블루진, 세계경제를 입다.

부르기 쉽게 청바지라는 이름을 가진 블루진은 다양한 계층의 다양한 소비자들을 가지고 있다. 한 벌에 수십만 원을 호가하는 명품부터 시장에 가면 한 벌에 단돈 만 원이면 살 수 있는 청바지까지 천차만별의 가격만큼이나 디자인도 쓰임도 각각이며 그 다양함만큼이나 친숙하고 익숙한 의류다. 70년대 청바지는 장발과 더불어 저항문화의 아이콘이었다. 지금도 청바지의 이미지는 활동적이고 젊은 분위기가 압도적이다. 근래 들어서는 점잖은 자리에 입고 나가도 되는 블루진 코디법이 자주 잡지에 등장하는 것을 보아도 블루진이 얼마만큼 우리와 가까이에 있는 옷인지 알 수 있다.

물론, 나도 청바지 애호가다. 거의 종일을 아이들과 함께 지내다보니 예쁜 옷보다는 편한 옷을 선호하게 되었고 이 일을 한지 10년을 넘기면서 나도 모르게 청바지가 내 나름대로의 내 스타일이 되고 말았다. 10년을 한결같이 사시사철 대부분을 청바지를 입고 살지만 입을수록 매력 있는 의상이라는 것이 내 생각이다. 그렇다고 비싼 가격의 것을 구입하지는 않지만 비슷비슷한 천으로 만든 바지들이 어떻게 그리 천차만별의 가격을 형성할 수 있는지 궁금했었다. 아무리 디자인과 생산 공정의 문제, 또는 수입품이고 명품이기 때문이라고 해도 뭔가 경제적 이유가 있으리라는 궁금증은 늘 있었다.

관심을 가지고 세상을 본다는 것은 어떤 것일까? 나는 생각이 얕고 좁아서 세상을 넓게 보듬어 볼 엄두 따위는 내본 적이 없다. 다만, 그저 내 눈에 들어오는 것에 대해 조금 유심히 바라볼 따름이다. 조금 유심한 시선. 그 시선의 끝에 오늘 걸려있는 것은 청바지다.

청바지는 대부분이 면섬유로 만든다. 스판 청바지일 경우에도 면이 98%를 차지한다. 세상의 그 많은 청바지를 만들어내는 원료인 목화에 대한 이야기로부터 이 책은 시작한다.  

저자인 레이첼 루이즈 스나이더는 프리랜서 저널리스트이다. 그런 그녀의 직업 때문일까? 속도감 있는 문체가 소설을 읽는 것 같다. 책을 읽는 내내 그나마 내가 알고 있는 몇 개의 경제 용어조차도 등장하지 않는다. 그러면 청바지의 무엇으로 ‘세계경제’를 이해하라는 말이지? 이 책은 독서를 하면서 늘 좁은 시각으로만 책을 만나왔던 내 단순함에 일침을 가했던 책으로 기억될 것 같다. 세상은 이렇게 서로 얽히고 섥혀 있는 것을, 단순 명쾌함도 세상을 보는 좋은 눈임에 틀림없겠지만 이렇게 높은 곳에서 내려다보듯 총체적 안목도 중요하다는 것을 배운다.

우즈베키스탄은 전 세계 최대 목화 생산국이다. 목화 경작지에 물을 대기 위해 아랄해의 물을 사용한다. 목화는 무척 많은 양의 물을 필요로 하는 작물이다. 이것은 생태적으로 아랄해에 악영향을 끼친다. 때문에 아랄해의 물을 이용한 목화재배가 문제가 되고 있다. 우즈베키스탄과 인접해있는 아제르바이잔에서 생산된 목화의 경우 우즈베키스탄 산으로 이름을 바꿔 수출이 된다고 한다. 이는 우즈베키스탄의 지리적 조건이 고품질 목화를 기르는데 적합하다고 알려져 있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옛 소련시절 두 국가의 차별성이 드러나지 않았던 데다가 현재까지도 사람들이 구소련 연방에서 독립한 국가들의 차이점을 인식하지 못 하기 때문이기도 하다. 구소련 연방은 사람들은 그대로이고 국경 역시 그대로이고 사용하는 언어도 변화가 없다. 단지 서류상으로 많은 것이 변했을 뿐이므로 소련으로부터 해방되었음에도 불구하고 일상생활에서 여전히 자신들을 얽어매고 있는 구체제로 인해 여전히 경제적, 사회적, 정치적 혼란을 겪고 있다는 의미이다. 세계 최대 목화 생산국임에도 불구하고 이 나라들은 여전히 가난한 나라들 그룹에서 벗어나지 못 한다. 국제무역에서는 완성품에 가까워질수록 더 많은 이익을 얻는다. 바로 이 점이 아제르바이잔이나 우즈베키스탄을 아프리카와 같은 처지에 놓이게 하는 것이다. 목화는 자라지만 방적이나 방직을 위해 수확한 목화를 다른 나라로 보내야 하는 것이다. 완성품을 만들 능력 없이는 가난한 나라들은 계속 가난할 수밖에 없다.

