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색의 즐거움.

그를 ‘현대판 루쉰’이라 부른다니 위치우위徐秋雨라는 작가가 더욱 궁금하다. 지난 주 시내 책방에 나갔다가 위치우위의 [중국문화답사기]를 잠시 들춰볼 기회가 있었다. 00문화답사기......이런 책이 한동안 베스트셀러가 되었었기에 눈이 더 갔던 것일까. 중국어를 배워보겠다고 맘을 먹고 있어서인지 중국에 대한 것들은 허투루 보이지 않는다. 나름대로는 좋은 현상이라고 긍정적인 생각을 가져본다.

숲의 나무들은 처음 나무가 심어질 당시 언젠가 이 나무들의 이파리들이 한 잎 한 잎 떼어내질 것이라고 상상하지 못한다. 나뭇잎의 아름다움은 나무 전체의 풍모와 자태를 바탕으로 한 것이며, 나무의 아름다움은 산골짜기의 모습과 자태, 또한 산골짜기의 아름다움은 세상천지의 에너지와 모습에서 비롯된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한국어판 서문 중에서)

그래서 이 책은 커다란 나무에 달려 반짝이는 잎사귀들 하나하나를 떼어서 보여주는 것 같다. 저자 스스로도 저자가 쓴 여러 책에서 발췌한 것들이며 일부는 강연회에서 했던 말들로 젊은 편집자 몇몇이 수집하여 엮은 것이라고 밝히고 있다. 쉽게 말 하면 어록이라고 해도 되려나 모르겠다. 책을 읽으면서 반짝이기는 하지만 줄기와 뿌리를 가늠할 수 없으니 아쉽게도 반짝임에 대한 감동도 역시 줄어들 수밖에 없었다.

역사, 문화, 삶, 사람에 대해 이야기를 한다. 전체 12개의 장으로 나누어져 있지만 나는 1~6장까지 그리고 7~12장까지로 나누어 책을 이해했다. 어떤 부분에선 어느 지명과 그 지명에 얽힌 내용들이 이 책에 발췌되기 전 매우 상세하게 설명되었을 거라는 생각이 들게 한다. 하지만, 부분의 단점은 전체를 볼 수 없으니 장님 코끼리 만지 듯 답답하다는 거다.

세상의 고대 성루들은 대부분 전쟁의 산물이다. 그러나 그 가운데 단 백분의 일만 역사가 될 수 있으며, 천분의 일만이 경관을 이루고, 만분의 일만이 시적 정취를 불러일으킬 수 있다. 서로 비교해볼 때 시적 정취가 가장 고귀하며, 또한 가장 고도의 경지이기 때문에 미케네가 가장 아름다운 모습으로 간직될 곳은 호머여야 한다. 그리고 호머를 거쳐 그리스 문명에 이르게 될 것이다.(page19)

‘호머’가 지명이었나 라는 생각을 잠시 했다. 나의 무식함이 들통 나는 순간이다. 나는 일리아드와 오딧세이의 호메로스를 생각하고 있었으니 ‘호머’라는 지명에 대해 급히 찾아봐야 할 숙제가 생겼다.

큰 문명은 큰 공간이 필요하다. 공간이 작으면 원래 큰 문명도 작아지게 된다. 만약 작아지지 않으면 깨지거나 부서지고 결국 쫓겨나게 된다.(page19)

저자는 그리스 문명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처음 이 부분을 읽을 땐 조금 기분이 나빴다. 그의 발상이 과연 중국인답군 이라고 생각했었다. 하지만 다시 한 번 곰곰이 되짚어 보니 저자의 시각이 무척 냉정하다는 걸 알겠다. 그럼에도 발해에 대한 부분은 지극히 자의적이라는 생각이 든다. 당나라의 선진 문명을 받아들이자고 주장했다는 대문예라는 사람의 예를 들어 발해가 당나라의 선진문명을 받아들이지 않았기 때문에 결국은 멸망했다고 얘기하고 있다. 발해는 문명의 수준으로 인해 고독하고, 취약하고, 구원의 손길이 없는 곳을 향해 걸어갔다는 말이 당나라의 문명을 받아들이지 않아 멸망할 수밖에 없었다는 말로 읽힌 것이 전적으로 나의 오독인지 한참을 다시 되짚어 보았다.

