땅끝마을 아름다운 절

아침에 일어나니 이른 시간도 아닌데 방안이 아직도 어둑했다. 이렇게 어둠이 쉬이 가시지 않는 날은 어쨌거나 해님이 늦게 기침을 하고 있는 것만은 확실하다. 창밖을 내다보니 자욱하니 안개가 끼어있다. 진한 안개비가 내린다. 아니, 이런 비는 는개라고 해야 하는 거 아닌가? 어젯밤 집에 들어올 때도 안개가 자욱하더니만 그 안개가 종일 도시를 붙잡을 채 놓아줄 생각을 안 한다. 우산을 안 쓰자니 축축하고 그렇다고 우산을 쓰고 다니려니 좀 멋쩍은 날씨의 하루. 그렇게 젖어있는 도시를 가끔 창으로 내다보고 있노라니 오늘 같은 날은 뭔가 좀 뽀송뽀송하고 따뜻한 느낌의 책을 읽어보고 싶다. 아침에 택배로 받은 ‘땅끝마을 아름다운 절 이야기’를 가방에 넣어가지고 나오길 잘 했다는 생각을 했다.

표지 사진 속의 하늘은 파랗게 눈이 시리다. 혹시 어느 가을날 하루가 아니었을까? 문득 생각해보니 그야말로 ‘시린’하늘을 올려다본 것이 언제인지 아득하다. 그 깊은 하늘 속에 아스라이 지나가던 비행기의 흔적. 그 기억들을 책 표지를 보면서 오래간만에 떠올렸다. 그리고

오래 전 한 철 머물렀던 남쪽 어느 마을의 작은 절집이 생각나 또 한참을 오랜 기억 속에 머물렀다. 그 절집에 대한 기억들은 책을 읽는 내내 머릿속에서 떠나지 않은 채 페이지를 넘길 때마다 고개를 내민다. 이 도시에 살면서 그런 절집의 기억을 들춰낼 일이 무엇이 있을까 라고 생각했는데 기억의 끈은 이렇게도 이어질 수 있다는 걸 배운다. 이것도 또한 인연이라면 인연이겠지.

금강스님이 계신 절집이 ‘미황사’였구나. 왠지 한 번은 꼭 해야 할 숙제를 안 하고 있는 것처럼 마음에 남아 있는 행사. 템플스테이. 휴가 때마다 인터넷을 뒤져 템플스테이 일정을 메모해놓고 올 해는 꼭 한 번 가보리라 다짐하면서 아직 한 번도 참가하지 못 하고 있는 그 행사의 메모 속에 ‘미황사’가 들어있었는데...... 내심 반가우면서도 눈에 반짝인다. 새벽예불 때가  가장 아름답다니 한 번 참석해보고 싶다.

특히 겨울철 음력 보름날 새벽에는 달이 서쪽 바다를 은빛으로 물들이고는, 하얀 달이 노랗게 변하며 깊은 침묵의 새벽을 황홀한 시간으로 바꾸어 놓는다. 그럴 때 내가 할 수 있는 일이란 대웅전으로 향하던 발걸음을 멈추고 그냥 새벽이 되어 보는 것이다.(page25)

책엔 절집의 사계절이 오롯이 들어있다. 겨울에서 봄으로 그리고 여름으로 또 가을로. 그 계절들은 1월부터 12월까지로 조금 더 작게 나눠지고 그 다음엔 하루 한 시각으로 작게 부서져서 절집의 소소한 일상이 들어있다.

절에서의 새벽은 도량석(道楊釋-도량을 청정히 하고 모든 중생을 깨우기 위하여 목탁을 치며 도량 주위를 도는 의식)에서부터 시작한다. 스님 한 분이 이른 새벽에 법당 문을 열고 부처님 앞에 촛불을 켠다. 그 후 다기茶器 잔에 맑은 물을 가득 담고 향을 사른다. 그런 다음 마당 한가운데에서 삼배를 드리고, 목탁들 치면서 도량을 깨운다. 새벽녘 어둠을 멀리 몰아내고 밝음을 풀어내는 의식이다.(page21-22)

불교에 대해서 잘 모르는 일반인들에겐 좋은 불교 안내서도 되어 줄 것 같다. 절집의 구조와 쓰임. 중요성. 그리고 운판, 목어, 법고 같은 불기들의 쓰임과 의미는 물론 절집과 관련된 말들의 의미도 배우면서 잘 몰랐던 절집의 일상을 보여준다.

