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속에 있는 여신들(Goddesses in every woman)

처음 이 책의 제목을 만났을 때 고개를 갸우뚱했었어. 그 ‘우리’라는 말의 의미에 대해 한참을 생각했었거든. 물론 영어 제목을 보고난 후 아하~하고 궁금증이 풀렸지만, 이 ‘우리’를 울타리로 해석할지 너와 나를 아우르는 우리로 보아야할지 잠시 망설였다네.

보라색의 표지가 마음에 들어서 책을 받고서 한참을 들여다보았다네. 흔히 알고 있는 보라색의 성격과 내용과는 어떤 연관성이 있을까 하는 생각도 해보았지. 본문만 400여 페이지에 달하는 만만치 않은 무게와 두께에도 불구하고 우아한 보라색의 표지는 왠지 이 책을 읽는 시간들이 지루하지 않을 거라는 생각이 들었어.

부끄럽게도 나는 이 책의 제목 중 ‘여신들’이라는 말에 지레 짐작으로 신화학이려니 생각했었어. 그래야만 제목의 ‘우리’라는 말을 나름대로 ‘울타리’로 해석한 내 생각에 근거가 생기기 때문이었지. 그렇지만 이 책은 ‘심리여성학’ 분야의 책이야. 좁은 지식의 폭과 무엇보다 사물을 대하는 고정관념이 얼마나 시야를 좁혀놓을 수 있는 지를 나 스스로 확인해보는 기회가 되었네. 암튼, 괜한 엉뚱함에 시간을 많이 낭비했지만, 막상 잘 정리된 책의 내용들과 만나면서는 울타리라는 말도 영 틀린 것은 아니라는 생각이 자꾸 들었다네.

우리 문화가 만들어낸 여성에 대한 스테레오 타입이 여성 자신에게 얼마나 강력한 영향을 끼치고 있는지 여성들은 의식하지 못하고 있다. 여성들은 또한 그들이 무엇을 하고 어떻게 느끼는지에 영향을 끼치는 강력한 추진력이 그들 내부에 있다는 것도 의식하지 못하고 있다. 이 책에서 나는 이 추진력을 그리스 여신들의 예를 들어 설명하려고 한다. (중략) 이 책은 새로운 여성 심리학의 관점을 제시한다.(중략) 융은 여성들이 강력한 내부의 힘들 혹은 원형에 의해 좌우된다고 보는데, 이 원형들을 나는 그리스 여신들로 의인화해 보았다. 반면에 여성주의 시각은 외부의 힘들, 즉 사회가 여성에게 제시하는 표준 여성상에 의해 여성들이 좌우된다고 보는데, 나는 이 외부의 힘들이 어떤 여신 유형은 억압하고 어떤 유형은 밀어 준다고 보았다. 다시 말해 모든 여성은 이 두 힘 사이에 끼여 있다고 할 수 있다. 안으로는 어떤 여신 원형에 의해 움직이면서 밖으로는 표준 여성상의 요구에 의해 움직이고 있는 것이다.(page19-23 서론에서 부분 발췌)

저자 진 시노다 볼린은 캘리포니아 대학교 정신과 교수야. 융 정신 분석가이고 여성재단[미즈]의 이사라는군. 그녀의 저서 중 [도교와 심리학]이라는 책이 특히 관심을 끄는데 기회가 된다면 이 책도 읽어볼 생각이야. 그렇지 않아도 이번 학기 노장철학에 대해서 조금 공부를 했네만, 유교문화권에 속하지 않은 나라의 사람에게 도교가 어떻게 다가갔는지도 궁금하고 어떤 식으로 심리학과 도교를 근접시켰는지도 궁금하군.

한동안은 신화 읽기가 붐을 이루어서 초등학생들이 보는 만화 그리스 로마 신화부터 시리즈로 출간된 성인용 신화전집까지 참으로 많은 그리스 로마 신화들이 우리 주변을 채웠던 때가 있었지. 오래 전 이야기임에도 불구하고 신화가 여전히 인기가 많은 이유는 돌이켜 생각해보면 신화가 우리의 감정과 상상력을 불러일으키며 인간사의 공통된 주제를 다루고 있으며 우리들 자신의 경험을 다루고 있기 때문이 아닐까? 다만, 신들의 일이라는 가면을 쓰고 우리 앞에 나타날 뿐이지.