목화는 많은 물과 일조량을 필요로 한다. 또한 목화는 수해를 입거나 말라 죽지 않지만  잘 자라지도 않고 죽는 경우도 거의 없다. 그렇지만 목화 재배 노동자들에게 목화를 재배하는 것은 무척이나 가혹한 노동이다.

그들은 허리가 굽고 늙었으며, 젊은 나이에 이가 빠졌고, 나뭇가지처럼 말라 비틀어졌다. 그들은 열심히 일하다 일찍 사망한다. 그들의 연령대는 열다섯 살에서-국가에서 정한 노동자의 최소연령이다-에서 마흔 다섯 살까지 다르지만 그들은 모두 실제보다 더 나이 들어 보인다.(page96) 

이렇게 생산된 목화들이 실이 되고 청바지를 만드는 원단으로 만들어지는 과정도 재미있다. 씨실과 날실의 직조과정 전에 실은 염색하는 과정을 거쳐야 한다. 물론 ‘완성품’ 염색을 할 수도 있는데, 이는 바느질을 끝낸 완성된 의류 형태로 만든 뒤에 염색하는 방법이다.

‘날실의 염색이 끝나면 틀 안에서 한 줄 한 줄 분리되어 전분과 폴리비닐 알코올 또는 강도를 높이기 위해 카르복시메틸셀룰로오스를 첨가하는 사이징 과정을 거친다. 그 후 파라핀을 이용해 실을 부드럽고 윤기 있게 한다. 때로는 실의 강도를 높이고 염색이 잘 되게 하기 위해 소다 처리법인 머서 가공을 하기도 하는데, 가성 소다에 실을 담근 후 산성으로 중화하는 방식이다. 실은 분리되어 가지런하게 정렬 가정을 거쳐 천으로 만들어질 준비를 한다. 이 과정 때문에 어떤 이들은 유기농 목화란 그저 회사들의 심리적 만족을 위한 것일뿐이라고 비판한다. 목화가 포장 밖으로 꺼내어진 이후 일어나는 모든 과정을 살펴보면 ’유기농‘에 어울리는 과정이란 없다.(page146)

데님천의 마무리 과정에서 스톤워싱과 같은 마무리 과정은 가장 환경파괴적인 과정이다. 의류에 다양한 효과를 내기 위해서 다양한 화학약품을 분사하거나, 과도한 염색을 하거나, 레진으로 코팅해 오븐에 구어내기도 한다. 주름과 접힌 부분을 코팅하는 데 흔히 사용되며, 이 같은 자국들을 고정시키고 색깔을 내는 기능을 하는 폴리머 레진은 독성 물질인 포름알데히드를 함유하고 있다(page 148)

세탁 과정에 종사하는 노동자들은 매일 노출되는 수많은 화학 물질로부터 자신들을 보호하기 위해 특수 인공 호흡기, 부츠, 작업복, 장감, 보안경 등 여러 가지 장비를 구비해야 한다. 이름을 들어도 도무지 정체를 알 수 없는 화학물질이 담긴 수많은 양동이들이 공장 안에 줄을 지어 있었고 천장의 금속 봉에 달린 스프레이는 청바지 위로 보라색 액체-과망간산칼륨이었다-를 뿌려대고 있었다.(page 149)

이쯤이면 청바지에 대한 환상이 거의 깨지는 느낌이다. 뒷부분에 이어질 아시아의 저개발 국가에서의 청바지 생산라인과 그곳 노동자들의 실태에 관한 부분도 가슴이 답답해진다.

