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 왕 독살사건/이덕일
처음부터 의도했던 것은 아닌데 역사에 관한 책을 읽다보니 이덕일 선생이 지은 책을 자주 만나게 된다. <사도세자의 고배>,<송시열과 그들의 나라>,<정약용과 그의 형제들>그리고 <조선 왕 독살사건>을 만났다. 조선 왕 4명 중 1명이 독살 당했다면 누가, 왜 그들을 죽였는지 궁금해지지 않을 수 없다.
우리 역사에 존재했던 왕조의 공통된 특성은 역사가 장구하다는 점이다. 고구려. 백제. 신라. 고려 왕실이 모두 500년~800 여 년을 존속했으며 조선도 1392년 건국되어 1920년 일제에 점령당할 때까지 무려 518년을 존속했던 왕조다. 왕조나 국가는 ‘창업기-성장기-발전기-쇠퇴기-소멸기’라는 생명 사이클을 지닌다(page324) 만약 발전기가 길다면 로마처럼 뻗어나가는 나라가 된다. 발전기가 끝나면 정체기 또는 쇠퇴기라는 시련이 찾아오는데 이 시기를 극복하지 못 하면 나라가 망하게 된다. 조선은 쇠퇴기-소멸기에 접어들고도 3세기나 존속한 특이한 국가였다(page325)
저자는 조선사회는 지배계급인 사대부들이 피지배계급인 농민들 위에 군림했던 사회체제가 임진왜란으로 사실상 종말을 고했다고 한다. 일본이 침략했을 때 지배층들이 도망가기 바빴던 그 순간, 조선 지배 체제는 붕괴했다는 것이다.
하지만, 사대부들은 그 후에도 300년 동안을 통치자로 군림했다. 이 비정상적인 군림을 위해서 그들은 자신들을 유지하기 위한 조치를 취할 수밖에 없었고 그 중 하나가 ‘국왕 독살설’이다. 국왕 독살설은 임진왜란이 일어나는 16세기말부터 본격적으로 유포되기 시작했다.
왕조국가였지만 조선의 국왕은 전지전능한 권력자이기 보다는 신하들을 위협하고 신하들을 달래야 했던 나약한 존재였다. 조선에서 왕권이 위협을 받고 독살의 대상으로 전락하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한 것은 당론이다. 당쟁이 격화되면서 사대부들은 임금의 명이 아니라 당명을 따랐고 당론이 치열해지면서 왕명이 아니라 당명을 따랐다.
독살설에 휘말린 국왕들을 보면 독살설의 배후엔 그 임금을 반대했던 정당이 존재하고 숙종을 제외하면 임금이 죽은 후엔 어김없이 그 당이 집권했다는 점이다. 이는 특정 정당이 임금과 극심하게 정치적 갈등을 가지게 되었을 때 임금을 갈아치우는 것을 해결책으로 선택하지 않았을까 하는 의구심을 가지게 하며, 임금이 절대적인 충성을 받는 존재가 아니라 한 정당이 선택할 수 있는 상대적인 존재였음을 뜻하며, 또한 신하들이 특정 임금을 배척할 수도 있었음을 뜻한다. 신하가 임금을 선택한다는 뜻을 택군擇君이라 한다. ‘택군’엔 공개적으로 왕을 갈아 치우는 ‘반정’과 ‘국왕을 독살하는’ 두 가지 방법이 있다. 때문에 국왕독살설도 택군의 결과였다.
조선 27명의 임금 중 사도세자와 소현세자 등 2명의 세자를 제외하더라도 인종, 선조, 효종, 현종, 경종, 정조, 고종 그리고 예종까지 8명의 임금이 독살설에 휘말렸다. 이는 조선이 비정상적인 정치 체제였음을 말한다.
역사책을 읽으면서 자주 만나게 되지만 늘 이해하기 어려웠던 [예송논쟁]에 대해서 좀 더 개념정리를 잘 할 수 있었던 것도 이 책을 읽은 성과 중 한 가지였다.
