늑대처럼

언제부턴가 소위 자기개발서로 분류되는 책들은 잘 읽지 않게 되었다. 물론, 한동안은 그 쪽의 책에만 몰두를 했던 시절도 있었지만, 몇 종류의 자기 개발서를 읽어본 사람들은 알겠지만 대부분이 비슷한 패턴으로 이야기가 전개되며 결론도 거의 비슷하게 마무리 되고 만다. 결국 성공은 지식의 문제가 아니라 실천의 문제라는 데 생각이 닿은 후 과감하게 그 쪽 책들과 손을 끊었었다.

이 책 ‘늑대처럼’을 처음 보았을 때 자기 개발서보다는 경영 분야의 책일 거라는 생각을 했기에 별 주저 없이 이 책을 선택했었다. 하지만, 막상 읽어보니 이 책이야말로 이 살벌한 세상에서 살아남기 위한 방법을 과감 없이 직접적으로 쓴 책이었다. 자기개발서 라고 하면 손을 내두름에도 불구하고 폐부를 콕 찌르듯이 달려드는 문장들이 어떤 미사여구로 채워진 책들보다 더 확실하게 피부에 와 닿는 느낌이었다.

지식과 과학기술이 나날이 발전하는 시대에 공부를 게을리 하면 금방 뒤처진다. 기계만 업그레이드하는 것이 아니라 우리 자신도 업그레이드를 해야 한다. 기회는 스스로 우리 곁으로 찾아오지 않는다. 우리는 반드시 두드러지게 자신을 나타내 다른 사람들의 관심을 끌어야 기회를 찾아낼 수 있다. 첫걸음은 다른 사람이 당신을 발견해야 하고 인정하고 신임해야 한다. 그래야 테스트를 통과할 수 있으며 이후에야 성공의 문을 두드릴 수 있다.(page123)

이 책만큼 저자의 목소리가 높은 책은 정말 오래간만에 만나는 거 같다. 굳이 저자 소개에서 저자인 샤쯔치앙이 열정적인 사람이라고 소개하지 않았더라도 그의 글을 읽는 것만으로도 그가 가진 열정이 저절로 느껴지기 때문이다. 이 책을 읽는 내내 마치 저자를 웅변 단상에 세워두고 경청하는 것 같았다. 이만한 열정을 가지고 있으니 1996년 이후 약 300편의 시, 소설, 에세이들을 발표하지 않았을까싶다. 그의 작품을 만난 적 없으니 그의 작품들에 대한 문학적 평가는 뒤로 미루더라도 일단 글에 대한 그의 열정이 존경스러울 따름이다. 더군다나 이 책 덕분에 중국에선 난대 없는 늑대열풍이 불기도 했다고 한다.

늑대(Canis lupus)는 가장 잘 알려진 종이다. 개방지역과 삼림지역에 사는 늑대는 북아메리카와 유라시아 전역에 분포했으나 현재는 많이 멸종되어, 알래스카에서 미국 북부 초원지역에 이르는 북아메리카와 아시아에만 살고 있다. 그 수는 많은 지역에서 감소되고 있다.

늑대는 힘센 동물인데 머리가 넓적하고 다리는 건장하고 길며, 우람하면서도 좁은 어깨를 하고 있다. 작은 코요테와의 차이는 귀가 작고 코의 육질부가 넓으며, 달릴 때 꼬리를 높이 쳐든다는 점이다. 사육용 개 몇 품종을 제외하고는 개과에서 가장 큰 동물이며, 분포구역의 북쪽 부분에서 사는 어떤 수컷은 50㎝ 길이의 털이 많은 꼬리를 포함하여 몸길이가 2m에 체중은 45~55㎏이 나간다. 암컷은 수컷보다 작으며, 남쪽 지역의 아종(亞種)은 북쪽 지역의 아종보다 작다. 모피는 조밀하고 길며 부드럽다. 몸색깔은 보통 회색이지만 갈색·적색·흑색·흰색인 것도 있다.

