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인생의 멘토 붓다

 

나는 할머니를 싫어한 쌀쌀맞고 못된 손녀딸년이었다. 넉넉하진 않지만 부모님과 동생들과 나름대로 평화롭던 시간이 어느 날 할머니께서 시골살림을 정리하고 우리 집과 합치면서 산산조각이 났다. 엄마는 가계에 보탬이 되고자 힘든 직장생활을 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아들을 못 낳았다는 이유로 자주 할머니께 구박을 당했고 집이 시끄러워지곤 했다. 거기다가 할머니는 새벽이면 일찍 일어나 정갈하게 몸단장을 하시곤 칠성님께 기도를 올리곤 했는데 집이 시끄러워지는 것도 할머니의 그 이상한 치성도 나는 싫었다. 할머니는 쌀쌀맞은 년이라고 나를 나무라셨지만 어린 시절부터 고등학교시절까지 줄곧 내 삶에 개입되어 있던 기독교적 사고방식과 심하게 충돌하던 할머니의 종교를 이해하기 까진 그 후로도 너무 오랜 시간이 필요했다. 내가 일찍 불교를 알았더라면 할머니를 무조건 싫어하는 바보 같은 짓은 하지 않았을 거라는 생각을 가끔 한다.

 

유, 청소년기의 대부분을 기독교적 사고방식 속에서 살았던 내가 어떤 계기로 불교를 알게 되었는지는 잘 모르겠다. 다만, 불교와 처음 인연을 맺을 때부터 세속의 샤머니즘과 불교는 완전히 다르다는 것, 불교가 청정한 종교라는 것에 대해서는 나름대로 확신을 가지고 있었는데 이런 믿음은 오늘까지도 여전히 내가 불교를 좋아하는 이유이다.

 

사캬무니 붓다께서 세상에 출현하실 무렵에는 브라만의 오랜 전통을 깨고 새로운 사상이 움트는 격변기로 다채로운 사상과 철학이 난무하던 시기였다. 그러나 이후에 등장한 불교는 이러한 모든 사상을 초월하여 보편적 진리를 내세우며 교세를 넓혀 갔다. 붓다께서는 쾌락이나 고행의 어느 한 쪽에 치우치지 않는 균형 있는 생각으로 합리적이고 보편적인 진리를 설하셨다.(page136) 불교에서 설하는 선정의 체계는 대부분 불교 이전부터 존재하던 것을 체계화시킨 것이다.(page170) 붓다의 깨달음은 새벽 별이 빛나는 순간 갑자기 얻어진 것이 아니라 오랜 준비 기간이 있었다.(page186) 붓다께서는 사후의 해탈이 아니라 지금 이 세계에서의 해탈을 원했다.(page191)

 

‘보편적인 진리와 존재하는 것들의 체계화’라는 부분에 이르면 불교가 어렵고 형이상학적인 종교만은 아닐 거라는 생각이 든다. 사실 가끔 종교를 써넣어야 할 때 불교라고 적기는 하지만 내가 과연 불교를 종교로 받아들이고 있는 것인지 당혹스러울 때가 있다. 왜냐하면 불교를 신앙의 대상으로 받아들이기 보다는 철학의 대상으로서 더 많이 탐구하는 게 아닐까 하는 생각이 자주 들기 때문인데 실제로 나는 절에는 잘 다니지 않는다. 그러니 법회니 불공이니 하는 것들은 잘 모른다는 소리다. 그저 집에서 경을 읽고 불교관련 서적들을 읽는 것이 좋을 뿐이다.

 

사람에 따라 그 사람이 받아들일 만한 가르침과 적절한 조언을 해 주신 붓다의 멘토링 기법(page251)

 

심하게 건방진 소리지만 이 책을 읽고 있으면 불교를 신앙으로 받드는 것과는 상관없이 부처의 가르침대로만 살아도 좋겠다는 생각이 든다. 불교를 쉽게 그리고 편안하게 받아들일 수 있도록 이끌어 주는 것이 이 책의 미덕이다. ‘그 사람이 받아들일 만한’가르침이라는 말을 조금 더 일찍 만났더라면 하는 아쉬움이 있다. 따라올 마음의 준비가 안 된, 또는 따라올 능력이 안 되는 사람을 억지로 내 보폭에 맞추느라 애만 쓰다가 결국 사람을 잃어버리는 일을 지금 겪고 있기 때문이다. 그 사람의 그릇을 키워보고자 하는 욕심을 버렸어야 하는 건데 그 또한 이 책을 조금 더 일찍 만났더라면 하고 아쉬움으로 남는다.

