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복의 조건.

‘하버드 대학교. 인생성장보고서’라는 소제목이 붙은 이 책을 처음 만났을 때 하버드 대학교라는 이름만으로 나와는

먼 거리에 있는 이야기구나 싶어 짐짓 못 본 척하고 싶었다. 행복의 조건이라는 제목이 하버드라고 하는 큰 이름을

만나면서 힘을 잃는 순간이었다. 하지만, 이 책을 읽으면서 나는 내 자신에 대해서 참으로 많이 돌아보는 시간을 가질

수 있었다.

이 책은 요즘 많이 출간되는 자기 계발서와는 다르다. 이 책은 심리학 서적이다. 저자인 조지 베일런트는 세계 최장기

성인발달연구를 맡아온 미국의 정신과 전문의이다. 그는 ‘하버드대학교 성인발달연구’ 책임자로서 이 연구에 42년간

종사했다. 이 책은 814명에 이르는 성인 남녀의 삶을 70년간 전향적으로 추적 조사한 보고서이다. 이 연구엔 세 집단이

연구대상이 되어있다. 하버드 졸업생 집단. 이너시티 집단. 터먼 여성그룹이 소개된다. 이 책에서 소개하는 사례의

주인공들은 현재 최소한 75세 이상 아니면 80세 이상의 노인들이다. 그들이 살아온 삶의 사례들을 읽으며 ‘행복’이라는

개념보다는 ‘품위 있는 노화’에 대한 것이 더 많이 가슴에 와 닿았다.

물론, 표본이 된 연구 집단은 우리와는 무척 멀리 떨어져 있는 느낌이다. 그들의 현재 연령이 그렇고 그들이 거주하는

미국이라는 나라와의 물리적 거리도 멀다. 또한 사례에서 나타난 그들의 삶 역시도 하버드 졸업생이라는, 뉴욕의 빈민가

출신이라는, 아이큐 145 이상의 여성 이라는 점에서 우리가 익숙한 문화와는 멀다는 생각이 든다. 쉽게 공감하기엔 나와

꽤나 멀리 떨어져있는 것 같은 사례들. 그리고 결과의 도출 과정에서 번번이 강조되던 같은 수준의 삶의 비교에서는

하버드 졸업생과 이너시티 출신의 비교는 마음이 불편하기도 했다.

같은 수준의 삶의 방식을 설명하면서도 꼭 하버드 졸업생이 이너시티 출신보다 10살가량이 더 많음을 이야기 한다.

이는 삶은 젊은 시절 인내심을 가지고 노력하기 나름이라고 하면서도 어쩔 수 없이 극복할 수 없는 겝(gap)이 인생엔

존재 한다는 것을 말하는 것은 아닐까? 하버드대에 입학할 수 있을 만큼의 형편과 이너시티에서 성장할 수밖에 없는

상황 따위는 스스로가 선택하기 보다는 부모에 의해 좌우되는 것이기 때문이다.

보편적인 것들에 대해선 공감한다. 75세 이후의 인간관계를 결정하는 것은 47세 까지 만들어 놓은 인간관계가 기반이

된다는 것. 젊은 시절의 인내심이 얼마나 중요한지에 대한 언급등 정말로 밑줄을 그어가며 기억하고 싶은 구절들이

곳곳에 포진하고 있다. 저자가 연구성과만이 아니라 글쓰기에도 대단한 실력자라는 생각이 든다.

저자는 인간이 유년기에만 성장하는 것은 아니며 성인이 되어서도 발달한다고 주장한다. 저자는 이런 성인의 발달

과정을 설명하기 위해서 로버트 해빙허스트의 ‘발달과업’이라는 용어를 차용하고 있다. 다만, 성인의 발달은 어린아이들

처럼 순차적으로 일어나지 않으며 연속적으로 일어나지도 않는다고 한다. 성인발달과정을 평가하기 위한 과업은 책을

읽는 내내 그리고 책을 읽고난 후에도 현재의 내 자신을 자꾸 돌아다보게 만들고 있다. 성인이 이루어야 할 여섯 가지

발달과업을 정체성, 친밀감, 직업적 안정, 생산성, 의미의 수호자, 통합으로 설명하고 있다.