아메리카 인디언에게는 숭배의 대상이었던 영리하고 사회적인 동물로, 수 마리에서 20여 마리의 무리를 만들며, 일생을 짝을 짓고 사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쥐·토끼·새 등을 포함한 많은 동물을 먹고 사는데, 주로 사슴·말코손바닥사슴·순록 등 대형 초식동물에 몰래 다가가 먹이를 모는 방식으로 사냥한다. 포식을 하며 약간의 털과 뼈만 남긴다. 늑대는 먹이를 사냥함으로써 대형 초식동물의 숫자를 조절하고 생존에 적합치 못한 개체들을 제거하는 기능을 한다. 또 가축을 공격하기도 하므로 사람들에게 학대를 받아왔다.

성숙할 때까지 2~3년 동안은 가족과 같이 지낸다. 12월에서 4월 사이에 새끼를 낳는데, 63일 동안의 임신기간 후에 4~14마리의 새끼를 낳는다. 가족구성원 서로 간에는 적대감이 없지만, 침입자는 받아들이지 않고 모든 가족이 새끼들을 잘 돌보아준다.( daum 백과사전)

더불어 살 때 행복하다고 이야기 하는 그가 [영원한 친구는 없고 영원한 이익만 있을 뿐이다]라고 말한다면 이율배반적이지 않을까.

속담에 ‘배부르고 따뜻하면 음탕한 욕심이 생긴다’거나 ‘배부르고 옷이 있어야 예절을 안다.’는 말이 있다. 여기서 말하는 ‘배부르고 따뜻하다’는 것은 곧 ‘이익’이 있음을 뜻한다. 인간의 모든 활동은 경제적 기반이 결정하고, 이익이 모든 것을 결정한다. 이는 자연적인 성향이므로 이를 탓해서는 안 된다.

다만 이익을 추구하는 과정이 정당해야 하고 다른 사람에게 피해를 입히는 행위는 삼가야 한다. 우리가 학교에서 교육을 받고 경쟁을 하는 이유는 어떤 의미에서는 더 많은 이익을 얻기 위해서다. 기업이 원하는 것은 더 많은 이윤을 창출하는 것이고, 국가가 원하는 것도 국가와 민족의 이익이다. 이익은 모든 인간 활동의 직접적이고 근본적인 목적이다.

“영원한 친구도 없고 영원한 적도 없다. 오직 영원한 이익만 있을 뿐이다.”

이 말은 100년 전 영국의 수상 디즈레일리가 남긴 명언이다.

그는 ‘성공하려면 이렇게 하라’ 식의 기존의 자기 개발서와 사뭇 다른 논조로 성공하기 위한 방법들을 가르쳐준다. 아니, 성공보다 먼저 이 삭막한 세상에 살아남으려면 어찌해야 하는지를 늑대의 습성에 빗대어 알려주고 있다. 하지만, 어느 심리학책보다도 인간의 내면을 정확하게 꿰뚫어보고 쓴 책이라는 생각을 하게 된다. 그래서 책의 내용들이 대부분 건조하지만 쉽게 읽힌다. 물론 중국인들에 대한 비판도 꽤나 강하게 하고 있어서 흥미로웠는데 다음이 그 예라고 할 수 있겠다.

한 다국적 회사의 사장이 연말에 공장 직원들에게 보너스를 지급하기로 했다. 보너스는 한 팀에 한 사람만 받을 수 있었다. 사장은 보너스를 받을 사람을 각 팀에서 민주적으로 선출하게 했는데 이 공장엔 일본인, 베트남인, 한국인, 중국인 팀이 있었다.

일본인들이 가장 먼저 이름을 적어 보고했는데 사장은 ‘이 사람이 바로 기술력이 뛰어나고 속도가 빠르다던 그 친구구면’이라고 중얼거렸다. 두 번째로 베트남인이 보고했다. 그들은 기술은 평범하지만 급여가 제일 낮은 사람을 선택했다. 한국인은 기술이 뒤떨어지지만 인맥이 가장 좋은 사람을 선택했다. 사장은 이에 대해 고개를 흔들었지만 어쩔 수 없었다. 중국인들은 퇴근시간이 다 되어 재차 독촉하는 사장의 비서에게 성과급을 받지 않겠다고 했다.