황량하고 난폭한 역사에서 문명은 수준이 높을수록 더욱 고독하다. 발해에서 당나라의 문명을 받아들이자고 주장한 선진 학자 역시 고독한 인물이었다.(중략) 발해는 왕조의 교체를 거치며 한 걸음 더 문명국가로 나아갔다. 하지만 발해 역시 결국은 대문예 같은 신세가 되고 말았다. 발해는 문명의 수준으로 인해 고독하고, 취약하고, 구원의 손길이 없는 곳을 향해 걸어갔기 때문이다.(page19-21)

아래와 같이 遠行의 즐거움을 이야기 하면서 시인들의 의지박약에 대해 한 마디 한 부분도 기억에 남는다. 아주 틀린다고 흰 눈으로 쳐다볼 수는 없지만 그렇다고 아주 틀리는 말도 아니기에 문득 가슴이 뜨끔해지는 부분이기도 했다. 마침, 오늘은 5.18 민주화 투쟁 기념일이다. 벌써 그날로부터 30년이 되었다. 여전히 상처는 아물지 않은 것 같고 무엇인가 할 말도 많이 남은 거 같다. 하지만, 대부분은 조용하다. 그 조용함을 부끄러워지게 하던 부분이었다. ‘예나 지금이나 변함없는 문인들의 일반적인 병폐’라는 지적에 고개를 숙였다.

훌륭한 시인은 근심도 많고 감정도 풍부한 사람이다. 삶이 절망적일 때 정신적으로 이를 감당할 수 없었을 가능성이 많다. 또한 겉으로는 호탕해 보이는 문인들 역시 평소에는 만수산천을 입에 달고 살다가도 실제 어려움이나 위기에 봉착하면 대부분 도망가기 급급하다가 다시 뒤돌아서서 지나가는 행인들 등 뒤에다 손가락질을 하기 일쑤이다. 예나 지금이나 변함없는 문인들의 일반적인 병폐이다.(page85)

예술가들에게 흔히 볼 수 있는 결함은 ‘지나침’과 ‘나태함’(page166)이라고 꼬집는다. 희곡에 대해 셰익스피어가 한 말을 인용해 예술의 본의와 상반되는 지나친 표현에 대해 주의를 주고 있지만 어찌 희곡에만 해당되는 말일까 싶다. 특히, 나태함에 나도 모르게 밑줄 쫙 그어가며 자신을 반성해 본다.

독일의 유명한 소설가인 지크프리트 렌츠의 [하룻밤의 여행]에 대한 부분이다. 아마도 이 글을 쓸 당시 렌츠에 대해 잘 몰랐거나 지은이를 잊었던 듯 아주 오래 전 한 외국 잡지에서 본 이야기라고 소개하면서 작가의 자세에 대해 이야기 한다. 하룻밤의 여행의 줄거리는 이렇다. 기차가 지나가는 한적한 시골마을에 기차를 좋아하는 아이가 살았다. 아이는 기차가 지나갈 때마다 열심히 손을 흔들었다. 하지만, 기차를 탄 사람들 중 아무도 소년을 향해 손을 흔들어 주는 사람은 없었다. 아이는 병이 나고 병이 난 이유를 알게 된 아버지는 이웃 마을로 여행을 떠났다. 다음날 기차가 마을을 지나갈 때 아들에게 손을 흔들어 주기 위해서였다. 막상 여행지에서의 밤이 낯설었던 아버지는 잠을 못 이루고 뒤척였고 같은 방에 투숙한 손님에게 아들의 사연을 이야기 한다. 사연을 들은 손님은 껄껄 웃더니 또 다시 잠이 들었다. 아버지도 깜박 잠이 들었다 깬 사이 그만 기차는 떠나버렸고 아버지는 풀이 죽어 집에 돌아왔지만 아들은 다시 예전의 활력을 찾고 있었다. 깜짝 놀라는 아버지에게 아내가 이야기 해준다. 첫 번째 기차가 지나갈 때 한 남자가 창밖으로 상체를 내밀고 열심히 아이에게 손을 흔들어 주었다고. 저자는 이 낯선 여행자의 그림자가 수년 동안 마음속에서 지워지지 않는다고 말 하는데 나도 오래도록 이 부분의 그림자가 마음속에서 지워지지 않을 것 같다.

나는 작가란 모름지기 그와 같은 모습을 하고 있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다른 이의 고통을 깨달은 순간, 구태여 점잖은 모습으로 위안을 하려들 게 아니라 껄껄 웃으며 그냥 편안하게 잠이 들어야 한다. 잠자리에서 일어나면 잊지 말고 다음 날 첫차를 타고 행동에 들어간다. 아이를 찾아가 이러쿵저러쿵 이치를 설명하려 하지 않는다. 그저 모든 승객들을 대표해 열심히 있는 힘껏 손을 흔들어 따스한 정을 선사하면 된다.(page229)

이 책엔 아주 많은 이야기가 들어있다. 처음 책을 처음 만났을 때의 예상보다 훨씬 다양하고 많은 이야기들이 들어있음에 놀랐다. 정말로 숲의 나뭇잎들을 만나는 느낌이다. 모두가 다른 나무에서 태어나고 자라 햇살 아래 반짝이는 이파리들의 축제. 그 이파리들이 모여 어떻게 사색의 숲이 되었는지를 아주 조금 이해할 수 있을 것 같다.