1. 정체성: 부모로부터 독립된 자기만의 생각, 즉 자기만의 가치, 정치적 견해, 열정, 취향 등을 가지는 것.

완전한 독립은 동일시와 내면화를 통해, 그리고 현대생활에 적응하는 능력을 키움으로써 성취할 수 있다.

2. 친밀감: 자신만의 세계에서 벗어나 다른 사람에게 까지 관심을 확대해야 한다. 남성연구대상자들은

대부분 아내를 통해 친밀감을 경험했다. 친밀감은 문화와 시대에 따라 매우 다른 양상으로 성취되는 듯

보이지만 대부분의 온혈동물들이 그렇듯, 인간도 결국은 대를 잇기 위해 짝을 짓는다는 점에서 비슷한

양상을 띤다고 볼 수 있다.

3. 직업적 안정: 이 과업을 이루려면 개인의 정체성을 확립하는 데서 더 나아가 일의 세계에서 사회적

정체성을 확립해야 한다. 일 또는 취미가 직업으로 변화되는 데에는 만족, 보상, 역량, 헌신이라는

네 가지 결정적 기준이 존재한다. 때로는 직업적 안정을 이루는 과정이 이기적인 것처럼 보이기도 하지만

그런 이기심 조차 없는 사람이라면 자아마저 상실하고 만다.

4. 생산성: 다음 세대를 헌신적으로 지도할 만한 능력을 갖추었을 때 성취되는 과업.

친밀감이 상호의존적인 관계를 형성할 수 있는 자질을 기반으로 성취되듯이 생산성은 자기보다 나이 어린

사람들을 보살피는 동시에 다른 사람의 자율성을 존중하면서 상호관계를 형성할 수 있는 능력을 기반으로

성취된다.

5. 의미의 수호자: 생산적 성취도가 높은 개인은 직접적이고 미래 지향적인 관계, 즉 정신적 조언자나 스승이

되어 다른 개인을 돌본다. 이와 달리 의미의 수호자는 과거의 문화적 성과를 대변하고, 과거의 전통을

보존하는 방향으로 단체나 조직, 모임을 이끈다. 어느 문화에나 볼 수 있는 할아버지, 할머니의 역할을 예로

들 수 있다.

6. 통합: 에릭슨에 의하면 ‘세상의 이치와 영적 통찰에 도달하는 경험’. 에릭슨이 제시한 통합의 미덕은 바로

‘지혜’다.

지혜 덕분에 우리가 죽음 앞에서 생명에 대해 초연해 질 수 있으며 신체적, 정신적 기능이 쇠퇴해 가더라도,

지혜를 통해 꾸준히 통합을 경험하고 배우고 성취해 나갈 수 있다.(page88-94 부분 발췌)

4장 생산성을 자세히 설명하는 부분(page171)에서 저자는 ‘당신은 자녀들에게서 무엇을 배웠는가?’라고 묻고 있다.

나는 과연 아이에게서 무엇을 배웠지? 그러고 보니 아이를 키우면서 나는 아이에게서 ‘사랑’과 ‘신뢰’를 배웠다. 때론 냉정

하게 아니, 야박하다 싶게 채근하는 어미임에도 불구하고 아이는 나에게 늘 사랑하는 마음을 그리고 어미인 나에 대한

끝없는 신뢰를 보여 주었다는 걸 문득 깨닫게 되었다. 아이가 나에게 보여준 사랑과 신뢰만큼 나도 아이에게 변하지 않는

사랑과 신뢰를 주었었는지 반성의 기회가 되기도 했다.

  

또한, 성인의 성장의 정도를 파악하는 방법론으론 방어기제를 설명 한다. 성숙한 방어기제와 미성숙한 방어기제로 나뉘어

지는데 대략 나의 성숙도를 가늠해 볼 수 있는 기회가 되기도 했다.