저자가 캄보디아에서 만난 여성 노동자 나트와 라이의 이야기는 마치 ‘아름다운 청년 전태일’의 한 장면을 연상시키기도 하고 산업화 시대 공단을 가득 채웠던 우리들의 ‘공순이 언니’들이 생각나 가슴이 아팠다. 어쩜 세상이 달라졌다고 하는데 세상은 계속 발전했고 마치 문명의 최대 정점에 있는 것처럼 화려하고 화사하기만 한데 다른 한 쪽의 세상엔 우리의 60년대, 70년대의 삶을 밟고 있는 사람들이 있다는 게 슬프다. 지금 그들의 모습이 우리들의 지나간 모습과 너무나 닮아서 더 가슴이 아프지만 우리사회가 우리의 노동계가 발전한 것처럼 그들도 결국 발전의 길을 찾으리라 그리고 훨씬 더 나아진 사회를 건설하리라고 믿어본다.

이탈리아의 청바지 패션쇼 장면은 어떨까? 패션쇼를 준비하는 전 과정이 소개된다. 디자이너들의 옷 디자인-바느질-쇼를 위한 모든 준비 단계의 미팅과 작업-그리고 패션쇼- 아주 낯선 세계가 청바지라는 옷을 입고 짜잔-열리는 순간이다.

저자는 중국 선진을 방문한 후 그곳의 예를 들어 자유무역과 수입 쿼터제, 그리고 원산지 표시 규정의 불합리한 점에 대해 이야기 한다. 또한 중국의 산업화가 야기한 산업 폐기물에 의한 환경오염의 심각성에 대해서도 이야기 한다.

이 책은 청바지 한 벌이 세상에 나오기 위해 거쳐야하는 수많은 사람들의 손에 대한 이야기다. 목화의 재배에서 직조-재단-디자인-샘플작업-생산-판매-까지 완성된 한 벌의 청바지가 되지 위해 여러 나라를 돌게 만들어진 사회 시스템에 경제논리 그리고 환경오염 문제에 대한 것까지 정말로 다양한 이야기를 한다. 청바지와 경제도 좋지만 청바지의 사회학이라고 해야 할 것 같다.

청바지 한 벌에 그렇게 많은 이야기들이 엮여있었는지 비로소 알게 되었다. 알고 난 후 다시 바라보는 청바지는 이제 그다지 매력 있는 입성은 아니다.

또 한 가지. 순면의 옷을 입는 것에 대해 아주 심각하게 생각해볼 기회가 되기도 했다. 합성섬유에 비해 순면 제품은 상대적으로 환경오염에 대해 그다지 무해하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다. 그렇지만, 순면의 원료인 목화재배에 대해 알게 된 후 순면 제품을 고집하던 내 의생활 습관을 조금 개선하겠다고 마음먹게 되었다.

      

 

태크놀로지의 종말

나는 지금 노트북으로 이 글을 쓰고 있다. 내가 사용하는 노트북은 삼성 노트북 센스 시리즈 중 초창기 모델이다. 해상도도 떨어지고 무엇보다 업그레이드가 안 될 만큼 하드체계도 낡았다. 무엇보다도 인터넷 연결이 별 의미가 없을 정도로 느리다는 가장 큰 약점이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긴 글을 써야 할 때 나는 꼭 이 노트북을 사용한다. 마우스도 연결 안 해 자판으로만 커서를 움직인다. 때문에 세련된 문서 편집 같은 것은 꿈도 안 꾼다. 가끔 자판을 친 한참 후에야 화면에 글씨가 뜨는 때도 있지만 그런 불편함 때문에 노트북을 바꿔야겠다는 생각을 해 본적은 없다. 집에 있는 데스크톱은 무선광렌이 깔려서 속도도 빠를뿐더러 영화를 다운받아 보기에도 부족하지 않을 만큼 해상도도 좋다. 그렇지만 글을 쓸 때마다 첨단의 기계를 마다하고 이젠 거의 아날로그 수준이 된 이 노트북을 사용하는 이유는 이 기계가 더 이상은 극복할 수 없는 그 느림과 불편함이 오히려 글을 쓰는 데는 더 낫기 때문이다. 굳이 기계의 힘을 빌려 무엇인가 생각을 표현해야 한다면 그리고 그 생각에 진지함과 진중함이 필요하다면 빠른 기계보다 불편하고 느리게 작동되는 기계가 더 낫다. 이 책의 작은 제목 ‘인간은 똑똑한 기계를 원치 않는다 ’는 의미에 다가가기 쉬운 생각이라고 본다.

