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리안 그레이의 초상

텔레비전을 틀면 모든 사람들이 다 예쁘고 잘 생겼다. 그야말로 선남선녀들이 넘쳐나는 세상이다. 우리 어릴 적엔 통통하니 살찐 사람들이 부러움의 대상이었던 거 같은데 세상이 참 많이 변했다. 변해도 너무 변했다. 얼짱에 몸짱도 모자라 동안 콘테스트를 공중파에서 내보내는가 하면 살빼기 시합 같은 프로도 있어서 모든 사람들에게 얼짱과 몸짱에 도전하라고 부추긴다. 거기다 얼마 전엔 모 여대생의 루저(looser)발언으로 파문이 일기도 했다. 저마다 주름을 지우고 화장술을 배우고 어찌되었던 몸매를 다듬느라 엄청난 경비를 지불하느라 외모가 경쟁력이라는 말은 이제 너무 익숙한 어휘가 되었다. 사람들의 몸을 관리하는 산업의 규모가 무척 크리라는 생각이 든다. 무서운 세상이다.

[도리안 그레이의 초상]은 오스카 와일드가 썼다. 그의 다른 작품 [행복한 왕자]가 생각난다. 불현듯 혹시 대부분의 아이들이 행복한 왕자를 안데르센의 동화로 알고 있지는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나도 초등학교 3학년 때 행복한 왕자를 처음 읽었는데 한동안 지은이를 안데르센으로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만큼 안데르센의 동화가 많이 우리 곁에 들어와 있다는 소릴까? 그래서 행복한 왕자를 읽힐 일이 있으면 지은이에 대한 설명을 빼놓지 않는다.

오스카 와일드는 영국의 유명한 시인이며 소설가이자 극작가이다. 1845년 아일랜드의 더블린에서 태어났다. 문학에 대해 자연스럽게 흥미를 가지게 된 오스카 와일드는 옥스퍼드 대학에서 스승인 러스킨에게 여향을 받아 습작을 시작하였다.

그는 영국 문학사상 유미주의 운동의 창시자로 ‘예술을 위한 예술’을 주장하면서 문학이 공리주의적 색체를 띠는 것을 반대했다. 그리고 문학은 어떠한 도덕적 기준으로 구속해서도 안 된다고 생각했다. 문학의 여러 방면에서 활동한 그는 특히 희곡에서 가장 큰 명성을 얻었으며 <살로메>,<장난쳐서도 안 됨> 등은 전통적인 희극 관념을 바꾼 풍자 코메디로서, 빅토리아 시대의 거짓과 위선을 폭로한 작품이다.

화가 바질린다. 자신의 혼과 정성을 다 쏟아 그린 그레이의 초상을 보며 바질은 불안해한다. 솔직하고 성실한 청년이었던 그레이는 초상화를 보고난 후 갑자기 소리를 지른다.

“전 그림 속의 사람이 늙었으면 좋겠어요. 대신에 저는 영원히 젊은 채로 있고요.”

바질이 놀라서 그림을 찢어버리려고 하지만 그림을 찢는 건 자신을 죽이는 것과 같다는 그레이의 말 때문에 포기하고 만다. 그레이를 사랑했던 극장 여배우였던 베인이 그레이의 냉정함을 못 이겨 자살하고 난 후 산 사람처럼 표정이 달라져가는 자신의 초상을 보며 앞으로의 모든 삶의 즐거움을 누리며 사는 쪽을 선택한다. 도리안 그레이가 늘 젊고 아름다운 청년으로 사는 동안 그림 속의 사람은 갈수록 늙고 추악하게 변화해 갈 것이었지만 그것이 그들의 운명이라고 생각해버린다. 자신의 잘 생긴 외모와 젊음을 내세워 그레이는 점점 더 방탕한 인간이 되어간다. 결국 자신의 초상화를 그려주었던 바질이 도리안 그레이와 초상화의 비밀을 알게 되자 바질까지 살해하고 만다. 죄책감과 충격으로 괴로워하던 그레이는 한 때 맘을 주었던 시골처녀를 생각하며 모든 것을 되돌리길 바라지만 너무나 추악하게 변해버린 자신의 초상화를 보며 절망하고 만다. 결국 도리안 그레이는 바질을 살해할 때 사용했던 칼로 자신의 초상화를 찢어버리고 만다. 그레이의 시체가 발견되었을 때 사람들은 너무나 아름다운 젊은이로 되돌아와 있는 도리안 그레이의 초상화를 보게 된다. 그 옆엔 누군지 알아볼 수 없는 늙은이가 칼에 찔려 죽어있었는데 사람들은 손에 끼워진 반지를 보고서야 비로소 그가 누군지 알 수 있었다.