1. 성숙한 방어기제 (승화, 억제, 예견, 이타주의, 유머)

2. 중간 단계 또는 신경증적 방어기제 (대체, 억압, 고립, 반동형성)

3. 미성숙한 방어기제 (투사, 분열증적인 환상, 수동 공격성, 행동화, 건강염려증, 해리)

(page457 부록C-정신적 적응기제의 성숙도를 평가하는 방법 중)

8장 삶을 즐기는 놀이와 창조의 비밀 중 한 가지. 평생토록 배워라(page336)은 정말 마음에 드는 부분이었다.

아마도 잘 나이 들어감에 내가 그나마 자신 있게 손을 들 수 있는 부분이 바로 이 부분일 거라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

이었다. 평생 배우는 것. 정말로 즐겁고 행복한 놀이라는 것을 나는 이미 알고 있으니 얼마나 다행인가.

다만, 오래도록 이 놀이를 즐길 수 있길 바랄 뿐이다.

물론, 우리가 주변에서 만나는 현실과 상황이 많이 다르긴 하지만, 그래서 객관성에서 다소 의심이 가긴 하지만 그럼에도

품위 있게 나이 드는 것에 대한 부분은 그냥 지나칠 수가 없다. 저자는 75세에서 85세 사이에 다음과 같은 특성을 가진

사람들이 품위 있게 나이 든 사람들이라고 결론을 내리고 있는 것 같다.

첫째, 그들은 다른 사람을 소중하게 보살피고, 새로운 사고에 개방적이며, 신체건강의 한계 속에서도 사회에

보탬이 되고자 노력했다.

둘째, 그들은 노년의 초라함을 기쁘게 감내할 줄 알았다.

셋째, 그들은 언제나 희망을 잃지 않았고, 스스로 할 수 있는 일은 늘 자율적으로 해결했으며, 매사에

주체적이었다.

넷째, 그들은 유머감각을 지녔으며, 놀이를 통해 삶을 즐길 줄 알았다.

다섯째, 그들은 과거를 되돌아볼 줄 알았고, 과거에 이루었던 성과들을 소중한 재산으로 삼았다.

여섯째, 그들은 오래된 친구들과 계속 친밀한 관계를 유지하려고 노력했다

(page418-419 부분 발췌)

지금 40대인 사람들의 평균 생존 연령은 80대라고 한다. 얼마 전 생명보험회사 직원에게 보험 설명을 들었다. 보험기간이

종신이라고 명시 되어있지 않는 대부분의 특약 부분은 보험기간이 100 세로 되어 있어서 보험기간이 80세였던 몇 년 전에

비해 세상이 많이 바뀌었다는 것을 알았다.

저자 베일런트 교수도 표본 집단의 사망자 중 50세-75세 사이에 사망한 사람을 ‘조기사망자’라고 분류하고  있다. 50세는

그렇다고 수긍할 수 있지만 75세가 일찍 사망한 거라니 슬그머니 내 나이를 다시 한 번 떠올려 보았다.

그렇다면, 나는 아직 75세 이후의 인간관계를 결정할 바로 그 시점을 살고 있는 것이 아닌가? 그러니 더 잘 살아야겠다는

생각과 그래서 더 품위 있게 나이 들어야겠다는 다짐을 새삼스럽게 해보았다.

결국, 이 책에선 명확하게 구별을 짓거나 결론을 내릴 수 있는 어떤 지표는 제시되지 않았다. 어떤 것이 행복의 조건이며

어떤 삶이 행복한 삶인지 결론을 내리지는 않는다. 그렇지만 그 명확하지 않음에도 불구하고 부모로서의 나.

자식으로서의 나. 사회인으로서의 나를 되돌아보는 귀한 경험이 되었다.

표본 집단의 사람 중엔 유복한 집안에서 성장하고 최적의 조건을 누리며 최고의 학부인 하버드를 졸업했지만 비참하게

생을 마감한 사람도 있었고, 열악한 환경의 이너시티에서 성장했으며 그 삶도 평탄하지 않았으며 자리를 잡는 데 오랜

노력과 시간이 걸렸지만 그야말로 품위 있게 나이든 사람도 있었다. 정말로 우리 속담에도 있듯이 ‘관 뚜껑 닫을 때까지

아무도 알 수 없는’ 것이 인생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결국 인생은 열심히 살아볼 가치가 있다는 것.