스님의 개인적인 수행과정에 대한 이야기도 들어있지만 대부분은 미황사에서 진행하고 있는

한자 학교나 산사 음악회 같은 행사들과 템플스테이, 불사에 대한 설명에 아무래도 많은 부분이 할애되어 있다. 이런 부분들도 잘 읽어두면 좋은 여행 안내서로도 손색이 없을 것 같다.

하지만, 나는 스님이 절과 마을 사람들과의 소통을 다룬 부분에 특히 더 관심이 갔다.

특히, 스님이 마을 당제를 지낸다는 것은 좀 의아했다고나 할까? 당제는 우리나라의 민속신앙의 범주에 들어가는 것으로 알고 있다. 민속신앙이라면 치성을 드리는 일. 점을 본다거나 굿을 하는 행위. 그리고 무당이나 만신을 먼저 떠올리는 고정관념에 젖어서일까? 민속신앙과 결부되어 있는 스님들을 이제껏 이상한 종교인이라고 생각했던 나는 쉽게 납득이 가질 않는 부분이었는데 책을 읽고 보니 나름대로는 ‘그럴 수도 있겠다’라는 생각이 들었다.

왜 그런지 모르겠지만 나는 늘 우리나라의 종교가 특히 불교는 ‘기복신앙祈福信仰’의 성격이 유난하다는 선입견을 가지고 있었다. 그것은 아마도 너무 극성스럽게 종교에 매달려 기도하는 모습을 안 좋게 보았던 탓이 아닌가 싶다. 불교도 그런 맥락에서 늘 조금 경계를 하며 불교 경전은 가까이 하지만 절엔 가지 않는 이상한 신도였다. 하지만, 스님과 마을 사람들의 소통을 읽으며 나야말로 잘못된 아집에 빠져서 한쪽으로만 치우친 종교생활을 하고 있었나? 라는 의문을 가지게 되었다. 어떤 실천이 맞는 종교생활인지 좀 더 고민해봐야겠지만 어쨌든, 스님과 마을 사람들과의 소통도 아름다웠고 절과 세상과의 소통 역시도 아름다웠다.

이글을 마무리 하는 지금은 안개비가 그쳤다. 대신 도시는 이제 밤에 휩싸여 있다. 세상은 이렇게 늘 무엇인가에 휩싸여 있다. 그 휩싸임 속에서 바르게 보려면 마음공부를 잘 해야겠지. 오래간만에 몸을 던져 오래도록 절을 하고 싶은 날이다.

절은 비우는 행위이다. 이마와 두 팔과 두 무릎이 땅에 닿게 절을 하는 오체투지는 마치 그릇을 비우듯 나를 비우는 중요한 공부이다. 다섯 감각기관이 끝없이 욕심 부리는 것을 비우고, 나라는 생각에 싸여 일어나는 갖가지 감정들을 비우고, 잘못된 가치관이나 오만과 편견을 비우는 것이 절이다. 그리하여 잘못된 행위와 마음씀이 정화되었을 때 비로소 청정함이 채워지고 고요함이 채워지고, 지혜가 채워지는 것이다.(page15-17)  

     

다만, 책의 생김새 중 아쉬웠던 점 한 가지. 책을 펼 쳤을 때 좌우의 여백이 너무 좁다. 위아래의 여백도 왠지 균형이 맞춰지지 않은 듯 조금 어설프게 다가온다. 책의 판형을 조금 키웠더라면 더 좋았을 텐데 하는 생각을 했다. 속지의 두께도 조금 부담스럽다. 함께 수록된 사진의 질감을 살리기 위한 방편일지도 모른다는 생각도 들지만 좀 더 저렴하고 가벼운 종이를 사용했더라면 소박하고 정갈한 절집 이야기가 더 살아났을 텐데 라는 아쉬움이 남는 건 어쩔 수 없다.  