사람이 오래도록 젊음을 유지하고 싶다는 열망은 동서양과 고금을 막론하고 가장 열렬한 욕망 중 한가지일 것이다.

“그레이. 내 말을 들어 보게. 젊음은 이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거야. 자네도 늙으면 알게 될 거야. 그 때는 아무것도 가진 게 없다는 걸 말일세. 그러나 지금 자네는 모든 걸 갖고 있네. 하고 싶은 일은 무엇이든 다 할 수 있지.(중략)”

바질의 친구였던 헨리경은 처음 만난 그레이에게 왜 이런 말을 했던 것일까? 그의 말을 듣는 순간 그레이는 늙음에 대해 겁을 집어먹고 젊음을 유지하기 위해서라면 어떤 일이라고 하겠노라고 소리친다. 한참 순수하고 순진한 청년이었던 그레이가 그레이의 젊음을 질투한 한 노신사의 말 한마디에 운명을 바꾸는 이 순간이 난 참으로 가슴이 아프다. 그것은 이런 말을 들었을 때 그레이와 같은 반응을 보이지 않을 청춘이 어디 있을까싶어서이다. 그레이를 불행으로 밀어 넣은 노신사 헨리경도 또 젊음에 대한 집착 때문에 인간다운 삶을 포기한 도리안 그레이도 사실은 우리들이 가지고 있는 열망인 동시에 추악한 얼굴인 때문이기도 하다.

이런 사람들의 젊음과 아름다움에 대한 열망들이 상업주의와 손을 잡으면서 걷잡을 수 없는 혼란으로 휩쓸려 들어가는 느낌이다. 후배와 저녁을 먹으면서 케이블 텔레비전에서 보여주는 란제리(속옷) 패션쇼에 대해서 이야기를 나눈 적이 있다. 물론, 나와 후배는 어차피 날씬한 종족과는 거리가 먼 족속이라 란제리 패션쇼에 서는 모델들을 로망?? 도드라져 보이는 모델들의 풍만한 가슴에 대해서 과학적으로 가능하지 않은 일이라고 입을 모은 적이 있다. 웬만큼 마른 여자들의 체형의 특징은 가슴이 빈약하다는 건데 그렇다면 그들의 가슴은 모두? 뭐 보나마나 뻔한 이야기겠지만 이런 세태들이 세상을 외모지상주의로 이끌어가는 견인차 역할을 하고 있는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을 했다.

오스카 와일드가 도리안 그레이라는 인물을 만들어 낼 시절만 해도 외모가 전부는 아닌 세상이지 않았을까? 하지만, 지금은 천지에 ‘도리안 그레이’가 넘쳐 나는 세상이 되었다. 오래간만에 동창회나 모임에서 만난 친구의 얼굴이 어딘지 모르게 변해있는 걸 볼 때마다 놀라움보다는 그렇게 뜯어고치지 못 하는 내 능력 없음이 서러워진다. 겁나서 얼굴은커녕 귀도 못 뚫는다는 말이 엄살처럼 느껴지기보다는 능력이 없다는 의미로 전달되는 거 같아서 맘이 편치 않다. 이제 외모에 의연해질 나이라고 자신에게 힘을 주면서도 자꾸 약해지는 것. 우린 지금 그런 세상을 살고 있다. 나 하나 외모보다 내면을 들여다보는 힘을 키운다고 힘주어 말하면 어떨까? 나와 같은 생각을 하는 이가 부디 많기를 그리하여 생긴 대로 살아도 아무 거리낌 없는 세상이 되기를, 루저 발언 따윈 낱말의 의미도 모르는 세상이 되길 바란다.        

 

巫敎-권력에 밀린 한국인의 근본 신앙

작년 칠월 칠석에 난생 처음 굿 구경을 했다. 칠석천제를 지낸 후 이어진 칠석굿은 굿이라는 의례를 처음 대하는 나에겐 새로운 경험이면서 신선한 충격이었다.

무당들이 번갈아 나와서 한마당씩 노는 굿거리도 흥겹고 재미있었지만 조그만 항아리 위에 올라서서 방방 뛰던 모습과 삼지창에 돼지고기를 끼어 세우던 광경은 정말 믿어지지 않는 광경을 보고 있다는 놀라움에 등골이 선연했었다. 그 후 텔레비전에서 방영되는 굿에 대한 프로그램을 보면서 그동안 미신이라 터부시했던 굿에 대해 관심을 가지게 되었다.

