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사법 사전

*그미 : 여자의 3인칭 ‘그녀’와 같다. 일본말의 彼女보다 어감으로나 말됨으로나 훨씬 낫다. 큰 낭패를 본 필자의 경험으로 해서 나는 줄곧 ‘그미’를 쓴다. 어느 날 제지에게 “그녀는 직업이 무언가?”고 물었더니, ‘그년은’으로 새기어 크게 화를 냈다. ‘그미’의 ‘ㅁ’은 여자붙이를 뜻한다. ‘할머니. 어머니. 아주머니...’‘ㅂ’은 남자붙이다. ‘할아버지. 아버지. 아주버니...’

(page 153)

이 책에선 이런 우리말 풀이를 매 페이지마다 만날 수 있다. 아주 친절한 책이다. 수사법 사전이라는 책 제목이 무색하도록 잘 사용하지 않는 우리말을 새롭게 배운다. 몰랐던 순 우리말과의 조우는 조금 당혹스럽고 어려우면서도 반갑고 신기하다. 우리가 평소에 사용하는 대부분의 어휘가 한자어라는 것을 알면 원래 이런 우리말이 있었다는 게 놀랍기도 하고 그런 우리말에 이렇게 눈 어두우면서 글을 씁네 하는 자신이 부끄러워진다.

하지만,

오랜 세월 사회적으로도 통용되면서 자연스럽게 일상에 녹아든 한자어들을 우리말로 고쳐서 사용한다는 것은 의외로 불편하고 많은 노력을 요구하는 일이라는 생각도 든다. 수사법에 대해 자세하게 풀이해 놓은 이 책이 읽는 내내 쉽게 읽히지 않았던 이유는 좋은 의도에도 불구하고 오래 시간동안의 언어습관이 한자어를 우리말로 고쳐서 받아들여야 하는 그 불편을 견뎌내지 못 했기 때문이다.

 

수사법을 단마디로 말한다면 ‘말부림새’다. 말(언어)을 부리는 (구사하는) 시(태도.깜냥)-‘언어의 구사술(驅使術)’이다. ‘부린다’=‘구사한다’는 말은 ‘마음대로 이용한다’ ‘솜씨.기교를 멋대로 나타낸다’는 뜻이다. ‘말의 부릴심(구사력)’, 그것을 높이는 게 이 책의 목적이기도 하다. (page 11-수사법이란? 중에서)

*소크라테스의 산파술 : 소크라테스가 자기의 일을 내낳이의 조산원에 비유한 얘기. 그리스에서는 돌계집(石女-애 못낳는 여자)이나 애 낳을 능력이 없는 이가 조산원을 했는데, 그 자신이 지혜를 낳을 자신이 없음을 조산원과 같다고 보고 자신을 정신의 조산원이라 했다. 이 조산원의 일을 하는 도구가 그의 ‘문답법’이다.(page 131)

위의 글 소크라테스의 산파술에 대한 설명은 얼핏 읽기에 잘 이해가 가질 않는다. 간혹 본문 중에 이렇게 한 번에 읽히지 않는 문장들이 있어서 다시 봐야하는 수고를 하기도 했다.

이 책의 저자이신 장하늘 선생이 우리 한국문장론의 대가임에도 불구하고 일본식의 어색한 문체가 눈에 띄인다. 대부분의 한자어를 우리말로 풀이했음에도 오랜 시간이 흘렀어도 일본인들이 오염시켜 놓은 우리글의 모습까지 완벽하게 되돌려 놓기엔 무리였었나 보다.

 

크게 7장으로 나뉘어져 있다. 수사법이란?/ 뜻바꾸기/ 꼴바꾸기/ 틀바꾸기/ 에두르기/ 재미붙히기/ 글짜기 등으로 이루어진 큰 덩어리 안엔 비사치기/ 몬삼기/ 짝들기/ 눅자치기/ 너스레/ 머뭇거리기/ 거짓부리/ 변죽치기/ 빗대깨우침/ 아퀴짓기/ 늧-깔기/ 별여-들기 등과 같은 작은 단원들이 들어가 있다. 모두 글을 쓰는데 필요한 기교를 설명한 것이다. 이름하여 수사법의 여러 방편들에 대한 설명이다. 그렇지만, 일단 제목만 봐서는 무슨 소릴까 궁금증도 생기면서 혼란스럽기도 하다. 중학교 아이들 글쓰기 수업에 좀 더 쉽고 재미있게 글 쓰는 법을 알려줄 책이 없을까 내심 고심하다가 만난 책이라 무척 반가웠지만 막상 아이들은 순우리말로 된 책의 내용을 하나도 이해하지 못 했다. 오히려 영어책보다 더 어려워했고 낱말의 뜻을 아무리 설명해도 머릿속에 들어가지 않는 눈치였다. 하는 수 없이 책에서 필요한 분량만큼 아이들이 늘 만나는 교과서 어투로 수정을 했고 그래서 책을 읽는데 더 많은 시간이 필요했다. 열정과 현실과의 괴리감이 이렇게 크다니...이 책을 읽으면서 우리나라의 국어교육에 대해서 많은 생각을 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책은 글을 쓰는 사람들에게 많은 도움이 될 책임엔 분명하다. 나 역시도 나도 습관적으로 쓰던 나름대로의 문체에 대해서 다시 돌아보고 반성하는 계기가 되었다. 다만, 이 책에 실려 있는 그 많은 글쓰기 정보들을 모두 내 것으로 만들려면 늘 가까이 가지고 다니면서 연습하는 연습벌레가 되어야 할 것 같다. 글을 쓴다니 당신이나 연습 실컷 하라료? 글쎄...다음 글은 문학과는 별 상관관계가 없는 경제학 책을 읽다가 마침, 수사학에 대한 언급이 있어 옮겨본 것이다.

