철학적 사고로 배우는 과학의 원리

 

 

우선 저자의 이야기부터 해야겠다. 지은이 야무차에 대한 소개가 정말로 재미있다. 답답한 인생이 견딜 수 없어 일확천금을 노리고 저축한 돈 전부를 주식에 투자했다가 큰 손실을 입었단다. 벤처기업을 창업하고 적자를 내고 흑자로 돌아섰지만 계획 없이 사원을 늘려 다시 적자로 돌아섰다는 것이 야무차라는 사람에 대한 호기심을 잔뜩 생기게 한다. 일상적인 사람이 철학이야기를 하는가싶어 반갑다가도 저 정도로 동서남북 뜀박질을 하려면 보통사람은 아닐 거라는 고정관념적 수긍. 그 수긍은 저자로부터의 거리를 멀리 떨어뜨려놓는다. 어쨌든, 철학이 좋아서 회사까지 그만둔 사람이라니 과학을 이해하는 그의 철학적 사고가 당연히 궁금해진다. 더군다나 철학적 사고로 과학의 원리를 알아볼 수 있다니 대단한 책이라는 생각이 든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너무 심오해서 어렵다는 철학과 역시 어렵다고 고개를 내두르는 과학의 만남이라니.

 

아인슈타인의 상대성이론이라는 것을 처음 들었을 때 ‘상대성’이라는 말 때문에 쉬운 이론일 거라고 나름대로 미리 생각했던 기억이 난다. 하지만 막상 공부를 하면서 상대성이론을 조금 더 자세하게 배우게 되니 학창시절에도 과학이라면 머리를 싸매곤 하던 기억이 새록새록 되살아나는 거였다. 그 후 어찌 어려운 과학에 조금이라도 가까이 가볼까 하는 마음으로 과학전문 잡지도 구독하고 자연과학 분야의 책들도 열심히 읽고 있다. 그럼에도 과학은 여전히 어려운 학문분야이긴 하다.

 

당연히 아인슈타인의 상대성이론의 철학적 이해도 본문에서 만날 수 있다. 상대성이론은 마이컬슨과 몰리의 실험 결과를 설명하기 위한 새로운 이론이었다. ‘광속불변의 원리’로 알려진 마이컬슨과 몰리의 실험은 지상의 어느 방향에서 관측해도 빛의 속도는 일정하다는 결과를 도출해 내었다. 그러나 아인슈타인은 ‘관측자마다 시간과 공간의 정의가 다르다’라는 법칙을 도출해내었다. 즉, 지은이는 마이컬슨과 몰리의 실험 결과에서 나타난 ‘모순’을 해결하는 과정에서 ‘상대성이론’이 태어난 것이라고 한다. 카오스 이론은 상대성이론의 바로 다음 장에 나온다. 슈뢰딩거의 고양이도 만나볼 수 있고 양자역학에 대한 언급도 물론 있다. 150페이지부터 168페이지까지 설명된 ‘다세계 해석’은 특히 재미있는 부분이다. 1957년 프리스턴 대학 대학원생이었던 휴 에버렛은 ‘슈뢰딩거의 고양이’ 문제에서 획기적인 아이디어를 제시한다. ‘전자도 고양이도 모든 마이크로 물질은 가능성인 채로 서로 겹쳐져 다중으로 존재하는 것이 양자역학의 결론이라면 고양이를 관측하고 있는 인간 역시 같은 마이크로 물질로 만들어져 있는데 왜 양자역할의 결론을 인간에게는 적용하지 않는가.’로부터 시작된 해석을 ‘다세계 해석’이라고 부른다. 요컨대 다세계 해석이란

 

‘한 개의 전자가 이쪽에도 있고 저쪽에도 있다는 느낌으로 다중으로 존재할 수 있다면 고양이도 다중으로 존재할 것이다’

‘그렇다면 고양이를 보고 있는 나(인간) 역시 다중으로 존재할 것이다.’

‘이 말은 지금 여기 있는 나 외에도 많은 내가 존재하고 각각의 나의 세계가 존재한다는 말이다.’(page154)

 

하지만, 이 해석은 받아들여지지 않고 있다고 한다. 솔직히 난 과학을 전공하지 않은 사람이라 이해하기 어렵지만 이 다세계 해석이 틀리는 이유에 많은 부분을 할애하고 있는 걸 읽어보면 납득이 간다. 다세계 해석을 무조건 SF나 난센스라고 비판하는 것에 대해 주의를 주는 부분도 마음에 든다.