조금 세밀하게 종교를 논해야한다면 나는 심정적으로 불교도에 가깝다고 본다. 그렇지만, 제사라든지 유교의 의례를 중요하게 생각하며 또 나름대로 성심껏 치른다고 생각한다. 단순하게 글쓰기에 도움이 된다는 조건을 붙이긴 하지만 일 년에 최소한 한 번은 바이블(이 호칭은 이 책을 읽는 후 내가 사용하기로 다짐한 것이다. 그러고 보니 모든 종교의 경전은 성경이 아닐까? 이슬람교는 꾸란, 불교도 대장경, 금강경이라든지 이름이 있다. 그러니 기독교의 경전에 바이블이라는 이름이 합당하다는 저자의 생각이 타당하다고 생각한다.)도 읽으려고 노력한다. 그렇지만, 무교에 대해서만은 선뜻 다가갈 수 없는 ‘무엇’이 있다.

거개의 한국인들은 무교를 두고 종교가 아닌 습속에 불과하며 게다가 전근대적인 미신이라고 생각하고 있다. 그래서 이 무당 종교를 지칭할 때도 ‘교’라는 단어를 쓰기보다는 ‘속’이라는 낱말을 쓴다. 그래서 ‘무속’이라고 부른다. (중략)

일반적으로 한국인들은 무교는 미신이라 생각하고 그리스도교나 불교는 그런 ‘저등한’ 종교와는 본질적으로 다른 ‘고등한’ 종교라 생각한다. 뿐만 아니라 이런 고등 종교를 믿는 자신은 이 무당 종교와는 전혀 관계없는 근대적인 인간으로 생각한다. 그리고 무당은 이상한 귀신을 섬기는 한참 덜떨어진 기괴한 인간으로 생각하고 상종해서는 안 되는 인간으로 여긴다.(page15)

그 ‘무엇’은 巫敎가 미신이라는 생각이었다. 한국인들이 무교를 미신으로 생각하는 이유를 교육적인 요인이나 종교적인 이유 때문이다. 그러나 이 책은 무교도 어엿한 종교라고 이야기한다.  책에서 이야기 하는 무교에 대한 설명을 대략적으로 요약해보면 다음과 같다.

무교는 ‘신령과 무당과 신도’라는 세 가지 요소로 이루어져 있으며 굿이라는 고유한 의례를 통해 만나게 된다. 무교는 신도가 무당이라는 특수한 사제 계급의 중개로 신령을 만나 도움을 받는 것을 목적으로 한다. 신도가 신령과 교통하려면 반드시 무당을 거쳐야 하는 데 그런 의미에서 무당을 사제라고 할 수 있다. 무당은 세습무와 강신무가 있다. 강신무는 신을 내려 받아 그 신의 말씀을 전하는 무당을 말하고 세습무는 신을 모시지 않고 일정한 사제 역할만 하는 무당을 말한다. 세습무의 경우에는 시어머니로부터 며느리로 무당직이 세습되는 경우가 제일 많지만 간혹 딸에게 세습되기도 한다. 우리나라의 무교 분포를 한강을 경계선으로 구분할 때 이북은 강신무가 주종을 이루고 이남은 세습무가 대세를 이룬다.

무당이 되기 위해선 기본적으로 ‘내림굿’을 받아야 한다. ‘내림굿’을 성공적으로 받아야만  굿을 할 수 있는 능력을 부여받는다. 무교의 굿은 무당만이 할 수 있다. 그런 의미에서 무당은 ‘순전한genuine사제’라고 할 수 있다. 무당은 보통의 점쟁이들과는 다르다. 내림굿을 하지 않은 사람도 신기가 있으면 얼마든지 점을 칠 수 있다. 그러나 정식 내림굿을 받지 않았기 때문에 그런 신은 신령계에서 인정받지 못한다. 이런 점쟁이들은 사제가 아니라 그야말로 술사들이라 할 수 있다.

무당이 되려면 예외 없이 신병을 앓아야 한다. 신병을 앓는 기간은 아주 다양하며 증상도 매우 다양하다. 그렇지만 평균 8년 정도를 신병 때문에 고생한다고 한다. 신병을 앓고 있으며 내림굿을 받아야 한다는 진단이 나와도 처음엔 이를 거부하게 되는데 이때 생기는 현상을 ‘인다리’라고 한다. ‘인다리’란 무당 후보자가 끝끝내 신 받기를 거부할 때 신령이 그 후보자가 가장 사랑하는 친족을 죽게 만드는 현상을 말한다.