중국인들은 정말로 양보 하는 정신이 뛰어나군! 설마 정당한 보수도 안 받겠다 말인가?‘ 사장은 믿기지 않아 직접 중국인 팀을 찾아갔다. 그런데 5명의 중국인 팀원은 오랜 시간 토론했지만 싸움이 날 정도로 답을 얻지 못 했다. 그들은 ’나를 주지 않으면 그 누구도 받게 할 수 없다.‘는 사고방식을 가지고 있었다.(page274-275에서 발췌)

같은 한자문화권이라지만 중국과 우리의 정서가 많이 다르다는 것을 이 책에서도 느낄 수 있다. 간혹, 우리 정서와는 맞지 않는 비유나 예가 나오지만 생경하게 느껴지지 않는 것 또한 같은 문화권이라서 그렇다는 생각을 해보기도 했다. 하지만,

그가 사는 사회가 개방화의 물살을 타고 있지만 어쩔 수 없는 통제사회라는 것을 느낄 수 있는 부분들도 눈에 띈다. 미국의 콜롬비아호 참사를 예로 든 부분 같은 경우 우리가 앍고 있는 콜롬비아호 사건과는 좀 다르게 서술되어 있어서 고개를 갸웃거리기도 했는데 혹시, 미국에 대한 것은 저자가 정보가 좀 늦거나 어두운 것이 아니었을까 생각되기도 했다. 

컬럼비아 우주왕복선( - 宇宙往復船, 영어: Space Shuttle Columbia, 제식번호 OV-102)은 1981년 4월 12일 실제 임무에 투입된 최초의 우주왕복선이다. 2003년 2월 1일, 28번째 임무인 STS-107을 마치고 텍사스 주 상공에서 대기권 진입 도중 선체의 결함으로 인해 파괴되어, 승무원 7명이 전원 사망하였다.(daum 백과사전)

그는 늑대처럼 야심을 품으라고 한다. 주어진 환경에 잘 적응하기 위해 노력하면서도 누구나 가는 길은 가지 말라고 조언한다. 양이 늑대 곁으로 스스로 오지 않듯이 기회가 왔을 때 적극적으로 공격하는 자세를 가지라고 한다. 기회가 왔을 때 기회를 놓치지 않기 위해선 평소에 지혜를 길러야 한다. 그 지혜란 무엇일까? 동쪽에서 소리 지른 후 서쪽에서 공격하기, 강한 것은 피하고 약한 것을 공격하기, 길목에 매복하기 그리고 위습하면 피하기. 이쯤이면 늑대도 나도 아마 사냥감을 놓쳐 배를 곯을 일은 없을 것 같다.

책을 읽고 나서 가만히 생각해보니 인간이란 얼마나 치사한 동물인가 하는 생각이 문득 들었다. 결국 이 책은 그동안 우리가 도덕을 내세워 또는 지성인입네 하며 적당히 뒷짐을 지고 걸었지만 사실은 그 뒷춤에 더 무서운 무기를 감추고 슬금슬금 적의 눈치를 보며 일격을 가할 기회를 엿보던 그 마음을 송두리째 까발리고 차라리 감추지 말고 적의는 적의대로 전의는 전의대로 드러내라고 등을 떠미는 것 같았는데 그런 것들이 그동안 꽁꽁 숨겨두었던 치부를 들켜버린 것처럼 마음이 따끔거렸다. 더군다나 그 치사한 목록들이 책의 목록에 올라와 있다면 좀 더 세심하게 읽어봐야 하지 않을까. 최소한 늑대보다도 못 한 인간이 되지 않기 위해서 말이다.