10장의 제목은 ‘덩굴은 나무의 존엄성을 헤치지 않는다’이다. 인간다움에 대한 소소한 이야기들이 개울처럼 흐른다. ‘존엄에 관한 한 자신이나 타인이나 모두 같은 방향을 바라보고 있다고 생각하면 된다.(중략) 상호 존중은 마치 거울을 바라보는 나와 거울 속에 비친 내 모습 같은 관계다(page256)  그를 ’현대판 루쉰‘이라 부르는 이유들을 나는 책의 뒷부분에서 찾았다. 성경에 믿지 않고 보는 자 더 복되다고 했던가. 그러나 의심 않고 그가 그렇게 불릴만 하여 ’현대판 루쉰‘이라 불리는가보다 라고 생각했더라면 감흥이 덜 했을 거라는 생각을 했다. 나는 정말 저자가 ’현대판 루쉰‘이라 불리는 이유가 궁금했고 이 책을 읽어가며 완전하지는 못 하지만 저자의 세계를 구경은 했다. 그리고 그 해박함과 명철함에 존경을 표하는 바다.

 

공무도하(公無渡河)-사랑아, 강을 건너지 마라

그러고 보니 모든 경계엔 물이 있었다.

물은 이쪽과 저쪽을 新. 舊로 나누기도 貧, 富로 나누기도 하며 上, 下로 나누기도 한다. 이미 이런 나눔에 어쩔 수 없다는 듯 물리적 거리를 뛰어넘어 의식 속에서 걷잡을 수 없이 넓어져 가는 그 폭을 받아들이지만 막상 새롭게 나타나는 경계선을 보며 마음이 씁쓸해 지는 것은 어쩔 수 없다. 문학산 정상에 올라서면 연수구와 남동구 그리고 송도 신도시는 물론 인천 앞바다의 모습이 시원하게 눈에 들어온다. 송도 신도시는 점차 도시의 미관을 갖춰갈수록 서울 어느 도심에 뒤지지 않는 세련되고 거대한 모습이 드러나고 있다. 송도 신도시와 구 시가지를 가르는 경계에도 예외 없이 ‘물’이 있다. 바닷물을 끌어들여 만들어 놓은 해안공원이 물 이쪽의 구시가와 물 저쪽의 신도시를 반듯하게 구획정리하고 있다. 저쪽의 집값은 이쪽의 집값과는 비교가 안 된다고 한다. 나 같은 사람이야 가진 게 없으니 언감생신 그 쪽을 바라보지도 못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문학산에서 내려다보며 그 경계를 확인할 때마다 마음이 착잡해지는 것을 숨길 수가 없다.

달러 값이 떨어지고 중동산 원유 값이 치솟았다. 공단의 수출업체들은 재무제표를 공개하면서 생산라인의 삼분의 일 이상을 가동 중지 시키고 노동자들을 고액 연봉자 순으로 해고했다. 6개월 후에 환율이 회복되고 공단 쪽 신축아파트에 중저가 가구 수요가 늘어났다. 업체들은 해고된 노동자들을 1년짜리 계약직으로 격하시켜서 재고용했다. 노조는 고용지위와 임금의 원상회복과 해고기간중의 위로금 지급을 요구하며 파업을 벌였다. 파업은 2개월 이상 계속 되었다.(중략) 자금력이 남아있는 업체들은 생산설비를 정리해서 미얀마나 캄보디아로 공장을 옮겼다. 파업은 계속 되었다.(page 33-34)

그의 소설 속에 이런 부분이 있다고 해서 나는 그가 프롤레타리아를 이해하는 부류는 아닐 거라고 생각한다. 오히려 이 소설 속에 등장하는 몇 부류의 인간들. 노목희. 문정수. 장철수. 오금자. 박옥출 이 인간들 중 김현과 줄을 그어볼 수 있는 인물을 객관식 문제의 답을 고르듯  꼭 짚어야 한다면 나는 노목희에 표시를 할 거다. 적어도 나에게 김현이라는 작가는 그렇다.