지난 학기 신화에 대해 공부를 했지만 올림포스의 신들은 매우 인간적인 속성을 가지고 있다고 생각되네. 그들의 행동과 외모와 감정적인 반응들도 인간들의 행동이나 사고방식과 매우 유사하다는 생각도 드는데 그 이유는 그들이 원형적이기 때문이지 않을까? 우리가 원형이라고 말 하는 것은 우리의 마음속에서 작동하고 있는 내 안의 모습, 무의식적으로 내 행동과 감정을 결정하는 것이지. 융은(저자가 융 이론을 따른 정신분석가라서 융의 심리학이 많이 인용된다)심리학에 원형의 개념을 도입해 설명하고 있어. 원형은 집단 무의식에 들어있는 본능적 행동 유형을 말하는데 집단 무의식이란 무의식의 한 부분으로 독립적인 것이 아니고 일반적인 것으로서 어디서나, 누구에게나 통용되는 행동양식과 내용을 담고 있다는 것이지. 때문에 그들이 우리한테 친숙하게 느껴지는 것이라는데 융에 대해 좀 더 자세한 지식을 가지게 된 것도 이 책을 읽고 얻은 소득 중에 한 가지이지.

신화의 원형으로 7명의 여신이 등장하네. 책을 읽는 동안 간간히 우리가 이야기를 나눴던 그 여신들이지. 저자는 처녀 여신 셋. 상처받기 쉬운 여신 셋. 그리고 창조하는 여신으로 나누어 소개를 하고 있어. 처녀 여신은 아르테미스, 아테나, 헤스티아이고 상처받기 쉬운 여신은 헤라, 데메테르, 페르세포네. 그리고 창조하는 여신으로 아프로디테가 그 주인공들이야.

이 여신들의 원형을 읽으면서 아~하고 감탄을 하게 되지. 그리고 나 자신은 과연 어느 여신의 원형에 가까운지를 가늠해 보고 있게 된다네. 저자의 서문과 달리 또 한 편 실린 글로리아 스타이넘이 쓴 서문에도 비슷한 이야기를 하고 있군.

이 책의 가장 값진 가치는 이 책이 제공하는 깨달음의 순간에 있을quo;이라고 이름 지었습니다. 우리가 이해하고 내면화하는 감탄의 순간 말입니다. 그것은 우리가 경험한 것을 인정하고 그에 따라 생기는 신뢰감과 한걸음 더 나가 “아, 바로 그래서였구나!” 하는 자각으로 이어지는 것을 말합니다.(page12)

처녀 여신들인 아르테미스, 아테나, 헤스티아는 자율적이고 충분한 자질을 가지고 있는 여성들을 대표한다는군. 다른 올림포스의 여신들과는 달리 이들은 사랑에 쉽게 빠지지 않는다고 해. 감정적인 애착 때문에 중요하게 생각하던 것을 포기하는 일을 하지 않고 피해자가 되지도 고통을 받지도 않는다는군. 아르테미스와 아테나는 목표 지향적이고 논리적인 사고를 하는 업적 지향적인 원형을 보여주고 헤스티아는 내향적이면서 영적인 세계에 관심을 가지는 원이라고 소개하고 있어. 이 여신들은 자율적이며 능력이 있는 것이 여성적 속성에 포함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는 것이라는군.

헤라, 데메테르, 페르세포네는 상처받기 쉬운 여신으로 분류하고 있지. 이 여신들은 아내, 엄마, 딸이라는 전통적인 역할을 대표하네. 이들은 관계 지향적이고 애정과 유대감이 필요한 여성을 대변하지 하지만, 이들의 마음을 다른 사람에게로 향해 있으며 상처받기 쉽다네.

그러나 이 세 여신은 결국은 각자의 괴로움에서 벗어남으로써 애정의 파탄에 대한 대응의 유형을 보여주었고 고통을 통한 성장의 가능성이라는 인식을 여성들에게 마련해 주었어.

아프로디테. 사랑과 미의 여신이며 창조하는 여신이야. 여신들 중 가장 예쁘고 매혹적이었지. 수많은 연애를 통해 많은 아이를 낳았어. 그렇지만 그런 관계들은 자신이 선택한 것이고 상대방으로부터 희생당하지도 않았어. 처녀 여신들처럼 자율성을 유지했고 동시에 상처받기 쉬운 여신들처럼 관계를 맺었어. 아프로디테의 원형은 지속성보다는 강렬함을 관계에서 구하고, 창조적인 과정에 가치를 두며, 항상 변화할 수 있는 여지를 남겨두는 것이라는군.