 

 

황제-제국의 부활

몇 년 전 아들을 데리고 종묘에 간 적이 있었다. 마침, 초여름의 무척 더운 날이었던 것 같은데 종묘제례가 열린다는 안내에 하루 종일을 땡볕에서 얼굴을 익혀가면서 구경하고 왔던 기억이 있다. 그 때 내 기억으로는 임금으로 분장을 하셨던 분이 조선의 마지막 황손이셨던 분으로 기억한다. 얼굴의 윤곽이 조선 임금들의 영정에서 보았던 전체적인 이미지와 닮아있어서 신기했었다. 종묘 제례 자체도 궁궐의 의식이었던 만큼 장엄하면서도 절도 있는 형식이 인상적이었지만 제례를 관람하며 가까이에 별도로 앉아 있던 종친 분들은 남자든 여자든 비슷한 얼굴 윤곽을 가지고 있어서 일반인들과 구별되었던 기억이 있다. 세상이 바뀌었지만 ‘황손’이라는 또는 ‘왕실’의 구성원이라는 그들을 직접 본 것만으로도 흥분되던 묘한 느낌.

만약에 우리나라에 황실이 부활된다면 어떨까? 물론, 영국이나 일본처럼 상징적인 의미로만 존재할 뿐 정치에 관여하지 않아야 한다는 조건으로 말이다. 연전에 방영되었던 [궁]이라는 텔레비전 드라마처럼 나름대로는 낭만적일 거라는 생각이 든다.

근래에 보기 드믄 3권짜리 소설책을 만났다. 가요 ‘독도는 우리 땅’의 작사. 작곡가이고 나도 한 때 참 오래도록 즐겨들었던 인기 라디오 프로의 연출자이기도 하다. 방송과 관계있는 글의 특징은 매우 속도가 빠르고 감각적이라는 특징이 있지 않을까? 이런 내 예상은 1권의 ‘책 쓰기 전에 만난 사람’을 읽으면서 대략 맞았다는 생각이 들었다.

경복궁 어딘가에 금괴가 묻혀있다는 가정이 이 소설의 출발이다. 황금덩어리가 묻혀있는 패망한 나라의 궁궐이라니! 보물지도를 가지고 모험을 떠난 인디아나 존스도 아니건만 앞으로의 진행이 궁금했었다.

그동안 배운 역사 상식을 기초로 할 때의 고종황제를 보는 대부분의 생각은 유약하고 결단력 없는 겁쟁이 임금이 아니었을까? 아버지의 손아귀와 부인의 치마에 쌓여 살던 임금. 대부분의 드라마 속에서 고종임금은 그렇게 유약한 임금으로 그려져 왔다. 하지만, 정말로 고종은 그렇게 약하기만 한 임금이었을까? 고종에 대한 그런 인식이 각인되어 있는 사람이라면 이 소설을 읽고 난 후 고종임금을 평가하는 시각이 조금은 달라질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둘째 아들을 궁으로 들여보내고 드디어 임금의 반열에 올려놓은 후 대원군은 우연히 옛 규장각 서고에서 장조(사도세자)의 편지를 발견한다. 그 편지에 적힌 대로 규장각 지하에 보관되어 있던 많은 금괴를 발견한 대원군은 그것을 동궁의 지하로 옮겨 보관한다.

방대한 양의 이야기에도 불구하고 조금 맥이 빠졌던 이유는 무엇이었을까? 가만히 되짚어보니 대부분의 에피소드는 이미 역사에서 그리고 역사를 다룬 소설에서 많이 다루어지고 많이 만나본 때문이기 아니었을까? 서원철폐, 경복궁 재건, 임오군란, 중전의 오라비였던 민승효의 폭사사건, 이 상궁. 엄 귀빈, 그리고 민 황후에 대한 부분까지 대원군이 이야기를 이끄는 전반부의 대부분이 그랬다. 별다른 수식 없이 담담하게 흘러가는 이야기는 한 권의 역사책을 읽는 느낌이었다. 그래서 이 책은 픽션인가 논픽션인가가 분명하지 않다. 구한말의 역사적 흐름을 모두 소설 속에 담고 싶어 한 작가의 의욕이 넘쳤던 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도 들고,

대원군 사후 이야기의 주도권이 고종에게로 넘어와서도 기대만큼 긴장감 있는 전개가 이루어지지 않아서 아쉬웠다. 왕비 시해사건, 갑오개혁, 아관파천, 일본의 탄압과 감시상황, 동학농민전쟁을 지나 세계 2차 대전과 원폭투하까지 전반적으로 역사시간에 배운 모든 사건들이 빼놓지 않고 다뤄지고 있다. 작가는 가능하면 역사현실에 충실한 글쓰기를 함으로써 ‘경복궁 어딘가에 금괴가 묻혀있다’는 소문의 현실성에 무게를 좀 얹어보고 싶었던 것을 아닐까? 라는 의심이 생긴다. 아님, 작가도 황실 부활 찬성론자들 중 한 사람일 런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기도 했다.