나는 소설가 김현을 좋아하지 않는다. 왠지 있는 대로 까탈을 떨 것 같은 말쑥한 생김새도 그렇고 생김새처럼 군더더기라곤 없는 그의 글도 그렇고 언젠가 어느 문학잡지에서 읽었던 소박하지만 평범하진 않았던 일상들에 대한 기억이 왠지 그의 글에 다가가기 힘들게 한다.

하지만, 그의 간결한 문체야 말로 사실은 내가 지향하는 글쓰기였다는 걸 이즈음 다시 읽거나 새롭게 읽고 있는 그의 소설들을 돌아보면서 새삼스럽게 깨달았다.

......인간은 비루하고, 인간은 치사하고, 인간은 던적스럽다. 이것이 인간의 당면문제다. 시븍한 현안문제다......(page35)

장철수라는 인물에 각별하게 시선이 머문다. 때문에 이 소설은 문정수의 동선보다 장철수의 행보가 더 궁금하고 마음이 아프다. 鄙陋하다는 것을 과연 우리는 어디까지 선을 그어서 봐줄 수 있는 걸까. 작가는 장철수를 비루한 인간의 전형으로 내세우고 싶었을 런지도 모른다. 그는 확실히 세상과는 코드가 잘 맞지 않았고 세상과의 발맞추기에서 늘 헛걸음을  떼어 놓았다. 그리하여 삶이 누추하였지만 그렇다고 그에게 손가락질을 할 수는 없다. 그는 나름대로의 삶에 최선을 다 해 살았다. 그 최선을 다 했음이 단지 ‘富’로 되돌려지지 않았음으로 해서 늘 밑바닥을 전전했기로서니 누가 그를 비루하다 손가락질 할 수 있겠는가.

물리적 배경은 ‘해망’이라는 바닷가 마을이지만 그 해망에서 일어나는 일련의 사건들은 결코 ‘해망’을 바닷가 마을로만 받아들일 수 없도록 만든다. ‘해망’을 온 몸에 두르고 좌충우돌하는 이 부조리한 사회와 그 사회에서 일어났던 불쾌한 사건들을 우리가 말하지 않을 뿐이지 어찌 모를까. 그리하여 소설 속에 등장하는 인물들은 모두 이 사회가 가지고 있는 많은 얼굴들 중 한 가지씩을 대변하고 있다고 해야겠다. 그 얼굴들이 아름답지 않아서 마음이 아프다. 모두 두꺼운 가면 속에 얼굴을 숨긴 채 더운 한 낮의 열기를 땀으로 쏟아내고 있는 연극배우처럼 안쓰럽다. 우리들의 삶도 그들과 별반 다르지 않을 거라는 생각을 해본다.

그렇다면 나는 소설 속의 누구와 비슷한 얼굴을 가지고 있을까. 이 봉건 자본주의 사회에서 솔직히 가지고 싶은 얼굴은 박옥출일 것이다. 만약 장철수의 삶이 정의로 왔다하더라도 그가 가난했으므로 결국 그의 정의는 제대로 평가받지 못 했을 것이다. 박옥출의 삶. 그는 명예와 부를 함께 가졌다. 자신의 부를 이용해 건강까지 샀으니 그야말로 이 세상을 가장 잘 살아내고 있는 사람이 아닐까. 하지만, 정말로 부러운 인물은 노목희다. 그녀는 부르조아의 모델이었을까. 모임이나 행사에서 만나볼 수 있는 고상하고 우아한 캐리어 우먼들. 하지만 왠지 인간에 대해 서걱거리는 편견을 가지고 있을 것 같은. 그럼에도 될 수만 있다면야 내게도 타이웨이 교수 같은 사람이 나타나주면 좋겠다는 헛꿈을 잠시 꿔보기도 한다.

조금 답답하지만 김현의 작품들을 다시 한 번 더 들춰보고 싶게 만들었던 작품이었다. 이 작품을 시작으로 앞으로 몇 편 김현의 작품들을 읽어볼 예정이다. 다음 책은 [현의 노래]다.

 

 

도둑맞은 미래-[환경호르몬]의 실체를 최초로 밝힌다

요즈음 텔레비전 드라마에서 동성애에 대한 소재가 공공연하게 다뤄지고 있다. 예전에 영화 [왕의 남자]를 보고 영화에서 공공연하게 동성애를 다뤄도 좋을 만큼 우리 의식이 발전했는가라고 물은 적이 있었는데 그 후 몇 년 사이 획기적인 변화라고 봐도 좋을 것 같다. 사람들은 동성애의 표출을 의식의 변화 또는 가치관의 확장이라고 생각하고 이해하는 것일까?