그러니 더 열심히 살아봐야겠다.  

 

사람을 읽는 명리학

명리학은 춘추전국시대 귀곡자라는 사람에게서부터 전래되었다는 주장과 당나라의 유명인사에게서 근원을 찾는 경우도 있다. 다만, 우리가 사용하는 사주팔자를 보는 명리학은 당의 이허중에 이은 송나라의 서거이로부터 유래되었다고 본다.

사주 : 사람이 태어난 연월일시, 또는 이를 근거로 길흉화복(吉凶禍福)을 점치는 방법. 사람은 하나의 집이고, 태어난 연월일시는 그 집을 이루고 있는 네 기둥이라는 의미에서 붙인 명칭이다. 사주는 각각 간지(干支)의 두 글자로 표현되므로 모두 여덟 자라고 하여 팔자라고도 한다. 사주를 통해 한 사람의 타고난 운명을 알 수 있다고 하여 운명이나 숙명과 같은 뜻으로 사용하기도 한다. 사주는 간지로 나타내는데, 간은 10가지로 천간(天干)이라고 하고, 지는 12가지로 지지(地支)라고 한다. 천간(天干)은 갑(甲), 을(乙), 병(丙), 정(丁), 무(戊), 기(己), 경(庚), 신(辛), 임(壬), 계(癸)이고, 지지(地支)는 子(자), 丑(축), 寅(인), 卯(묘), 辰(진),사(巳), 오(午), 미(未), 신(申), 유(酉), 술(戌), 해(亥)이다. 천간과 지지는 서로 합하면 모두 육십갑자, 즉 육갑(六甲)이 되는데 사주는 이 육갑으로 표현한다. 사주에는 사람의 운세가 함축되어 있기 때문에 그 구조를 분석하면 개인의 운명과 길흉화복을 알 수 있다고 여긴다. 사주를 보는 것은 단지 사람의 타고난 운명을 아는 것을 넘어 흉한 것을 피하고 길한 것을 택함으로써 삶을 주체적으로 살아간다는 적극적인 의미도 있다.

(웅진학습대백과사전 2권 page190-191)

저자는 명리학을 역동적이면서도 인간적인 학문이라고 이야기하고 있다. 보다 나은 미래를 개척하고 발전이 가능한 영역을 사람들에게 알리고자 하는 학문이라고 한다.

명리학은 성리학에서 말하는 이기론, 채용론은 물론 우주의 변화원리를 탐구하는 종합과학으로서의 특징과 인간을 연구대상으로 삼고 있으며 귀족중심의 부귀를 논하는 것이 아니라 사람의 중요성을 언급하는 등 인간중심의 성리학 사상을 반영하고 있는 인간학이라는 특성을 가지며 또한 근본적으로 미래를 예측하고자 하는 예측학으로서의 특징을 가지고 있다.

명리학은 개인의 개성(personality)분석에 이용할 수 있다고 한다. 사주팔자가 적성검사보다 더 세밀한 영역까지 사람의 심리나 적성의 분석이 가능하다고 한다. 또한 진로지도나 적성분석에도 이용할 수 있다고 한다. 사람의 개성을 분석하는 방법에 있어서도 사주팔자의 구조로 사람의 특성을 부석하거나 특성의 유형화를 통해 쉽게 사람의 특성을 파악하는 방법을 설명하고 있다. 책 속에 직장인을 위한 명리학에서는 자신에게 맞는 직장이나 업무분야를 선택하는 방법을 설명하며, 창업에 적합한 사주팔자 구조와 CEO가 활용할 수 있는 명리학의 분야까지 전체적으로 제목에서 말 했던 대로 ‘나’이든 ‘남’이든 ‘사람’을 읽는 방법에 대한 내용으로 엮어져 있다.  

이 책에서 만나는 개념 중에 우리가 흔히 알고 있다고 생각하는 ‘음양’이 있다. ‘양’은 밝고, 길고, 크고, 드러나고, 남성적이고, ‘음’은 이와 반대되는 개념으로 이해된다. 동양철학에서는 균형과 조화를 이루는 것이 가장 이상적인 상태라고 생각하므로 좋고 나쁨의 2분법적 개념은 의미가 없다고 강조한다. 이 책은 쉽게 읽히거나 가볍게 읽을 내용은 절대로 아니었다. 동양철학에 대해 기본적인 상식이 있어야 하고 간지, 60갑자, 십신 등과 같은 용어에 접근 할 수 있어야 이해가 가능한 책이었다.

