는 언어이기 때문이다. 진리란 명제와 사태가 일치하는 것이 아니라 드러남, 탈 은폐이기 때문이다. 시야말로 사물이 자신의 본질을 꽃피우도록 돕는 부드러움이 지배하기 때문이다. 저 들에 핀 한 떨기 장미를 보라. 과학기술의 시대에 사는 우리는 묻는다. 장미는 왜 피는가? 장미를 더 아름답게 피게 할 수는 없을까? 이렇게 근거를 파고들어감으로써 우리는 장미를 우리의 통제 하에 두고자한다. 하이데거는 묻는다. 장미가 피는 데 무슨 이유가 필요하단 말인가? 장미의 아름다움을 노래하는 시는 아무런 정보도 주지 않지??다. 이처럼 인간이 인간답게 산다는 것은 사물이 자신의 고유한 존재를 드러내도록 돕는다는 의미이다. 인간은 자신과 사물의 고유한 존재를 드러내면서 그러한 존재의 충만함을 경험하면서 삶에 만족할 수 있는 것이다. (page 294 하이데거-5. 정보언어에서 시어로 중에서)

아무튼, 철학에 대해선 문외한이고 무조건 어렵다는 선입견을 잔뜩 부둥켜안고 있는 나 같은 사람이 읽기엔 참 좋은 철학 안내서였던 거 같다. 깊이 있는 철학 공부에 매달려 볼 생각이 있다면 이 책에서 짚어준 계보를 따라 공부를 해나가는 것도 좋을 것 같다. 그렇지 않다면 이 책에 나온 철학자들에 대한 내용들만 잘 기억해도 최소한 철학에서 낙제점수를 면할 수 있지는 않을까?

 

  

 

 

한동안을 몸과 마음이 모두 바빴다. 사는 것은 왜 그렇게 늘 팍팍하기만 한 건지 제발 이번 시즌이 지나가면 일부러라도 앓아누워 쉬고 싶다는 소망을 가져보기도 했다. 아파서 집안에만 갇혀있는 것보다 어데 가까운 곳으로라도 훌쩍 하루짜리 여행이나마 다녀오는 것이 더 나으려나? 하지만, 언제부턴지 집을 나서려면 유난히 망설이는 나의 게으름이 결론을 쉽게 내릴 수 없게 하리라는 거야 너무 뻔하다. 늘 그렇듯 잠시의 외출도 마음이 문제다 마음이......

[청춘]이라니...제목부터 왠지 풋내가 가득하다. 봄이면 겨우내 먹었던 김장김치 대신 밥상에 올라오던 하루나김치가 생각났던 건 왜일까? 너무 절궈지면 풋내가 날까봐 풀이 섞인 양념을 써서 김치를 버무리셨던 엄마. 봄에만 잠깐 얼굴을 비추던 하루나김치야 말로 청춘처럼 늘 아련하고 아쉬운 맛이었다는 걸 문득 생각해내고 혼자 빙긋이 웃어보았다.

책 표지의 하늘색이 참 마음에 든다. 사실적이면서 몽환적인 색깔. 표지를 들여다보다가 문득, 스므 살 시절 나의 비망록이 생각났다. 늘 끼고 다니던 대학노트. 채도가 낮은 초록색 한지로 정성들여 책표지를 만들었었다. 초록색 표지와 영판 다르게 안엔 오로지 붉은색으로만 채워져 있던 그 노트의 제목 [목숨]. 그 시절 나는 무엇이 그리도 목숨만큼이나 절실했던 것일까? 이 책을 읽으며 각자 바라보는 시선은 좀 다르지만 누구나 뭔가 비정형의 간절함을 품고 사는 시절이 있다는 걸 깨닫는다. 그들은 폼 나게 [청춘]이라는 책을 엮어냈고 나는 혼자 오롯이 들여다보는 [목숨]이라는 책을 가지고 있을 수 있는 시절.

장은석. 목영교. 마이큐. ‘이런 멋진 남자들이 있었구나’ 라고 생각했다. 참 멋진 남자들 그리고 멋진 청춘이다. 그들의 눈과 감각에 비춰진 일본의 모습은 그들 덕분에 더 참신하고 낭만적이며 호기심을 불러일으킨다. 왜 나는 일본이라고 하면 기껏 온천여행 밖엔 떠올리지 못 하고 살았던 것일까? 스스로 삶의 더께를 뒤집어쓰고 두툼해진 중년의 감성이 부끄러워지는 순간이었다.

젊어서 순수하지만 그렇다고 그 젊음으로 쓰여진 글들이 가볍지는 않다. 깊이? 글쎄다 그것은 좀 더 살아봐야 알 수 있는 것이니 너무 많은 것들을 이 젊은 남자들의 글에 기대하는 것은 지나친 욕심이리라는 생각을 해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진지하고 솔직한 그들의 내면이 너무 좋다. 페이지를 장식하는 사진들도 좋다. 나는 사진을 잘 모르니 작품성을 운운한다는 것은 말도 안 된다. 다만 그들이 렌즈를 통해 보여주는 일본풍경엔 젊은 그들의 마음과 여행자의 애수가 녹아 인간적이라는 느낌을 받는다. 따뜻하지만 싱그럽다.

이 책을 읽는 내내 멀리 있는 아들을 생각했다. 빨리 읽고 택배로 보내야겠다는 생각. 녀석이 이번 주에 오겠다지만 이 책은 택배로 받도록 하고 싶다. 책갈피엔 만 원짜리 문화상품권을 딱 한 장만 슬쩍 찔러놓을 생각이다. 적당히 서류봉투에 책을 담고 작은 상자에 녀석이 좋아하는 과자를 사서 채워서 보내야지. 중3 겨울방학 때 녀석은 10박11일로 일본여행을 다녀온 적이 있다. 이 책을 읽으면 뭔가 새로운 마음이 생기리라고 기대한다. 그래서 혹시라도 녀석이 다시 한 번 더 일본에 다녀와야겠다고 한다면 일단, 나의 프로젝트는 성공한 것이겠지?

광기를 지닌 사람들의 영혼은 맑고 투명하다.(-page146/나약해)

예술가란 ‘최신’을 보여주는 것이 아니라 ‘다음’을 보여주는 것(-page177/그 곳에서 본 것)

이런 구절을 만나는 건 정말로 즐겁고 행복한 일이다.

가슴을 찡하게 울리는 구절들에 나는 밑줄 쫙~그리고 돼지꼬리 땡땡 그도 모자라 별표까지.

아무쪼록 이 멋진 세 남자들의 발전을 기원한다. 그리고 다음엔 일본이 아닌 또 다른 곳에서 그들이 보낸 글을 만나볼 수 있기를 기대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