또 한 가지. 연예인들의 혼전임신 소식을 아무렇지도 않게 다루는 연예뉴스도 마찬가지다. 예전 같았으면 문란하게 받아들여질 수도 있는 상황들이 이젠 ‘혼수’라는 이름으로 당연시  되기도 하는 이 세태 역시도 그저 사람들의 생각이 바뀌었다고 받아들이면 되는 것일까. 어느 분은 수태가 어렵다보니......라는 의견을 달아주셨다. 이 문제 역시 사회적 관점도 중요하지만 생태학적 관점에서 되짚어봐야 할 중요한 문제를 가지고 있다고 생각했다.

그렇다면 점점 더 높아지는 이혼율을 바라보는 시각도 조금 다른 쪽으로 생각해보는 것은 어떨까. 이 책 [도둑맞은 미래]를 읽으며 우리들이 주목하고 있는 사회적 문제들이 단순히 물리적 원인을 가진 문제를 떠나 좀 더 심각한 생물학적 문제를 동반하는 것일 수도 있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책에 대해 특별한 취향을 고집하지는 않지만 굳이 관심을 가지고 있는 분야를 꼽으라고 하면 환경과 생태학 분야의 책에 가장 눈이 많이 간다. 몰랐을 때는 한 없이 멀고 막연했던 부분들이 한 권, 두 권 책을 읽어가면서 우리의 삶 자체의 문제라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그런 의미에서 [도둑맞은 미래]는 조금 더 두렵고 어두운 문제들을 파헤쳐 가르쳐준다.

[도둑맞은 미래]는 광범위한 인공 화학물질들이 섬세한 호르몬 시스템을 어떻게 저해하는지를 생생하고 알기 쉽게 설명해 준다. 이 시스템들은 인간의 성적 발달로부터 행동, 지성, 그리고 면역계의 기능에 이르는 과정에서 중요한 역할을 한다.(중략)

정자수의 감소, 불임, 생기기 기형, 호르몬이 유발하는 유방암과 전립선암 같은 암종, 과잉운동증과 집중력 장애 등의 어린이들에게서 보이는 신경학적 이상, 그리고 야행동물들의 발달과 생식 문제 등의 수많은 사례들은 이 화학물질들과 분명히 관계가 있다.(중략)

[도둑맞은 미래]는 우리가 지구 위에 뿌려댄 합성 화학물질들에 대하여 새로운 질문들을 하도록 권하는 정말 중요한 책이다. 우리 자식들은 물론 후손들의 운명을 위해 우리는 부지런히 그 해답을 찾아야 한다. 우리 모두는 알 권리와 배울 의무가 있다.

(page5-8 앨 고어 전 미국 부통령의 추천사에서 부분 발췌)

지구 온난화에 대해선 많은 사람들이 걱정을 한다. 이산화탄소 배출 논의도 국가적으로 이뤄지고 있으며 여러 방향에서 이 문제를 연구하고 해결책을 모색하고 있다. 하지만, 환경호르몬에 대한 것은 지구 온난화 문제만큼 사람들에게 주의를 끌지 못 하고 있는 것 같다. 그런 의미에서 이 책의 공동저자인 테오 콜본, 다이앤 듀마노스키, 존 피터슨 마이어 세 분의 과학자께 독자의 한 사람으로서 감사를 드린다.

가끔 공부방 아이들에게 간식으로 컵라면을 끓여줄 때가 있다. 별다른 도구나 준비물이 필요치 않은 컵라면이야말로 가장 간편한 간식거리이기 때문이다. 유독 컵라면을 먹지 않는 사내 녀석이 있었다. 컵라면을 먹으면 커서 아이를 낳을 수 없다는 것이 이유였다. 다른 아이들은 와-하고 웃었지만 순간 가슴이 뜨끔했던 기억이 있다. 아이의 말에 나도 어느 정도 동감을 했기 때문이다. 그 후로 간식으로 컵라면 보다는 손이 조금 더 가더라도 떡볶기나 어묵 같은 것들을 해주려고 노력한다. 하지만, 돌아보면 우리 주변의 모든 것들은 이미 환경호르몬에 너무 깊이 젖어있으니 걱정이다.

우리 대부분은 환경호르몬을 잊고 산다. 환경호르몬은 쓰레기를 태울 때 가장 많이 발생하는 다이옥신으로 알고 있거나 새집증후군이라는 이름으로 기억하고 있을 뿐인 것 같다. 인간의 생존에 우리가 알고 있는 것보다 훨씬 더 치명적인 영향을 끼치는 환경호르몬에 대해 우리가 둔감한 이유는 그것이 눈에 보이지 않는다는 것과 그것의 영향이 아주 오랜 시간을 두고 서서히 나타나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하지만, 더 무서운 것은 환경호르몬에 의한 어떤 영향을 우리가 체감할 수 있게 되었을 때는 이미 되돌릴 수 없는 지경에 이른 다음이라는 것이다.