 

등나무집 우체통

출판사에서 새 책이 왔다. 이번 주 읽을 책은 경제관련 서적이다. 제목은 재미있지만 목차를 보니 만만치 않다. 책을 들고 망설이다가 책꽂이에 일단 꽂아두기로 한다. 이미 빨리 읽고 정리를 해야 할 몇 권의 책이 순서를 기다리기 때문이다. 책을 꽂다가 문득 류종호 선생의 ‘등나무집 우체통’에 눈이 멈췄다. 받자마자 읽었으니 나름대로는 꽤 오래된 책인데 이 책이 왜 여기에 있누? 하다가 가방에 넣어가지고 나왔다. 아이들이 문제를 푸는 사이사이를 오가며 ‘등나무집 우체통’에 눈길을 보낸다. 책을 읽으며 잠시 눈길을 다른 곳에 두었다 다시 책으로 돌아가면 영락없이 읽었던 곳을 다시 읽고 있는 어려운 경제관련 서적보다 훨씬 편하게 읽을 수 있는 책이 수필이라면 거기에 한 가지 더 보태어 오늘은 아이들에게 책에 실린 농기구며 시골 풍경에 대한 이야기를 간간히 읽어주는 재미도 함께 누렸다.

류 선생님을 처음 안 것은 시집 ‘감꽃 편지’를 통해서다. 문협에 처음 가입했던 때. 나 같은 신참에겐 시집 한 권도 보내오는 이 없는 시절이었다. 우연히 ‘감꽃 편지’라는 시를 읽고는 어렵사리 류 선생님께 시집을 받고 싶다고 편지를 보냈던 걸로 기억한다. 물론, 답장으로 시집을 보내주셨지만 인사를 나눈 것은 그 후 한참을 지나 불과 몇 해 전이고 그나마 아직도 행사에서 뵈면  겨우 인사나 드리는 정도이니 이 부분에서 잠시 내 인간관계의 문제점을 다시 한 번 생각해보기도 했다.

이번 주 토요일은 초등학교 동창회가 있는 날이다. 석 달에 한 번씩 정기적으로 모임을 가져온 지가 벌써 5년쯤 된 것 같다. 초등학교를 졸업하고 오랜 시간이 흘러 친구들을 처음 만났을 때 얼마나 반갑고 기쁘던지 초등학교 졸업 앨범을 돌려가며 자신의 얼굴과 친구의 얼굴을 찾아 손으로 짚어가며 옛 추억을 되살려가며 즐거워하던 기억이 엊그제 같다. 정식으로 동창회가 형성되고 정기 모임이 자리를 잡는 사이 잘 나오던 친구가 갑자기 사라지기도 하고 몇 녀석은 그 새를 못 참아 유명을 달리해 남은 친구들을 서럽게 하기도 했다. 하지만 꾸준히 새로 찾은 친구가 모임에 얼굴을 내밀고 연락처를 알려오기도 한다. 얼마 전에도 새로운 친구가 카페에 가입을 했노라고 친구가 알려준다. 같은 반은 아니지만 나를 기억하고 있더라며 이름과 연락처를 주었다. 그 친구에게서 먼저 문자가 왔다. 초등학교 뒷산에서 함께 놀기도 하고 서로의 집으로 놀러도 다녔다고 한다. 하지만, 나는 기억나는 게 없다. 미안하다 오늘부터라도 기억을 더듬어 보겠다고 답장을 보냈지만 마음이 좀 불편하다.

나는 초. 중. 고 이른바 학창시절의 기억이 없다. 공부를 잘 한 것도 아니고 얼굴이 예쁘지도 않고 거기다 부잣집 딸도 아니라서 선생님의 눈길을 받지 않고 지낸 탓도 있지만 먼저 말 안 시키면 종일 한마디도 안 하던 숫기 없음과 주변머리 없음 탓이기도 할 거다.

하지만, 의외로 친구들은 나를 많이 기억하고 있다며 종종 이야기를 해 준다. 그래? 내가 그런 모습이 있었나? 뭐 이렇게 지나버리고 마는 시절들의 추억. 도대체 난 얼마나 많은 상처로 비벼진 아이였기에 기억을 모?을 전해주며 웃던 친구의 얼굴이 문득 떠오른다. 내 어린 시절의 못생기고 못 났던 구석을 전해 들어서 자꾸 웃음을 흘리는 건가? 혼자서 이런 저런 생각을 하다가 고개를 흔들어 버린다. 어찌어찌 힘겹게 되살리던 기억들도 다시 모래언덕이 되어 날아가 버리고 말았다.