3권의 소설을 다 읽도록 책 속의 고종은 여전히 자신의 의지를 드러내지 못하고 있다.

세상일이란 이렇게 변화무쌍한 것이다. 지금 힘들고 어렵다고 모든 것을 지금의 기준대로 생각하며 낙망하는 사람만큼 어리석은 사람은 없다. 즉, 자포자기하는 사람이 가장 어리석은 사람이다. 빌어먹어도 이승에서 살아남은 자격이 없는 사람이다. 빌어먹어도 이승에서 빌어먹는 것이 좋다는 말이 있지 않은가? 아무리 어려운 목숨의 위기가 닥칠지라도 해야 할 방도를 찾아서 행동하는 사람이 사람다운 사람이다. 그런 사람에게는 특효가 있다는 육효점도 감당하지 못 한다. 점 따위가 사람의 운명을 바꿀 수 있을 것인가? 이 세상에서 점괘를 바꿀 수 있는 유일한 것이 있다면 그건 바로 인간의 의지다.( 2권 page167)

이렇게 강한 메시지를 주는 구절들도 주인공인 고종황제의 목소리 보다는 작가의 목소리로 이야기를 하는 게 아쉽다. 이 책의 주인공은 주인공임에도 불구하고 극이 끝날 때까지 시청자들에게 자신을 강하게 어필하지 못 하는 배우 같다는 느낌이 들었다. 그 숱한 사건들 속에서 고뇌하고 갈등하고 때론 비통해 했을 고종의 심리가 좀 더 자세하게 아니 소설적으로 긴장감 있게 그려졌더라면 책 읽는 재미를 더 했을 텐데 라는 생각에 어쩔 수 없는 아쉬움이 남는다. 주인공인 고종에게 초점이 맞춰지지 않은 것은 혹시 작가의 다른 의도였던 것은 아닐까? 궁금하다.

전체적으로 밋밋하게 진행된 스토리에도 불구하고 이 책을 통해서 다시 한 번 조선의 마지막 모습과 대한제국의 전반적인 상황들을 되짚어볼 수 있어서 좋았다. 재미있게 역사 공부를 한 느낌으로 책을 덮는다.

 

문자메시지 길을 잃다.

날씨가 연일 춥습니다. 올 겨울은 조금만 찬바람을 쐬면 곧장 감기에 걸리는 유난을 떠느라 더 힘든 겨울나기를 하고 있습니다. 오죽하면 방학이라 집에 와 있는 아들에게 얼른 돈 벌어서 따뜻한 남쪽 나라로 이 어미를 좀 보내주면 안되겠느냐고 흰소리를 다 해 봤으려구요.

그래서 남쪽으로 똑바로 앉은 집은 낮이면 햇살이 매우 좋습니다. 베란다에 내놓았는데도 이 추위를 겪으면서도 얼어 죽은 것 하나 없이 겨우내 새파란 잎을 간직하고 있는 화초들을 바라보며 힘을 얻습니다. 봄은 아직 멀리 있는 것 같지만 봄은 오고야 말겠지요. 그렇지요?

저녁을 먹으며 남편에게 책에 실린 이야기를 한 편 옮겨주었습니다. 바로 ‘아버지의 발자국(page16)'입니다. 아버지 이야기를 마치 친정아버지 이야기 하 듯, 시골 어느 가까운 아저씨 이야기 하 듯 그렇게 하는 내 얘기를 말없이 듣고만 있던 남편이 맞아, 그럴 거야. 당연하지라고 대꾸를 합니다. 내가 아주 사실적으로 이야기를 잘 옮겼다는 생각보다는 책에서 만난 그 ’아버지‘가 너무 사실적이어서 그런 건 아닐까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중간 중간 다른 이야기 속에 등장하는 아버지 이야기를 만날 때마다 정작 원래의 이야기는 잊어버리고 나도 모르게 작가의 아버지를 주인공으로 모셔다 앉혀놓고 있는 나를 발견하고는 웃었습니다. 사실적인 이야기들 속에서 특별히 더 사실적인 아버지. 특별한 수식이나 꾸밈이 없이 담백한 흐름에도 불구하고 아버지가 특별히 도드라지던 이유는 나도 한 아버지의 딸이었기 때문일까요? 주인공으로 등장하시는 부분은 사실 몇 장면 없음에도 불구하고 이 책 전체의 무게 중심이 되어 주시고 있습니다.