책의 내용을 좀 더 실감나게 느껴보고 싶어서 내 사주팔자를 가지고 비교해가면서 책을 읽어보았다. 하지만, 내 사주를 책에서 말하는 여러 유형에 맞춰보는 것 자체도 그리 쉬운 일은 아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새로운 영역에 대한 지식을 넓힐 수 있었던 의미 있는 독서였다.

  

 

부처님의 생애

도솔천은 선행을 많이 닦은 이들이 태어나는 세계였다. 그 세계 사람들은 모두 4유순의 키에 아름답고 빛나는 외모를 가지고 있었다.(중략)

보살 조띠빨라는 사자좌에 앉아 사천 년동안 천인들을 교화하였다. 모든 이들의 존경과 찬탄을 받으며 늘 밝고 향기롭던 조띠빨라에게도 늙음은 찾아왔다.(중략) 천인들은 보살이 도솔천을 떠날 날이 멀지 않았음을 직감하고 울부짖었다.(중략)

“슬퍼하지 마세요. 아무리 화려하고 아름다운 꽃도 지고 만답니다. 깊은 정과 사랑을 나눈 그대들과도 이젠 이별의 시간입니다. 무상한 삶과 죽음의 거센 물살 앞에서 손을 놓지 못하고 울부짖는 건 애착과 어리석음 때문입니다. 그대들이 누리는 기쁨과 행복 역시 언젠간 그대들 손아귀에서 빠져나갈 것입니다. 그날이 왔을 때 비탄과 공포에 떨지 않으려면 부디 육신의 허망함과 마음의 애착을 잘 관찰하십시오. 제가 떠난 자리에는 뗏떼야 보살이 남아 여러분의 훌륭한 벗이 되어줄 것입니다.”(page 22-24)

부처님이 이 땅에 내어나기 전 부처님의 전생 중 한 장면이다. 도솔천은 극락과 같은 의미로 이해하고 있던 그 동안의 내 생각이 틀렸던가? 라는 생각을 했다. 그러나 책 속에서 묘사하는 도솔천은 그야말로 극락의 모양 그대로였다. 그런데 도솔천에 사는 천인들이 늙고 죽음을 앞에 둔 조띠빨라 뒷날의 부처와의 이별을 슬퍼하며 울부짖고 있다. 비로소 불교의 윤회사상을 떠올려보며 부처님의 생애를 따라 책 속으로 길을 떠난다.

부처님의 생애에 대한 책은 이미 만나보았다. 경전의 형태를 한 것도 있었고 이야기 형식을 빌린 것도 있었다. 그렇지만 경건함에만 너무 무게를 두어서인지 재미와는 거리가 멀어 읽느라 꽤나 많은 인내심을 소진했던 기억이 있다. 마침, 조계종 출판사에서 부처님의 생애를 출판했다고 하니 소장본으로서의 가치도 있겠다싶어서 책을 만나기 전부터 내심 기대가 되었다.

부처님의 탄생에서부터 어린시절, 출가, 고행, 깨달음, 교화, 열반에 이르는 과정이 참으로 아름답게 그려져 있다. 내용의 전개는 이미 바꿀 수 없는 것이지만, 동화를 읽는 것 같기도 하고 소설을 읽는 것 같기도 한 유려한 문체가 이 책의 미덕이다. 쉽지만 깊이 있게 부처의 생애 속으로 부처의 말씀 속으로 다가서게 해준다.

 

"근거 없는 소문은 오래가지 않는다. 그런 소문은 오래가야 이레를 넘기지 않을 것이다. 염려하지 말라.“
(page167)

부처님의 가르침을 받고자 출가를 결심한 사람들이 많아질수록 비난도 많아지자 동요하는 비구들을 향해 부처님이 하신 말씀이다. 근거 없는 소문을 오래가지 않는다니 이 말씀이 어디 부처님 시대에만 유효했으려고. 이 시대에도 숱하게 떠도는 소문과 비방으로부터 스스로를 단단히 지키는 사금석이 되어주는 말씀이다.

