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울시선-어울문학동인 제10집

 

그래도 시를 읽는 것은 시를 쓰는 일보다 어렵지 않다. 그러니 독자의 입장에서 시인들에게 감사해야 할 일이다. 그것이 한창 필명을 날리는 유명 시인의 시이든 주춤거리며 내민 습작시든 무슨 상관이 있으랴. 시인의 사고와 감정이 응축된 시어의 세계를 만나는 것만으로도 확실히 네모난 마음의 모서리를 둥글게 만드는 일이므로 대단한 의미가 있다고 하겠다.

 

어울문학동인이 열 번째 동인시집을 상재했다. 살면서 소소한 일상 하나에서도 아귀를 채운다는 것은 생각보다 더 많은 힘을 요구한다. 그러니 ‘열’이라는 숫자에 힘이 들어가는 것은 당연한 일일 터 어울문학동인의 그 힘에 진심으로 박수를 보낸다.

 

어울문학동인은 1997년에 처음 결성이 되었고 이제 15년째 접어드니 밖에서 보기에도 제법 무게가 느껴지는 모임이 되었다. 세월이 흐르는 동안 동인들의 면면도 화려해졌고 오래간만에 지난 동인시집을 꺼내보니 확연히 세련되어진 시들이 그동안 회원들 각각이 시를 붙들고 얼마나 열심히 노력했는지를 보여주고 있다.

 

 

촉촉이 젖은 솔걸 황금빛으로 빛나/ 군둥 내 나도록 묻어둔 생의 이면까지 들춰내며/ 밤새 격론으로 달구었던 벽난로의 장작불처럼/ 따슨 온기로 모두를 감싼다/ 삶은 인연으로 시작해 살핌으로 살가워지다/ 설움 한 덩이씩 가슴에 남기는 것// 산 아래 황토 집에 아침 연기가 오른다 (최제형-길명리에서-중)

 

세상이치가 거의 모두 이분법으로 설명이 되는 세상이라서 그런지 이즈음의 시 역시도 경향이 딱 나눠져 있다는 생각을 한다. 쉽거나 어렵거나. 문학사상 모든 문학작품이 다 그랬노라고 웃는 사람도 있겠지만 이즈음의 어렵게 쓰여진 시란 초현실주의 그림보다 훨씬 더 이해하기가 어렵다. 그러니까 독자 마음대로 해석하면 된다는 소린가? 이해불가의 시를 읽으며 창의적이고 새로운 시도라고 박수를 쳐주기도 하지만 솔직히 시란 읽는 사람의 감정에 호소하는 무엇인가가 있어야 시다운 거라고 나는 생각한다. 따뜻한 감성을 최 선생님 시에서 만나는 건 낯선 일이 아니다. 그 따스함이 열심히 인생을 걷고 있는 시인의 마음에서 우러러 나오는 것이라서 늘 친숙하게 느껴진다면 나도 이제 편안한 것이 좋은 중년이라는 소리겠지.

 

원피스가 장롱에 걸려 있다/ 질긴 폴리에스테르/ 썩지 않을 기억의 한 조각/ 너무 늦거나 이르게 오는 것이 생이라지만/ 억울하다, 이제야 머리를 기르고 원피스를 입게 되었다/스므 살로 돌아가고 싶으냐고 묻지 마라/ (중략) /누군가는 아직 습작의 시대를 살고 있고 누군가의 기억은 세상에서 제일 정직한 상처가 됐다/ 떠나지 못한 죄처럼 낡은/원피스가 장로에 걸려있다/ 도무지 알 수 없는 연대를 가진(김미옥-원피스 연대기-중)

 