어쨌든, 동창회를 앞두고 날 기억하고 있다는 그 친구에 대한 기억을 되찾을 수 없는 가벼운 근심이 이 책을 무심히 지나치지 못 하게 했는지도 모르겠지만, 다시 읽어본 책은 처음 이 책을 읽었을 때의 느낌보다 훨씬 더 진지하고 투명했다.

책을 좋아한다 하여 비약시켜 호평하는 건 금물이다. 단순히 책을 즐겨 읽는다는 뜻이지, 책을 읽어 범인보다 지혜롭다는 게 아니다. 사실 책을 통해 얻기도 하지만, 세상에 대한 비판적인 시각이 커지는 점도 경계할 부분이다. 왜냐하면 세상이 책에서처럼 순리적이지 않고 뒤죽박죽 갈팡질팡할 때가 많기 때문이다. 그러니 현실과 비현실 사이에서 충돌하게 되는 것이다.(page89 삼경 단상-중에서)

책을 읽으면서 내가 느끼던 그 마음을 이렇게 콕 집어서 표현한 대목을 만나면 저절로 속이 시원해지는 부분도 있고, 집배원 아저씨에 대한 회상, 고향의 고유지명과 역사적 의미 고찰, 튀밥 뻥치기, 남면주택, 뒷간 추억, 땜장이, 곡괭이질, 오디 등의 작품에선 고향에 대한 작가 개인의 감성뿐만이 아니라 우리들 마음속에서 마저 희미해진 옛 시절을 다시 떠올려보게 해준다. 주민등록 번호가 7로 시작하는 세대는 이해하지 못 하겠지만 최소한 6으로 시작하는 세대라면 충분히 공감할 수 있는 이야기들. 작가 개인의 이야기면서 또한 우리들 모두의 이야기이기 때문일 것이다.

군용텐트와 군대 물품. 악기. 만년필에 대한 부분은 작가의 정교한 시선을 만날 수 있는 좋은 기회라는 생각이 든다. 다음 블러그에 올려놓은 컬렉션 사진과 글들은 종종 만나온 터이지만 활자화된 책 속의 글로 읽어보니 그 정교함이 훨씬 더 하다는 생각이 든다. 관심 품목에 대해 어쩜 그렇게 세세하게 전문적으로 지적하고 설명할 수 있는 것인지 나처럼 매사를 대충대충 건너뛰는 사람에겐 절대로 근접할 수 없는 세계가 아닐까 싶어서 부러울 따름이다.

전체적으로 4부로 나누어진 책의 내용 중 4부엔 현재 인천 문협 회원들의 이름도 종종 눈에 띄어 반갑다. 평소에도 무척 세심한 분이라는 생각은 이미 하고 있었지만, 같은 시대를 살아가는 사람. 더군다나 맘먹으면 어떻게든 만나볼 수 있는 사람에 대한 이야기를 책을 통해서 이야기 해주고 또 그 이야기를 읽는다는 것은 책을 읽으면서 만나는 또 다른 재미라는 것도 이 책을 읽은 후 새롭게 알게 되었다.

어젯밤 고향에서 올라와 집에 있는 [조선일보]지면을 통해 금년도 신춘문예 단편소설 부문 당선작 양진채 님의 작품을 읽었습니다. 소감문 사진을 보며 ‘아, 이 분이 양진채 님이구나’했습니다.(page226 벽두문답-중)

이숙 신미자 김정길 김학균 한상렬 한미령 김기영 최제형 정승렬 서동익 선생님 같은 분들-그 밖에도 많지만-은 찾아 다니며 인사드리고 싶은 분들이고, 동료 문인으로 인식되는 김석렬 박경순 배선옥 조영숙 같은 분들은 인사만 주고받아도 기분 좋은 시인들이고, 그 외에도 여러분 있지만 이 정도로 맺고 다음으로 잇자면 언제 낯이 익은 정도로만 알고 있는 분이 행사장에서 인사를 해오면 참 기분이 좋다. 또 인사 받으시고 간단히 덕담을 주시는 분들도 단순히 여겨지지 않는다.(page237 반추-중)

저기 내 이름도 있다. 반갑고 감사할 따름이다. 더군다나 인사만 주고받아도 기분 좋은 시인이라니 만년 신입인 것처럼 사람들에게 데면데면한 나한테는 너무 후한 칭찬이라 갑자기 미안한 마음이 새삼스럽게 다시 생긴다. 이참에 나도 좀 사근사근한 사람이 되는 방법을 찾아봐야겠다.