"자식이 있는 이는 자식으로 인해 슬퍼하고

소를 가진 이는 소로 인해 슬퍼합니다

집착의 대상으로 말미암아 사람에게 슬픔이 있나니

집착이 없는 사람에게는 슬픔이 없습니다.“(page301)

예수님도 40일간 광야에서 기도의 시간을 가졌었다. 그 마지막에 사탄은 여러 가지 세속의 달콤함을 보여주며 유혹했었다. 부처님도 깨달음을 얻기 전 악마의 유혹을 듣게 된다. 역시 세속에서 누릴 수 있는 달콤함을 속삭이는 악마에게 부처님이 한 대답이다. 모든 것들엔 기쁨이 있으면 슬픔도 있나니 그 기쁨은 또한 슬픔을 가져다주나니 모든 것은 집착에서 온다는 이 말씀. 집착을 버리는 것은 늘 기억해두어야 할 화두가 아닐까.

말라족은 땅바닥에 주저앉아 통곡하였다(중략) 아난다는 그들에게 다가가 위로하였다.

“여러분, 슬퍼하지 마십시오. 생겨난 모든 것은 사라지기 마련이라고 부처님께서 말씀하지 않으셨습니까. 인연 따라 모인 것을 붙잡는 건 부질없는 짓이라고 부처님께서 말씀하지 않으셨습니까. 만나면 반드시 헤어지고, 태어나면 반드시 죽는다고 늘 말씀하지 않으셨습니까.”(page 391)

부처님의 열반에 이르러 통곡하는 말라족을 위로하며 아난다가 한 말이다. 만나면 헤어지고 태어나면 반드시 죽는다는 진리. 그러니 세상에 영원한 것은 아무 것도 없다는 진리. 영원한 것이 없으니 구태여 집착할 일도 없어야 한다는 진리를 사실은 늘 잊고 산다. 그나마도 이렇게 책을 읽으면서 되새길 수 있으니 얼마나 다행인가. 마음이 반듯해지는 구절들을 만나는 것 또한 책을 읽는 재미이며 보람이다.

잠을 이루지 못 하고 정진을 거듭했지만 고요한 열반은 찾아들지 않았다. 아니, 잠시 찾아왔다가 이내 흩어져버리고는 하였다.

“열심히 노력하는 데......나는 왜 열반을 성취하지 못하는 것일까?”

그때 불현듯 뿐나의 옛말이 떠올랐다.

“아난다, 모든 고뇌와 번민은 ‘나’를 집착함에서 생깁니다. ‘나’라는 집착은 모습을 바꿔가며 끊임없이 스스로를 얽어맵니다. 그 집착이 얇은 백태처럼 지혜의 눈을 가리고 있는 것입니다.”(page410)

책속엔 좋은 구절들이 참으로 많다. 밑줄을 긋고 따로 옮겨 적어선 늘 마음에 두고 싶은 구절들을 만나다보면 어느새 책의 끝에 다다라 있다. 한 번만 읽고 책장에 넣어두기엔 아깝다. 다시 한 번 더 정독할 기회를 만들어 보아야겠다고 생각했다.

더군다나, 책 속엔 부처님의 생애를 좀 더 쉽게 그리고 실감나게 이해할 수 있는 장치가 마련되어 있다. 바로 불전도이다. 부처님의 생애가 담긴 불전도는 그것들만 따로 들춰보는 재미도 있다. 1~3세기에 제작된 간다라 불전도가 대부분이며, 기원전 1~기원후 3세기 사이에 제작된 중인도와 남인도의 불전도가 일부 포함되었다고 하나 사진으로나마 간다라 미술을 감상하는 재미도 있고, 부록으로 실린 불전도 해설을 읽는 것만으로도 부처님의 생애를 이해할 수 있다. 산쓰끄리뜨어 원음으로 표기된 인명과 지명을 소리 내어 읽어보는 것도 책을 읽는 재미 중 한가지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