김미옥 시인의 시가 가지는 미덕은 무엇일까. 삶을 객관적으로 들여다보는 아니, 삶을 관통하는 서늘한 시선. 그리하여 독자들로 하여금 진실에 대하여 논리적 접근을 허용하는 담백함이야말로 김 시인의 시를 읽는 즐거움이다. 그의 시에 다른 여류 시인들에게서 볼 수 있는 감상적이거나 관념적인 시어들을 만날 수 없다는 것이 하나도 아쉽지 않은 이유도 역시 평이한 시어들만 가지고도 탄탄한 삶의 그물을 엮어 펼쳐 보이는 시인만의 기교를 보기 때문이다. 하지만, 새로운 시도도 해보길 바란다. 그리하여 다음 시집엔 감성이 물씬 담긴 물컹물컹한 시어들을 만나볼 수 있길 기대해보고 싶다. 물론 김미옥의 시어는 김미옥만의 것이어야 한다.

 

텅빈 들판은 하늘을 보고 누워서 겨울잠을 서두르고 새들이 굴뚝에 모여 어둠을 쪼고 있었다 나는 들로 걸어 나가 그 들이 되었다 하늘이 입을 다물고 별이 되었다 밤이면 무화과가 나무에서 얼어붙었다(유완-가을에서-중)

 

유완시인의 시어들은 참신하다. 젊은 시인의 고뇌와 삶에 대한 아직 영글지 않은 반항에서 품어져 나오는 푸른빛이 유완 시인의 시어들 속엔 자리 잡고 있다. 자주 만나볼 수 없지만

그의 시에 대해 늘 기대를 하는 이유다. 위의 시 ‘가을에서’ 시인이 걸어 나간 들은 인생의 어느 들녘이었을까. 아무쪼록 나는 그가 황량한 가을과 시린 겨울을 잘 견뎌내 검푸르게 넘실대는 꽉 찬 들의 임자가 되길 바란다. 입을 다물고 별이 된 하늘 부분에서 나는 문득 고흐의 그림 속에서 빛을 뿜던 별을 떠올렸다. 깊은 밤하늘에 소용돌이치던 별빛의 그 대단한 열정과 차가운 이성으로 시를 쓰는 유완 시인의 행보를 기대한다.

 

누추한 곳이라도/ 모여드는 맞다은 얼굴/ 더러는 심드렁하다 해도/ (중략) / 삶의 중심에서 잠시 빠져있어도/ 잊혀지지 않고/ 저마다 마음 구석구석 그대로 살아/ 문 열고 들어서면 그만이다//(장원준-가족-중)

 

以心傳心 굳이 부처님과 가섭존자를 비유하지 않아도 좋겠다. 시를 읽으며 시를 쓴 사람의 마음을 따라가 볼 수 있다면 그리하여 시인의 마음이 행복할 때 더불어 행복을 얻어오고 혹여 시린 마음 어느 한 구석 숨겨두었을 시인의 고뇌를 같이 한숨 쉬어줄 독자가 있다면 글을 쓰는 사람으로선 더 한 기쁨이 없을 것 같다. 장 선생님의 시에 내가 바로 그런 독자일 수 있다면 좋겠다. 또한 내 부족한 시에 독자가 되어주시길 부탁드리고 싶다.

 

돼지껍질 구어 한잔 꺾는다./ 창가엔 새벽들이 등을 기대어 앉고/ 나는 돼지껍질 속으로 들어가 눕는다./ 껍질 안은 아랫목처럼 따끈하다/ 이글대는 불잉걸 속에서 새끼들이/ 뛰어나와 꼭지를 찾는다.(원진철-힘-중)

 

처음 원진철 시인을 알고 얼마 되지 않았던 어느 한 때는 원진철 시인의 시를 ‘눅눅하다’라고 표현했던 적이 있다. 시인의 상상력이 원천일 것이 분명한 시어들은 퍼즐을 푸는 것처럼 느껴졌었는데 현실과 상상력과의 평형의 문제라고 생각했었다. 그로부터 몇 년. 이제 원진철 시인의 시에선 제법 바탕이 단단해진 어른 남자의 테가 느껴진다. 삶은 늘 언제나 치열했었다고 항변하려나? 삶이 무르익어 이제 시에 자연스럽게 배었으니 시가 더 세련되어지고 능숙해졌다는 소리일 뿐이다. 다행인 것은 무엇에든 능숙해진 다음에 찾아오는 매너리즘의 그늘이 보이지 않는다는 것. 그러니 그는 분명 좀 색다른 시를 쓰리라고 기대해본다.