우리는 과연 어느 원형에 가까운 것일까? 나는 처녀 여신들 중 아테나가 가장 마음에 드네. 아테나는 지혜와 공예의 수호신으로 그녀의 이름을 딴 아테네 도시의 보호자이면서 모든 영웅들의 수호신이기도 했어. 아테나는 일리아드에서 친숙해진 모습대로 보통 무장한 모습으로 많이 알려져 있고 전쟁에서 최고의 전략가로 알려져 있지. 그 총명함과 냉정함과 씩씩함이 좋네만 그대는 어떠신가? 이 책을 읽다보면 각 여신들의 원형을 아주 세밀하게 분석해 놓아서 제목보다 훨씬 깊이 있는 여성의 심리 분석을 만나게 된다네.

교양과목이었던 [심리학 개론]을 통해 최소한 심리학이란 분야에 대한 개념은 이해를 하고 있지만 ‘우리 속에 있는 여신들’을 읽으면서 저자인 진 시노다 볼린이 얼마나 창의적인 사람인지 다시 한 번 놀라게 된다네. 스스로도 이 책은 학문적이거나 직업을 통한 경험만으로 쓴 것은 아니라고 이야기 하고 있어. 저자도 엄마, 아내, 딸 그리고 사회 속에서의 여러 관계에 붙잡혀 있는 여성으로서 스스로도 점점 성숙해가는 과정들을 소박하게 보여주기도 하거든. 전문적인 심리학 서적의 영역과 가볍고 따뜻한 소소한 일상의 이야기 사이를 아슬아슬하지 않게 오가며 책을 읽는 사이 나도 내 안의 여신 원형을 조금 더 차분하게 들여다 볼 여유를 가질 수 있었다네. 그리고 저자가 원하는 것처럼 바로 나도 원하는 것. 모든 여성들의 맘속에 또 내 맘 속에 들어있는 잠재적인 영웅을 내 인생의 영웅으로 만드는 것. 그 일에 대해 진지하게 다시 한 번 들여다보게 되었다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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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유럽에서 광을 판다.

나도 여행을 좋아한다. ‘좋아만 한다.’라고 말 하려니 좀 쑥스럽다. 글쎄 여행이라고 부를만한 것은 평생을 통틀어 몇 번 되지 않기 때문이다. 여름이면 여름인대로 겨울이면 겨울이라서 나의 드나듦은 그리 쉽지가 않다. 여름이면 어린아이처럼 무차별로 공격해오는 땀띠 때문에 겨울이면 겨우내 달고 사는 기침 때문에 암튼, 난 이래저래 집안을 벗어나지 못 하는 방안퉁수다. 그 답답함을 책으로 푸는 것일까? 그러고 보니 여행에 관한 책을 유독 좋아한다.

‘......유럽에서 광을 판다’는 제목만 보고 이 책이 무엇에 대한 책일까? 궁금했었다. 유럽이라는 지리명이 호기심을 자극하기도 했지만 ‘광’이라니...대체 이 ‘광’이 어떤 광을 말하는 것이여? 이런저런 상상을 잠시 해보게 되는 것도 책이 주는 재미라면 재미이겠지.

이 책은 동유럽 6개국에 대한 안내서이다. 이 책을 따라가면 오스트리아, 체코, 헝가리, 폴란드, 독일 그리고 크로아티아를 여행할 수 있다.

세계사 속에선 서양사로 유럽의 사회사로 유럽의 근대화로 다양하게 유럽에 대해 배우면서 유럽을 보는 눈을 재조합해 가고 있는 중이다. 그런 의미에서 이 책은 나에게 조금 색다른 경험으로 다가왔다. 유럽이라면 영국과 프랑스와 독일과 이테리 정도의 나라만 알면 반은 유럽에 대해 알았다는 교만과 영국의 산업혁명과 프랑스 혁명에 대해 조금 알게 되었으니 이제 유럽은 거의 알았다고 오만을 떨었다. 그러다가 유럽 몇 나라의 근대화에 대해 공부하면서 나름대로 그들 나라가 마냥 아름다운 곳이라는 환상도 좀 깨고 그들이 근대화 과정서 보여준 폭력성에 대해 공부하면서 나름대로 비판적인 시각도 가지게 되었다고 잘난 체 까지 했던 나로서는 이 책에 담긴 정보의 다양함 앞에 그저 놀랍고 부러움을 금치 못 하겠다. 10년간이나 여행전문가로 살았던 저자이니 당연히 자신의 활동 무대에 대해 해박할 수밖에 없다고 해야겠지만 유럽역사를 비롯해 그가 아우르는 지식의 체계에 박수를 보낸다. 빛을 다루는 光학을 정공한 물리학도가 觀光가이드 일을 하고 있다는 것도 흥미롭지만 이 책을 읽는 내내 왠지 나는 저자의 행복지수가 굉장히 높을 거라는 생각이 들어서 더 부럽다. 잘 하는 일과 좋아하는 일을 직업으로 가질 수 있는 능력. 거기다 그 능력을 인정받는 운까지 함께 한다면야 더 이상 바랄 게 뭐가 있을까.

