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균 그리고 이순신.
임진왜란은 6.25전쟁과 더불어 우리 민족이 겪었던 큰 전쟁이 아닐까 싶다.
경상도 해안 특히 부산포 앞바다는 전라도 쪽보다는 일본에서 가깝고 겨울에도 얼어붙지 않는, 아늑한 자연 방파제를 이루고 있는 천혜의 항구적 요건을 갖춘 대륙 진출의 관문으로서 일본의 주 공략 목표가 되었다.
그 외에도 우리나라는 지리적으로 북으로는 드넓은 대륙에 접해 있고 동서남의 삼면이 바다에 접해 있으며 동해의 거센 물결은 일본 열도가 병풍처럼 막아서 있고, 후련히 터진 남해의 길목에는 제주도가 그 길목을 지키고 있다. 기후가 온화하고 사계절이 뚜렷하며 지진이나 천재지변이 잦거나 심하지 않은, 동방의 살기 좋은 나라로 예로부터 정평이 나 있었던 것이다.
그리하여 항상 잦고 큰 지진과 폭풍의 길목에서 시달리며 사는 일본은 호시탐탐 한반도의 땅을 넘보아 왔으며...(page226)
위의 인용문은 일본이 늘 우리나라를 넘봤던 이유이다. 임진왜란에 대한 내용은 역사를 공부하면서 자주 접하고 많이 배웠다고 생각했다. 임진왜란의 주역이었던 이순신 장군과 거북선에 대해선 초등학교 때부터 이미 자주 접하고 배우기 시작하지만 이 책을 읽고 보니 이순신과 거북선이라는 굵은 선만을 가르치고 배웠을 뿐 당시의 주변정세와 난리의 배경과 전개과정 거북선의 제작 과정, 전쟁 뒤의 처리 에 대해선 부분적일뿐 필요부분에 대해서도 제대로 학습되지 못했다는 걸 알았다. 역사의 서술과 역사 교육이야말로 아주 민감한 문제가 아닐까. 우리나라의 역사교육의 부족한 부분을 이 책을 읽으며 짚어보는 계기가 되기도 했다.
이순신은 임진년에 전라 좌수사로서 전함을 거느리고 경상 우수사 원균과 더불어 거제 앞바다에서 싸워서 적을 대파하였다. 그 해전에서 적선 50여 척을 무찔렀으니 그 공이 변란 후에 제일 큰 것이었다. 그 때에 작전 계획과 선봉은 모두 원균이 한 것이었으며 이순신은 특별히 도와주는 처지에 있었다. 대 것을 이순신에게 상의하였더니 이순신은
“장군과 더불어 왜적을 무찔렀으나 아직 왜적을 다 죽이지 못 하였소. 이를 적은 첩보를 조정에 알릴 필요가 있겠고. 내가 전라도로부터 급작스럽게 달려오느라고 미처 병기도 다 갖추지 못하고 왔고 장차 적장의 머리를 얻은 다음에 다시 의논함이 좋을 것입니다.”
라고 하였다. 원균은 그 말에 따르기로 하였다. 그러나 이순신은 비밀히 사람을 조정으로 보내어 싸움에서 얻은 병기와 적선에서 빼앗은 금병품, 금부채 등의 물건을 곁들여 전공을 모두 스스로가 세운 공처럼 과장해서 장계를 올렸다. 조정에서는 방금 위급한 처지에서 그러한 보고를 받고 크게 기뻐하며 이순신을 통제사로 삼고(1593년 8월15일) 원균으로 하여금 그의 지휘를 받게 하니 원균은 이로부터 크게 상심하여 서로 협력하지 않았다.
처음에 원균이 이순신에게 원병을 청하여 왜적을 공파하였다. 그때 원균은 연명으로 장계를 올리자고 하니 이순신이 말하기를 천천히 보고하자 하여 놓고 밤을 타서 스스로 장계를 올리면서 원균이 실군失軍 하였을 뿐 아니라 적을 공파한 공도 없다고 보고하니 원균이 두 달 후 이를 듣고 크게 유감으로 생각하였다. 이로부터 각자 따로 따로 장계를 올리게 되었을 뿐만 아니라 두 사람이 서로 틈이 벌어지게 되었다.[선조실록-선조36년(1603년) 4월의 기록](page150-151)
이 책을 만나기 전 불러그에 출판사에서 배포한 책 소개를 올려두었었다. 어느 분이 몇 글자 안 되지만 언짢은 댓글을 남기고 가셨다. 그 분의 댓글이 가슴에 남아서 조금 더 꼼꼼히 읽어봐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순신 장군 전기를 처음 만났던 때가 초등학교 4,5학년이었던 것 같다. 지금도 기억하는 초록색 표지. 그리고 지은이는 이원수 선생님이셨던 걸로 기억한다. 국어 교과서에서 말 타기 경기에 나간 어린 순신이 말에서 떨어져 다리를 다치자 근처 우물가의 버드나무 껍질을 벗겨 상처를 동여매고 끝까지 경기를 끝냈다는 내용을 배웠던 터라 이순신 장군의 전기가 더 새록새록 가슴에 새겨졌을 것이다. 그 때, 이순신은 오로지 우국충정만 있는 신하로 원균은 이순신을 모함하기만 하고 전장에서 도망치다 적에게 죽은 비열한 인간으로 그리고 권율은 사람의 됨됨이를 잘 알아보고 이순신을 끝까지 도와주고 이끌어준 현명한 장군으로 기억 속에 저장이 되었고 그런 내 기억에 의문을 제기해 보기 시작한 것은 불과 얼마 전이라는 생각이 든다.