 

세상에 시인은 많고 시는 더 많다. 맘에 드는 시인이 있는가 하면 시인은 맘에 드는데 맘에 드는 시가 없을 수도 있고 시인은 맘에 안 들지만 시만큼은 미워할 수 없는 그런 경우도 있다. 물론 가장 좋은 경우는 시인도 시도 함께 맘에 들 경우가 되겠지. 그러나 정말 시를 좋아하는 독자라면 이미 시인과 시는 별개라는 걸 알고 있을 거다. 한 권의 동인시집에서도 많은 시인과 시를 만났다. 나와 코드가 맞아서 오래 눈이 가는 시도 있었고 그렇지 않은 시도 있었지만 어차피 독자란 다 약간은 변덕스러운 뭔가를 가지고 있음으로 이 또한 독자로서 충실한 내 행보일 뿐이라고 얘기하겠다.

 

어쨌든, 자꾸 변화하고 발전해가는 무엇인가를 바라보는 것은 기쁜 일이다. 발전하는 대상이 어린아이일 수도 있고 화단에 심궈진 나무일 수도 있으며 열심히 공부하는 나 자신일 수도 있다. 다만, 나는 내가 바라보는 모든 것들이 그 발전을 멈추지 않길 그리하여 누군가에겐 그늘이 되어주고 누군가에겐 기쁨이 되어주길 꼭 그리하기를 기원한다.

 

나쿠펜다 아프리카

 

온 나라가 꽁꽁 얼어붙었다. 영하10도니 영하15도니 하는 말을 들어본 적이 언제더라? 내 기억엔 초등학교와 중학교 시절의 겨울엔 종종 라디오를 통해서 들려오는 일기예보에서 이런 말을 들어본 적이 있는 거 같다. 이즈음의 날씨가 왠지 낯이 익은 이유는 어린 시절 방학 때면 어김없이 보내져 방학 내내 보냈던 외갓집의 겨울과 이즈음의 날씨가 닮지 않았던가 싶기 때문이다. 문고리를 잡으면 손이 달라붙던 그 매운 추위를 정말 오래간만에 만났다. 하지만, 이미 너무 세월을 건너뛴 나는 그저 따뜻한 바람과 공기가 그립고 또 그립다.

 

생각해 보니 아프리카는 귀에 익은 대륙이면서도 막상 무엇을 아느냐고 반문해보면 아는 것이라곤 하나도 없는 듯 막막한 곳이다. 지난 학기 아프리카에 대해 아주 조금 공부를 했다.

아프리카의 역사. 지리. 사회. 문화에 대해 공부를 하면서 아프리카에 대해서 객관적으로 공부를 했다고 생각했었다. 하지만 나쿠펜다 아프리카를 읽고 나서 내가 가지고 있는 아프리카에 대한 지식이 다소 편파적이며 고정화 되어 있었다는 걸 깨닫게 되었다. 가벼운 여행기인 이 책은 오히려 그 가볍고 부드러움으로 인해 아프리카를 향해 진심으로 나아갈 수 있는

길을 알려주었고 새로운 각도에서 아프리카를 바라볼 수 있는 기회를 만들어 주었다.

 

얼마 전 제부가 알제리로 파견근무를 나갔다. 지도에서 알려주는 대로라면 알제리는 아프리카 대륙에 위치한 나라다. 하지만 아프리카에 대한 오해 풀고 가기(page13-18)을 읽으면서 알제리가 아프리카 대륙에 있음에도 아프리카로 분류되지 않는다는 것을 알았다.

