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요일엔 KBS1TV '책읽는 밤' 녹화엘 다녀왔다. 이문열의 최근 소설 '불멸'이 그날의 토론 주제였다.
'불멸'은 안중근 의사의 일대기를 소설화한 것이다. 설명절 내내 이 책을 붙들고 있었다. 명절에 읽으려고 친구 책방에서
소설책을 몇 권이나 빌려왔는데 아쉽게도 그 책들엔 눈길을 제대로 줄 수 없었다.
'이문열'에 대한 알 수 없는 편견을 가지고 이 책을 읽기 시작했기 때문이었을까? 소설이었지만 소설적 장치가 의외로
미숙하게만 다가오던 내용 덕분에 오히려 우리의 근.현대사 공부를 할 수 있었다. 안중근을 중심으로 물결처럼
번져나가는 수평적 역사을 되짚어 보는 기회가 되었으니 말이다. 안중근이라고 하는 역사적 인물의 삶 자체가 감동적
이어서 재미를 떠나서도 감동적인 부분이 없었다는 것은 거짓말일 것같다. 주로 2부 후반의 옥사와 관련된 부분들
안중근의 마지막 유언 부분들을 읽을 땐 나도 모르게 가슴이 뭉클해지는 경험을 하기도 했다.
이런 나름대로의 독서 후 작가를 만난다고 생각하니 기대가 되었다. 녹화를 하러 가는 길에 일부러 동인천 대한서림엘
들렀다. 이문열의 책 중에서 내가 좋아하는 [아가]를 한 권 샀다. 녹화가 끝나고 싸인을 받고싶어서였다.
서울 올라가는 전철안에서 [아가]를 다시 읽었다. 이문열의 소설 중에서 가장 무채색에 가까운 인간 묘사가 맘에 들어
벌써 세 번째 읽은게 된다. 두 번 중 한 번은 도서관에서 한 번은 친구 책방에서 그리고 이젠 내 책꽂이에 이 책을 꽂아
두게 되었다. 물론 작가의 싸인을 받아서...
녹화장서 만난이문열 작가는 경상도 남자들 만이 가지는 목소리의 색깔을 그분도 가지고 있었다. 내가 나이를 먹었
다는 걸 느끼는 순간....가끔 상대방의 목소리를 들으면서 나도 모르게 상대방에 대해 파악하게 된다. 물론 전혀 의도
적이지도 않고 또 내 맘대로 되는 것도 아니지만...이문열 작가의 목소리를 들으며 나는 그가 누구보다 꼿꼿한 의식의
소유자이리라는 걸 간파한다. 녹화내내 다소 불편한 심기의 질문과 내용에 대해서 시종일관 변함없는 톤과 빠르기로
자신의 생각을 이야기 했으며 생각을 놓치는 부분에 대해서도 솔직했다. 단지, 그의 아우라를 느껴보기 위해 그의
소설을 좋아하지 않음에도 녹화에 기꺼이 참여했다는 내 혼자만의 생각이 진짜였는지 잠시 되짚어 보아야 했다.
눈매는 독수리처럼 날카로웠지만 꼿꼿한 풍모 뒤에 훈훈한 뒷모습도 인상적이었다.
녹화의 내용을 되짚어 보건데 대화의 대부분이 주로 미비한 소설적 장치 쪽으로만 흘렀던 거 같다. 거기다 한 패널은
직접 만나 본 작가의 인상에 대해 묻는 진행자의 질문에 '길바닥에서 막걸리를 마실 것 같은...'이라는 말을 사용했다.
아주 좋은 쪽으로 그만큼 의외로 소박했다라는 표현이었겠지만 나도 모르게 인상을 찡그리고 말았다. 물론 편집되어서
방송에 나가지는 않겠지만 편집을 떠나서 그런 말은 상대방에 대한 예의가 아니지 않을까?
보아하니 이문열 작가가 그 패널의 아버지뻘은 되고도 남을 연배일 것같은데 말이지...
요즈음 내가 '말' 때문에 신경이 너무 곤두서 있어서 그런가 하는 생각을 내내 해가며 이해를 하려했지만 왠지
그 부분만은 그 자리에 함께 있던 사람으로서 이문열 작가한테 무척 미안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비록 세 번 밖에 안 되는 방청의 기회였지만
녹화를 보면서 저들이 과연 책은 다 읽고 나왔을까? 라는 의구심이 들었던 적도 있었고
저 얘기는 나라도 할 수 있는 건데...뭐 이런 생각이 든 적도 있었고 무엇보다도 책에 대한 애정이 의심스럽게 느껴지는
부분들을 만날 때는 방청객의 한 사람으로서 당혹스럽기도 했다.
그러면서 나는 또 새롭게 나름대로의 내 책읽기에 대해 반성도 하고 계획을 세워보는 계기를 만들 수 있었다.
그동안 혹시 내가 책을 머리로만 읽은 것은 아니었을까라는 생각을 해 보았다. 비판을 위한 책 읽기. 서평을 써보겠다는
생각에 열중해서 책을 사각의 틀 안에 집어 넣으려 애를 너무 썼다는 반성.
서평을 200편 좀 넘게 썼으니 최소한 200가지의 책의 만났으며 200가지의 세상을 보고
200가지의 생각을 엿보았다는 것인데...
그 200가지의 생각들을 나는 사각의 틀 안에서만 이해하고 있었던 것은 아닌지 냉정하게 나를 되돌아 보았다.
모든 책에 대한 경외감을 가지고 있다고 아니, 모든 활자화된 것들에 경외심을 가지고 있다고 하면서
막상 난 그 활자화된 것들의 집합체인 책에 대해서 얼마나 깊은 애정을 가지고 있었는지 책 속의 생각들을 얼마나
존중하고 깊이 이해하려 노력했었던 것인지 돌아보니 부끄러운 것이 한 두 가지가 아니다. 앞으론 좀 더 가슴으로
책을 받아들여야 겠다고 다짐했다.
이런 생각을 가지게 되었다는 것 만으로도 난 충분히 시간과 노력을 투자해서 녹화에 간 보람을 찾았다고 생각한다.
오고가고녹화하는 시간까지 모두 합친 것을 돈으로 환산한다면 난 거기에 갈 수 없다.
내 일에 힘을 쏟는 것이 소득엔 오히려 보탬이 되니까
하지만,
녹화내내 난 내 생각과 전문 패널들의 생각의 교차점을 찾아보느라 말 잘 듣는 학생처럼 열심히 귀를 기울였고
덕분에
책을 바라보는 또 다른 시각을 발견할 수도 있었다. 나름대로 오래 기억될 멋진 경험이었다.
이날 녹화내용은 3월1일 밤 11시30분에 3.1절 특집으로 방영된다고 한다.
[아래의 사진들은 카페에 올라온 김작가님의 후기에서 가져왔습니다. 김작가님...혹시라도 불편하시다면...
바로 내리겠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