글쎄, 해마다 연초면 언론들은 새해 들어 달라질 사회의 여러 모습들이 소개한다. 바로 바뀌는 규칙 같은 것들도 있지만 가깝거나 또는 먼 미래에 달라지는 사회의 모습들을 분홍빛 꿈처럼 보여주기도 한다. 대부분은 모든 테크놀로지가 결집된 마치 미래 공상과학 영화에서 본 듯한 장면들이 마치 가까운 시기에 도래할 것처럼 실감나게 설명되어져 있다. 과연 이런 것들이 정말로 이루어지는 것일까? 그리고 그런 기술들은 정말로 인간의 삶을 풍요롭고 안락하게 바꿔주는 것일까?

미래를 예측하는 학문은 공개 토론장에서 걸핏하면 사기에 쭉정이며 마법사의 수정구슬에 불과하다는 소리를 듣는다.(중략) 세계의 복잡성을 고려할 때 미래 연구는 변화에 대한 보편적 이해를 구현하기 위한 하나의 시도일 수 있다. 미래 연구는 세계가 어떻게 흘러가고 왜 그렇게 되었는지 이해를 도울 뿐 아니라 앞으로 어떤 경향을 뛸지도 예언한다(page290)

지은이 마티아스 호르스크는 유럽 최고의 미래 학자이자 트렌드 전문가. 그가 말 하는 테크놀로지의 종말과 그 이유들은 재미있고 설득력이 있다. 그리고 우리의 미래에 대해 안도의 한숨을 내쉴 여유를 만들어 준다.

 

과학기술은 완전 사기였다. 달콤한 말로 우리를 유혹했지만 그것은 결코 지킬 수 없는 약속이었다.(중략) 머리 위 하늘에서는 은하수와 별들이 빛나고 있고 몸에 딱 맞는 우주복을 입고 무중력 상태의 우주를 즐겁게 붕붕 날아다닐 우주 정거장은 도대체 어디 있단 말인가? 명령만 내리면 “네, 주인님! 알겠습니다. 주인님!” 하고 척척 따르는 로봇, 우리를 위해 잔디에 물을 주고 접시를 닦고 쓰레기를 버리고 식사를 준비하는 로봇은 대체 어디 있단 말인가? 시내 쇼핑몰에 갈 때도 탈 수 있는 초경량 헬리콥터? 몸매를 가꿔주고 불치병을 치료하며 무병장수를 보장하는 슈퍼 알약? 머리에 쓰기만 하면 외국어 학습이 끝나는 헬멧? 말하는 애완동물, 음성 인식 주택, 저절로 달리는 자동차? 조금만 더 믿고 기다리면 될까? 믿는 자에게 복이 있나니!(page11)

저절로 달리는 자동차는 왜 성공할 수 없을까? 자동차가 가지는 사회적 의미들이 테크놀로지의 힘을 능가하고 있다. 그는 이것을 자동차 운전의 '정신적 형이상학‘이라고 했다.

자동차는 발만 살짝 올려도 신체적 힘을 능가하는 굉장한 힘을 발산한다. 때문에 운전은 자신의 능력을 과시하는 것을 의미하며 에로틱하고 섹시하기까지 하다. 우리는 운전을 통해 힘과 지배력을 느낀다. 운전은 또한 분노와 공격성, 굴욕감에 대한 보상심리, 짜릿한 욕구를 해소시켜 준다.(page37)

가끔 운전대를 잡을 때 느꼈던 그 느낌을 어쩜 이리 잘 표현했을까? 맞는 말이다. 이 이유만으로도 전자동 자동차가 생산된다 해도 상용화 되려면 아주 오랜 시간이 걸릴 것 같다. 내가 좋아하는 미드 NCIS에서는 화상 회의 장면이 가끔 나온다. 미국에서 사우디쯤이나 유럽에 있는 조직원들과 의견을 주고받는다. 물론, 드라마 속의 장면 설정은 등장인물들이 모두 말끔하게(최소한 벗지는 않은) 옷을 걸치고 있다. 이 장면이야말로 화상 전화가 상용화