 

아프리카는 사하라사막 남쪽인 블랙 아프리카를 주로 이야기 한다. 즉 이집트와 모로코처럼 지중해를 끼는 나라들은 비록 아프리카 대륙에 있다 할지라도 민족의 특성과 역사, 문화가 달라 아프리카라고 하지 않는다.(page17)

 

그러고 보니 아프리카에 대해 공부한 내내 아프리카의 밝은 모습보다는 아프리카가 왜 못살게 되었는지 왜 못 살고 있는지에 대해서만 공부를 했던 거 같아 답답했었다. 거기도 사람이 사는 곳인데 왜 희망을 찾아볼 수 없었던 걸까.

 

아프리카는 생각만큼 가난하지 않다. 아프리카는 전통적으로 부족끼리 모여 공동생활을 한다. 마을이 공동으로 음식을 하고 같이 나눠 먹는다. 권력을 잡은 독재들은 이런 아프리카의 전통 때문에 사회주의와 같은 시스템으로 독재 권력을 유지한다. 그러다 보니 절대 빈곤도 있고 지역에 따라 빈부의 격차가 심하다.(중략) 아프리카는 전 세계 마지막으로 남은 블루오션이라고 한다. 아프리카 대륙 전체의 경제 규모는 러시아, 한국, 브라질, 인도보다 높은 세계 10위 경제규모이다. 눈에 보이지 않는 지하경제가 엄청나게 움직이는 곳이다.(중략) 더욱이 아프리카는 인도와 중국이 걸었던 길을 가고 있기 때문에 사하라 남쪽 국가에 수많은 투자가 이루어지고 있다(page 17)

 

암튼, 본문으로 들어가기 전 아프리카에 대한 고정관념을 바로 잡아주는 부분이 있어서 다행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렇지 않았다면 굶주리고 헐벗은 땅을 유유자적 돌아다니는 게 아닌가 싶어 이 한 떼의 부유한 여행객들에게 곱지 않은 시선이 갈 뻔했으니까.

저자는 이미 ‘나는 유럽에서 광을 판다’로 친숙해져 있는 터라 그의 새 책이 은근히 기대도 되고 반갑기도 하다. 단순한 여행 안내서를 넘어 여행지와 관련된 문화와 역사적 지식까지 골고루 알려주려면 저자는 또 얼마나 공부를 해야 했던 것일까. 폭넓으면서도 깊이까지 있는 그의 친절한 안내가 기대되는 이유이기도 하다.

 

나쿠펜다 아프리카에 드러난 여행지는 나미비아, 남아프리카공화국, 보츠와나, 짐바브웨, 탄자니아, 케냐 등이다. 이 여행의 베이스캠프는 남아프리카공화국이었던 듯 아무래도 남아프리카공화국에 많은 부분들이 할애되어 있다. 관광지의 풍물을 소개한 글과 사진도 재미있지만 공항, 식당, 이동 중의 소소한 이야기들이 마치 실제의 아프리카를 위에서 내려다보고 있는 느낌을 줄 만큼 생생하다. 가끔씩 까탈스런 고객 때문에 겪는 고단함을 슬쩍 내보일 때 마다 그가 가이드로서의 고단함뿐만 아니라 자긍심까지도 즐기고 좋아하는 진짜 프로라는 걸 알 수 있다. 본문에서 아주 잠깐씩 지나갔지만 여행 고객 중 한 사람인 ‘의사선생님’께서 이 책을 읽는다면 고개를 갸웃하지 않을까라고 상상해보는 것. 살아있는 책을 만나는 즐거움에 한 가지 더 추가겠지.

 

아프리카 원주민이 아닌 컬러드라고 불리는 유색인종이다. 컬러드는 흑인도, 백인도, 황인종도 아니다. 컬러드는 네덜란드 동인도 회사가 케이프타운에 도시를 만든 이후 네덜란드 이주민과 원주민 사이에 태어난 사람들이다. 처음엔 백인과 같은 대우를 받았지만, 영국이 지배하고 나서 1백년 뒤 원주민보다 약간 나은 대접을 받는 처지로 전락했고 인종 분리 정책인 아파르트헤이트 시절에도 백인들과 따로 분리해서 살았다.