책은 내내 목적지에 대한 객관적인 정보에 충실하다.

도시관광의 핵심은 골목과 성벽을 걸으면서 중세의 모습을 감상하는 것이다. 거니는 길목에서 16세기까지 부유함과 풍요를 누리던 도시의 위상을 느낄 수 있다.(중략) 시청이 있는 시장 광장을 중심으로 동서로 길게 나 있는 길과 남쪽으로 길게 이어진 길이 도시 여행의 포인트다. 서쪽 끝으로 가면 황궁문과 성 정원이 있다.(page327-로텐부르크 중)

 그리고 더러는 글쓴이의 느낌과 감상이 오롯이 전해져 마치 저자와 함께 여행지 한 복판에 서 있는 듯 생생하다.

잠시 후 드는 이상한 느낌. 눈앞에 보이는 섬에서는 나무를 거의 볼 수 없다. 니나르 알프스도 마찬가지이다. 온통 석회암으로 구성된 이곳에서는 흙이 거의 없는 섬과 산이 만들어낸 구불구불한 해안선과 푸른 바다만이 돋보인다. 바다의 아름다움을 연출하기 위해서 조연들은 초라한 모습을 감내한다. 덕분에 바다는 더욱 아름답게 느껴진다. 그래도 마을을 지날 때면 달마티아 해안과 궁합이 잘 맞는 사이프러스 소나무와 올리브나무를 종종 볼 수 있어서 이국적인 경관을 즐길 수 있다. 이곳을 지나는 동안은 오케스트라의 웅장한 클래식이 아니라, 조용한 피아노곡이나 뉴에이지 음악이 잘 어울린다.(page361-두브로브니크 중)

더 많은 부분을 저자는 여행 목적지의 유래와 역사의 설명에 충실하다. 드레스텐 홀로코스트처럼 그동안 몰랐던 역사의 뒷모습을 조근조근 설명해 줄 때는 지식의 지평을 넓힌다는 생각보다 먼저 마음이 아파오기도 한다.

전쟁을 피해 드레스덴을 찾아온 사람들 15만 명을 포함해서 최소 30만 명, 최대 50만 명이 24시간이 좀 넘는 동안 불에 타서 죽거나 폭탄을 맞고 사망했다.(중략)

당시 영국의 처칠은 “어떻게 하면 60만 피난민들을 불로 태워버리지”라고 고심했다고 한다. 드레스덴에는 군사시설이 없었고, 담배 공장과 도자기 공장만 있었다. 60마일 떨어진 곳에 있던 군사시설엔 관심이 없었던 것이다. 처칠과 미국의 루스벨트가 만든 이 만행은 전쟁에 투자한 사람들의 돈벌이용으로 했는지, 일본에 원폭을 투하하기 전에 비교 실? 하나는 거대한 화염구름을 만들라고 명령했다는 사실이다. 마치 원폭을 투하했을 때와 같은 상황으로 말이다.(page315-317 드레스텐 중)

저자가 손을 붙들고 다니면서 조근조근 설명해주는 오스트리아, 체코, 헝가리, 폴란드, 독일 그리고 크로아티아까지. 굉장히 매력적인 동유럽의 6개 나라를 이제껏 알았던 것보다 훨씬 매력적인 모습 속으로 독자를 데리고 가는 것이다.

‘로마의 휴일’ ‘파리의 연인들’ ‘프라하의 연인’ 이들의 공통점은 유럽의 도시에서 펼쳐지는 로맨스라는 것이다. 가장 인상적인 것이야 오드리 햅번의 ‘로마의 휴일’을 따라갈 수 없겠지만 개인적으로 열광했던 드라마는 ‘프라하의 연인’이었다. 내가 좋아하는 배우 김주혁과 전도연이 주연이었던 이유도 있지만 드라마에서 보여지던 멋진 프라하의 풍경들을 지금도 기억하고 있다. 매회 드라마를 보면서 언젠가는 프라하를 한 번 가보리라 다짐했던 거 같다.