 

참된 믿음은 매일매일 자신의 죄과를 참회하는 데서부터 시작되어야 한다. 오염된 항아리에 맑은 물을 자꾸 부어 깨끗하게 하듯이 참회를 통하여 자신의 오염된 항아리를 세척해야 한다.(page105)

 

내가 특정한 종교적 성향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특별하게 종교생활을 하지 않는 이유가 있다. 종교가 너무 세속화 되어 있기 때문이다. 우리나라에 들어와 있는 또는 전래되어온 모든 종교의 궁극적 목적이 언제부턴가 ‘복’을 바라는 것으로 바뀌었다는 생각이 든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복’이라는 단어는 결국 ‘돈’으로 귀결되기 마련이다. 열심히 교회에 가고 불공을 드리고 미사를 보는 행위들이 언제부턴가 ‘돈’을 많이 벌게 해주십사 하는 것으로 바뀌었다. 물론, 마음공부를 하고 수련을 하는 종교인들도 적지 않으리라고 믿는다. 그러나, 곁으로 들어난 종교의 세속화는 점점 더 그 정도가 심해지고 있는 게 사실이지 않은가. 위의 인용글은 정말로 마음에 와 닿는다. 참된 종교 생활의 시작과 끝이 과연 어디인지를 짧지만 명료하게 알려준다.

 

붓다께서는 세속과의 논쟁을 멀리하면서도 상식에 합치하는 것은 수긍하는 유화적이고 합리적인 태도를 보이셨다. 이는 다른 종교인들이 자기의 교리에 위배되는 것에 대해서는 배타적이고 독선적인 경향을 보이는 것과 대조된다. 이것도 불교의 위대한 점 가운데 하나(page411)이다.

붓다께서는 가르침을 베푸는 데 있어서 상대와 논쟁을 하지 않고, 상대방의 믿음체계를 존중해 주었다. 또한 사회의 관습이나 법도도 인정하였다.(page428)

 

받아들이기 나름이겠지만 책 속에서 이런 구절을 만나면 마음 한 쪽에 쏴아 하고 어디선가 시원한 바람이 불어 들어오는 느낌이다. 이즈음 회자되는 종교 갈등을 되짚어 보게 된다. 이런 붓다의 가르침을 잊지 않는다면 굳이 종교 갈등 같은 것은 생기지 않을 것 같은데 참으로 안타깝다.

도둑질이 꼭 남의 물건을 직접 훔치는 것만 말하는 것은 아니다. 국가의 녹을 먹으면서 의무를 소홀히 하는 것, 회사의 기물을 함부로 쓰는 것, 터무니없이 바가지를 씌우는 것, 불법적으로 허가를 내 주고 또 그것을 이용해서 사욕을 채우는 것도 다 도둑질이다. 우리나라에는 이런 종류의 도둑들이 물건을 훔치는 도둑들보다 훨씬 더 많고, 나라를 무너뜨릴 만큼 그 피해도 크다. 한 나라의 경제가 어려워지는 것도 이러한 도둑들을 심각하게 생각하지 않는 사회 구성원 모두의 공업에서 비롯되는 경우가 많다.(page77)

 

오래간만에 쉽게 그리고 삶 속으로 쏙 들어오는 종교서적을 만났다는 느낌이다. 그러고 보니 오랜 시간 깨닫지 못 하는 사이 내 삶의 멘토 역시 부처이셨다는 걸 비로소 알겠다. 새록새록 향기가 돋아나는 책과의 만남 뒤 오늘은 어디 가까운 절에라도 잠시 다녀오고 싶다.