케이프타운의 컬러드는 대부분 모여서 살고 있다. 재미있는 것은 자신이 컬러드임을 알리려고 집들의 외부를 화려한 색채로 칠해 놓았다. 이런 모습은 앞으로 방문할 나미비아에서도 같다.(page69-70)

 

한적하고 여유로운 여행지를 돌아보는 것이 주된 이동경로였던 듯 책 속에 등장하는 풍경사진이나 설명은 유럽의 어느 휴양지 같은 세련된 숙박시설의 모습과 대단히 아프리카적인 토속적 풍경이 더해져 신비감마저 든다. 빅토리아 폭포의 전경이 그렇고 붉은 사막의 사진들이 아프리카에 가보고 싶다는 생각을 간절하게 만들었다.

하지만, 저자는 자칫 아프리카라며? 라고 읽는 이들이 궁금해 할 아프리카의 실제생활도 함께 보여줌으로써 리얼리티를 더했다고 할까. 오하네스버그 남서쪽에 있는 소웨토(SOWETO-South West Township)에 대한 설명이다.

 

금광과 다이아몬드 광산을 손에 넣고 권력을 잡은 백인들은 흑인들과 섞여 살고 싶지 않았다. 그래서 백인들은 요하네스버그 남서쪽에 흑인 밀집지역을 세웠고, 금광에서 일하는 싸구려 노동자인 흑인을 동물보다 못한 취급을 하면서 살게 했다. (중략) 흑인정부는 ‘쉐크’라 부르는 양철집이 밀집한 빈민촌에 전기와 물을 제공해왔고 최근에 이동식 화장실을 설치해 놓았다. 하지만 한눈에 봐도 위생이 엉망이고 불결하기 짝이 없었다. 사람이 살 수 있는 곳이라 믿기 어려웠다.(page166)

 

바오밥 나무, 탄자니아의 커피 무엇보다도 누우 떼에 대한 이야기 등 아프리카의 낭만을 떠올리게 하는 많은 이야기들이 스르르 물 흐르듯 흘러간다. 그 흐름에 맞춰 흘러가다보니 아프리카의 몇 나라를 돌았고 어느새 인천공항에 도착해있는 나를 만나게 된다. 아프리카 여행 계획이 있는 분들이라면 꼭 한 번 읽으면 좋을 것 같다. 이보다 더 입체적인 가이드북이 있으려고.

 

 

 

 

한국의 워킹푸어 / 프레시안 특별 취재팀

 

신자유의적 경제질서는 기업의 자유를 극대화하는 동시에 기업 간 무한 경재을 유발한다. 이 과정에서 기업은 생산 비용을 줄이고 이윤을 극대화하기 위해 노동 비용을 가장 먼저, 가장 과격하게 줄인다. 비정규직의 급증이그 결과다. 언제든 잘릴 수 있다는 공포가 일상이 된다는 얘기다.(page20)

 

졸업을 목전에 두고 있어서인지 요즘 내가 가장 언급하는 단어들은 대부분이 졸업과 관련이 있는 낱말들인 거 같다. 이 책의 제목을 읽는 순간에도 가장 먼저 떠오른 것은 내 졸업논문의 내용이었으니 무슨 편집증 환자도 아니건만 이 연상 작용 증상이 아무래도 한동안은 지속 되리라는 예감을 했다.

 

몇 년째 한 달에 한 번씩 얼굴을 보는 모임이 있다. 나만 빼면 아마도 대부분의 수준이 중산층 이상이리라는 예감을 할 만큼 유복해 보이는 여사님들의 모임이다. 내가 거기 왜 끼었는지는 중요하지 않고. 어느 날 모임의 주제는 ‘부’에 대한 거였다. 한 회원이 못 사는 사람은 다 못 사는 이유가 있다고 말 했다.