이 책에 실린 사진들을 보면서 사진과 곁들여지는 글들을 읽으면서 드라마 기억속의 프라하를 불러내기 해 본다.

크로아티아. 우리나라 사람들이 거의 가보기 힘든 나라라고 소개된 나라의 사진들은 그야말로 사진 속에서나 보던 풍광들이어서 눈을 뗄 수가 없다. 책장을 넘길 때 마다 이 장면을 어느 영화에서 봤지? 라며 기억을 더듬어 본다. 하나 같이 신비롭고 이국적인 너무나 이국적인 풍광들을 들여다보면 책 속에 실린 사진만으로도 눈이 시원해지는 걸 느끼게 된다. 아름답다.

마지막 한 chapter를 할애하여 저자는 자신의 생각들을 피력해 놓았다. 서양의 문명은 동양에서 시작되었다는 저자의 주장은 사뭇 고개를 끄덕이게 한다. 지역적 특성에 따라, 또는 사회 구성 요소에 따라 서양과 동양을 비교 분석해가며 왜 동양의 문화가 서양보다 우수한지를 설명해준다. 아울러서 현재 유럽의 정치상황과 사회상황 그리고 자원고갈에 따른 문제는 물론 석유의 무기화, 물 부족, 생태계를 위협하는 환경문제까지 넓은 범위의 문제들을 제기한다. 짧지만 나름대로 결론도 도출해놓아서 전 방위로 유럽을 좀 더 이해하기 쉽게 만들어준다.

그나저나, 언제 다시 떠나보지? 누군가 그랬다. 우리나라도 못 가본 곳이 많은데 무슨 남의 나라냐고...뭐 그렇게 생각하면 그럴 수도 있다. 하지만, 아직도 우리나라에 못 가 본 곳이 많아서 다른 나라에도 가보고 싶은 것을 어쩌랴.

 

   

 

일본정신.

지난 주말엔 진해를 거쳐 남해의 미조까지 다녀왔습니다. 남쪽으로 내려가니 유자나무도 신선했지만 길게 터널을 이루고 있던 벚나무 가로수가 인상적이었어요. 봄이면 벚꽃터널로 장관을 이룬다고 하니 그 아름다운 풍경을 보러 또 한 번 와봐야겠다는 생각이 저절로 들만큼 살짝 단풍이 들어가는 매력적인 길이었습니다. 벚꽃의 원산지가 우리나라라는 것을 어느 책에선가 읽은 적이 있어요. 제주도에 있다는 왕벚나무의 흐드러진 꽃들도 생각이 나는군요.

하지만, 벚꽃하면 일본이 먼저 생각납니다.

일본사람들은 벚꽃의 이미지가 사무라이 정신과 잘 어울린다고 생각한다는 군요. 주군을 위해 목숨까지도 바치는 모습을 화사하게 피었다가 깨끗하게 떨어지는 벚꽃의 모습에 비유한다고 합니다. 잠깐 사무라이에 대해 이야기를 해볼까요.

일본이 쇼군의 치하로 들어간 뒤, 1868년 메이지 정부가 출범할 때까지 700여 년간 사실상 일본 정치와 사회를 이끌어 온 무사계급을 총칭하는 말이 ‘사무라이’입니다.

‘사무라이’라는 발음은 ‘모신다’는 뜻의 한자 ‘시(侍)’에 대한 일본식 발음이라고 합니다. 사무라이는 기본적으로 무사입니다만 신분상 귀족이면서 귀족을 가까이서 모시는 경호원과 같은 역할을 하는 사람이었습니다. 사무라이는 원래는 전투의 전문가였지만 가마쿠라 정권이후 일본이 일종의 군사문화 속으로 들어가게 되면서 일본의 주류 세력으로 등장하게 됩니다. 그리고 점차 일정한 지역에 뿌리를 내리고 사유 전답을 경영하면서 봉건 사회의 영주와 같은 역할을 하게 됩니다. 주군이 하사한 영지를 생활근거로 하면서 거기에 평생 목숨 거는 자세를 뜻하는 잇쇼켄메이라는 말은 사무라이적 정신의 근간이자 일본적 정신성의 기초이기도 합니다.