 

다세계 해석은 결코 억지로 다세계를 들고 나온 것이 아니다. 이것은 코펜하겐 해석을 관측자에게도 제대로 적용해 논리적으로 생각하면 다세계라는 존재를 이끌어낼 수 있다는 이야기이다. 단순히 ‘SF다! 난센스다! 말도 안 된다!고 부정하는 것은 심리적인 저항감을 표출하는 것뿐이며 아무 근거도 없는 비판을 하는 것이다. (중략) 그것은 단지 당신이 고정관념에 사로잡혀 있는 것뿐으로 가령 지구가 둥글다는 사실을 듣고 있을 수 없다고 비웃었던 사람들과 똑같은 것이다.(page157)

 

철학이나 과학과 같은 학문의 세계에서만 근거가 없는 비판이 위험한 것은 아닐 것이다. 우리의 일상 속에서도 고정관념에 사로잡혀 다른 사람의 사고와 행동을 무조건 비웃고 본 일은 없었는지 다시 한 번 반성해보는 계기도 되었다.

 

초등학교부터 고등학교까지 아마도 과학시간에 배웠을 이런저런 법칙들 원리들이 골고루골고루 풀이되어 있다. 마치 새로운 것을 배운 것처럼 아하~하고 고개를 끄덕이다가 혼자서 흐흐흐 웃어도 보았다. 책에서 다루고 있는 과학의 원리들이 이미 쉬운 부분은 아니니 이 책의 풀이 역시도 쉽지는 않다. 그렇지만 그동안 어려웠던 원리들이 단답형문제의 해답처럼 간단명료하게 머릿속에 들어오는 것이 이 책의 장점이다. 뒷부분의 귀납주의와 반증주의에 대한 부분은 과학에 대한 철학적 접근에 대한 방법을 좀 더 정연하게 다듬어 준 것 같아 특히 재미있게 읽었다.

 

이 책은 저자가 관리인을 고용한 사이트 ‘철학적인 무엇, 혹은 과학이거나’에 연재한 칼럼을 고쳐 쓰고 정리한 것이라고 한다. 그런 이유 때문일까. 간단명료함이 때때로 너무 단순하거나 너무 설명이 짧아서 오히려 어려워지는 우를 범하고 있는 몇 부분은 조금 아쉬웠고 쉽고 편하게 번역을 했음에도 불구하고 몇 군데 일본어만이 가지는 묘한 어투가 그대로 묻어있었던 것도 아쉬운 점 중에 하나였다.

 

이 책을 읽다가 아들과 도서관에서 공부를 하던 때가 문득 생각났다. 양자역학이 아무리 들여다봐도 너무 어려웠다. 메모지에 문제를 적어서 아들한테 주었더니 슬쩍 답장이 왔다. 메모지엔 ‘엄마, 나 문과에요.’라고 적혀 있어서 피식 웃었던 기억이 어제 같다. 그러고 보니 아들한테 과학 분야의 책은 많이 못 읽혔던 것이 새삼 후회가 된다. 금방 이해는 안 되지만 과학을 조금 더 쉽게 이해해보고 싶은 이들에게 권하고 싶다.

 

중국 도대체 왜 이러나

 

나는 중국에 대해서 관심이 많다. 중국이 넓은 지형과 다양한 민족, 다양한 문화를 가진 때문이기도 하지만 ‘티벳에서의 7년’과 ‘리틀 부다’라는 영화를 보던 때부터 중국이라는 나라의 현재 모습이 궁금했다. 또 한 가지 중국에 대한 관심은 외국어에 대한 나의 관심에서 비롯된 것이기도 하다. 문화교양학과에서 공부하는 내내 다음 공부는 외국어를 한 가지 익히는 것으로 대략의 계획을 세워두고 있었다. 다만, 기왕이면 지금 내 직업에도 도움이 되고 수익 창출에서도 도움이 되는 외국어를 선택해야겠다는 생각에 줄곧 영어와 중국어를 가늠하고 있었다. 영어는 전 세계에서 가장 널리 쓰이는 언어였지만 나름대로 생각할 땐 장차 중국의 영향력이 커지면 중국어의 수요도 영어만큼 되지 않을까 라는 생각을 했기 때문이고 중국어 학습이 수익으로도 연결되지 않을까라는 생각을 했었다. 하지만 막상 결정의 순간 4년 내내 지속적으로 관심을 가지고 있던 중국어를 뒤로 미루고 영어를 공부하기로 결정했다. 중국의 힘이 커진 것은 사실이지만 그 힘이 지속될까라는 물음에 선뜻 대답이 나오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일단, 이 책을 읽으면서 내 결정이 아주 틀린 것은 아니리라는 믿음을 가지게 되긴 했다.