 

과거에도 가난한 이들의 대다수는 일하는 이들이었다. 이른 새벽부터 폐지를 주우러 다니는 노인들, 학비를 벌기 위해 신문배달을 하는 청소년들, 길거리 한 구석에서 좌판을 깔고 채소를 파는 아주머니들......“가난=게으름=무능력‘이라는 통념은 입증되기 힘든 일종의 지매 이데올로기였다. 노동자의 임금을 최대한 낮춰 이윤을 극대화하는 자본주의 사회에서 ’가난‘과 ’일‘은 전부터 비례하는 변수는 아니었다. (page18 여는 글-워킹푸어와 경제적 공포 중)

 

사실, 우리나라의 빈곤층들은 대부분 너무나 열심히 일하고 건실하다. 그이의 말처럼 게으르거나 건실하지 못 해서가 아니다. ‘한국사회문제’중 우리나라의 빈곤에 대해 공부하면서 우리나라의 빈곤층들이 얼마나 열심히 일하고 열심히 사는지 확실히 깨닫고 난 후였는데 그이한테 잘 못 알고 있는 거라고 반박하지 못 했다. 그러곤 며칠을 바보 같았던 내 주변머리를 자책해가면서 그저 자기의 관점에서 말을 던졌을 뿐인 그이를 미워했을 뿐이었다. 자유주제인 졸업 논문의 주제를 굳이 [신자유주의와 복지정책]으로 정했던 것은 지난 4 년 동안 매 학기마다 한 과목씩은 경제관련 교과를 배우며 경제에 대해 아주 조금 알게 되었고 핑계 김에 경제관련 제법 많은 경제 분야의 책도 읽은 이유도 있지만 내가 몸소 느끼고 있는 ‘빈곤’의 이유와 실체를 조금이라도 확실히 알고 싶었던 때문이었다.

 

나름대로는 열심히 자료를 찾고 심혈을 기울여서 논문을 썼지만 실제적인 자료의 활용이 부족했다는 생각과 과연 빈곤에 대해서 얼마나 체계적으로 정리를 했는지에 대해서 늘 부족하다는 생각을 하면서 논문을 마무리 했었다. 인터넷에 수 없이 많은 자료가 떠돌아다니지만 실제적인 수치를 논하는 자료에 접근하는 것은 어렵거나 또는 자료를 찾을 수 없었기 때문이다. 논문을 마무리하기 전 이 책을 만났더라면 조금 더 알찬 글을 쓸 수 있지 않았을까 아쉬워하며 이 책을 읽었다. 그만큼 우리 사회의 불합리를 정확하게 그리고 아프도록 솔직하게 집어내고 있다는 소리다.

 

이 책을 읽으면서 ‘맞아 맞아’ 무릎을 치는 구절이 한 두 부분이 아니었다. 제16장 ‘홈플러스와 맞서 나자빠지다’의 그 슈퍼는 바로 내가 종일 근무하는 곳과 길 하나 건너에 있다. 베란다에 나가 내려다보면 빤히 보이는 그 슈퍼. 바로 슈퍼 건너의 대형음식점 아래에 ‘홈플러스 익스프레스’가 들어온다고 한동안은 시위를 하기도 하곤 했었다. 책에 있는 대로 어느 날 갑자기 슈퍼와 길 건너에 LG편의점이 문을 열어서 슈퍼가 타격이 있겠다싶었는데 내가 알고 있던 것보다 훨씬 심각한 이야기들을 만나니 그저 길을 건너지 않아 편하다는 이유로 편의점을 들락거린 내가 부끄럽기도 했다.

 

한국 교육은 철저하게 ‘앞에서 5등’을 중심으로 움직이고 있고, 이것은 외고와 특목고만이 아니라 공교육의 일반 고등학교에서도 벌어지는 일이다. 그렇다면 우리 사회가 비단 교육 분야에서만 뒤에서 5등을 버리고 갈까?