역사 속에 살아 숨 쉬는 죽음이야기/ 리수충(李書崇)

 

유난히 추웠던 겨울 하루였다. 초등학교 다니던 시절의 학익동은 아마 인천서 가장 가난한 지역 중 하나였을 거다. 매일 시뻘겋거나 시퍼런 물을 흘려보내는 방직공장과 직물공장이 있었고 밤이면 공기는 늘 뭔가 묵직한 무게를 지닌 냄새를 가득 품고 다니는 동네였다. 대부분의 아이들은 학교에 가려면 색시 촌이라고 불리던 사창가 한 가운데로 난 지름길 이용하곤 했다. 아마 대부분의 어른들도 아이들에게 먼 거리를 빙 돌아다니라고 권하진 않았다는 생각이 든다. 어쨌든, 그 겨울아침. 뜻하지 않게 나는 생애 처음으로 죽음의 실체와 마주쳤다. 한 대학생이 사창가의 아가씨를 사랑했던가보았다. 이루지 못 할 사랑에 그만 분신자살을 했고 어느 담벼락 아래 거죽으로 덮여 미처 수습되지 못 한 채 하늘을 향해 누운 시신을 보게 된 것이었는데 거죽 밖으로 나와 있던 검게 그을린 한 쪽 다리에 대한 충격이 어찌나 컸던지 한동안 똑바로 누워서 잠들지 못 했었다. 어린 마음에 확 스며들어온 죽음이란 사람은 죽으면 뻣뻣해진다는 것이었고 보드라운 살이 뻣뻣해질 수 있다고 생각하는 것만으로도 죽음은 두려움 그 자체였다. 어쨌든, 어린시적의 이 짧은 경험은 이후 내 정신세계에 많은 영향을 끼쳤다고 나는 생각한다. 그 후 나는 대부분 병약하고 우울한 아이로 뛰어놀기보다 뭔가 생각할 거리를 늘 가지고 다니는 조용한 아이로 성장했다.

 

이 책에서는 죽음을 바라보는 동, 서양의 차이점과 유사점을 설명한다. 또한 좀 더 세밀하게 시대별로 달라진 죽음에 대한 인식도 알 수 있다. 이집트인들은 미라를 만들면 부활할 수 있다는 믿음을 가지게 되었기 때문에 죽음은 또 다른 삶의 시작으로 받아들여졌다. 그들에게 집은 잠시 머물렀다 떠나는 여관일 뿐이고, 무덤이야말로 그들의 영원한 거처라고 행각했다. 때문에 이집트는 고대 왕궁과 같은 역사적인 건축물은 하나도 남아있지 않고 피라미드와 같은 무덤만 남게 되었다. 저자가 중국인인 점을 감안한다면 이 책의 많은 부분이 중국에 할애되어 있는 것이 전혀 이상하지 않다. 언젠가 음식문화에 대한 책을 읽은 적이 있는데 저자가 우리나라 사람이었음에도 불구하고 정작 우리나라보다는 일본의 음식문화를 더 자세히 다루고 있어서 기분이 상했던 적이 있다. 어쨌든 이 책의 저자에게서 자기 문화에 대한 자긍심을 엿볼 수 있는 부분이 바로 죽음을 바라보는 중국인의 시선을 다룬 부분이었다. 저자는 유교, 도교, 중국불교의 분석을 통해서 유교, 도교, 불교가 추구하는 최고의 가치가 죽음의 ‘초월’에 있다는 결론을 내리고 있다.

 

유가에서는 사후 세계에 전혀 관심을 두지 않기 때문에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았다. 일찍이 공자는 未能事人 焉能事鬼(사람도 제대로 섬기지 못하며 어찌 귀신을 섬기겠는가) 未知生 焉知死(아직 삶도 모르는데 어찌 죽음을 알리오?)라고 논어에서 말 했다. 그러나 ‘왜’ ‘어떻게’ 죽는가에 대해서는 심사숙고 했다. 때문에 유교는 ‘명분’을 중요시 할 수밖에 없다. 죽음에 연연하지 않고 죽음으로써 저항의지를 드러냈다.

 

도가는 유교의 이런 관점에 대해 비판했다. 장자는 삶과 죽음을 연속적인 하나의 사건으로 보아 삶과 죽음은 기가 모이거나 흩어지는 것에 불과하여 죽음은 곧 안식을 뜻한다고 했다.

즉, 삶과 죽음은 형태만 다를 뿐이라는 것이다.