요새도 형제들이 모이는 날이면 그날의 이야기가 감초처럼 등장해 웃음보따리를 풀어놓는다. 세월이 지나다보면 군데군데 끊어지거나 늘어질 법도 한데, 되돌기를 거듭할수록 더해지는 것은 육남매의 웃음소리다. 하지만, 그림자의 주인공이셨던 아버지는 지금 안 계신다.

(page130 대갈님 중에서)

참, 좋은 아버지를 가지셔서 이 책의 지은이는 복 많은 사람입니다. 우리 아버지도 그런 분이셨는데......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책의 작가도 부럽습니다. 책을 읽으면서 내내 마음이 따뜻했던 이유는 아버지에 대한 깊은 사랑과 그리움도 있지만 가족에 대한 따뜻한 마음과 작가 주변에 대한 사랑이 소박하고 정갈하게 글 속에 담겨져 있기 때문이 아니었을까요. 화려한 수식이 없는 담담함이 오히려 마음을 오래도록 머물게 할 수 있다는 걸 배웠습니다.

책 속엔 다른 사람의 인용 글이 거의 눈에 띄지 않습니다. 책 한 권을 오롯이 자기만의 생각으로 채울 수 있다니 작가의 그 넓은 생각의 우물이 또 한 차례 부러웠습니다. 책 속에 드물게 인용 글이 있기에 접어두었다가 옮겨 봅니다. 가만히 글을 읽어보니 책 속에서 느낀 작가의 심성과 생각이 어쩌면 이 글과 딱 맞아떨어지지 않을까 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행복과 불행은 그 크기가 정해져 있는 것은 아니다. 다만 그것을 받아들이는 사람의 마음에 따라서 작은 것도 커지고 큰 것도 작아질 수 있는 것이다. 현명한 사람은 큰 불행을 작게 처리하고, 어리석은 사람은 조그마한 불행을 현미경으로 확대해서 스스로 큰 고민 속에 빠진다.-라 로슈프코 (page168)

이 글은 저한테도 힘이 되어주는 구절이군요. 크기가 정해져 있지 않은 행복과 불행이라면 굳이 불행의 크기를 늘릴 일이 있으려구요. 그런데 그 불행이라는 녀석이 참 여러 곳에서 생각지도 않은 얼굴로 나타나 사람을 놀래키기도 하네요.

얼마 전 되지도 않는 독서감상문을 써보겠다고 그야말로 되지도 않는 잘난 척을 했다가 무안을 당한 후 우연히 어느 문학 카페에 가입을 했어요. 거기 카페지기라는 인간이 요즈음의 문학잡지라고 하면서 몇 가지를 주욱 올려놓은 거에요. 우리나라의 월간지 격월간지 연간지까지 다 합하면 겨우 50여 종 밖에 안 될 리가 없는데 나름 잘 나가고 있는 시인이라는 그 카페지기가 올린 것은 다 합쳐 50종이 될까 말까 하더군요. 그런 것을 올려놓고 저희들 끼리 히히 낙낙 하는 꼴도 웃겼지만 그걸 거기 왜 올려놓은 건지 물어보고 싶더라구요. 대체 이렇게 가려낸 기준이 뭔지 알려주시오 라고 말 하고 싶었지만 아직은 새파란 신참이라 물어볼 주제도 못 되는 고로 읽어보고만 말았습니다. 이런 끼리끼리와 꼴 같지도 않는 파벌을 보란 듯이 부채질하고 만들어 내는 게 우리나라 문학판의 현실이더라는 거지요. 열심히 공부해서 여기에도 저기에도 휩쓸리지 않고 부끄러운 글이나 쓰지 않으면 다행이다 싶었습니다. 그러고 보니 얼마 전 당한 그 무안도 거기 끼지 못 한 잡지로 내가 등단해서 우스운 꼴이 되었구나 싶어 마음이 안 좋더라구요. 잠시 불행해졌었다는 소리지요. 하지만, 글쟁이는 글로 이야기 하면 된다고 했으니 저도 열심히 노력하겠습니다. 아무쪼록 짱짱하고 쫄깃쫄깃한 작가의 새 작품을 머지않아 만나볼 수 있길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