되기 힘든 이유이지 않을까? 얼굴이 안 보이는 음성 통화 시 우리는 보이지 않음으로 인해 상대방과 좀 더 자유롭게 이야기를 나눌 수 있다. 하지만, 상대방을 봐가면서 통화를 한다고 생각하면 자유로울 수 있을 것 같지 않다. 이 밖에도 우리가 상상했던 우리의 삶을 편하게 해 주리라던 여러 기기들은 사실 완벽하게 이뤄질 수 없는 꿈에만 머물 것이다. 물론, 저자는 조목조목 자세하게 설명을 해주고 있다. 지루하지 않은 설명을 읽다보면 어느새 저자의 의견에 동조하고 있는 나를 보게 된다. 

지능은 기술 대상이 아님을 우리는 잘 안다. 지능은 인류만이 지닌 해석하고 구별하는 행위나 능력과 관련이 있다. 기계에 지능을 넣는 일은 너무너무 어렵다. 그리고 어쩌면 이 일은 아주 바보짓일지도 모른다. 기계는 우리를 위해 차라리 바보 상태로 남는 게 낫다. 그래야 그나마 인간이 더 영리할 수 있는 공간이 생긴다.(page80)

이 책이 로봇과 온갖 최첨단 테크놀로지의 발전과 쇠퇴에 대한 통찰로만 이뤄진 것은 아니다. 테크놀로지라는 관점에서 인간의 역사에 대한 언급도 많은 부분을 할애한다. 인간의 역사야말로 멈출 수 없었던 테크놀로지의 진화가 아니던가? 그렇다면 인류는 왜 기술을 발전시켰을까? 인류에게는 호기심이 있고 인간은 영향력을 넓히고 이를 먼저 성취하고자 하며 언제나 자연의 지배로부터 벗어나고자 노력했다. 인류문명의 역사는 침체, 퇴보, 퇴행의 사건 뒤에 언제나 급속한 발전을 이뤘고 기술의 변화는 사회의 복합성을 기초로 한다. 테크놀로지는 균형이 깨질 때 발생하며 새로운 질서를 지향한다. 바로 이런 이유 때문에 인류는 발전을 거듭할 수 있었다.

여기서 잠깐, 네티켓의 일반적인 도리를 소개한 글을 옮겨본다. 이메일이 새로운 매체로서 각광을 받다가 발이 묶인 이유는 과학기술이 아니라 사회기술이 원인이라고 저자는 주장한다. 사회기술이라는 것이 바로 단정치 못하면서 도리에도 어긋나는 소통 방식이라고 못 박는다. 아무렇게나 입력하며 맞춤법을 신경 쓰지 않는 글, 감정을 고조시키고 은밀한 경제적 오용에 적합해서 원하지 않는 정보들이 몰려들게 하는 것들 등. 저자가 말 하는 네티켓이란

첫째, 스팸 규율-원치 않는다면 절대 보내지 말아야 한다.

둘째, 휴지통 규율- 정말 전하고 싶을 때만 보내야 한다.

셋째, 기본도리 규율 - 답장은 늦어도 24시간 이내에 해야 한다. 그것도 친절하게. 비록 짧은 인사말이거나 나중에 다시 자세히 쓰겠다는 내용이라도 답은 꼭 한다.

넷째, 주의 규율- 맞춤법에 신경 써야 한다. 이모티콘을 남발하지 말며 받는 이의 수를 과도하게 많이 지정하지도 말아야 한다.

다섯째, 감정 규율- 감정적으로 매우 예민한 내용이거나 중요한 내용, 혹은 복잡한 의견 수렴이라면 이메일 대신 전화를 사용하는 게 더 낫다.(page167) 

[Part3 테크놀로지, 생존의 법칙]부분은 교과서를 읽는 느낌으로 읽었다. 이 책의 전체적인 특징이 어떤 문제에 대해 첫째, 둘째, 하는 식으로 꼭꼭 해답을 정리해 주는 친절함이라면 Part3이야말로 그 친절함의 결정판이라고 해야 할 것 같다.