나는 이순신 장군이 절대적 인간으로 미화된 어느 유명 작가의 소설도 또 그 소설을 바탕으로 만든 드라마도 보거나 읽은 적이 없다. 당시 수많은 사람들의 입에 연일 회자되는 것부터 이미 지루했지만 어느 한 사람만을 완벽한 인간인양 미화한다는 것이 맘에 들지 않았었다. 세상에 완벽한 인간은 없으니까. 그럼에도 이순신 장군에 대해서는 그동안 너무 정책적으로(?)미화되기만 했던 것은 아니었을까? 이 책을 읽다보면 오히려 이순신의 인간적인 모습을 만나는 기회가 된다.
이 책에서 다루는 네 사람. 이순신. 원균. 권율. 그리고 이식. 이들의 면모를 따라가면서 정말로 여러 가지를 생각했다. 세상을 움직이는 힘이란 정말 무엇일까? 힘을 가진다는 건 우리의 삶에 어떤 변수가 되는 걸까? 우리가 진리라고 믿고 있는 것들이 모두 진리이긴 한 걸까? 보이지도 않고 이미 존재하지도 않는 진실들을 지금 이 시대에 사는 우리들은 어떻게 찾아서 수정하고 받아들여야 하는 걸까? 그런 잘못된 오류를 수정할만한 진심이 과연 이시대의 우리들에게 있기는 한 걸까?
조선왕조는 개국 초기부터 역사의 기록을 후세에 전하기 위해 史官제도를 엄격하게 시행했다. 사관들은 조정에서 행해진 언동은 물론 나라 안팎에서 벌어진 사실들을 탄탄이 기록하였는데, 이를 史草라 한다. 史草는 당대의 임금을 비롯하여 군신 그 누구를 막론하고 볼 수 없도록 비밀리에 보관해 공정성이 지켜지도록 하였다. 임금의 재위 기간에 기록된 사초들은 임금이 승하하면 실록청을 개설하여 날짜순으로 편찬하여 완성하는 데 이것이 실록이다. 실록 편찬이 끝난 사초와 실록초본은 찢고 부수어 물에 넣어 흔적을 없앤 다음 그것을 담당하는 부서로 보내 확인을 받는 절차를 밟았는데 이를 洗草라고 하며 이 절차는 누구의 기록인지 누구의 필체인지 흔적을 남기지 못 하도록 하여 훗날 화근이 발생하지 않도록 하였다. 이와 같은 제도는 조선왕조의 역사 편찬 제도가 공정성을 기하기 위하여 얼마나 엄격한 방법을 쓰고 있었는가를 알 수 있게 한다.(page16-17 참조)
이런 엄격함이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임진왜란과 정유재란이 끝나고 45년이 흐른 1643년(인조21년)에 대제학으로 있던 이식이 [선조실록]을 수정해야 한다는 상소문을 올린다. 역사가 공정하지 못 하게 기록되었으며 거짓으로 기록된 것이 있어 수정해야 한다는 이유를 들어 [선조수정실록]을 만들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여기에 인조반정으로 정권을 잡은 서인들이 적극적으로 지지하여 결국 이 주장이 받아들여진 것 같다고 저자는 주장하고 있다
왜 이식은 선조실록을 수정하려고 했을까? 그 시대의 대표적 지성이었던 이식의 주장엔 나름대로의 이유가 있었을 것이다. 선조의 시대야말로 난국 중의 난국이었던 때라 역사서술에 대해서도 오류가 많았던 것일까? 그렇지만, 저자가 특별히 주목한 점은,
[선조수정실록]엔 편자인 이식의 문벌인 이이와 이순신 그리고 이완에 대한 기록들이 많다고 한다. 문제가 되는 것은 문벌 중심의 기록이라는 점보다도 그 과정에서 이순신과 전공을 놓고 심하게 다투었던 원균이 왜곡되어 기록되었다는 점이다.(page19)
책에서 저자가 인용한 [선조실록]과 [선조수정실록]의 내용을 비교해 보면 대부분은 극과극의 평가라서 그 시대에 대한 짧은 지식만을 가지고서는 흑백을 가려보려는 것 자체가 많이 당황스럽다.
그렇다고 저자는 민족의 영웅이라 칭송받는 이순신을 깎아내리고 있지 않다. 다만, 비겁한 패장으로 역사에 기록되어 있는 원균에 대한 재조명을 통해 원균의 숨겨진 면목을 밝히고 있다. 이 책을 읽으면서 너무 완벽하게만 미화되어 만나왔던 역사속의 이순신과 권율에 대하여 오히려 그들도 인간의 욕망과 약점을 가진 인간이었다는 점에 수긍할 수 있었다.
역사는 힘을 가진 자의 기록이라고 한다. 어차피 모든 역사는 승자들에 의해 승자들의 이야기로 쓰기 마련이다. 패한 자의 역정을 들춰내 기록할 이유도 기록할 사람이 과연 얼마나 될까? 이 시대 원균 그리고 이순신을 읽으며 나는 누가 과연 진실이고 거짓인지도 중요하지만 어느 한 쪽으로 치우치지 않는 공정한 평가의 잣대를 나 스스로 가질 수 있는 지식과 지혜를 갖추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같은 이야기가 여러 번 반복되어서 오히려 글에 대한 흥미와 집중력을 반감시켰지만 같은 내용을 여러 번 만나다보니 책의 내용을 이해하기가 조금 더 쉽기도 했다. 중간에 이순신. 원균. 권율. 이식의 유적을 돌아본 기행문도 내용을 이해하는 데 많은 도움이 되었다. 나는 이 책에서 주장하는 저자의 생각이 모두 옳다고는 보지 않는다. 그렇지만 숨겨진 역사를 바르게 재조명 하려 작업을 하는 저자의 노고에 박수를 보내드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