서구 자유 민주주의 국가의 정치가. 정책가. 혹은 사업가에게 있어 수사학은 매우 중요한 의미를 지닌다.

그 이유는 정책의 원칙과 논리가 정립되기까지의 과정은 특별한 이해관계를 공유하는  내부자들 사이에서 이루어지지만 수사학이라는 도구를 통하여 특별한 이해관계가 없는 불특정 다수의 대중에게 정책이 전달되기 때문이다. 수사학은 내부와 외부를 잇는 연결고리인 동시에 대중을 설득함으로써 대중과의 이해관계를 형성하는 도구이다.(알프레드 박-오메가 경제학 page218 중에서)

불특정 다수의 대중을 설득하는 게 중요한 것은 정책가나 정치가뿐이라고 말 할 수 있을까? 사는 매일 매일 순간순간이 누군가에게 설득당하거나 누군가를 설득해야하는 일들의 연속이라면 이 책에 실린 내용들이 좀 더 진지하게 그리고 새롭게 받아들여질 것 같다. 

 

내 마음의 여행2.

본래 마음이라는 것은

보려는 마음마저 버려야 비로소 보이는 법.

비우지 않은 그릇엔 맑은 기운을 채울 수 없다.

허나 높은 경지에 다다르기엔 너무 세속적이라

미련한 마음이 허욕을 채우고 또 채운다.

비울 수 없다면

때론 흘러가게 하는 것도 현명한 방법일 수 있다.

뭐든 가지려 하는 마음을 그대로 두면

언젠가는 흘러 넘치리라.

좁아진 마음의 자화상도

그때가 되면 자유로워지리라.

-page 175. 전북 운주 -고요함 속에 평정심이 깃든 안심사 -    

한가한 일요일의 오전시간을 음악을 들으며 보낸다. 리하르트 슈트라우스의 ‘돈쥬앙’. 일요일 오전의 조용한 분위기에 나름대로 잘 어울리는 곡이라는 생각을 잠시 해 본다. 창 밖으로 올려다 보이는 하늘엔 흰 구름들이 파란 하늘에 박혀있다. 앞산의 초록은 이제 검푸른 색으로 변해있고 새벽부터 귓가에 꽃히며 휴일 아침의 느긋한 잠을 깨우던 매미소리도 더 극성tm러워졌다. 어느 집에선가 서둘러 이사를 하는지 아침 일찍부터 소란스러운 기계음에 눈살을 찌푸리게 하더니 문득, 찾아드는 적막. 여름 한낮의 분위기를 한껏 느낄 수 있는 시간이다.

이런 날은 가벼운 차림으로 어디 바람이라도 쐬러 가야 하는 거 아닌가 하고 갈등이 생긴다. 종일해야 할일이 많아 꼼짝 않고 집에만 있기로 작정을 했는데 마음이 흔들리는 거다. 괜히 지도며 몇 몇 여행관련 책들을 뒤적여 보기도 하다가 1권에 이어 두 번째의 ‘내 마음의 여행’을 만난다. 같은 모양새의 책이면서 또 다른 모양새를 갖춘 책을 나란히 책상위에 올려놓고 바라보았다.

확실히 첫 번째 내 마음의 여행을 읽을 때의 느낌과는 좀 다른 감상들. 그것은 그간의 내 일상이나 심경이 같지 않다는 소리도 되겠지만 세상의 모든 것이 그러하듯 비슷한 것을 바라보면서 같은 감상을 가진다는 것이 쉽지 않기 때문이기도 할 것이다.