1차 예송논쟁는 효종이 사망한 1659년이 기해년이라 ‘기해예송’이라 부르기도 하고 상복 문제로 논쟁했다 하여 ‘기해복제’라 하기도 한다. 식민지 시대 일본인 학자들이 예송 논쟁을 당파 싸움 망국론의 중요한 근거로 이용해 우리 민족성을 비판했으나 예송논쟁은 ‘효종의 승통이 정당 한가’라는 아주 민감한 정치적 의미를 담고 있었다.
조선의 예법은 <경국대전>과 <조선오례의>와 중국의 <주례><주자가례>등을 복합해 만들어졌다. 상복에는 입는 기간에 따라 다섯 가지가 있었다. 3년. 1년. 9개월. 5개월. 3개월로 나뉘는 이 기간은 부모상에 자식이 3년상을 입는 것은 당연하였지만, 반대로 자식이 죽었을 경우 부모의 상복이 장자냐 중자(맏아들 이외의 여러 아들)냐에 따라 달랐다. 맏아들인 장자상에는 부모도 3년상을 입어 가부장제 사회인 조선에서 후사를 그만큼 우대한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차자 이하는 1년복을 입게 되어 있었다. 며느리의 경우도 맏며느리상에는 1년복을 입게 되어 있었고 중자부(맏며느리 이외의 며느리)상에는 9개월복을 입는 것이 예법이었다.
현종의 부왕 효종이 승하했을 때 인조의 계비이자 효종의 계모였던 자의대비가 살아있었던 것이 1차 예송의 원인 되었다. 효종의 계비 장렬왕후(자의대비) 조씨는 인조와 국혼당시 아들인 효종보다 5살이나 어린 14살이었다. 그런데 효종이 40살의 나이로 사망했을 때 법적인 어머니였던 조씨의 상복을 장자의 예에 따라 3년으로 할 것인지 차자의 예로 따져 1년으로 할 것인지의 논쟁이었는데 이는 ‘효종의 승통이 정당한가’라는 지극히 민감한 의미를 담고 있었다. 대신과 유신들은 효종이 왕통을 이었더라도 장자가 아닌 차자이므로 자의대비는 3년복이 아닌 1년복을 입어야 한다고 주장했으며 그렇게 굳어졌다. 1년복을 주장한 대신들과 유신들은 대부분 정태화, 송시열과 같은 서인이었으며 남인 윤후가 이를 비판하고 나서면서 예송논쟁은 당파 간 논쟁의 성격을 띠게 되었다.
1674년 효종비인 인선왕후 장씨가 세상을 떠났다. 1659년 현종이 즉위하자 왕대비가 된 장씨는 자신보다 6살 어린 시어머니 자의대비 조씨를 모시다가 쉰여섯의 나이로 시어머니보다 먼저 세상을 떠난 것이다. 며느리 인선왕후가 세상을 떠났을 때 시어머니인 자의대비의 상복 착용기간에 관한 논란이 바로 2차 예송논쟁이다.
이 책을 읽으면서 조선시대를 이제껏 알고 있던 것과는 또 다른 새로운 각도에서 다시 한 번 바라볼 수 있었다. 조선에 대한 것은 알아갈수록 공부를 해갈수록 참으로 답답하고 또 답답한 마음이 깊어진다. 역사엔 만약에...라는 말이 있을 수 없다고 하지만, 조선의 역사를 공부하면서 만약에...라는 말이 자꾸 되뇌어지는 이유는 무엇일까?
시절이 많이 바뀌었다고 하지만 세세히 들춰보면 겉으로 뒤집어쓰고 있는 거죽만 달라졌을 뿐 지금의 세태가 그 시절과 별반 다르지 않기 때문인 것은 아닐까? 여전히 착취당하는 민중. 여전히 구름 위에 뜬 듯 군림하는 권력. 여전히 하늘과 땅만큼 차이나는 빈부격차. 옛것을 보고 새로운 것을 배운다고 했다 우린 지나간 역사인 조선을 보면서 무엇을 배워야 할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