참, 45쪽의 ‘시인 백석과 국수 삶는 여인숙에 관한 단상’이 ‘관상’으로 잘 못 인쇄 되어 있다. 그것을 팬으로 ‘단상’이라 직접 고쳐서 보내셨다. 책의 교정을 꼼꼼히 봤을 텐데 완성된 책을 다시 또 꼼꼼히 재차 확인해 봤다는 뜻일 거다. 작가의 책에 대한 책임감과 애정을 느낄 수 있어 좋았다. 하지만, 가끔 같은 소재의 이야기가 반복되어서 혹시 내가 읽었던 부분을 또 읽는가 싶어 앞장을 뒤적여본 부분이 몇 군데 있었다. 그 부분이 특별한 하자라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다만, 맘에 드는 부분은 밑줄을 긋고 책장을 접어둬 가면서 읽는 내 독서 습관의 문제라고 생각할 뿐.

언제든 이 책에 대한 느낌을 꼭 정리하고 싶었는데 오랜 숙제를 끝낸 기분이다. 아는 분의 책을 읽고 정리를 한다는 것이 생각보다 훨씬 어렵다. 그래서 이 글은 오롯이 ‘등나무집 우체통’의 독자로서만 정리를 해봤다.

독자의 한 사람으로써 아무쪼록 빠른 시일에 또 다른 류 선생님의 작품집을 기대해본다.

 

      

  

   

 

퍼즐

좀 우울한 날이다. 비가 올 것처럼 흐렸던 아침 하늘도 전형적인 가을 하늘의 얼굴을 보여주었건만 한 번 가라앉기 시작한 마음은 영 되돌려지질 않는다. 이번 주부터 오전 시간은 도서관에서 보내겠다는 스스로의 약속을 지키지 못 하는 게 자꾸 마음에 걸린다. 한 가지 일에 마음이 꽂히면 어떤 식으로든 끝장을 봐야하는 내 성격상 어쨌든 이번 주 내로 최소한 한 번은 도서관에 자리를 잡고 앉아야 이 껄끄러움이 사라질 거다. 하지만, 내일은 수요일이다. 우리 동네의 도서관은 수요일이 휴관일이다. 이 점이 나를 조금 더 우울하게 만드는 요인인 것도 같다. 맘먹었을 때 해치워야 할 일을 못 하고 있는 것 같은 답답함.

점심엔  한 달에 한 번 있는 학교 엄마들 모임이다. 서둘러 준비를 하고 나오다가 책꽂이에 눈이 간다. 어제까지는 [정약용과 그의 형제들]을 읽었다. 사 놓고 읽지 않은 책 몇 권. 그리고 날짜를 지켜서 읽어야 할 몇 권의 책들. 읽어만 놓고 미쳐 정리를 하지 못 하고 있는 또 몇 권의 책들. 그런 책들 속에 권지예의 새 소설집 [퍼즐]이 섞여 있다. 내 기억엔 [뱀장어 스튜]로 기억되는 여자. 스튜라는 음식을 우리나라의 찌개쯤으로 해석하면 될까? 언젠가 책방 친구에게 ‘스튜’라는 말이 있으니 다행이야 ‘뱀장어 찌개’ 이건 좀 그렇지? 라며 우스개 소리를 하게 했었던 그 소설가. 오늘은 약속 시간에 늦을까봐 서둘러 가방에 넣어가지고 나온 권지혜의 [퍼즐]을 종일 끼고 살았다. 우울한 날에 읽는 우울한 여자들의 우울한 이야기.  