만일 무교가 미신에 불과하고 무당은 잡신을 숭배하면서 사람들을 속여 재물을 갈취하는 타락한 ‘민간 주술사’이자 ‘우상 숭배자’이고 ‘미신 신봉자’라면 자신을 그렇게 힘들게 하지는 않을 것이다. 그러니까 무교가 순전한 미신이라면 무당 후보자가 이렇게 큰 고통 속에서 자신을 괴롭히면서까지 사제가 되어 남을 도우려고 하지 않을 것이라는 말이다.(page35)

무교에서 가장 중요한 요소는 굿이다. 이 책은 굿에 대해 아주 세세하게 설명해주고 있는데 굿을 신과의 교통을 목적으로 한 신성한 일인 뮤지컬이라고 표현한 부분이 인상적이다. 아울러서 굿의 진행과 굿의 여러 형식에 대한 설명들은 작년 보았던 굿거리들을 다시 한 번 떠올려보고 비로소 아하~하고 이해가 되었다. 

굿은 재숫굿처럼 복을 받기 위해 정기적으로 하는 것도 있고 오구굿처럼 사람이 죽었을 때 하는 굿도 있다. 그러나 사람들이 굿을 하는 가장 큰 이유는 자신이 풀지 못하는 큰 문제가 생겼을 때 그것을 풀기 위해서이다.(page45)

저자는 굿의 규모와 절차, 비용에 대해서도 자세하게 설명하고 있다. 굿이라고 하면 미신적 행위의 정점이고 가뜩이나 어려운 사람의 마음을 흔들어서 ‘돈’이나 뜯어내는 잘못된 행위라는 내 생각을 조금 수정하였다. 물론, 없는 돈을 빌려서까지 가져다 바치면서 심신은 물론 가정까지 흔들리는 맹목성에 대해선 여전히 고운 시선을 줄 수 없겠지만.

  

무교는 보편적인 덕목을 강조하기보다는 그 교리가 신령에게 공물을 바쳐서 지금 여기서 내가, 혹은 우리 가족이 어떤 물질적인 이익을 얻을 것인가에 집중되었기 때문이다. 확실히 불교나 그리스도고 같은 고등 종교 입장에서 보면 무교는 저급한 신앙으로 보일 수 있다. 보편성의 밀도가 떨어지기 때문이다.(중략)

무교가 미신의 굴레에서 벗어날 수 없었던 데에는 무교는 권력 싸움에서 우위를 점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역사를 보면 무교는 계속해서 권력과의 거리가 멀어졌기 때문에 미신으로 취급받을 수밖에 없었다.(중략)

원래 종교적 신념에 관한 한 진리라는 게 따로 있는 게 아니다. 권력을 잡은 많은 사람들이 힘으로 밀면 그것이 진리가 되는 것이다. 이렇게 해서 이 종교가 진리가 되면 소수의 종교라 할 수 있는 무교는 비 진리 혹은 미신으로 전락하게 된다.(page180)

결론으로 무교가 권력에 밀려날 수밖에 없는 이유들을 설명하는 부분에서는 우리민족의 의식 속에 들어있는 무교적 성향들을 조목조목 설명하기도 한다. 나름대로도 나도 수긍이 간다. 여태껏 우리의 정신을 외래종교의 틀에서 이해하고 그것을 당연하게 받아들여 의심해보지 않았던 것이 오히려 이해가 되지 않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무교를 ‘종교’로 인정하기 위해선 여전히 많은 심사숙고가 필요할 것 같다. 그것은 내가 독실한 불교도이기 때문도  아니고 기독교인이기 때문도 아니다. 아주 오랜 시간 습성이 된 종교에 대한 생각들을 바꾸는 것이 나 뿐만이 아니고 대부분의 사람들도 많은 노력이 필요하겠다는 생각이 들어서이다. 어쨌든, 무교가 우리의 근본신앙으로서 자리를 찾으려면 더 많은 사람들의 노력과 연구가 필요하겠다는 생각을 했다.

         

 

파리는 사랑한다, 행복할 자유를!

어느 책에선가 읽은 기억이 있다. 상대방의 맘을 상하지 않게 지적하는 방법은 칭찬을 먼저 하고 지적을 나중에 하라고.