플로리다, 걸프 해안-독수리 새끼들의 수가 급격히 감소했고 흰 머리로 쉽게 알아볼 수 있는 어른 독수리의 2/3가 짝짓기에 무관심한 것처럼 보였다. 그들은 어떤 구애 몸짓도 하지 않았다.

미시간 호-값싼 물고기가 충분히 공급되던 오대호 주변에서 성장한 밍크 산업이 비틀거리기 시작했다. 암컷이 새끼를 낳지 못했다. 처음엔 새끼 밍크의 수가 네 마리에서 두 마리로 떨어졌지만 암컷 밍크가 불입이 되었고 나머지 새끼들도 잃게 되었다

온타리오 호-원래 갈매기들이 새끼를 먹이고 알을 품느라 바쁜 시기였음에도 불구하고 황폐한 풍경뿐이었다. 도처에 부화되지 않은 알과 버려진 둥지, 그리고 죽은 새끼들을 보았다. 조사 결과 80%의 새끼들이 부화도 되기 전에 이미 죽었다고 추정했다. 죽은 새끼들은 솜털 대신에 성체의 깃털을 달고 있었고 발이 오그라들거나 눈이 없거나 부리가 뒤틀려 있었다. 다른 것들은 주름이 지고 바짝 말라 있었는데 난황 주머니가 그대로 매달려 있었다. 이는 새끼가 발육을 위해 그 에너지를 이용할 수 없었음을 의미했다.

남부 캘리포니아, 채널제도-산니콜라스 섬에서 처음으로 둥지에 이상하게 많은 수의 알이 있음을 목격했다. 갈매기는 한꺼번에 세 개 이상의 알을 품기 힘들다. 산타 바바라 섬의 둥지 중 최소한 11%가 4개나 5개의 알을 가지고 있었으며, 그들은 보통둥지보다 더 작은 수의 새끼가 부화했다. 또한 알껍질이 얇아지고 있었다. 연구결과 암컷 갈매기들이 함께 둥지를 틀며 여분의 알을 낳는다는 것을 확증할 수 있었다.

폴로리다, 아포프카 호-다른 폴로리다의 호수에서 수행된 연구는 암컷 악어가 낳은 알 중 90%가 부화했으나 아포프카에서는 부화율이 겨우 18%였으면 부화된 새끼 악어 중 절반이 열흘 이내에 기운을 잃고 죽어갔다. 연구자들이 밤을 틈타 호수의 악어들을 잡아 관찰했을 때 많은 수컷들의 최소한 60%가 이상하게 작은 음경을 가지고 있었다.

북유럽-4월 중순 겨울철 폭풍우의 잔해와 함께 해변에 밀려온 유산된 표범새끼들을 발견하기 시작했다. 곧이어 반점에 뒤덮힌 바다표범의 시체가 파도를 타고 실려 왔다. 12월까지의 사망통계는 18,000마리에 달했고 이는 전체 북해 바다표범 수의 40%에 해당하는 것이었다.

지중해-처음으로 스페인 동해안의 발렌시아 바닷가에 몇 구의 시체와 죽어가는 줄무늬돌고래들이 떼 지어 밀려왔을 때 사람들은 자연사라고 여겼다. 그러나 8월이 되자 많은 수의 죽은 동물들이 해안에 밀어닥치기 시작했다. 전염병이 저절로 사라질 때까지 공식적인 사망통계는 1,100마리 이상이었다.

(이상 page15-25 1장 저주에서 부분 발췌)

이런 이상한 일의 원인은 환경호르몬에 의한 것이라고 주장하는 학자들은 그 원인 물질로 각종 공업 화공물질들과 DDT와 같은 살충제 성분을 꼽고 있다. 자연계에서만 일어나는 현상이 아니다. 물과 대기의 순환을 거쳐 인간들에게도 그 영향이 나타나고 있다는 것을 보여준다. 연구자들은 정자의 양과 질의 변화와 생식기 기형의 증가가 짧은 시간동안 일어났다는 이유 때문에 유전적 원인을 제외시켰다고 한다. 결국 어떤 환경요인 때문이라는 것이다.