지난 5년 동안, 한국 사회는 어느덧 ‘앞에서 5등’만을 데리고 가는 사회가 된 것 같다. 문제는 앞에서 5등만을 쳐다보는 사이에 한국은 아주 균등하게 뒤에서 5등으로 가득 찬 국민경제를 만들고 말았다. 신문과 방송에는 ‘앞에서 5등들’만이 한국에 사는 것같이 그려대지만, 반에서 35명의 삶은 아주 팍팍해지는 중이다. (page 7 우석훈의 추천사 중)

 

위의 부분이 나는 아주 마음에 남는다. 정말로 정확하고 명확한 답안이라는 생각을 했다. 왜냐고? 나 또한 ‘앞에서 5등’에 들 수 없는 35명 중 한 사람이기 때문이다.

‘학벌이 결정하는 직업의 귀천’(page 131-제3부 신자유주의, 신식민주의-부리내린 신자유주의와 주변부 노동자 제7장)을 읽으면서는 당장 지방대생인 아들의 미래가 걱정되어 한숨이 나온다. 나름대로는 경쟁력 있는 학과생이라고 자부하고 있지만 아들이라고 해서 안심을 할 처지는 아니라는 게 냉정한 현실임을 새삼 깨닫는다.

 

영화 스태프, 드라마 보조 작가, 비정규직 학원 코치, 비주류 언론 기자들의 이야기를 다룬 제2부 밥 대신 꿈-문화산업의 성장과 변종 노동착취(page56-)부분은 낯설면서도 충격적이었다. 화려해 보이는 이들 직업의 이면이 그토록 어둡고 눅눅한 줄을 아직 모르고 있었기 때문이다. 대통령은 구직자들의 ‘눈높이’를 운운했다지만 이 책을 읽다보면 그 눈높이라는 것이 밥벌이는 해야 하는 이 땅의 많은 구직자들에게 얼마나 기가 막히고 잔혹한 커트라인인지 알고는 있을까 라는 생각이 든다.

언젠가 국정에 대해 소개하는 모 케이블 텔레비전에서 젊은 시절 대통령의 고생담을 본 적이 있다. 청년은 새벽부터 서울 시내의 한 대형시장에서 아르바이트를 하던 첫새벽에 도심에서 멀리 떨어진 변두리에서 출근하는 아주머니들이 버스를 갈아탈 때마다 버스비가 들어가는 것이 아까워 걸어오더라는 것이었다. 그래서 버스카드와 환승제를 만들었다고 했던가? 대통령의 경험담을 조금 사실과 다르게 기억에 남아있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그 얘기를 들으면서 대통령도 마음이 따듯한 사람이었구나 라는 생각에 가슴이 뭉클했던 기억만큼은 아직도 가지고 있다.

 

사실, 이 책의 내용들은 언제부터인지 우리가 매우 현실적으로 인지하는 문제들이다. 그런데 왜 낯설었던 거지? 다만, 우리 현실의 팍팍함을 인정하고 싶지 않아서 모른 척 하는 것은 아닐까? 나날이 삶은 팍팍해지고 여유가 없어진다. 비단 비정규직들만의 문제라고 하기엔 이 사회를 구성하고 있는 인원 중에 비정규직의 비중이 너무 높지 않은가? 아니, 근본적으로 이 사회의 불평등이 너무 극대화 되어 있는 것은 아닐까? 가난은 결코 게으름의 결과가 아니다. ‘앞에서 5등’이 빠진 대부분의 남은 35명들은 다른 어느 시절보다 더 열심히 살고 있는데 말이다.

머리가 아파서 사회 돌아가는 데 관심이 없던 사람들도 한 번쯤 읽었으면 좋겠다. 최소한 이 사회 속에서 지금의 내 위치가 어디쯤인지는 확실히 알 수 있을 테니까 말이다. 아직도 당신이 ‘앞에서 5등’에 들어 있는 거라고 착각하고 있다면 정신을 차리게 될 테니까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