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정적인 책들 /왕상한
얼마 전 졸업논문 결과 발표가 있었다. 부족한 실력이었지만 지난 4년 동안 공부한 것들과 나의 지식을 모두 동원해서 부끄럽지 않은 결과물을 만들어보고 싶었다. 덕분에 올 한 해는 주로 논문의 주제와 관련된 책들과 마지막 학년의 교과서 외엔 이렇다하게 독서다운 독서를 하지 못 했다. 가입해 있는 독서관련 카페의 서평 이벤트엔 읽고 싶은 책들이 줄줄이 올라왔지만 그저 마음만 있을 뿐 응모해볼 엄두도 내보지 못 했던 안타까운 시간들이었다. 하지만 욕심을 줄여서 산 덕분에 졸업논문은 무사히 통과가 되었고 이제 마지막 한 학기의 기말고사만 남겨두게 되었다. 시험은 여전히 익숙해지지 않는 어려운 통과의례의 한 가지이지만 늘 매듭을 하나씩 푼다는 마음으로 시험을 치르게 된다. 살면서 하나씩 매듭을 엮거나 엮인 매듭을 푼다는 것이 얼마나 의미심장한 일인지 새삼스럽게 다가온다. 이유는 이제는 그 나이가 아직도 공부를 할 마음이 있느냐는 물음을 들을 나이가 되었기 때문인 거 같다. 가끔 내 나이가 많긴 하구나 라는 생각에 이제 공부는 그만 두어야 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하지만 난 아직도 공부를 멈추고 싶은 마음이 없다. 졸업을 생각하니 이제 매듭 하나를 푼 거 같고 그리고 또 다시 새로운 매듭에 도전할 생각에 가슴이 두근거린다. 이 두근거림은 할 수 있다면 죽을 때까지 누려보고 싶다. 그리고 그 두근거리는 도전의 한 축엔 책도 있다.
이 책의 저자인 왕상한 교수에게선 KS마크의 완벽함과 정교함이 묻어난다. 그래서 그의 글들과 책에 눈을 주지 않았었다. 일종의 열등감 내지는 부러움이라고 해야 하려나? 그러나 G.M 브리스톨의 ‘신념의 마력’을 소개한 글을 읽다보면 그도 어느 한 구석 우리처럼 보통의 가슴을 지닌 따뜻한 사람이라는 생각이 든다.
인생의 시작은 기름을 가득채운 자동차나 오토바이 같은 것이다. 누군가는 태어날 때부터 기름의 질과 양을 달리하고 태어난다는 말을 하지만 나는 생각이 다르다. 사람은 누구나 같은 질과 양의 기름이 채워진 자동차 혹은 오토바이이다. 시동을 언제 거느냐에 따라 대기를 향해 연소될 운명의 순간이 시작되는 것이다.
그 시동을 걸게 하는 힘도, 앞으로 계속 달려 나가게 하는 힘도 따지고 보면 신념이다. 내가 얼마나 앞으로 나아가고 싶은가에 대한 스스로를 향한 물음. 그것이 지속되어야 한다는 것을 알려주는 책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내가 정한 삶의 목표와 그것을 달성하기 위해 집중하는 나의 잠재의식이 나를 굳건한 신념의 세계로 끌어당김과 동시에 어떤 것을 성취할 수 있게 만든다.(page 68)
이 부분이 실린 페이지를 복사해서 아이들에게 소리 내어 읽게 해보았다. 글이란 눈으로만 읽는 것과 소리를 내서 읽는 것은 확연히 느낌이 다른 것이라 느낌이 더 강하게 다가오는 느낌이다. 마침 몇날 며칠을 시험공부에 매달리고 있는 중이라서 그런지 글을 읽고난 후 아이들의 마음이 조금은 더 단단해지는 느낌이 건네져 온다.
저자가 읽은 책에 대한 느낌을 읽고 다시 받는 느낌이라 직접 책을 읽으며 느끼는 감동과 조금 다를 수도 있겠지만 마치 반사되고 또 반사된 빛일지라도 그 밝기가 눈을 깜박이게 할 만큼이라면 빛의 강도도 또 그 빛을 반사한 거울의 맑기도 가벼운 것은 아니란 생각이 든다. 왕상한 교수의 책 소개가 그렇다는 말이다.
평소 나름대로는 열심히 독서를 하는 편이라고 자부했었는데 막상 왕상한 교수의 책 목록을 보니 읽은 책도 꽤 있지만 낯선 책들도 생각보다 많다. 세상에 있는 모든 책들을 읽어보고 싶은 것이 평상시의 욕심이지만 문득 독서에 조금 소홀했던 시간들이 몹시도 아까워지면서 앞으로의 독서계획을 좀 더 꼼꼼히 세워봐야겠다는 다짐을 해보기도 했다.
책을 많이 읽었다고 해서 책을 읽을 때마다 모든 내용을 이해하고 수용하지는 못한다. 그래서 이해가 덜 된 책은 다시 읽기도 하고 마음에 드는 책은 오랜 시간이 지난 후에도 다시 꺼내보기도 하는 게 아닐까. 고백하건데 나에게 전자의 경우에 해당되는 책이 바로 월리엄 포크너의 ‘호밀밭의 파수꾼’이다. 흥미 있게 읽었지만 마음에 쏙 들어오지는 않았던 책을 왕상한 교수의 책 소개를 읽으며 천천히 다시 읽어봐야겠다는 생각을 가장 많이 한 책이었다.
오랜 시간이 지난 후 다시 읽어보고 싶은 책으로는 생텍쥐페리의 ‘어린왕자’를 꼽고 싶다. 물론 내가 다시 꺼내어 읽는 책은 같은 저자의 다른 책 ‘인간의 대지’이지만,
‘결정적인 책들’을 읽으면서 그동안 내가 읽었던 책들의 정리방식에 대해서도 고민을 해보았다. 물론, 왕상한 교수의 정리법이 정답이라고는 생각하지 않지만 아, 이렇게도 책을 바라볼 수 있고 정리할 수 있겠구나 라는 깨달음도 얻을 수 있었다. 나의 글쓰기 방법에 대해서도 다시 되돌아보았던 시간이었다. 진지하고 진솔한 글이 가지는 담백한 감동이 얼마나 깊은 울림을 만들 수 있는지 그렇다면 한 줄의 짧은 글도 소홀히 끄적여선 안 되겠다는 생각도 했다.
요즈음 틈틈이 내년에 읽을 책의 목록을 작성하고 있다. 의도했던 것은 아닌데 자연과학 서적들이 압도적으로 많다. 시를 쓰면서도 의외로 자연과학 쪽이나 경제관련 책을 많이 읽는다. 내년엔 문학과 인문학 서적도 좀 읽어야 할 텐데 시간은 빨리 흐르고 나는 한없이 게으른 게 걱정이다. ‘결정적인 책들’에 언급된 책들 중 아직 내가 만나지 못 한 책들을 내가 읽을 도서목록에 올려본다. 누군가 먼저 밟아갔던 길을 따라가면서 느끼는 편안함을 만끽하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