장자는 方生方死 方死方生(삶이 있음으로 해서 죽음이 있고, 죽음이 있음으로 해서 삶이 있다)라고 했다. 노자는 抱一을 제시한다. 만약 삶에 연연하지 않으면 오히려 그 삶이 완전해진다는 생각이다. 노자의 抱一은 장자의 生死齊一과 같은 경지를 추구한다. 이것이 도가에서 말하는 생사초월이며 도가의 죽음의 미학이다. 때문에 도가에서는 삶의 중요함을 강조했다.(page41-112 '중국인-죽음을 맴돌다'에서 발췌)

 

중국의 불교는 후한시기에 전해졌다. 이 시기의 중국은 불교가 탄생할 때의 인도처럼 극도의 혼란과 불안이 팽배한 사회였다. 힘없고 의지할 곳 없는 백성들은 귀신에게 호소했지만 답을 구할 수 없었다. 이 때 등장한 것이 불교였다. 불교는 인간의 고통이 무명한 인간이 고통의 바다에서 벗어나지 못하기 때문에 생긴다고 했다. 그래서 불교는 해탈을 강조했다.

불교는 독특한 윤회와 업보를 강조하지만, 전반적인 불교의 기본교의는 ‘생사를 끝내고 열반에 드는 것’이다. 불교의 목표도 ‘생사를 끝내는 것’을 가장 중요한 목표로 삼았다.

결국, 유교, 도교와 마찬가지로 불교도 ‘생사초월’에 최고의 가치를 부여하고 있다.

 

동 서양 모두 통틀어 ‘죽임’에 대한 자세한 설명과 함께 수록된 삽화들을 본다면 어떤 의미를 가지고 있던지 인간이 인간을 ‘죽임’이라는 행위가 얼마나 끔찍했고 잔인하고 극악스러웠는지 새삼 ‘인간’이라는 종에 대해 다시 생각해보기도 했다.

중국의 잔혹한 죽음의 역사(page266)와 서양의 잔혹한 죽음의 역사(page283) 부분은 너무 끔찍하다. 미처 상상해 본적 없는 방법으로 인간이 인간에게 가한 형벌은 아마도 이 지구상에 존재하는 모든 동물들 중 인간만이 저지를 수 있는 악행이 아닐까 싶다. 이 부분을 보고 한동안은 가슴이 두근거렸다. 함께 실린 삽화야말로 그 잔혹함을 실체로 드러내주는 부분이다. 공부방 아이들에게 책에 실린 삽화만 흩어보라고 했더니 대부분의 아이들이 머리가 몸에서 떨어져 나가는 순간(page279 삽화)을 찍은 부분을 가장 기억에 남는 장면으로 지적했다. 생과 사가 갈라지는 이 찰나의 순간이 비록 작은 흑백 사진 한 장이었지만 아이들에게 도 마찬가지로 충격으로 다가섰다는 걸 알았다.

 

전쟁으로 인한 죽음에 대해서는 정말로 많은 생각을 하게 한다. 어쨌든, 이 땅위에서 전쟁을 사라져야 한다. 대부분의 전쟁이 지배층의 또는 권력자의 야욕과 탐욕에 의해 저질러지지 않았던가. 저자는 평화의 결과도 역시 죽음이라고 말하고 있지만 그가 말 하는 것은 평화로운 시기엔 전염병과 같은 자연재앙이 창궐하여 사람들의 목숨을 앗아갔다는 것이다. 그런 자연재앙이 두려워 전쟁을 옹호할 수는 없다고 본다. 전쟁은 전쟁과는 전혀 상관없는 무고한 생명들을 무차별적으로 흩어간다.

 

이 책에서 의도하는 것은 인간끼리의 잔혹한 ‘죽임’을 되짚어 봄으로써 현실에 만연한 생명경시풍조와 폭력에 대해 다시 한 번 되돌아보고자 하는 것이다. 인간에 대해 깊이 고뇌해보게 함으로써 폭력의 끝에 있는 ‘죽임’을 냉정히 바라보고 진정으로 생명의 고귀함에 대해 다시 한 번 진지하게 생각하게 하는 것이야말로 책을 읽고 얻을 수 있는 소득이라고 하겠다.