 

예일대 천즈우 교수는 중국 경제가 계속 발전하기 위한 조건을 다음과 같이 말하고 있다.

 

첫째, 정치권력에 대한 견제와 균형이 필요합니다. 많은 사람이 정치권력이 경제와 무관하다고 하지만 그렇지 않습니다. 둘째, 민간부문의 사유재산을 정부 기관으로부터 확실히 보호해야 합니다. 셋째, 정부가 보유한 국영기업과 국영기업의 보유자산을 민영화해야 합니다.

(page236)

 

천즈우 교수의 말에 의하면 향후 4-5년 내에 중국경제는 심각한 위기에 빠질 것이지만 중국정부가 그 충격을 분산시켜 소프트랜딩(연착륙)을 유도하기엔 어려움이 따를 것인데 중국 정부는 이 파국을 막기 위한 개혁을 위한 정치적인 의지가 없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그는 현 체제 속에서 이득을 얻는 이익집단이 존재하기 때문에 중국 정부가 가까운 미래에 자발적으로 개혁을 할 가능성이 아주 낮다고 보면서 ‘중국식 발전모델’에 대한 부정적인 결론을 내놓고 있다.

 

물론, 천즈우 교수의 이야기만이 100% 맞는다고는 할 수 없겠지만 사실, 언론이나 미디어에서 만나는 중국은 너무나 다양한 얼굴을 하고 있어서 얼른 이해하기가 쉽지 않다. 우리가 만나볼 수 있는 매체만으로 볼 땐 중국은 사회주의 국가이지만 대부분은 그 나라가 사회주의 국가라는 것을 잊을 만큼 자본주의화 된 모습들이 더 익숙하다. 그러다가도 노벨 평화상 수상자에 대한 탄압이나 한반도에서 일어나는 상황에 대해 보여주는 북한과 우리나라에 대한 각기 다른 태도를 보면서 비로소 중국이 사회주의 국가임을 상기하곤 한다. 이렇게 대부분은 그들의 국가체제를 잊게 하는 것 그리고 민감하거나 결정적인 사안에서 자신들의 이념을 확실하게 드러냄으로써 그들의 체제를 공고히 하는 것이야말로 점점 더 중국이라는 나라의 실체를 파악하기 어렵게 만드는 요인이라고 생각한다.

 

이 책을 읽다보면 언뜻 중국이라는 나라에 대해 우리가 너무 과대평가 하고 있었나? 라는 의구심을 가지게 한다. 하지만, 중국이라는 나라는 미국과 북한 그리고 우리나라와의 관계를 되짚어볼 때 절대로 만만하지 않는 상대임에는 틀림없다.

그동안 나는 나름대로 중국에 대한 중국을 바라보는 여러 시선들의 책을 읽었고 중국에 대해 객관적인 시선을 공부하고 있다고 생각했다. 그런 면에서 이 책은 대단히 우리나라 적 관점 아니, 주관적 또는 매우 보수적 시각에서의 서술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시향-2010년 겨울호

 
어머니 나는 물고기였느니

 
식탁머리에서

어머니가 살집을 다 발라내시면 드러나는

잃어버렸던 앙상한 열쇠였으니

 
물속에서 온몸을 비틀어

물의 금고를 열었던

열쇠의 형상을 한 물고기였으니

 

금고 속엔 물거품과 백지만 가득했으니

 

몸속에 꽁꽁 숨겨온 자물통 같은

어머니 자궁 속에 꽂혀

한 늙은 극작가가 불행 속에 쓴

희극을 첫 막을 열었던 열쇠였으니

 

그리하여 여기 발밑 버려진

오래된 극장의 열쇠였으니

-김중일 ‘물고기’전문 ‘시로 여는 세상’게제-

 

 

나는 나를 약간의 활자중독증 증상이 있는 사람이라고 생각한다. 활자로 된 것은 현관문에 부쳐놓고 간 광고지부터 하다못해 샴푸나 세제 병에 인쇄 된 설명서까지 그냥 지나치지 않는다. 다달이 집에 배달되는 잡지들도 구석구석 광고까지 거의 다 읽는 것도 모자라 지나간 잡지도 가끔 꺼내서 새삼스럽게 감탄을 하면서 읽는다. 그러니 정기구독 하는 문학잡지를 받으면 세세하게 읽어보는 게 이젠 습관이 되었다.