시대가 그렇다고 했다. 다들 욕망을 감추지 않는 시대. 숨겨진 욕망을 들쑤시고 까불리는 시대. 그리하여 욕망이 사람을 삼키고 욕망끼리 어깨를 감싸 안고 돌아가는 시대. 세상의 반은 남자고 나머지 반은 여자라고 했으면서 막상 모든 욕망의 발화점과 욕망의 결과물들이 마치 여자들만의 것인 양 곁눈질로 바라보는 시대. 정말 우린 그런 시대를 살고 있는 걸까? 애인 없는 여자는 6급 장애인이라며 우리 여자들은 오늘도 밥을 입에 물고 돼지고기를 뒤집으며 하하 호호 웃었지만 이 어지러운 ‘불륜 권하는 사회’가 나에게도 불쑥 얼굴을 들이미는 것 같아 갑자기 어지러워졌다.

오늘 내 우울을 더욱 부채질 한 이 소설. 이 소설의 여자들은 모두 우리가 흔히 말 하는 ‘불륜’의 정점에 서 있거나 끈을 놓지 못 한 채 서성이고 있다. 여자들이 주인공인 소설. 그러나 그 주인공 여자들이 저마다 다른 색깔의 사랑을 풀어놓으리라는 기대 따윈 할 수 없다. 작품 해설을 쓴 강유정의 말대로 ‘욕망이라는 질병’을 앓고 있는 여자들과의 만남은 그다지 유쾌하지도 즐겁지도 않다. 그야말로 ‘내 얘기는 로맨스이고 남의 얘기는 불륜’이라는 잣대에 딱 맞춰지는 내용들. 세상이 변했는데도 여전히 ‘아들’의 굴레에서 벗어나지 못 하는 여자들의 이야기.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여자들의 입을 빌려 권지예가 풀어내는 이야기들은 재미있다. 왠지 남의 일 같지 않은 이야기들. 소설 속의 몇 몇 이야기들은 오늘 모임에서 수다거리로 올라왔던 그 이야기들과 닮아서 여전히 수다의 연장선상에 있는 것처럼 소설을 읽는다. 그리고 늘 그렇게 조금 뒤로 물러나 이야기를 들으며 빙긋 웃던 것처럼 혼자 우울한 웃음을 흘리다 생각하는 랭보의 시 한 구절

 ‘오, 성이여, 계절이여. 상처 없는 영혼이 어디 있으랴.’

“윈드, 그러케 쪼아여?”

“네. 이곳의 바람은 특별하네요.”

“윈드를 한국말로 뭐라 그래요?”

“한국말로? 바.람.”

“바. 람. 소리가 예쁘네요.”
“다른 뜻도 있어요. 부도덕하고 아름답지 못한 사랑도 바람이라 부르죠.”

“바람은 빈 곳에 부는 건데......사랑도 빈 곳을 찾고요....”(page84. 바람의 말-중에서)

이렇게 저렇게 부도덕한 사랑을 하는 여자들이 쏟아놓은 한숨에 이 책은 눅눅하다. 그런가 하면 5대 독자에게 시집와서 단지 아들이 아니라는 이유 때문에 세 번이나 낙태를 시킨 여자의 이야기 (퍼즐)는 결국 집 뒤 정원의 오래된 우물 안에 목을 매는 것으로 끝을 맺는다. 슬프고 화가 나고 그러다가 체념할 수밖에 없는 여자들의 이야기가 책을 덮고도 한참을 솰솰솰 개울물처럼 머릿속을 흘러갔다.

처음 이 책을 선택 사전지식도 없이 아니, 최소한의 책 소개 글도 안 읽어본 사람처럼 쉽게 판단을 내리고 나서는 이 책이 단편 소설집이라는 사실 자체를 머릿속에서 밀어낸 사람처럼 줄곧 미스테리 스릴러 장편 소설을 연상하고 있었으니......

나는 다만, 책을 덮고도 한참을 솰솰솰 물소리를 내며 흘러갔던 그 개울물들이 모이고 또 모여서 커다란 강이 되길 바란다. 웅웅 깊은 물소리를 내며 천천히 흘러가는 강물로 권지예를 다시 만나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