덴마크, 코펜하겐-고등학교 학생들도 관찰하는 현미경 아래서 헤엄치고 있는 인간 정자의 기형을 알아차릴 수 있다. 한 표본 안에서도 어떤 것은 머리가 둘이고 어떤 것은 꼬리가 둘이며 어떤 것은 아예 없다. 많은 수가 똑바로 헤엄치지 못하거나 전혀 움직이지 않고, 아니면 강하고 지속적인 움직임 대신 미친 듯이 지나친 움직임을 보인다. 해가 갈수록 전형적인 정자수의 감소뿐만이 아니라 점점 더 많은 정자의 기형을 보게 되었다. 연구자들은 인간의 평균 정자 수는 1938년에서 1990년 사이 50%나 감소했으며 동시에 고환암의 발생은 덴마크뿐만이 아니라 다른 나라에서도 급격히 증가했다 또한 어린 소년들 사이에서 정류고환이나 요도단축증과 같은 생식기 기형들이 증가하고 있음을 시사했다.

(이상 page15-25 1장 저주에서 부분 발췌)

3, 4, 5장에서 다루고 있는 생쥐를 대상으로 한 일련의 실험에서 도출해낸 결과들을 가지고 호르몬의 작용과 중요성 그리고 호르몬이 합성 화학물질에 오염되었을 경우의 상황들을 설명한다. 또한 이 실험결과들이 인간에게도 적용됨을 이야기 하고 있다.

호르몬은 아직 태어나지 않은 아이에게서 적어도 성적 발달의 일부 측면을 유도함과 동시에 아기의 신경계와 면역계의 발달을 지휘하고 남성과 여성에서 다르게 기능하는 간, 혈액, 신장, 그리고 근육과 같은 기관과 조직들을 프로그래밍 한다.(중략)

이 모든 기관계통에서 정상적인 발생은 정확한 시간에 정확한 장소에 정확한 양의 정확한 호르몬 메시지를 얻었는가 여부에 달려 있다. 이 정교한 화학적 무용은 현기증 나는 속도로 진행되기 때문에 모든 것은 적절한 타이밍과 적절한 신호에 달려 있다. 무엇인가가 발생의 중요한 시기에 이 신호를 저해하면 이는 후손들에게 평생 지속되는 심각한 영향을 남긴다.(page 66)

결국 환경호르몬의 독성도 대물림해서 이어진다는 교훈을 우리에게 일깨워 주고 있다. 하지만, 환경 호르몬은 합성 화학물질에 의해서만 생성되는 것은 아니다. 이에틸스틸베스트롤(DES)라는 합성 에스트로겐에 대한 부분은 등골이 오싹해진다. 불충분한 에스트로겐이 임신중 유산과 조산을 일으킨다는 믿음에서 임신중 문제가 생긴 여성들에게 DES를 투여했다.

의사들은 10년간 DES를 유산방지를 위해서만 처방한 것이 아니라 마치 상황을 더 낫게 할 수 있는 비타민인 것처럼 문제가 없는 임산부에게도 권했다. 임산부말고도 출산 후 모유 억제, 홍조와 기타 생리 때의 증상들, 여드름, 전립선암, 어린이의 임질, 심지어 키 큰 소녀들의 성장억제제로도 이 약을 남용했다고 한다. 그러나 이 DES를 복용한 임신부들에게 유산이 더 적지도 조산이 적지도 사산이 적지도 않았지만 1971년 질투명세포암으로 치료받은 여성 8면 중 7명의 어머니는 임신 초 3개월 동안 DES를 복용했다고 보고했다. DES는 남자들에게도 영향을 주어 고환암과 불임과 같은 고통을 주고 있다. 또한 DES노출과 인간 행동관의 관계는 성적 지향성을 바꿔놓기도 한다고 한다.

대다수의 남성들은 여성에게 끌리고 대다수의 여성들은 남성에게 끌리는데 이는 생식을 가능하게 하게끔 진화가 만들어 놓은 상식적인 장치이다.(중략) 하인즈는 DES네 노출된 여성들과 노출되지 않은 그들의 자매 혹은 다른  여성들을 비교할 몇 가지 연구들을 모았고 출생 전 DES 노출과 동성애 혹은 양성애 기질 사이에 관련이 있음을 발견했다(중략)

밥 테스트 결과 DES여성들의 24%는 평생 지속되는 동성애나 양성애 기질을 가지고 있었다.(중략) DES 여성들이 육아에 관심을 덜 보였다는 보고도 있었으며, 출생 전 DES에 노출된 남성과 여성들이 불안, 거식증, 공포장애와 같은 정신과적 질환 뿐 아니라 높은 비율의 우을증을 보이는 것을 발견했다.(중략)