 

계간지로 발행하는 시향은 국내 문학잡지에 실린 시들 중 좋은 시의 재수록이 편집의 특징이다. 많은 문학잡지에 실린 많은 시들을 읽어보고 그 중 시를 엄선한다니 옥석을 가려내는 편집부의 역량이 늘 놀랍고 시향에 개재되는 시와 시인들이 부럽기도 했었다. 시향 겨울 호에서 마음에 쏙 들어오는 시를 만났다. 김중일 시인의 ‘물고기’다. 이 시를 읽으며 내가 쓰고 싶어 하는 시를 확인한다.

 

여러 모습, 여러 향기를 지닌 시를 만나는 것도 잡지를 읽는 즐거움 중에 하나다. 잡지라는 것이 편집 의도가 어느 쪽인가에 따라 독자의 부류도 잡지의 내용도 결정이 되므로 아무래도 편집자의 의중이야말로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시를 아무리 좋아하는 독자라 해도 시인들의 시집을 모두 읽을 수는 없다. 그런 연유로 문학잡지를 구독한다. 하지만, 문학잡지에 실리는 시들이 전부 독자의 취향에 맞을 수는 없다. 앞서 이야기한 것처럼 편집부의 의도와 부합하는 시들이 실릴 것이기 때문에 잡지 선택에서부터 독자들은 이미 한 번 걸러진 시를 만날 수밖에 없다. 독자의 입장에서 이미 한 번 걸러졌고 그 중에 다시 또 정재 된 시를 만난다는 것은 분명 좋은 일임에 분명하다. 하지만, 어느 잡지든 정기구독을 하다보면 같은 패턴으로 같은 맥락으로 되풀이 되는 편집상의 오류를 발견하게 될 때가 있다.

편집의 수준 문제가 아닌 편집의 시선 문제라고나 할까. 한 쪽으로 치우침 현상을 만나게 될 때 독자로서 조금 아쉬움과 함께 맥이 빠진다고 하면 까탈스러운 독자라고 눈총을 받으려는지 모르겠지만 그런 독자들이야말로 구독하는 잡지에 대한 무한 애정을 가진 이들이라고 나는 생각한다. 그런즉, 나도 무한애정을 논할 자격이 있는 독자 중 한 사람이라고 감히 자부할 수 있다는 소리겠다.

 

기회가 있을 때마다 시에 매진할 것을 권유하시던 분이 계셨다. 문재(文才)는 있는데...라고 말끝을 흐리셨던 야단치지는 않으셨지만 반짝이는 게 모두 금은 아니라는 뼈아픈 충고를 서슴지 않으셨던 분. 바로 오남구 시인이시다. 개구쟁이처럼 반짝이던 눈과 웃음 머금은 얼굴이 아직도 기억에 선연한데 선생님께서는 작년에 타계를 하셨다. 너무 이른 작별이라 두고두고 마음이 아플 것 같다. 데면데면한 이 몹쓸 성질 때문에 어쩌다 뵐 때도 살갑지 못 한 나에게 시 공부를 하러 나오라고 늘 채근하셨지만 생업에 매달려 있느라 서울까지 나들이 할 엄두를 낼 수 없었다. 덕분에 한 번도 선생님 말씀에 따르지 못 했던 불량 학생이었으므로 더 오래도록 기억 속에 선생님이 계실 것 같다는 생각을 한다. 선생님이 안 계셔도 여전히 건재하고 나날이 역량이 커 가는 ‘시향’을 만날 수 있어서 감사하다. 매호 시향에 개제된 시들을 읽으며 내 시의 그릇을 가늠한다. 그리고 다시 한 번 무뎌진 내 칼날을 쓰다듬어 본다. 이런저런 잡지에 실린 시들이 맘에 안 든다고? 그렇담 그 시들을 숫돌삼아 내 시의 날을 세우면 된다. 그럴 수만 있다면 그 많은 시들 중 좋지 않은 시가 한 수라도 있으려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