좋은 말임에 틀림없다. 다만, 실천이 잘 안 될 따름이지. 특히, 아이들의 잘못된 점을 지적할 때는 적당히 감정이 고양되어 있는 상태일 때가 많아 지적의 말이 먼저 나가게 된다. 남편과의 말다툼에서도 역시 마찬가지다. 대인관계라는 것이 생각보다 연습이 많이 필요하다는 걸 알겠다. 파리에 대한 책을 읽었으면서 무슨 삼천포로 빠지는 소린가 할 거다.

마침, 얼마 전 출판기획자가 말하는 출판기획자라는 책을 읽어서일까? 그렇다고 출판 전반에 대해 자세하게 설명된 책은 아니었지만 나름대로 기획의 중요성에 대해 인식할 수 있었던 기회였다. 그리고 이 책을 읽으면서 다시 한 번 기획의 중요성을 실감했노라고 한다면 나는 출판사 입장에서는 아주 나쁜 독자 쪽으로 줄을 세워야할 런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대단한 반감을 표시하려는 건 아니다. 그저 독자의 한 사람으로서 조금 아쉬웠던 점. 조금 불만스러웠던 점을 이야기하고 싶다는 것 뿐.

이 책을 읽으면서 제목이 얼마나 중요한가에 대해 다시 한 번 생각해 보았다. ‘파리는 사랑한다, 행복할 자유를~’이라는 제목을 보고 다른 사람들은 무엇을 제일 먼저 떠올렸을지 궁금하다. 이 책을 읽기 전 연이어서 읽은 몇 권의 기행문과 여행 안내서에 대한 잔영이 남아서일까 나는 파리의 풍물과 파리지엔의 생활과 저자가 겪은 소소한 파리 생활을 생각했다. 더군다나, 저자 소개에 ‘대한민국 보통 아줌마’라고 하니 나름대로의 결론이 더 굳어졌을 건 뻔하다. 하지만, 솔직히 말해서 대부분의 사람들이 공영방송국의 잘 나가는 기자를 ‘보통 아줌마’라고는 아무도 생각하지 않을 거다. 아무리 저자 스스로 ‘아줌마’임을 목청껏 외친다한들 저자는 이미 ‘보통’아줌마는 아니다. 글쎄 결혼을 하고 아이도 있으니 ‘아줌마’는 맞는 거 같다. 하지만, 표지에 실렸던 ‘대한민국 보통 아줌마’와는 달리 아줌마인 내가 저자에게 공감할 수 있는 것은 생물학적 ‘아줌마’만이라는 것이 다르다면 다르다. 그런 의미에서 좀 더 집약적인 제목이었다면 어땠을까하는 생각이 들었다는 것이고,

내가 미적 안목이 대단히 높은 것은 아니지만 표지 일러스트를 좀 더 단순화, 상징화했더라면 어땠을까 라는 생각도 해보았다. 미안한 이야기지만 표지가 좀 더 세련되었더라면 독자들의 시선을 끌 수 있을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의외로 이 책의 내용들은 폭이 넓고 깊다. 그냥 지나치면 소소한 일상이 되기 쉬운 작은 이야기들을 큰 강물로 깊은 샘물로 만들어 놓은 저자의 지식과 필력에 존경을 표한다. 기자출신답게 현장감이 살아있는 이야기들은 이 책이 그저 책상머리에서 쓰여진 글이 아니라는 걸 알게 해준다.

파리와 파리를 넘어 프랑스의 정치와 경제 그리고 사회에 대한 냉정하고도 폭넓은 관찰과 통찰이 이 책 속에 들어있다. 우리가 알고 있는 프랑스와 파리가 실상은 얼마나 피상적인 것인지 현실과 얼마나 멀리 떨어져있는 실루엣 같은 것인지를 알려준다. 프랑스 좌파와 우파의 정치현실, 농업국가라는 자부심을 가지고 있는 프랑스 경제의 밑바탕. 빈부격차. 인종차별. 노동쟁의. 여타한 공공기관의 관행까지 프랑스 또는 파리가 가지고 있는 사회적 관심사와 과제들까지를 일목요연하게 보여준다. 그래서 이쯤이면 프랑스의 속살을 다 들여다본 게 아닐까? 라는 의문점이 생길 정도이다.