DES의 경험은 DES에 노출된 이들 뿐 아니라 우리 모두에게도 관계 있는 중요한 교훈을 제공했다. 발생에 미치는 DES의 효과는 인체가 인공 화학 물질을 호르몬으로 오인할 수 있음을 명백히 보여주었다.(page87-89)

5장의 불임이 되는 50가지 방법을 읽다보면 정말로 우리의 후손들이 걱정이 안 될 수 없다. 합성 에스트로겐뿐만이 아니라 호르몬 유사 물질들이 동물들의 수태 시스템을 헝클어놓는다는 것이다. 이 호르몬 유사물질들이 인간에게 주입되는 경로는 우리가 어떤 생존 경로를 거치든 막을 수 없다는 것이다. 더군다나 이 호르몬 유사 물질들은 당장 어떤 영향을 나타내지 않는다. 자궁이나 몸속 어딘가에 쌓여 있다가 임신과 수유를 통해 다음 자손에게 이어진다. 다이옥신에 대한 예를 한 가지만 더 들어보자.

다이옥신은 또한 발생초기에 노출된 수컷 새끼들의 성적 행동에도 영향을 미치는데(중략) 성숙한 이 수컷들은 짝짓기 기회가 있을 때마다 수컷다운 성적인 행동이 감소하며 전형적인 암컷의 방응인 척추전만 같은 여성화된 성적 행동이 증가한다. 호르몬으로 처리했을 때처럼 다른 수컷이 그놈들을 올라타기도 한다(page149)

근래 이슈가 되고 있는 동성애와 씩씩한 여성과 다소곳한 남성의 생물학적 변이의 가능성을 나는 나름대로 이해할 수 있었다. 사회, 문화적인 변화뿐만이 아니라면 우리는 한시라도 빨리 어떤 해결책을 간구해야 하는 게 아닐까?

다른 동물들에 비해 인간은 비효율적인 생식자이다. 성공적인 수정을 위해 간신히 요구되는 것과 비슷한 수의 정자만을 만들어낸다고 한다. 인간은 내분비 교란 화학물질의 공격이 없어도 인간 남성의 정자 수는 병적경계선에 있다고 한다. 이 주장이 맞고 인간 정자수의 지속적인 감소가 이뤄진다면 우리 종은 불안한 미래에 직면한다. 그런 하락은 인간의 생식력에 절면적인 영향을 미칠 수 있다.(page151)

아주 오래전 재미있게 보았던 TV 외화 시리즈 ‘V’를 요즈음 케이블 TV에서 다시 방영하고 있다. 생식과 종족의 번식을 위해 지구를 점령한 외계 파충류 종족과 인간들의 싸움을 그린 영화이다. 절대로 일어나지 않을 허황된 이야기니 그저 재미있게만 봤던 그 오래전과 다른 시각을 가지게 된 건 어쩔 수 없는 일일까. 우리 인간들이 생식과 종족 번식을 위한 점령군이 되어서 다른 행성의 생명체를 찾아가야 할 일이 생긴다면 너무나 무서운 일일 것 같다.

하지만, 환경호르몬에 대한 공부를 하면 할수록 그런 일이 일어나지 말란 법도 없지 싶다.

마지막 부분에서 환경호르몬을 피하거나 줄이는 방법에 대해서 이야기 하고 있지만 그다지 낙관적이지 않다. 이 책에서 말하는 환경호르몬에 대한 대처방법은 앞에서 주장했던 그들의 강도 높은 목소리에 비해 너무 형편없다.

동물성 지방의 섭취를 줄이고, 유기농채소를 사거나 직접 길러 먹으라고 한다. 프라스틱 음식과의 접촉을 최소화하고 플라스틱 용기에 넣든지 플라스틱 랩에 씌워 가열하거나 전자렌지에 넣지 말라, 전자렌지를 쓸 때는 유리나 자기 용기를 사용하라는 정도이다. 이 정도의 해결방법 제시는 너무 실망스럽다. 책을 읽어본 바로는 환경호르몬은 사회적 국가적으로 관심을 가지고 대처해야할 것들이기 때문이다. 집에서 개인이 주의할 수 있는 방법들은 물론 어느 정도 환경호르몬으로부터 지킴이의 역할을 해 줄 수는 있을 것이다. 또 개인의 주의가 모이면 더 큰 사회적인 작용이 될 수도 있을 런지 모르겠다. 그러나, 그 모든 방법들도 산업시스템의 전반적인 변화가 없이는 손바닥으로 얼굴만 가린 꼴이라는 게 내 생각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