1권에서 가장 낯익은 곳은 물론 안성이었다. 몇 년 전 안성과 용인의 경계에 살았었던 이력도 있지만 남편을 따라 오가던 안성 송전 저수지 주변의 조병화 시인의 문학관인 편운제에 대한 기억이 있어서 그런 건 아니었을까 하는 생각을 오늘에서야 해본다. 지난 주 편운제에서 열린 시낭송회에서 바우덕이에 대해 열성적으로 설명을 하시던 문화해설사분의 이야기를 들으면서 그 분의 설명이 바로바로 머릿속에 들어와 박히던 이유도 이제야 생각해보니 내가 그 주변에 살았었다는 것과 함께 1권에서 보았던 이미지들이 남아있었기 때문이었나 보다.

잘 만든 사진첩 같았던 1권의 느낌에 비해 2권은 많이 대중적이고 소박하게 변화를 한 것 같다. 여전히 많은 사진들이 담겨져 있고 덩치도 조금 더 커져 있다. 가보고 싶지만 늘 마음만 떠나보내곤 하던 곳들. 전남 보길도. 경남 울진. 전남 여수. 그리고 서울 충무로. 이토록 교통이 발달한 세상에 가야겠다고 맘만 먹는다면 못 갈 것도 없을 텐데 잠시 사진 속의 풍경들을 열심히 눈에 담으며 이 책의 소제목으로 올려 있던 ‘희망’을 잠시 생각해보기도 했다. 여행은 사람에게 어떤 희망을 가지게 하는 걸까? 길 위에서 사람들은 무슨 생각을 하고 어떤 희망을 새롭게 가지고 돌아올 수 있는 거지? 아님, 열심히 찾아간 여행지의 풍광이 일상에 지친 나그네에게 위안을 주고 일상으로 돌아가 새로 부딪혀 살아볼 용기와 에너지를 준다는 소린가? 궁금하다면 내가 직접 떠나보면 될 일일 텐데.

 

사진들은 많지만 스토리 위주보다 활자의 몸을 빌려 소리에서 글로 돌아와 있는 나레이션들은 좀 더 조근조근 이야기 해주었더라면 하는 아쉬움이 남는다. 사진이 위주였는지 아님 글을 위주로 기획되었던 것인지 잠시 헥갈리던 부분이기도 했다. 사진이 위주였다면 속지의 재질을 1권 때처럼 했더라면 하는 아쉬움이 남고 글을 위한 것이었다면 아무래도 설명이 부족하다는 마음을 내려놓기가 어렵다. 전체적으로 두 명의 방송작가가 쓴 글들이라서 그런지 1권과 같은 톤의 글을 2권에서도 내내 읽는 것은 좀 지루하다는 생각도 들어서 아쉬웠고.

그렇지만, 한 꼭지가 끝날 때마다 방송 중 들려진 음악에 대한 설명을 곁들인 ‘손지명의 음악여행’은 실제로는 방송을 못 보았음에도 불구하고 책의 느낌을 좀 더 선명하게 만들어 주었다. 유난히 음악을 좋아하는 나 같은 사람에겐 정말로 멋진 소개글이다. 다만, 책을 유심히 읽다보니 같은 음반이 반복해서 소개되는 게 좀 아쉬웠다. 좀 더 다양한 음악들에 대한 정보까지 기대했다면 내가 너무 욕심이 과한 걸까?

이 책은 음악과 사진과 시 같은 글하지 않은 책이다. 오래간만에 느긋한 시간들을 보내는 휴일. 이런 휴일이야말로 ‘내 마음의 여행’처럼 편안한 책과 함께 할 수 있어서 바쁜 일상에 잠시 속도를 늦추게 하는 간이역과 같지 않을까?

그렇게 서둘러 달려갈 일이 무엇이었나.

도망치듯 달려가지 않아도

삶은 어차피 예정된 곳으로 흘러가는 것인데.

홍역처럼 번지는 그리움도 마다한 채

도대체 어디까지 달려온 건가.

삶이 천천히 흐르던 한시절

내 품에 있던 눈부신 빛들과 슬픈 욕망은

생에 깊은 생채기를 남겼다.

기억과 시간의 아름답고도 애처로운 해후.

간이역

그곳에서 사라진 것들의 긴 그림자를 만난다.