누구나 그렇겠지만 책을 읽을 때는 본인의 현실과 맞춰서 책의 내용을 이해하기 마련이다. 나 역시도 내가 가장 관심 많은 삶의 어느 부분으로 내가 읽고 있는 책의 내용을 집중해 이해하는데 문학 작품이 아니라면 대부분 낸 독서의 정점엔 늘 우리 아들이 있다. 취업이 힘든 세상이니 어찌하면 이 비좁은 세상의 틈바구니를 여는 데 어미로서 힘을 보탤 수 있을까 안테나를 세우고 있다는 말이다.

그런 맥락에서 Part3의 내용들은 아들이 살아야 할 미래의 모습과 미래에 유망한 직업선택에 대한 단초를 제공하고 있어서 반갑고 고맙다. 물론, 그림으로 그리려면 아직도 많은 정보를 수집해야하고 분석해야겠지만 최소한 어느 길로 가야 할런지 방향을 가늠해 볼 수는 있었던 책이었다.

  

 

 

 

 

   

 

출판편집자가 말하는 편집자.

이번 학기 문화기획에 대해 공부하고 있다. 문화기획의 실제와 사례를 다룬 부분에 출판기획이 들어가 있다. 글을 쓰는 사람이라면 쓰는 것으로 귀결되는 일련의 행위뿐만이 아니라 책의 출판에도 관심이 많은 것은 당연한 일일 것이다.

흔히 저자가 아닌 책의 기획자를 편집자라고 부른다(page10)

예전에는 지식 생산자와 독자 사이의 관계가 생산자 중심이었다. 출판사는 저자가 보내온 원고를 그대로 책으로 옮기기만 하면 되었다. 어떤 글을 어떤 식으로 쓸 것인가는 순전히 저자의 몫이므로 소수의 저자만이 생산할 수 있는 지식은 진리로 여겨지기까지 하던 시절이 있었다. “지식은 신의 선물이다. 따라서 팔릴 수 없다”(중세의 격언, 피터 버크의 [지식]중에서]-방송대 교과서 참고-는 말의 의미가 이해가 간다.

하지만, 현대의 출판 환경은 이제 완전히 바뀌었다고 본다. 인터넷으로 대변되는 새로운 미디어 환경에 책과 관련된 대부분의 것들이 변했다. 출판의 형태도 다양해졌다. 전자책이라는 새로운 유형의 책이 점점 더 세력을 확장해 나가고 있다. 어쩌면 책이라는 것이 인쇄된 종이책이라는 관념도 바뀔런지 모르겠다. 그렇지만, 이런 것들은 기우에 지나지 않는 것일 수도 있다. 인터넷으로 동영상 서비스가 시작되었을 때 극장이나 비디오 시장의 타격에 대해 걱정하는 사람들도 참 많았지만, 시간이 흐른 지금 오히려 두 부분이 나란히 발전해가고 있다. 종이책과 전자책도 그렇게 되지 않을까라고 나는 생각해본다. 물론, 내 생각이 그렇다는 것이다. 종이책에는 종이책만의 장점과 매력이 있다. 그 장점과 매력을 잘 가꾸는 멋진 편집자들이 존재하는 한 전자책이 모든 책의 영역을 차지하는 일은 생기지 않을 거라고 나는 생각한다.

이 책의 필진을 이루고 있는 편집자들의 면면도 참 재미있다. 그들의 이야기만으로 어떤 수필집이나 소설보다 훨씬 재미있게 읽힌다. 아마도 방금 잡아 올린 생선처럼 출판 현장에서 뛰어다니는 자신의 이야기를 진솔하게 풀어낸 것이기 때문이리라.

출판의 세계란, 개성이 강한 저자들과 어떤 결핍에서 비롯된 예술적 광기와 삶의 개성을 못 드러내어 괴로운 사람들이 만들어 가는 만화경이다. 그만큼 ‘노출증이 많은 사람들’과 이를 새롭고 세련된 방식으로, 이른바 ‘튀게’ 드러내는 사람들이 점령한 세계인 것이다. 그런데 이들의 노출증은 편집자 입장에서는 얼마나 사랑스러운가. 그들이 이 세계에 역동성을 부여하고, 이 세계를 새롭게 만들어 가는 것이다. 그들이 없다면 이 세계도 없다.(page14-15)

이쯤이면 편집자라는 직업이 너무 멋지게만 달려든다.