물론, 프랑스의 면면을 되짚어보면 부러운 점도 많다. 서울과 파리를 비교해도 부러운 것이 많은 것은 많은 거다. 하지만, 이 책을 읽으면서 거기도 결국 사람 사는 곳이라는 것을 배운다.  다만, 우리와 다른 몇몇의 제도가 좀 부럽기는 하다. 대학입학 제도 같은 것은 정말로 부러울 따름인데 아마도 내일이 수능시험을 보는 날이라서 더 그런 모양이다. 이제 우리 집엔 수능 수험생은 없지만, 작년 아들 녀석의 수능이 생각나서 갑자기 마음이 착잡해진다.

프랑스 대학은 일반대학과 그랑제콜 두 유형으로 나뉜다. 이 두 좋유를 가르는 결정적인 차이가 있다. 바로 학생선발권 여부. 일반 대학은 학생 선발권은 없고 그랑제콜은 있다. (중략) 입시생들이 보는 ‘바칼로레아’라는 수학능력시험은 작년을 예로 들면, 수험생 85%가 통과했다. 일단 바칼로레아를 통과한 이들은 점수에 상관없이 가고 싶은 대학, 원하는 학과에 갈 수 있다.(중략) 1학년 때 학점에 따라 칼같이 약 50%가 탈락한다. 전공이 경제사회행정인 학생은 무려 70%가 잘린다.(중략) 2학년으로 진급한 학생 중 다시 25% 가량이 떨어져 나간다. 결과적으로 신입생의 37% 정도만 학사 학위를 받고 출구를 무사히 빠져나갈 수 있는 일종의 지옥 훈련이다.(중략) 다만, 대학에서 탈락해도 자기를 잘 추스르면 긴 인생에 얼마든지 성공할 수 있음을 보장하는 사회...(page 87-88)

프랑스 사회의 남녀차별에 대한 부분은 프랑스의 개인주의와 함께 기대보다 훨씬 깊이 있고 자세하게 다룬 부분이라 반갑다. 이 책을 읽으면서 ‘남존여비’의 사상은 우리나라에만 있었던 나쁜 습속은 아니었다. 곰곰이 생각해보면 프랑스에 비해 우리나라는 오히려 여성의 지위가 프랑스 여성들에 비해 그리 낮지 않았다는 생각이 들기도 했다. 바지를 입지 못 하게 하기 위한 ‘판탈롱 법’이라는 것도 있다고 한다. 참고로 몽테뉴는 [수상록]이라는 명저를 남겼지만 사생활에선 여러 여자에게서 난 자기 애가 도대체 몇 십 명인지 혹 백 단위인지를 모르고 죽었다고 한다. 루소도 자식 다섯 명을 모두 고아원에 유기한

내가 제대로 보았다면 프랑스 사람들의 개인주의는 근세까지도 이어졌던 육아방법에 많은 영향을 받았다는 생각이 든다. 문화와 풍습이 다르다고 하지만 그들의 육아방법은 아이를 낳고 키운 경험이 있는 나로서는 더욱 이해하기 힘든 부분이었다.

1200년대에 성 아우구스티누스라는 기독교 최대 신학자가 세운 교리 때문이다. 어린이와 관련해, 인간은 원죄 덩어리이기 때문에 어릴 때부터 엄격하게 훈육시키지 않으면 안 된다는 논리가 골자다. 아이는 기본적으로 유죄이고 불완전하고 불유쾌한 존재라는 입장으로, 이것이 거의 바뀌지 않고 수백 년 동안 사람들의 생각을 지배했다.(page172)

근래에 프랑스 작가의 소설을 몇 편 읽을 기회가 있었다. 예전의 쓰여진 소설들에 비하면 근작들은 프랑스 냄새가 많이 희석되어 있고 간혹 미국작가의 소설인가 하는 생각이 들 때도 있다. 이도 또한 세계화의 영향인가 라는 생각을 해본다. 예전에 쓰여진 프랑스 소설들은 대부분 프랑스적인 사고방식이 짙게 들어가 있어 난해하고 어려웠었는데 이 책을 읽으며 프랑스 문학이 우선은 어렵게만 다가왔던 이유를 알 수 있을 것 같다. 우리와 비슷한 구석이 있으면서 너무 다른 그들의 문화와 특성을 조금은 알게 되었으니 다음 번 만나는 프랑스 문학작품에선 조금 더 쉽게 다가갈 마음이 생길 것이다.

적나라한 프랑스를 만났다. 화려하고 멋쟁이들만 있는 파리가 아니라 사람들이 살고 그 사람들 사이에 서로 부대낌이 있는 파리. 그래서 더욱 낯설어졌지만 그래서 더 궁금하고 매력적으로 다가온 파리와의 만남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