-page185 사라진 것들의 긴 그림자, 간이역의 추억-

 

러시안 디스코

이 책은 러시아 유태인 작가 블라디미르 카미너가 독일 통일 후 베를린으로 이주하여 살면서 겪은, 자신과 동족 이주민들의 여러 가지 기이하고 유쾌한 경험들을 50가지의 짤막한 이야기로 구성한 것이다.(page 4 옮긴이의 말 중)

베를린은 매우 특별한 도시이다. 그 곳에는 피자리아를 운영하기 위해 이태리어를 능숙하게 구사하는 그리스인들이 있다. 또 메스칼린환각제(Meskalinkakteen: 중남미 지방에서 자라는 선인장 종류. 환각성분이 함유되어 있고 북아메리카 인디언들의 종교의식에서 사용됨)를 사용해 영혼과 육체를 분리시키곤 하다가 결국 그 상태로 정신병동으로 이송되었던 카차가 살고 있는 곳이기도 하다.(page 6 서언 중)

아들이 방학을 하면서 아들과 함께 학기 중 읽었던 책과 교재들도 함께 집으로 돌아왔다. 아직 1학년이라 몇 권 되지 않는 전공 서적과 교양과목의 참고 서적일 것이 분명한 몇 권의 책들. 그리고 아들 녀석이 늘 가지고 다니는 [철학의 에스프레소]라는 철학 길라잡이 책과 이 책이 함께 우리 집에 왔다. 첫인상부터 ‘독특한 책’이라는 생각을 하게 된다. 선명한 빨강에 모스크바 광장이 배경으로 깔려있다. 컴퓨터 화면에서 막 빠져나온 듯 활자는 표지와 좀 박자가 맞질 않아서 당혹스러웠는데 독일에서 포켓판으로 출간된 책이라는 설명을 보니 ‘포켓판’의 이미지를 어떤 식으로든 살리고 싶어 하는 편집자의 의도였을는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기도 했다. 어쨌든, 세련된 표지의 색상과 세련되지 않은 책속 활자의 부조화가 지닌 의미도 의미였지만 아들 녀석은 대체 무슨 생각으로 이 책을 선택했던 것일까 녀석의 숨겨진 의도를 찾아내보려 책을 읽는 내내 고심하기도 했다.

옆집과 우리 집은 생활 습관이 다르다. 이 동네와 저 동네만 해도 공통적으로 다른 삶의 모습을 보여주며 같은 나라에서도 지역에 따라 사는 모습이 다르다. 사는 모습이 다르다는 것은 어떤 사건에 대해 받아들이는 태도도 다르다는 소리일 것이다. 이런 저런 책들을 읽다보면 우리와 전혀 다른 사고방식을 가진 사람들을 책 속에서 만나고 당혹스러워할 때가 있다.

특히, 유럽의 여러 나라들은 책으로도 쉽게 다가서기 힘든 무엇인가가 있다. 우리와 매우 다른 사고를 가지고 있어서 어떤 때는 책을 읽다가 현실감을 잃어버리기도 해서 내용을 이해하는 데 아주 애를 먹기도 한다.

그런 면에서 이 책은 조금 더 이해하기 어려웠다. 독일이라는 나라는 의외로 생소하고 낯설다. 일반적으로 알고 있는 상식 이외에 보통 사람들의 생활은 거의 아는 게 없어서 더 난해한가라는 생각을 해보았다. 처음 ‘옮긴이의 말’에서 이미 밝힌 바대로 지은이는 러시아 유태인 작가이며 독일 통일 후 베를린에 이주하여 살면서 겪은 자신과 동족 이주민들의 이야기를 엮은 것이 이 책이라고 했다. 그렇다면 지은이는 베를린 사람들에게 이방인이며 한동안은 불법체류자이기도 했던 거 같다. 그의 이야기엔 그런 베를린 속의 이방인들이 주인공이다. 우리나라에도 외국인들이 많이 들어와 있다. 책을 읽다 잠시 우리가 우리나라에 머무는 외국인들을 대하는 태도와 베를린 사람들이 보여주는 외국인에 대한 태도가 사뭇 다르다는 것에 생각이 닿았다. 어쩌면 지은이는 안 좋은 모습보다는 좋은 모습을 더 중점적으로 부각시켰을 런지도 모르겠다. 뭐 그렇다고 하더라도 일단은 베를린이라는 도시의 전반적인 정책들이 베를린에 거주하는 이방인들에 대해 최소한 적대적이지는 않다는 느낌을 가지게 한다.   

책 속의 이방인들은 화려하진 않지만 남루하지도 않은 생활을 한다. 물론 대부분은 베를린 속의 러시아 사람들의 이야기이다. 그들의 아주 일상적인 이야기들을 무척 재미있게 읽다보면 베를린과 베를린에 사는 이방인들과 베를린 시 전체가 훨씬 더 친근하게 느껴진다. 거기도 여기도 사람 사는 곳이다.

“새로운 것을 생각해 내지 않고, 삶 그 자체에 대한 믿음을 갖는다”는 블라디미르 카미너의 좌우명에 저절로 고개를 끄덕이게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