이제 다시 벚꽃 이야기로 되돌아가서 메이지 유신 이후 군국주의가 노골화 되면서 벚꽃이 지는 모습을 군인의 이상적인 죽음으로 비유하는 일이 자연스럽게 받아들여졌다는 군요. 벚꽃을 소제로 한 군가는 아름답게 지는 벚꽃의 이미지를 대의를 위해 깨? 생각하는 것을 자연스럽게 생각한다고 합니다. 이런 정서는 메이지 유신이후 군국주의를 강화하면서 교육을 통해 다져진 것으로 보는 견해도 있습니다만, 어쨌든, 벚꽃이 일본의 국화가 된 데는 이런 사무라이 정신이 기초에 놓여있다고 합니다. 일본인의 정신세계를 차지하는 사무라이의 영역이 생각보다 훨씬 넓다는 것이 놀랍군요. 어쨌거나 사무라이 정신은 메이지 후기에는 일본 내 사회주의 운동의 정신 속으로 녹아들어갔고 제2차 세계 대전 당시에는 자폭특공대의 일환으로 조성된 가미카제처럼 극단적인 양상으로 나타나기도 했습니다. 오늘날에는 무대는 다르지만 폭력집단인 야쿠자 등은 물론 일본의 수직적 기업문화에도 여전히 그 흔적이 남아있다고 합니다.

끝부분에서 평범 지향의 일본인에 대해서 언급하고 있기도 한데요, 개인적으로 튀지 않는 성향을 이야기 하고 있습니다. 재미있는 것은 일본의 전철이나 버스에서는 노인에게 자리를 양보하는 젊은이가 거의 없다고 하는군요. 이런 행동은 무례해서라기보다는 자리를 양보하면서 받을 주위의 시선이 부담스러워서 그런 것으로 해석하는 것이 옳다고 하는데 보통 우리나라의 사고와는 사뭇 다른 것이어서 ‘평범’보다는 ‘개인주의’의 사고가 더 영향이 있는 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기도 했습니다.

  

이 책에선 일본의 장례 문화와 밀접한 관계를 맺고 있는 불교를 비롯하여 그리스도교, 그리고 여러 신생종교에 대해 논하고 있습니다. 특히, 그리스도교세가 우세한 우리나라에 비해

상대적으로 그리스도교가 종교로서 별 영향력을 발휘하지 못 하는 이유를 밝힌 부분은 그간의 궁금증을 해소할 수 있어서 좋았습니다. 불교와 유교 그리고 多神主義로 봐도 될 만한 일본의 신도 전통을 되짚은 부분들에서 일본인들의 정신 속에 숨어있는 현실주의와 세속주의를 엿 볼 수 있었습니다. 일본은 우리나라에 비해 전통이 잘 유지되는 나라라는 생각은 이 책을 만나기 이전에도 해보았습니다만, 책을 읽고 전통이 잘 유지될 수 있었던 이유를 명확히 알고 나니 전통의 보존이라는 면에서 그들의 생각이 부러워지기도 했습니다. 물론, 그들의 전통행사도 우리와 마찬가지로 상업주의로 많이 변질되었습니다만, 그래도 우리보다는 좀 더 문화적 차원에서 행사를 이끌어가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거든요. 우리나라도 이런저런 축제가 많지요. 대부분의 그 지방의 특산물을 알리고 판촉을 위한 쪽으로 치중되어 있는 축제가 더 많다는 것이 아쉽습니다. 앞으로 전통 문화를 알리는 쪽으로 비중을 한껏 실은 그런 축제가 많아졌으면 하는 바람을 이 책을 읽으면서 가지게 되었습니다.

일본은 우리나라와 참으로 가깝고도 먼 나라라는 생각이 듭니다. 우리가 일본에 가지고 있는 관심에 비해 그들은 우리나라에 대해 의외로 무관심하다고 하네요. 우리나라가 어디에 있는지조차도 모르는 사람도 많다고 하는군요. 역사적 가해자와 피해자의 시각의 차이라고 하기엔 좀 불공평하다는 생각도 해봤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일본은 늘 생각할 과제해볼 여지가 많은 나라임에는 틀림없습니다. 가끔 친구들과 일본으로 온천여행 가는 거 어떠냐는 이야기도 나눠봅니다만, 이 책을 읽으면서 우리가 알고 있던 일본과 다른 일본을 슬쩍이나마 들여다볼 수 있었던 귀한 시간이었습니다.

언제 한 번 정말 일본 여행이나 계획해볼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