주방장(저자)와 식당(회사) 사이에서 가끔은 비서나 설거지꾼으로도 일하지만, 결국은 요리(글)가 가장 따끈따근 할 때 한 입 가득 먹어 볼 수 있는 행운을 누리고 있는 최초이자 최후의 손님(독자)(page53-이진숙의 소개 글 중)

편집을 주방 일로 비유한다면, 편집자는 능수능란한 요리사를 돕는 보조 요리사가 아닐까. 주방장(저자)이 요리를 할 수 있도록 재료(콘셉트)를 다듬어 가지런히 배치하고, 요리(집필)하는 동안 “후추!” 하면후추를. “설탕!” 하면 설탕을 가져다주며(자료 제공 또는 집필 관리),재료가 조리되는 사이에 조금씩 맛보고 다음 순서를 기다리는, 그러고 나서 마침내 요리가 완성되면(집필이 끝나면) 주방장이 사용한 도구(언어)들을 깨끗이 씻고  닦고 말리는(편집하고 교정하는) 일을 해야 하는 것이다.(page54)

이쯤이면 편집이 무엇인지에 대한 더 명쾌한 해답은 없을 것 같다. 더 자세한 정보를 원한다면 스스로 편집에 대해서 공부를 해볼 일이다. 사실, 아들 녀석이 대학에 다니고 사회적으로 청년 실업이 심각하다보니 직업에 관한 것은 무엇이든 예사로 보아넘겨지지가 않는다.

이 책을 읽는 대다수의 독자들도 나와 별반 다르지 않은 마음으로 이 책을 읽지 않을까?

편집에 대한 정보는 일목요연하며 시원하고 명쾌하게 잘 정리되어 있지만, 현실적인 것이 알고 싶다면? 그것은 편집자들이 누리는 사회적인 혜택을 말 하는 것이다. 물론 그들의 천차만별일 한 달 또는 일 년의 수입과 각종 복지혜택에 대한 것들은 말 하지 않고 있어서 잠시 고개를 갸웃거렸다면 내가 나이가 너무 많음을 이런 식으로 드러내는 것일까?

세상 모든 것엔 밝음과 어둠이 공존하기 마련이다. 그것이 당연한 진리이니 밝음을 보여주었으면 어둠도 가르쳐주어야한다는 게 내 생각이다. 그런 면에서는 어둠에 대한 언급은 너무 두리뭉실하게 지나간 것은 아닌지 다시 한 번 더 책을 뒤적여 본다. 하긴, 출판편집자라는 직업에 대한 소개이니 너무 까탈을 부리진 말아야 겠다.

훈민정음의 창제는 15세기 출판물의 ‘폭발’을 낳았는데, 이 시기 우리 출판물들은 세계적으로도 유래가 없을 만큼 오자나 탈자가 적은 편이다. 당시 발간물이 대부분 붉나 유학에 관한 것이었고, 집필과 간인도 큰 사찰이나 중앙 정부에서 관장했기 때문이다. 일종의 주문생산이었던 만큼 가장 중요한 것은 문장과 제작 상태의 정확함이었다. 집필자(주로 언해자)와 필사자(筆寫者)의 선정은 아주 까다롭기 짝이 없었으며, 오늘날의 본문 편집자라 할 검서관(檢書官)은 오자나 탈자가 한 번 발생할 때마다 태형을 당하고, 이것이 거듭되면 감봉은 물론 삭탈관직까지 당한다는 가혹한 규정이 존재할 정도였다.(page139-140)

우리 인쇄물에 대한 자부심을 느끼게 하는 부분이다. 세계 기록 유산으로 등재되기에 조금도 손색이 없는 자양분이 이렇게 탄탄하게 자리하고 있었다는 것이 한 편 감탄스러운 한편,

출판을 하는 것은 아니지만 위의 글을 읽노라니 인터넷 개인 블러그나 카페에 글 한 편 올릴 때 좀 더 신경을 써야겠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오자나 탈자가 나오지 않도록 보고 또 봐야겠다. 인터넷상의 블로그에 실려 있는 콘텐츠를 책으로 묶어 내는 일을 불룩스(blooks)라고 한다. 편집자의 역할에 대해 알아두는 일. 그리고 편집에 대한 소양을 쌓아두는 일. 나와 전혀 관계없는 일은 아닌 거 같다. 블로그에 글을 쓰고 있는 그대. 지식 생산자에서 출판 기획자가 될 수도 있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